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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윤리’는 인간과 자연 향한 하나님의 섭리 입증하는 것

기독교 교육&윤리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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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와 생태계 위기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답변 / 황봉환 교수(대신대신대원, 기독교윤리)

 

“그리스도인은 생태계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때, 생태계에 큰 손상을 입히는데 동조하는 것이 되고, 그 피해는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황봉환 교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며 “만일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포학하게 행하면 인간과 자연이 함께 멸망하게 된다는 호세아 선지자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태윤리는 인간 중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윤리는 창조와 구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입증하는 것”이라며 “우리에게 지워진 윤리적 짐은 피조물을 보호하고 돌보는 일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위임된 지배력의 실천”이라고 피력했다.

황 교수의 연구논문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문제의 제기 및 연구목적과 방향
2. 지구, 인류의 삶의 터전
3. 지구 온난화의 역사적 관점과 주 요인들
4.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그 영향들
5.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위기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답변
6. 나가는 말

 

# 연구내용 중에서

1. 우주만물의 창조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우주적 통치를 위임하셨다. 위임통치를 받아 인간이 살고 있는 유일한 지구환경이 급속한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심각하게 오염됐으며, 그로 인하여 생태계의 질서가 파괴돼 ‘생태계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생태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 그리고 ‘세계 종말의 문제’라고 말한다.

2.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장엄한 선포로 시작된다. 이 한 절 만으로도 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로 인식한다는 것은 세계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말한다.

3. 천지창조 후에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된 세계에 생존하게 하시고 그 세계를 다스리라는 권한을 주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4.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위임한 “다스리라”(창 1:26)는 문화명령은 피조세계를 ‘억압하고’, ‘파괴하고’, ‘없애버리라’는 뜻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장려하고’, ‘돌보고’, ‘가꾸고’ 그리고 ‘보호하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가치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설명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존재의 목적이나 가치를 부여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5. 지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창조되었음으로 인간은 청지기로서 이 지구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인간은 흙으로 창조됐고, 흙으로부터 생산된 것을 먹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과 땅은 의존적 관계로 형성돼 있다. 땅은 인간의 본향이자 안식처이며, 삶의 터전이다. 이런 관계에서 인간은 지구의 자연환경에 대해 생산적이고 보호적인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인 ‘창조신학’이다.

5.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 것이 자연생태계이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온난화를 가중시키는 화석 에너지를 이용하는 한 지구 생태계의 파괴는 반드시 진행된다.

6. 생태계 위기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창조개념에서부터 출발한다. 기독교는 자연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인정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진화론자들은 결코 자연을 존중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플라토니즘이 자연을 경시하고 열등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플라토니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에게 좋았더라고 한 물질세계를 악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플라토니즘의 사상이 기독교의 개념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

7. 복음주의 기독교는 플라토니즘을 비판한다. 첫째, 창조하신 물질은 결코 비천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창조시계는 하나님의 선하신 작품이다. 따라서 물질세계를 열등하게 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통해 물질이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확증한다.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은 영과 육의 연합을 보여준다. 영광스러운 육체의 부활이기에 조금도 열등하지 않다. 셋째,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이 그 주인을 찬양하고 있다.

8. 자연과 피조물 통치에 대한 성경의 명령은 인간에게 지배권이 주어졌다는 명백한 신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만 강조하지 않는다. 인간은 만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자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절대적 주권자이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청지기로서 수행자일 뿐이다.

9. 따라서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지배권은 자연의 가치를 인정하고, 파괴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자연에 대한 권리와 인간의 책임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닮았다면 인간은 그 지배권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써 행동하는 것이다.

10. 생태계 파괴의 근원적 요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타락에 있다. 인간의 타락은 그가 거처하는 물질세계 전체에 영향을 줬다.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세계(땅)를 “경작하며 지키게”(창 2:15) 하셨으나 인간의 타락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고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7~18)고 했다.

11. 인간의 타락이 지구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는 신학적 지원은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노아와 맺은 언약(창 9:9~11)에서도 발견된다. 이 언약의 내용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홍수로 쓸어버림을 당한 후 하나님께서 인간과 모든 생물을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다. 이 언약은 인간과 모든 생물이 쓸어버림을 당한 것이 인간의 타락과 죄에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죄로 인한 타락이 인간과 모든 생물들에게 파멸의 영향을 끼쳤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그의 말씀을 멸시한 이스라엘 거민뿐만 아니라 땅까지도 황폐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사 6:11~13).

12. 인간의 타락이 인간과 자연 두 영역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악이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 공간, 지구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들을 보면 개인이나 국민적 범죄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인간과 자연 관계의 아름다운 조화는 죄와 함께 무질서하게 됐고, 그들이 파멸의 영향을 받게 됐다.

13. (생태계 위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의무) 창조질서가 위협받는 시기에 환경보존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일에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의무의 범위는 인간관계를 넘어 생태계에까지 구체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14.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의인의 삶은 구속주,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 주어진 생명에 주목하고 보살펴 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의로움의 표지다. 창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보살핌은 근원적인 의무이지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보살핌은 구속 받은 의인의 당연한 의무이다.

15.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분리 상태에 놓이게 됐다. 이러한 관계 사이의 완전한 회복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함께 시작됐다. 그리고 종말론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종말론적 비전을 예언하면서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사 65:17)란 말로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시작될 새로운 하늘과 땅은 즐거운 장소로,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 생명이 충만한 곳, 좌절케 하는 노역의 저주가 없는 곳, 환경적으로 어떤 위험도 없는 안전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사 6517~18, 20, 25).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그의 구속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역사가 변화됐다는 사실을 지적했다(골 1:13~17, 20).

16. 쉐퍼는 자연의 완전한 회복에 대해 논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타락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구속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을 타락한 악한 결과들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계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자연이 회복될 것을 더 명확하게 증언했다(계 21:1, 5). 구속함을 받은 모든 피조물들이 영원토록 그리스도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계 5:13).

17. 미래에 완성될 회복에 대한 소망은 생태윤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의무를 더 각성하게 한다. 칼빈은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영속적인 통치와 보호에 대한 확신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이 생태계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때 생태계에 큰 손상을 입히는데 동조하는 것이 되고, 그리고 그 피해는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나 자연에 대해 강포를 행한 것이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하박국 선지자는 선포했다(합 2:17).

18. 생태윤리는 인간 중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윤리는 창조와 구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워진 윤리적 짐은 피조물을 보호하고 돌보는 일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위임된 지배력의 실천이다.

* 위의 내용은 개혁신학회 논문집 ‘개혁논총’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황봉환, “지구 온난화 문제점과 생태계 위기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답변”, 개혁논총, 제10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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