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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성령의 신학자’였다

데오스앤로고스 2016.01.05 17:35

김재성 박사, 기독교학술원 월례발표회서 ‘칼빈의 성령론’ 발표 / 2015년 2월 6일 기사

 

 
 
“칼빈은 ‘성령의 신학자’이며, 칼빈과 개혁주의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내주하심에 철저히 의존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김재성 박사(국제신대 부총장)는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이 지난 6일 오후 4시 학술원 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제43회 월례발표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칼빈의 성령론’을 주제로 발표한 김재성 박사는 “칼빈은 분명하고도 확고한 신념을 갖고 말씀을 선포했다”며 “성경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성령의 역사로 갖게 됐다. 무모한 자기 과시나 소영웅주의에 빠진 자만심의 선포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에서 체험하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했다”고 주장했다.

   
▲ 김재성 박사(국제신대 부총장)
김 박사에 따르면 칼빈은 자신의 신학을 비판하고 거스리는 수많은 대적자들과 맞서서 목회사역을 감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확신을 갖고 사역했다. 칼빈이 이와 같이 흔들리지 않은 견고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 깊은 연구와 경건생활의 근거는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위로였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칼빈은 성령의 신학자라는 명예만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는 칭호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업적을 남겼다”며 “그는 암브로스, 제롬, 어거스틴, 그레고리 등 초대 교회 교부들을 훨씬 능가하는 업적을 남겼다.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기독교 신학과 성령론을 제시해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세우는데 기여했다.

특히 “칼빈에게 다소 거창한 ‘성령의 신학자’라는 명칭을 수식어로 붙이게 된 이유는 그가 오직 성령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치중해 사역했거나 신학저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칼빈은 성령의 능력 체험에 대해 집중적으로 강조하거나 성령의 체험중심으로 신학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처럼 편향성을 가진 신학자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가 기독교 신학사의 발전사에서 남긴 선구자적인 공헌들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이 앞 다투어 칼빈에게 ‘성령의 신학자’라는 호칭을 붙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칼빈이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주권적으로 구원을 적용한 저자라는 적합한 호칭을 되돌려 주었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즉, 칼빈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장악해 행사하고 있었던 구원의 적용이라는 권세가 모순임을 지적하면서 구원은 오직 성령의 주권 하에 있으며, 그 구체적 적용 사역들은 교회를 통해 성직자들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가운데 자유롭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성령이 친히 주권적으로 이처럼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는가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성령의 신학자’라는 영예를 얻게 된 것”이라며 “16세기 유럽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일복가지 성례를 통해서 구원의 은총이 전달된다고 주장해 결국 성령의 사역을 무력화시키고, 로마 교회에 종속시켜 버렸는데 칼빈이 이 문제를 지적하고, 성령께서 친히 각 사람의 마음 속에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는 원리를 천명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칼빈이 ‘성령의 신학자’라고 해서 오직 성령론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종합적으로 모든 기독교인들이 믿어야 할 보편적 교훈을 성경에서 찾아서 바로 정립하고자 노력했다”며 “그가 다섯 번이나 수정 보완해 마침내 완성한 ‘기독교 강요’ 최종판(1559년)에 담겨진 26가지 중요한 신학 주제들에서도 성령의 사역을 빼놓지 않고 연관지어 설명해 놓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성을 건설해 놓았다”고 평가했다.

칼빈은 성령의 역동적 사역을 깊이 인식해 성경적 신앙을 정립했고, 설교사역, 성경의 해석, 기도생활, 각종 목회활동에서 성령의 감화력을 강조했다고 강조한 김 박사는 “칼빈의 성령론은 개신교 역사 속에서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며 “칼빈 당대의 문서들과 후기 칼빈주의자들이 요약한 성령론을 들여다보면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칼빈주의자들에게서 칼빈의 성령론의 연속성과 지속성이 나타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과 도르트 신경에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강조한 칼빈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조나단 에드워드와 조지 휫필드의 부흥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개회사를 전한 기독교학술원장 김영한 박사는 “칼빈은 성령신학자로서 루터의 칭의신학의 적용을 성령으로 구체적으로 전개했다”며 “칼빈은 루터의 오로지 신앙의 신학을 성령론으로 뒷받침하면서 루터가 강조한 성부의 예정과 성자의 대속을 성령의 적용 사역을 통해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사건으로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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