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몰트만 박사, 서울신대ㆍ장신대, 튀빙긴대 ‘제2회 국제학술대회’서 강연
2015년 9월 8일 기사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민중의 억압 속에서 고난당하는 여러 나라들의 무법적 독재에 대한 적극적 저항의 모범이 된 신학자다.
‘저항의 신학자’ 본회퍼.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세우는 교회와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주장한 평화의 신학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본회퍼에게 있어서 평화와 저항은 어떤 의미였을까? 평화와 저항은 자칫 ‘모순’이나 ‘대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서울신대, 장신대, 독일 튀빙긴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제2회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4일 서울신대에서 개최됐다. ‘평화와 기독교의 과제’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에서 튀빙긴대 명예교수인 몰트만 박사는 ‘오늘 우리의 세계에 대한 디트리히 본회퍼의 의미:테러 시대 속에서 평화와 저항’을 주제로 발표했다.
몰트만 박사에 따르면 히틀러가 1934년 독일의회에서 총체적 권력을 장악하자 본회퍼는 △안보를 향한 길 위에 평화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계 속에 계시기 때문에 평화는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기 때문에 평화는 있어야 한다 등의 명제를 기반으로 의미심장한 연설을 했다.
몰트만 박사는 “본회퍼는 평화는 모험이며, 결단코 보장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안보는 평화를 이루지 못하지만 평화는 안보를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설명했다.
즉, ‘안보’라는 것은 냉전의 잔여물로서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안보를 추구하는 한 평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회퍼는 평화를 찾을 때, 안보는 저절로 찾아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뢰와 평화는 하나의 모험이다. 신뢰는 실망으로 끝날 수 있고, 평화는 상처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위험에 대해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함께’라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 십자가에 이르는 길에서도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바로 이 길을 걸은 것”이라고 역설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함께 하나님의 평화는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적대적인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평화다. 따라서 평화는 가능하다는 것이 본회퍼의 입장이었다.
몰트만 박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는 적에 대한 승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해를 통해 이루어진다”며 “화해는 죄책의 용서를 의미하며, 선으로 악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함께 나누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평화는 땅 위에 있는 인간의 세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땅과 땅의 모든 피조물들, 하나님이 사랑하는 모든 땅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평화는 곧 축복을 뜻한다. 결국 ‘그리스도께서 이 세계 속에 계시기 때문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본회퍼의 명제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몰트만 박사는 “평화는 전쟁을 끝내는 것 이상의 것이다. 평화는 정의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며 “본회퍼는 평화를 전쟁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평화는 행복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폭력이 철폐되고, 정의로운 구조들이 건설되는 하나의 길이며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즉, 평화는 예언자 이사야가 선포한 것처럼 평화는 사회와 국가가 ‘칼을 보습으로’ 바꾸는 창조적 변화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 인류는 전쟁을 수행하고, 증오하고, 죽이는 것을 배워야 했지만 이제 우리는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세우는 것을 배워야 한다”며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오늘의 세계 속에서 그것은 매우 큰 노력을 요구한다”고 피력했다.
전쟁이 영웅적 용기와 희생물을 요구한다면 평화는 용기 있고, 영리한 행동, 그리고 자신의 생명과 희생자들의 개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을 위한 개입과 희생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개입과 희생이다. 이것이 본회퍼에게는 ‘저항’이라는 것으로 표출됐다.
히틀러가 지배하는 독일에는 저항단체가 있었다. 그리고 본회퍼는 저항단체와 함께 1945년 4월 처형됐다. 왜 본회퍼는 교회 목사로서 군인들의 저항에 참여했을까?
몰트만은 “본회퍼는 교회적 저항과 정치적 저항의 구별을 반대했다”며 “살인자 정권 아래서 기독교 신앙,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부르심은 본회퍼로 하여금 교회와 국가의 구별보다 더 중요했으며, 본회퍼는 목사라는 직분의 한계로 이 부르심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즉,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술에 만취한 한 자동차 운전자가 밀집된 군중들 속으로 돌진할 때, 정신 나간 운전수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만이 목사의 사명이 아니라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술에 만취한 그 운전자에게서 자동차 핸들을 빼앗는 것이다.
그는 “본회퍼에게 폭력에 대한 원칙적 질문보다 생명에 대한 책임이 더 중요했다”며 “결국 1934년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1040년 적극적 저항의 투쟁자가 됐다. 그는 평화와 저항의 모순을 의식했기 때문에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고 피력했다.
몰트만 박사는 “죄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독재에 저항하며,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본회퍼는 실천한 것”이라며 “본회퍼의 저항은 신격화된 독재자에 대한, 메시아적인 우상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독일 튀빙긴대의 캄프만 박사(교회사 교수)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 개신교 예배에서 사라진 주제:평화’를, 슈베벨 박사(조직신학 교수)는 ‘세계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하여’를, 콘라드 박사(실천신학 교수)는 ‘폭력없이 말씀으로-기독교 설교 과제로서의 평화’를, 틸리 박사(신약학 교수)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주제로 강의했다. 장신대 신옥수 박사(조직신학)도 ‘평화통일신학의 형성과 과제:하나님나라 신학의 빛에서’를 주제로 강의했다.
이날 학술발표가 진행되기 전 서울신대 총장 유석성 박사는 ‘기독교와 평화’라는 기조강연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평화를 만드는 사람(피스메이커)이 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평화통일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평화를 만들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일”이라며 “정의로운 평화로서의 기독교 평화는 아직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 실현되어가는 과정이며, 소유가 아닌 공동의 길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평화 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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