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헌금) 전 재산을 바친 그녀의 모습은 가난한 자에게서 재물을 착취해 부를 축적하려는 성전 당국자들의 잘못된 욕망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율법과 성전을 내세우는 탐욕스러운 유대 지도자와 성전 당국자들을 비판하는 예수의 개혁적인 모습과도 일치한다." (이민규 박사, 한국성서대)
마가복음 12장 41~44에 등장하는 과부의 헌금에 대한 연구논문이 있어 소개한다.
* 이 글은 목회 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이민규 박사의 <마가복음 12:41~44에 나타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연구>,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신약연구', 제13권(제2호/2014)
과부의 헌금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 아니다?"
이민규 박사(한국성서대)는 "자신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을 성전에 헌금한 과부의 이야기(막 12:41~44)는 최근까지도 전통적으로 '과부의 아름다운 헌금 이야기'로 알려져 왔다"라며 "그러나 라이트(A. G. Wright)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라고 설명한다.
즉, 라이트는 예루살렘 당국자들에게 종교적 헌신을 맹신하게 되어 기만당하는 것에 대한 탄식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이 박사는 "라이트는 본문에서 전 재산을 다 바치는 과부의 봉헌을 바로 앞에 나오는 과부의 재산을 탐하는 '서기관'에 대한 예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에게
전부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전 재산을 헌금했던 과부의 모습이 담긴 마가복음 본문은 당시 유대문화에서 인용되던 랍비 설화의 내용과 유사하다고 설명한 이 박사는 "본문은 무소유의 정신으로 바친 것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헌신하기 위한 봉헌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박사는 이런 해석은 마음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이렇게 가난한 과부에게도 전부를 요구하시는 분일까? 그렇게 하면 그녀의 생계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뜻일까?"
종교지도자들의 탐욕과
부를 자랑하는 성전 심판
이민규 박사는 "본문의 앞뒤 구절들인 12:38-40과 14:1-2까지 확장해서 읽어볼 때 그 의도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라며 먼저 마가복음의 문학적 구조와 누가복음(21:1-4)에 나타난 평행 구절을 분석한다.
또한 마가복음 13:38~14:2절까지의 문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마가복음의 이야기는 가난한 과부의 모범적인 헌금의 자세라기보다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종교지도자의 탐욕으로 희생된 과부와 헌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부를 자랑하는 성전을 심판한 내용으로 보아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는 예수의 말씀은(막 12:43) 전 재산을 바친 과부의 봉헌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라기보다는 종교적으로 착취당하는 과부의 현실에 대한 탄식으로 볼 수 있다."
마가는 성전과
성전 당국자를 싫어했다?
마가복음에서 등장하는 성전과 성전 당국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이 박사는 "마가복음을 비로해 공관복음서 전체에 등장하는 성전 소동 사건(막 11:17; 마 21:13; 눅 17:46)은 성전에 관한 가장 큰 대립과 부정적인 묘사다"라며 "성전 소동 사건은 과부가 전 재산을 성전에 봉헌한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전에 대한 마가의 이해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 박사는 예수와 성전("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막 14:58), 역사적 헤롯 성전, 속죄의 장소로서의 성전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가복음 본문은 성전제도에 대한 초대교회의 신학적인 공격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 박사는 "마가복음은 전반에 걸쳐 성전과 성전 당국자에 대하여 혐오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라며 "그곳은 결국 새 성전이신 예수로 대치되어야 하고 새 성전의 도래와 함께 결국 무너져야만 하는 곳이었다"라고 강조한다.
과부의 헌금,
아름다운 헌금이야기 아닌
탐욕과 착취를 비판한 것
이 박사는 "과부의 헌금이야기는 새 시대의 교회와 대치 상태, 경쟁구조에 있는 '성전'에 대한 공격으로 볼 수 있다"라며 "본문이 과부의 헌금에 대한 칭찬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기본적으로 마가복음에서 이 문맥이 새 언약의 우월성 속에 옛 언약의 상징인 성전과 그 제도에 대한 멸망의 문맥에서 쓰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민규 박사는 아래와 같이 언급하면서 연구논문을 마무리한다.
"본문의 내용은 전 재산을 바친 그녀의 모습을 가난한 자에게서 재물을 착취해 부를 축적하려는 성전당국자들의 잘못된 욕망을 공격하고 있어 보인다. 이런 해석은 율법과 성전을 내세우는 탐욕스러운 유대지도자와 성전당국자들을 비판하는 예수의 개혁적인 모습과도 일치한다. 성전당국자들이 바로 '강도'요, 과부의 헌물로 사치스럽게 꾸민 성전은 사실 강도의 '소굴'’이라는 실상을 보여주는 과부의 이야기로 읽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해석이다."
[이민규 박사의 연구논문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본문
가. 마가복음의 문학적 구조와 누가복음(21:1~4)에 나타난 평행 구절에 관한 내용
나. 마가복음 13:38-14:2의 넓은 문맥에서의 연구
다. 당시 과부의 사회적 위치
3. 성전에 대한 연구
가. 마가복음 전체 문맥에서의 성전에 대한 연구
나. 예수와 성전
다. 역사적 헤롯 성전에 대한 연구
라. 속죄의 장소인 유대 성전과 죄인에게 희생제물 없이 속죄를 선포하는 예수, 초대교회의 선택
3.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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