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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한국교회 재구성, 어떤 영성을 추구해야 하나?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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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공동체로서의 교회:한국적 개신교 영성을 추구하며 / 배덕만 교수(건신대학원대)

 

2015년 8월 11일 기사

 

이 시대 한국 교회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영성’과 ‘공동체’다. 하지만 목회와 신학의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키워드는 정확한 신학적 정의나 정리도 미흡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남용돼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성과 공동체라는 단어가 한국 교회에 유행한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처한 난관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동시에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해법을 어디서 찾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성의 유행은 한국 교회 내 영성 부재 혹은 왜곡에 대한 본능적 반작용이며, 공동체에 대한 열망도 해체에 직면한 한국 교회의 본능적 몸짓이다.

내외적 모순에 직면해 해체의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의 생존과 갱신을 위한 ‘생명줄’로 영성과 공동체에 주목하고, 그것의 구체적 전거로서 한국 교회의 영성 전통의 문제점을 살펴보며, 이 시대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로 재구성 혹은 재활성화되기 위해 어떤 영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해본다.

 

# 무속적 영성

21세기에도 여전히 민간신앙으로 살아있는 ‘무속’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지난 130여 년간 한국 교회는 한국인의 삶과 의식에서 무속의 잔재를 제거하려 몸부림쳤지만 노력에 비해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했다.

근대 과학의 경이적 발전과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압도적 영향에도 무속은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도 무속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런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개신교적 관점에서 무속은 긍정적, 가치중립적, 부정적 측면 모두를 지닌다. 영적 세계에 대한 무속의 확고하고 생생한 믿음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속은 사후 혼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영적 존재와 현세 간의 긴밀한 관계도 중시한다.

물론 세부적인 믿음 체계와 종교적 관행 면에서 기독교와 무속 간에는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래서 양자의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없다.

하지만 개신교가 외국 종교임에도 한국에서 빠르게 대중화, 토착화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들 안에 깊숙이 내재된 영적 존재와 내세에 관한 무속적 세계관의 강력한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무속의 기복적 성향은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특징이다.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무속의 가치중립적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기복신앙이 마치 무속의 전유물인 듯 생각하지만 이것은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현상이다.

한국에서 은사주의, 교회성장학, 번영신학이 크게 유행하는 것의 배경에는 이런 무속적 요소가 다양한 차원에서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다.

무속은 도덕적 측면에서 치명적 약점을 가진다. 물론 무속이 도덕에 완전히 부재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속은 ‘단골’의 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역의 방향성이 집중돼 있다. 개인의 무병장수와 만사형통을 위해 점, 부적, 굿을 행하는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욕구 앞에서 타자에 대한 배려, 사회적 가치, 공공선이라는 보편적 대의가 설자리는 거의 없다. 이러한 무속의 개인주의적, 물질주의적 특성이 자본주의의 이기적 욕망과 합성될 때, 그것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은 거의 재앙적 수준이다. 한국 개신교가 ‘모이자, 돈 내자, 집 짓자!’란 구호에 열광했던 것은 무속의 부정적 영향과 관계가 있다.

현재 대다수의 개신교인들은 자신의 신앙과 무속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정하고 심지어 혐오하지만 무속은 한국 개신교의 급성장과 더 빠른 추락 모두에 영향이 지대했다.

 

 

# 복음주의적 영성

우리나라 최초로 개신교적 복음을 전해줬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성결운동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인물이다. 이들의 영향 하에 한국 교회가 성령체험, 성경, 복음전도, 묵시적 종말론 등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적 전통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길선주 목사는 묵시적 종말론의 대가였다. 이 운동을 통해 성령체험과 개인적 회개가 수없이 일어났고, 많은 성도들이 전도에 헌신했다. 그만큼 한국 교회 초기 부흥운동은 성결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한국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존중했다. 선교사들은 각종 예배와 사경회를 통해 성경을 가르쳤다. 물론 성경에 대한 비판적 분석보다 문자적 해석과 실용적 적용에 관심을 두었다. 이런 교육의 결과 한국 교회는 성경읽기와 암송을 중시하게 됐고, 성경에 대한 절대적 존중과 신앙을 내재화할 수 있었다.

성령에 대한 열린 마음도 갖게 됐다. 부흥사와 부흥회를 중심으로 영적 은사를 갈망하고 체험했다. 교파를 초월해 새벽예배, 부흥회, 수련회 등이 중시됐다.

성결한 삶도 추구하게 됐다. 각 교파의 고유한 신학적 가르침 때문에 성화 혹은 성결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고, 믿음에 대한 오해가 신자의 윤리적 책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개혁주의와 웨슬리안주의 구별없이 한국 교회는 신자들이 중생 이후 성결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말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복음이 전래되던 때는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고, 이후 혼돈과 파국의 나락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묵시적 종말론이 쉽게 대중화될 수 있었다. 케직사경회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로붙 세대주의적 전천녈설로 대표되는 묵시적 종말론이 소개됐고, 길선주 목사의 부흥회를 통해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후 시대적 정황에 힘입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한국 교회의 지배적 종말론으로 뿌리내렸다. 1994년 다미선교회가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 자본주의적 영성

해방과 함께 한국 교회 안에 새로운 영적 흐름이 유입됐다. 가난과 전쟁, 군부 독재의 과정을 거치며 냉전체제에 편입된 결과로 형성된 ‘자본주의적 영성’이다. 이 때 한국사회 내에는 반공과 친미라는 새로운 이념이 봉건과 친일의 과거를 대체했다.

북에서 내려온 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남한 교회가 재편됐고, 공산주의는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악의 실체로 정죄됐으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악마적 이념으로 부정했고, 미국을 통해 전수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수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박정희 정권을 통과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잘 살아보세’는 국가적 구호가 됐다. 농촌사회는 급속도로 붕괴되고 도시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됐으며, 한국사회는 미국화되어갔다.

이런 가운데 한국 교회 도 철저하기 미국 교회에 종속됐다. 미국 교회의 선교적, 경제적 지원이 지속됐으며, 빌리 그레이엄으로 대표되는 미국 부흥사들이 한국에서 대규모 전도집회를 열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갔으며, 미국신학과 교회가 한국에 빠르게 소개됐고, 거의 무비판적으로 흠모, 수용했다. 동시에 미국 교회와 미국 문화가 동일시되면서 미국식 기독교는 물질적 번영의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로 선전됐다.

한국사회에 경제적 성장의 가시적 결과들이 나타나면서 한국 교회에 자본주의적 영성도 급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성을 주도한 신학은 ‘교회 성장학’, ‘적극적 사고방식’, ‘번영신학’ 등이다.

물론 이러한 신학이 한국 교회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있다. 신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교회 강단들을 통해 ‘성장의 첨단적 비법’으로 소개된 교회성장학이 목회의 교본으로 채택되고, 번영신학이 시대의 매시지가 됐다. 그 결과 한국 교회 내 물질적 번영이 축복으로 정당화되고, 열정적으로 추구된 반면,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성경 진리는 외면당했다.

동시에 성장과 전도에 몰두하는 등 교세 확장을 위해 전력했지만 시대의 아픔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발전하던 자본주의 체제와 정부 정책이 많은 모순과 오류를 야기했음에도, 현 체제에 맹목적 지지를 보내며 그 체제에 희생된 자들의 불행과 고통에는 눈을 감았다.

결국 한국 교회는 경이적인 속도로 양적, 외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민족의 시대적, 고통에 동참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과 명성은 실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 민중신학적 영성

1970년에 들어서 한국 교회는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신학적 입장의 차이 때문에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이 존재했고, 교단분열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민족과 정치 문제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 간 근본적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집권연장을 목표로 삼선개혁을 시도하면서 진보와 보수 간의 입장은 확연히 갈라지게 됐고,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진보 진영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탄압과 박해의 수난시대를 맞이한 반면, 보수 진영은 국가 정책에 적극 호응, 협조함으로써 국가의 적극적 후원과 혜택 하에 최대의 번영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 진보진영은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재구성했다. 군사정권 하에서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며 독재와 분단이 정당화되는 정치적 암흑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소수의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시대적 아픔과 구조적 문제 앞에서 무책임했던 자신들의 무지, 무관심, 무책임, 그리고 비겁함을 통렬히 자각하고, 예수의 정신에 입각해 군사정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현장 체험과 신학적 반성의 결과물이 바로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였다.

산업화 시대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약자들의 눈물과 한숨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한국 교회 안에서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상아탑에 갇혀 있던 일부 신학자들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중은 신학의 주제로 목회의 주체와 대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 교회는 사회문제를 신학의 주제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민중신학은 정교함과 완성도 면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적어도 정치, 사회 문제를 신학 안으로 수용함으로써 보수 신학의 관념론적 한계를 일정 부분 극복하고, 신학의 시대적 책임과 실천적 가능성을 웅변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 덕택에 한국 교회는 부분적으로나마 예언자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규모와 세력은 미약했지만 그것이 남긴 역사적 흔적은 감동적이다.

 

 

# 오순절적 영성

한국 교회에 오순절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 후반이다. 감리교의 이용도 목사, 평신도 여선교사 메리 럼지 등에 의해 한국 교회에 오순절 운동이 일어났고, 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가 세워졌다.

한국 교회의 전통적인 부흥운동과는 구별되는 은사중심의 성령운동이 출현한 것이다. 6.25전쟁 이후 오순절 운동은 더욱 확산됐다. 전쟁으로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진 가운데 신유와 방언 같은 은사들을 강조하는 집회가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용문산기도원의 나운몽 장로, 장로교의 박태선 장로, 성결교의 양도천 목사 등이 이 시기의 성령운동을 주도했고, 1960년대부터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오순절적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부흥회, 금요철야기도회, 기도원 등을 중심으로 소위 은사집회가 성황을 이루게 됐고, 교단 구분없이 방언과 신유 같은 신비현상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최근 신사도운동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성령운동이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오순절 운동은 개혁주의가 지배적인 한국 교회 내에서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말씀보다 체험, 성결보다 능력, 고난보다 영광에 몰두했던 오순절 운동은 일부 교단에서 극단적 열광주의로 보였다.

하지만 오순절 운동이 한국 교회에 남긴 긍정적 공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초대교회에 한정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중임을 가장 극적으로 입증해줬다.

성경에 기록된 은사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신앙생활에 입문하게 됐다. 또한 한국 교회에 영적 동력을 회복시켜줌으로써 부흥과 성장도 가져왔다.

 

 

# 수도원적 영성

1990년대부터 한국 교회 내 중요한 변화가 포착됐다. 천주교의 영성신학 저서들, 특히 토마스 머튼과 헨리 나우웬의 저서들이 개신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면서 ‘영성’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복음주의 출판사들이 그들의 책을 앞다투어 번역, 출판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포스터와 유진 피터슨 같은 개신교 영성 작가들도 한국에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동원, 방성규, 김영봉, 최일도 같은 개신교 목사들도 교파를 넘어 영성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순식간에 영성은 개신교의 화두로 부상했고, 수많은 영성 프로그램 및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급부상한 영성 운동들은 대체로 수도원 운동의 복원적 성격이 강했다. 지금까지도 개신교만의 고유한 영성신학, 운동은 형성되지 못했고, 천주교의 그것을 소개, 모방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천주교 영성이 한국 개신교에 끼친 영향은 세 가지다. 첫째, 탄원이 지배하던 기도 문화 안에 침묵 속에서 경청하는 기도방식이 소개됐다. 기도의 형식은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요구사항을 열거하는 대신 침묵하며 경청하는 것임을 일깨워줬다.

둘째, 개신교인들과 성경의 관계가 ‘읽는 것’에서 ‘묵상하는 것’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개신교도 1980년대 이후 큐티문화가 유행하면서 성경을 읽는 단계에서 묵상하는 단계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리처드 포스터의 영향 하에 ‘거룩한 독서’(렉티오 디비나)가 소개되면서 묵상의 수준은 현저하게 상승했다.

셋째, 개신교인들이 간과했던 성찬식의 가치를 회복시켜줬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설교가 성찬식을 밀어내고, 예배의 중심을 장악한 것이다. 그 결과 설교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강조됐고, 성찬식의 중요성은 사라졌다. 하지만 천주교 영성은 예배 안에 잃었던 성찬의 자리를 회복시켜줬다.

 

 

# 총체적 영성

2000년대 들어서는 ‘총체적 복음’을 추구하는 다양한 저서들이 한국 교회에 소개됐다. 복음주의 좌파 혹은 급진적 복음주의로 명명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저서가 연속적으로 번역, 출판된 것이다. 이들은 복음주의 전통에서 성장했고, 사역하지만 개인전도와 함께 사회참여를 강조한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정치활동을 강조하지만 기존의 복음주의자들과는 달리 진보적 성향도 갖고 있다. 낙태와 동성애 등을 반대하지만 빈곤, 환경, 전쟁, 인종, 성 등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견지한다.

성경과 오순절 영성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고대적 영성도 함께 추구한다. 이와같은 총체적 영성은 복음주의 교회가 진보적 관점에서 사회적 책임을 깊이 인식하도록 자극시켜줬다.

복음과 상황, 뉴스앤조이, 성서한국, 교회개혁실천연대, 청어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등과 같은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에서 교회와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총체적 복음의 영향 하에 개인윤리와 사회윤리, 복음전도(영혼구원)와 정치 참여(사회구원) 간의 적절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복음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직은 도입과 검토의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향후 한국적 상황과의 적절한 접점을 찾고,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개발한다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더욱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영성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렇듯 한국 교회는 다양한 영성 전통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성이 한국 교회 안에 혼합적으로 내재돼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혼란스럽고 가변적인 영성의 현실에서 한국 교회는 어떤 태도와 전략을 추구해야 할까?

첫째, 기존에 존재했던 다양한 영성 전통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진지한 반성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신학적, 목회적, 영성적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 지혜와 수단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유산들에 보다 정직하고 용감하게 접근해 보다 지혜롭고 민감하게 대안 창출을 위한 연구와 실험을 시도해야 한다.

둘째, 교회가 담장 안에 안주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교리적 순수성과 영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성과 속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거나 묵시적 종말론에 심취해 하나님 나라의 실천적 과제를 간과할 수도 없다.

자신의 가치를 순결하게 보존하되, 복잡한 현실에 적실한 해법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가 처한 복잡하고 난해한 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정교한 해법을 탐구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다양한 영성의 흐름과 변화된 낯선 환경,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분투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포괄적으로 고려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영성의 처방전을 작성해야 한다.

최소한 지난 영성의 흐름 속에서 공공성과 윤리성을 결핍한 무속적 영성, 물질적ㆍ세속적 번영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영성은 제일 먼저 경계 목록에 올려야 한다. 동시에 성령의 직접적 체험, 성결의 추구, 민중에 대한 관심은 이 시대에도 강력하게 붙잡아야 할 소중한 유산들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의 근원적 문제는 신학의 부재 및 영성의 실종과 관계가 깊다. 결국 위기 속의 한국 교회가 다시 한번 비상하기 위해서는 영성과 공동체성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신자들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뜻에 용감하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동시에 결코 혼자 갈 수 없는 길이기에 형제자매가 어깨동무하며 동행해야 한다. 그렇게 영성과 공동체가 만날 때, 한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은 헛된 망상이 아니라 거룩한 비전이 될 것이다. 아무리 개인이 무능하고 현실이 막막해도, 우리가 계속 꿈을 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 800여 명의 기독청년들이 참석한 ‘2015 성서한국 전국대회’가 지난 8월 5일부터 8일까지 건양대 캠퍼스에서 개최됐다. 성서한국은 ‘사회적 제자도’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200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이한 이번 전국대회는 ‘더불어 한 몸, 유쾌한 세상살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성서한국 이사장 김형원 목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는 “하나님은 인간을 공동체적 존재로 만드셨고, 인간 사회가 서로 돌보고 책임지는 곳이 되기를 원하신다”며 “개인주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본질적인 가치, 그리고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가치인 ‘공동체’를 화두로 내걸었다”며 이번 전국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주집회 강사들의 메시지와 함께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 그리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내야 할 ‘공동체적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 강사들의 일부 강연 내용을 정리하며, ‘2015 성서한국 전국대회’가 오늘의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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