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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죽음 교육, '마지막 순간'의 준비 아닌 '현재의 삶'의 교육이 되어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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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죽음 교육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교육이 아니라 종말론적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의 존재를 증언하기 위한 삶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

 

최성수 박사(미디에이터연구소장, 은현교회 교육목사)는 한국조직신학회가 지난 6월 25일 개최한 월례신학포럼에서 '죽음을 어떻게 적합하게 말할 것인가?(죽음 교육에서 스크루지 효과(Scrooge Effect)에 대한 비판과 죽음학적 전환기(thanatological turn)의 기독교 죽음 교육의 필요성과 방법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하며, 기독교 죽음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죽음과 '버킷 리스트'

 

최 박사는 "현재 사람들이 죽음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삶의 의미로 대체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죽음 자체가 갖는 신학적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의 죽음 교육을 통해 얻으려는 건 마땅히 해야 했으나 여러 이유로 그동안 미루었던 일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행할 적합한 동기이다. 소위 삶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한 ‘버킷 리스트’를 얻기 위함이다. 이것은 행위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구성하려는 실용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문화와 관습을 드러낸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죽음에 직면해 있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건 무엇일까?

 

최 박사는 "죽음은 한 인격체가 그동안 어떤 존재로서 살아왔는지를 드러내는 시금석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죽음 교육에서 관건은 죽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버킷 리스트는 변화를 실천하기 위한 목록일 뿐이다"라며 "삶의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위한 마중물이 되지 못하는 기존의 죽음 교육에서 탈피해서 죽음의 신학적 의미와 죽음 교육의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죽음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최 박사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스크루지 효과'(사람이 죽음 혹은 한계 상황에 직면하면 상대적으로 문화적으로 각인된 선한 가치와 의미를 붙잡는 경향)에 근거한 죽음 교육, 곧 삶의 긍정적 변화를 위한 교육으로서의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한계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죽음 교육은 대개 온전한 삶의 의미를 실현하도록 돕는 '죽음에 대한 준비교육'에 집중되어 있다"라며 "생을 긍정하고 삶의 의미를 실현하며 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죽음 교육이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세대별 적합한 죽음 교육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대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독교의 죽음 교육도 간접적인 죽음 경험에 대한 소위 스크루지 효과를 확인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라며 현재의 죽음 교육은 세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죽음 그 자체에 직면하기보다 대체물을 찾는 일에 전념하게 하고, 존재 자체보다는 의미 있는 삶과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아가 행위로 구성된다는 잘못된 인상을 각인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죽음 교육을 오로지 삶의 의미를 말할 기회로만 삼음으로써 죽음 상황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와 관련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죽음의 개인적인 의미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죽음의 공적 차원과 공동체적 의미를 간과한다. 

 

셋째,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태도를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돕는 데도 역부족이다. 그 결과는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죽은 자와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죽음 교육으로는 죽음을 잘못 말하는지 아니면 적합하게 말하는지를 분별할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 박사는 "죽음 교육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라며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여 삶을 다시 보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세계로 나아갈 희망을 보고 또 그러한 기회로 삼아 죽음을 말하는 사람도 기대감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죽음 교육이 갖고 있는
신학적 문제들


반면, 최 박사는 현재의 죽음 교육은 죽음에 대한 이해, 자살 예방, 가치 실현의 삶, 생명존중 사상 함양, 올바른 가치관 형성, 사별에 따른 상실감 극복, 죽음에 대한 판단력 향상 등 긍정적 영향력을 주고 있지만 여러 신학적인 문제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크루지 효과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곧 삶의 한계로서 죽음을 성찰한다고 해서 반드시 삶의 의미를 알 수 있거나 보람된 삶을 실천하는 건 아니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자기 중심으로 이해하고, 오직 자기 삶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삶의 의미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두고 평가할 때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죽음을 상상한다고 해서 현재의 삶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성경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주께서 다시 오실 때(요일 3:2) 비로소 밝혀지기 때문에 삶과 더불어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삶을 알차고 보람 있게 산다고 해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가 신학적으로 얼마나 정당한지 의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행복한 죽음은 단지 의미 있는 삶을 살았기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이다"라며 "믿음 없이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면, 의미 있고 보람된 삶으로 죽음의 의미를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되는 죽음 교육은 신학적으로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하나님의 행위로써 존엄하게 여겨져야 할 죽음이 남용되고 있다"라며 "죽음이 상업적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소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죽음이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위한 매개로 대상화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죽음을 자기 편의에 따라 소비함으로써 죽음의 공동체적 의미도 상실되었다"라며 "만일 죽음을 하나님의 행위로 여기고 또 죽음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 및 사회적 배경뿐 아니라 죽음을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해한다면, 혹시 다른 분야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기독교에서는 지금처럼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죽음,
적합하게 말해야 하는 이유

 

최 박사는 죽음을 이해하는 교육이 아닌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수 있는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유족의 비탄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교육, 죽어가는 자를 돌보는 의료인을 준비시키는 교육, 죽음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윤리적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그리고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대응하는 교육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따라서 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삶을 안다고 해서 삶에 대한 바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말하고 예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죽음의 양태를 알고 또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죽음을 제대로 말하거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보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또 바르게 말할 때 비로소 하나님 인식이 진정성을 얻고 또 하나님을 바르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예배이듯이, 죽음을 적합하게 말해야 할 이유를 성찰하고 또 이를 얻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만이 죽음에 대한 바른 태도를 준비할 수 있고 죽음 교육의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는 방식을 성찰하는 것이 죽음 교육의 과제가 되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첫째, 타인의 죽음을 함부로 말하여 고인의 죽음을 평가절하하면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겨 주기에 이것을 예방할 대책이 필요하고, 둘째, 이런 일로 인해 사회적 통합이 방해받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예방하려면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기 위한 교육으로서의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 셋째,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는 일이 사회적 과제가 될 때,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자극을 받으며, 넷째,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기 죽음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해질 수 있다는 불안과 염려로 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고, 다섯째는 죽음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수 있기에 죽음의 이해가 편협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섯째는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는 길이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말하는 길이기에 그렇다.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길 원하는 사람은 죽음의 의미는 물론이고 죽음을 둘러싼 배경에 관한 지식, 그리고 하나님 지식을 포괄하는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어떻게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어떻게 적합하게 말할 수 있을까?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기 위한 기대 지평은 부활이다. 

 

최 박사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 때가 아니라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혹은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영생의 삶으로의 변화는 일어난다"라며 "그러므로 죽음 교육은 죽음의 의미를 학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부활 교육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둘째, 공적 차원에서 사회적 연대 의식을 갖고 죽음을 말해야 한다.

 

최 박사는 "죽은 자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각종 차별행위와 제도가 빚어내는 비극의 실상을 알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숙지케 하고, 정의와 평등과 공존을 사회적 가치로 삼는 삶의 비전을 알리는 교육은 죽음의 의미를 더욱더 깊이 숙고할 기회를 제공하며, 무엇보다 타인의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것을 예방한다"라며 "사회적 연대감은 희생(victim)으로서의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필요조건이다. 이는 학교와 교회에서 죽음의 공적 차원을 숙지케 하는 교육 특히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라고 설명했다.

 

셋째, 하나님의 다스리는 행위로써 죽음을 말해야 한다.

 

최 박사는 "그리스도인에게서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기에서 핵심은 죽음이 '오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비록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해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라며 "다만 죽음의 의미에서 죄에 대한 심판과 구원의 은혜 혹은 희생, 그리고 계시를 가르는 건 믿음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문제는, 인간은 인식의 한계로 인해 누구의 죽음에 대해서도 단정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믿는 자라도 자기 죽음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단정할 수 없고, 설령 믿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이라 단정하여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인간은 다만 하나님의 행위로서 죽음을 경험할 뿐이어서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혹은 유족을 위로하며 말할 수는 있어도 죽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더구나 살아서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으니 공감적으로 죽음을 말하고 또 적합하게 말한다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죽음을 말한다면, 함부로 말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라며 "어떤 죽음이든 죽음을 말하는 일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을 다스리고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숨어계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면서 죽음을 말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최 박사는 "기독교 죽음 교육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교육으로 이해하는 경향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라며 "기독교 죽음 교육은 신앙의 종말론적인 지평 때문에 단지 죽음 전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만을 과제로 삼을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의 존재를 증언하기 위한 삶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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