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열왕기서 설교(2)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 특징과 비교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6. 18.
728x90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회장:김윤희 박사, 횃불트리니티신대)가 지난 17일 오후 2시 서부교회(담임:임채영 목사)에서 '제43차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제10차 구약과 목회와의 만남'으로 진행된 이번 발표회는 '열왕기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주제로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목회자들에게 솔로몬, 엘리야와 엘리사,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교해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3명의 구약신학자들의 성경 해석과 설교의 방법을 정리해봤다. <편집자 주>

 

귀스타브 도레,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야〉(1866) / 사진출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97XXXXXXX751

 

 

[왕상 12장~왕하 10장 개관 및] 엘리야 엘리사 시대의 배경과 사역의 특징
/ 박유미 박사(안양대)

 

박유미 박사에 따르면 열왕기서는 크게 솔로몬의 통치(왕상 1-11장), 분열왕국 시대(왕상 12장-왕하 17장), 유다왕국(왕하 18-25장)으로 나눌 수 있다. 내용으로 구분하면 열왕기상 12-14장은 두 왕국의 탄생을 다루고, 열왕기상 15-16장 오므리 통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왕국에 대해 다룬다. 또한 열왕기상 17-열왕기하 10장은 오므리 왕조의 멸망까지(엘리야 엘리사 이야기) 다루고 있다.

 

박유미 박사(안양대)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
열왕기서의 중심이야기

 

박 박사는 "왕들의 이야기는 프롤로그, 중심 이야기, 에필로그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사기의 형식과 유사하다. 그리고 중심 이야기도 왕에 대한 전 생애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열왕기 저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만 기록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등극과 멸망 등 왕들의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설명한 박 박사는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는 열왕기서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열왕기서의 중심 이야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며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 시대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선지자 두 명이 등장한다"라고 설명했다.

 

728x90

 

왜, 가장 악한
오므리 왕조시대였을까?

 

엘리야와 엘리사는 모세 이후 가장 많은 이적을 행한 선지자였다고 소개한 박 박사는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하다고 평가받는 오므리 왕조 시대에 가장 뛰어난 선지자가 사역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가지고 엘리야 엘리사 본문을 읽는다면 본문을 해석하는 좋은 관점을 하나 갖게 되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오므리 왕조는 오므리가 전 왕인 시므리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당시 이스라엘의 절반은 오므리를 지지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지지하면서 이스라엘이 오므리파와 디브니파로 나뉘어 또다시 내전이 벌어진 것.

 

두 파간에 심각한 무력 충돌이 있었고 결국 오므리 파가 디브니 파를 이겼고 그 결과 디브니는 죽고 마침내 오므리가 왕이 된다. 이렇게 두 번의 전쟁을 치르고 오므리는 유다의 아사 왕 33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12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박 박사는 "열왕기상 16장 25-27절의 오므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라고 매우 악한 왕으로 평가하며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끝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대 근동의 문헌을 보면 오므리는 정치적 외교적 업적이 뛰어난 왕으로 기록된다. 내적으로 그는 반복되는 내란을 종식하고 새로운 수도인 사마리아를 건설하는 등 이스라엘을 재정비하였고 밖으로는 당시 강대국인 아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다와의 전쟁도 중단하였고, 모압을 공격하여 그들을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어 조공을 받아내고, 앗수르와의 전쟁에서도 큰 성과를 거둔다"라고 주장했다.

 

오므리의 실수?
"아합을 이세벨과 결혼시키다"

 

박 박사는 "이와 같은 정치적, 외교적 능력을 인정받은 오므리는 앗수르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은 오므리의 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며 "당시 상업 도시 국가였던 두로와 협력하기 위해 두로의 공주 이세벨과 그의 아들 아합을 결혼시켰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시왕의 이름은 엣바알로 “바알이 존재한다(바알과 함께)”라는 뜻으로 바알 숭배자였다. 이세벨은 바알의 사제로서 바알을 전파하는데 열정적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오므리는 시돈 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교역로를 확보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이세벨과 결혼시킨 것이다.

 

이스라엘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다

 

박 박사는 "이 결혼 동맹으로 이후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건설하고 그 안에 바알을 위한 제단을 쌓고 아세라 상을 만들었다(왕상 16:32-33). 아마 이런 조항들이 결혼 계약서 안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험을 주는 상황이 발생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스라엘 안에서 가나안 신들을 숭배하는 정책이 펼쳐지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박해를 받았으며 가나안 사람들의 가치관이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아합은 결혼 동맹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은 대신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신을 택하게 된 것이다.

 

 

주류에서 밀려난 '여호와 신앙' 
엘리야와 엘리사의 등극

 

박 박사는 "종종 아합이 이세벨의 꼬임에 넘어가 여호와를 버렸다고 하면서 이세벨만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결혼 동맹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 땅에는 여호와께 대한 신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게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엘리야와 엘리사는 이렇게 바알신앙이 국가 공인 신앙으로 권장되고 여호와 신앙이 주류에서 밀려나 핍박을 받던 시대,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로 등극하게 된다.

 

엘리야는 누구인가?

 

박 박사에 따르면 엘리야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다. 그의 지파도 가문도 소개되지 않고 단지 요단 동편 지역인 ‘길르앗에 우거하는 디셉 사람’으로만 소개된다. ‘우거한다’는 말은 그 지역 경계에 거주하는 이민자이거나 외국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는 "엘리야는 소명 장면도 없고 첫 등장에서 화자는 그가 여호와의 선지자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는다. 이렇게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엘리야는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아합 왕에게 대적하며 놀라운 이적을 행했지만 그의 능력과 명성과는 달리 많은 좌절을 하였고 평생 고독하게 사역했다"라고 설명했다.

 

엘리야는 도망과 좌절의 선지자

 

박 박사는 엘리야 사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망’ 혹은 ‘좌절’이었다고 주장했다. 열왕기상 17장 1절에서 갑자기 등장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왕인 아합에게 자신의 말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합과 이세벨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결국 '도망'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아합은 이런 엘리야를 가만두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협하는 아합에게 재앙을 내리셔서 엘리야의 권위를 높여주시는 대신 그에게 도망가라고 명하신다"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명하셨고 그 후에는 시돈 지역인 사르밧으로 피하라고 명하신다. 카리스마 넘치는 등장과 선언 이후 엘리야의 모습은 계속해서 아합을 피해 도망 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라고 설명했다.

 

'엘리야의 도망'에 담긴
두 가지 의미

 

박 박사는 '엘리야의 도망'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엘리야가 비록 하나님의 선지자이지만 이스라엘에는 아무런 권력이나 명성도 없는 무명의 선지자로 아합에게 대항하여 그를 돕거나 그와 함께 할 백성이나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이 중심이 아니라 주변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신학적으로 엘리야가 도망 다니는 기간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이스라엘에게 비와 풍요를 주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시라는 것을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도록 주신 기회였다. 엘리야 개인은 도망한 곳에서 양식을 공급받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베풀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히 체험하는 기간이 되었지만 도망자 신세는 면할 수 없었다.

 

박 박사는 "이 패턴은 열왕기상 18장의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고 비를 다시 오게 하는 놀라운 이적을 보인 후에도 마찬가지다"라며 "갈멜산 싸움에서 엘리야가 승리하면서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자신이 여호와의 참 선지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줬지만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오는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았고, 엘리야는 절망 속에서 또다시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관심과 존경받지 못한
'고독한 주변인' 엘리야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친 이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호렙산에서 새로운 사명을 받는다. 바로 엘리사를 후계로 세우는 것과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세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박 박사는 "이 사명 또한 아합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엘리야를 통해 시작되지만 엘리야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라며 "열왕기상 21장의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사건에서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아합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아합의 회개에 다시금 절망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합에 대한 심판 연기는 엘리야 입장에서 보면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게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호와는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는 분이시며 이스라엘이 회개하길 정말로 원하신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며 "결국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 죽음 예고를 듣고 엘리야가 예언한 모습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는다. 이렇게 아합의 죽음의 마무리도 엘리야가 아닌 다른 선지자의 몫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시작하는 사람이지 성취하고 완성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불의 선지자 엘리야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 예고

 

하지만 엘리야는 '불의 선지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 박사는 "불은 엘리야의 이야기 속에 종종 등장하는데 이것은 여호와의 임재와 심판의 성격을 보여준다. 갈멜산에서(왕상 18장), 호렙산에서(왕상 19장), 아하시아 왕 앞에서(왕하 1장) 등장한 불은 여호와가 바알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엘리야의 마지막 불은 열왕기하 2장에서 등장한다. 엘리야는 신현의 수단이자 여호와 군대를 상징하는 불말과 불 병거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사라진다.

 

박 박사는 "이 모습은 오직 엘리야와 엘리사만 볼 수 있는 신비한 광경으로 엘리사 이야기 속에서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를 계승한 참 선지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야 이야기 속에서 보면 불 말과 불 병거는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엘리야가 여호와의 임재와 보호 속에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불말과 불병거는 후에 엘리사 이야기에서도 등장한다(왕하 6:17)"며 "불은 엘리야의 이야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며 여호와께서 엘리야와 함께 계시고, 그를 통해 백성들 가운데 계신다는 임재와 심판의 상징이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력한 불로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주셨던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권능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설명했다.

 

엘리야 사역의 특징 
"공급하시는 하나님"

 

박 박사는 엘리야 이야기의 또 다른 특징을 엘리야가 계속해서 여호와께 물과 양식을 공급받는 것에서 찾았다. 그는 "이것은 주로 물과 양식을 공급하던 엘리사의 사역과 대조된다. 물론 그가 사르밧 과부에게 기름과 밀가루를 끊임없이 제공하지만 그래도 사르밧 과부에게 먼저 물과 떡을 공급받는다. 이렇게 엘리야의 이야기는 물과 양식을 공급받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엘리야가 기근을 선포하고 그릿 시내로 도망갔을 때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한다"며 "제의적으로 부정한 동물(레 11:15)로 분류된 까마귀가 양식을 나른다는 것은 이 공급이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까마귀는 이스라엘이 꺼리는 새이기에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주변인이었던 엘리야가 사역 내내 도망치면서 까마귀, 궁핍한 과부, 하나님의 천사 등 주변으로부터 하나님의 양식을 공급받은 이유에 대해 박 박사는 "타락한 이스라엘 땅에서 바알 종교가 기승을 부리면서 여호와의 신앙이 주변부로 완전히 밀려나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를 위한 공간과 양식은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 밖에서 하나님이 엘리야의 공급자이자 피난처가 되어 주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의 등장
물의 선지자 '엘리사'
생명 살리는 사역에 집중

 

박 박사는 "엘리사 이야기에는 엘리야 이야기보다 훨씬 많은 이적이 등장하고, 훨씬 많은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엘리야 이야기처럼 뚜렷한 패턴이 나타나지는 않는다"며 "엘리사 사역의 가장 큰 특징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엘리사를 물의 선지자라고 해석했다. 엘리야 이야기에서는 불이 많이 등장하지만 엘리사 이야기에서는 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리고의 죽음과 불임의 물을 생명의 물로 바꾼 사건(왕하 2:19-22). 나아만 장군의 나병 치료 사건(왕하 5:14) 등 엘리사의 이야기에서 물은 생명을 살리는 일과 연결돼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엘리사 이야기에는 과부들, 신학생들과 그 가족, 농부들, 포로들과 같은 수많은 사회적인 약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오므리 왕조 치하에서 가장 깊은 고통을 받은 무리들이었다"며 "엘리사는 주로 이들에게 물과 양식을 공급했다. 이것은 엘리야 이야기에서는 주로 엘리야가 물과 양식을 공급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생명을 살리는 엘리사 사역을 더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물과 양식을 공급하는 사건은 열왕기하 4장에 집중해서 등장한다"며 "엘리사는 가난하고 굶주린 제자들과 백성을 위해 물과 양식을 제공하며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며 "무엇보다 비록 물과 양식을 제공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생명을 살리는 엘리사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열왕기하 13장 21절에서 죽은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가 살아난 사건으로 엘리사는 비록 죽었으나 그의 (생명을 살리는) 능력은 남아 있었던 것을 말해준 사건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죽인 사건은?

 

물론 엘리사가 언제나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한 것은 아니다. 단 한 번 아이들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 작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조롱하자 이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암곰 둘이 4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찢어 죽인 사건이다.

 

이와 관련 박 박사는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아이들의 잘못에 비교적 너그러운 현대적 시각에서 보자면 이 예외적인 사건은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또한 너무 강렬해서 엘리사를 무섭고 두려운 선지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아이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함부로 모욕하는 것은 여호와를 무시하며 전혀 존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문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이나 평가를 기록하지 않고 사실만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백성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엘리사를 매우 두려워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 사건 후에 엘리사는 사람을 죽이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면 이 사건은 엘리사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더 집중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 때문에 엘리사를 생명의 선지자가 아닌 죽음의 선지자로 보는 것은 과하단 생각이 든다"라고 주장했다.

 

백성들 안에 속했던 엘리사
이스라엘 정치 역사에도 개입

 

엘리사는 주로 이스라엘 땅 밖에서 고독하게 살아야 했던 엘리야와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란 인정을 받았다. 물론 이와 같은 백성들의 인정은 엘리사에게 부와 권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박 박사는  특히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전쟁이나 내정 문제에 대해 전혀 간여하지 않고 오직 아합과 이세벨과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은 반면,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역사에 엘리야보다 더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 선지자였다"라고 평가했다. 

 

유다 왕과 이스라엘 왕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했으며, 모압과의 전쟁에서 왕의 요청을 받고 가서 물 부족을 해결해 주었고, 나아만으로 인해 왕이 곤란에 처했을 때 자신이 먼저 나아만을 고쳐주겠다고 나섰으며,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계획하면 그 사실을 왕에게 알려주어 아람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했다는 것.

 

그는 "이스라엘이 이웃 나라들과의 분쟁으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엘리사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선지자의 능력을 보여주며 여호와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왕과 백성들에게 알려주었다"며 "이런 이유로 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왕하 13:14)"고 설명했다.

 

또한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와 아람 왕으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예후를 통해 오므리 왕가를 철저히 무너뜨리도록 한다"며 "이것은 반란의 획책으로 지극히 정치적인 행동인 동시에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여호와께 반란을 일으킨 왕가를 심판하는 종교적인 행동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엘리야의 사역과 같은 점
"엘리사도 주변인들과 함께 했다"

 

물론 엘리야의 이야기처럼 엘리사 이야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대상과 은혜의 전달자들은 대부분 주변인이라는 점에서 엘리야와 같은 사역의 특징도 갖고 있다.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알린 것은 이스라엘의 포로 소녀였다. 박 박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인으로 생각하는 노예 소녀는 믿음을 보여줬고, 이방인인 나아만은 치료와 개종을 통해 정결한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이스라엘 중심부에 있는 왕은 여호와에 대한 무지와 불신을 보여주었고 게하시는 오히려 부정한 존재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줬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열왕기하 6장에서 물에 빠진 도끼조차 살 여력이 없는 가난한 제자들을 도운 사건이나 열왕기하 7장에 등장하는 공동체에서 쫓겨난 나병 환자들의 이야기 등 엘리사도 소외되고, 가난한 주변인들과 함께 물과 양식을 공급하는 사역을 했다"라고 평가했다.

 

한국교회, 
누구와 어떤 사역을 할 것인가?

 

박 박사는 "여호와 신앙이 이스라엘 땅에서 희미해져 가고 여호와의 선지자가 핍박받던 시대에 엘리야와 엘리사는 수많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여전히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백성을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했다"며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불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와 심판을 보여주던 두려운 선지자 엘리야, 그러나 항상 홀로 여호와를 외치고 살았던 고독한 선지자 엘리야. 이런 엘리야의 모습 속에서 한국교회는 성공주의에 함몰된 현재의 모습을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주변인의 삶을 살면서도 생명을 살리고 끊임없이 가난한 자들과 굶주린 자들에게 물과 양식을 제공하는 엘리사의 사역을 보며 한국교회가 무엇을 위해 사역을 해나가야 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어야 하며, 주변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교회가 누구와 함께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열왕기서 설교(1) 솔로몬 향한 하나님의 심판 이유

열왕기서 설교(3)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던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Copyright데오스앤로고스 / 무단 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반응형
LIST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