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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육•윤리와 신학

[원문] 교회교육의 위기와 그 대안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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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교수(장신대, 기독교육학)

 

2015년 1월 14일 기사

 

아래 내용은 미래목회포럼이 지난 1월 13일(2015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Next Generation’(다음 세대)를 주제로 개최한 제23차 정기포럼에서 박상진 교수(장신대)가 발표된 것입니다. 해당 단체의 제공으로 데오스앤로고스에서 서비스하지만 저작권을 비롯한 모든 법적 권하는 해당 단체에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교회교육의 위기와 그 대안 / 박상진 박사(장신대, 기독교교육학)

1.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교회가 항해하는 배와 같다면 엄청난 파도를 만난 것과 같다. 너무나 크고 강한 파도이기 때문에 배의 갑판이 부서지기 시작하고 선실에 물이 차 들어오기 시작하고,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한다. 한국교회라고 하는 선박에 부딪히는 파도의 정체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파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가장 강력하게 한국교회를 강타하고 있는 파도가 있다면 저출산, 고령화의 파도일 것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이 파도의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있고, 이 파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이미 1980년대부터 교회학교 학생수의 감소 현상이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감소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고등부를 비롯한 교회학교 부서가 사라지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으며, 농어촌으로 가면 교회학교가 아예 존재할 수 없는 생태계로 변화되고 있다. 성장을 멈춘 한국교회, 급격한 교인수 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더 이상 교회를 유지할 수 없어서 교회 문을 닫는 경우가 발생한다. 무리하게 성전을 건축한 교회들은 끝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서 경매로 내어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저출산, 고령화의 파도가 한국교회에 미칠 영향은 보다 더 심각하다. 교인들의 인구분포가 1960년대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서서히 역 피라미드 구조로 변화해 가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와 젊은이가 사라지고 노인들이 주종을 이루는 교회가 됨으로써 교회의 역동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2015년의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키 워드는 ‘다음세대’가 될 것이다. 과거에는 교육부서를 맡은 교육전도사나 교육목사가 다음세대의 위기에 대해서 절감했지만 이제는 담임목사들이 다음세대의 위기는 바로 교회의 위기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도를 찾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학교 살리기’나 ‘교회학교 부흥’이라는 접근으로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과거의 교회성장 또는 교회학교 성장이라는 환상을 갖고, 그 패러다임을 그대로 가진 채 교회학교를 부흥시키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교회학교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살려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학교의 위기는 교회교육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글은 이러한 저출산 시대의 한국교회 교회교육의 위기를 다루되 이러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기독교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한국교회의 저출산, 고령화 현상

1) 한국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 실태


우리나라는 오늘날 세계에서 그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다. 1970년의 출산율이 4.53명인 것이 1983년에 인구대체 수준인 2.1명로 감소하였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90년에는 1.60명, 2000년에는 1.47명, 그리고 2009년에는 1.1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였다(도표 참고). 이러한 수치는 OECD 평균인 1.71보다 크게 못 미치며, 선진국인 미국이 2.09, 프랑스 2.0, 영국 1.96, 스웨덴 1.91명에 비교해 볼 때에도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수치이다. 고령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비율은 38.2%에 이르게 될 전망이다. 이는 유럽 북미 등 선진국의 노인 인구의 평균 비율이 25.9%인 것과 비교해보면 월등히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2017년에 생산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2018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14%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며, 2019년에는 총인구가 감소하게 되는 등 심각한 인구변화가 초래하게 될 것이다.

특히 2016년에는 0-14세의 유소년인구가 654만명인 것에 비해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659만명이 되어 소위 ‘인구역전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인구변화는 우리나라의 총부양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총부양율은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아동(14세 이하)과 노인(65세 이상)을 더한 인구의 비율로서 실제적으로 부양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지금까지는 노인인구는 점진적인 증가를 한 반면 아동인구는 대폭적으로 감소하여 총부양율은 오히려 감소하였는데, 2016년부터는 총부양율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고, 노년 부양비도 2010년에 37.2%에서 2050년에는 72% 수준으로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저출산의 원인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여러 가지 사회 경제적 요인에 따라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거나 중단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의향 자체가 약화되고 있으며, 이는 결혼 연령의 상승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초혼 연령이 1990년에는 남성이 27.8세였는데 2009년에는 31.6세로 증가하였고, 여성은 24.8세에서 28.7세로 증가하였다.

혼인 연령이 늦어짐으로 인하여 30대의 출산율은 상승하여 1000명당 30-34세의 출생아수가 2000년에 83.5명에서 2009년에는 100.8명으로 증가하였으나, 25-29세의 경우는 1000명당 149명에서 80명으로 격감하였다. 결국 저출산 현상은 결혼연령 상승과 가임여성의 출산력 저하가 동시에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학령인구의 감소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인하여 향후 우리나라의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6세로부터 21세에 이르는 학령인구가 2010년 990만명에서 2050년에는 460만명으로 감소하여 절반 이상으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게 되는 학생들의 숫자가 향후 40년 사이에 절반 이상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학령인구의 감소는 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필요 교사수와 필요 학교수가 감소하여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필요한 교사수가 2010년 40.5만명에서 2050년에는 23.2만명으로 감소하게 되며, 필요한 학교수도 2010년 10,908개교에서 2050년에는 6,850개교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4000개교 이상의 학교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며, 20만명 가량의 교사들이 실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미 학교가 폐교가 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으며, 학년 편성이 되지 않아 한 교실 안에 여러 학년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복식수업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초과 대학입학 정원도 2020년에는 7만1천명, 2030년에는 21만8천명에 이르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대학들은 입학정원을 감축하기 시작했고, 교육부는 강력한 대학 평가를 통해 대학의 정원을 줄이도록 하고 있다.

3) 교회학교 인구의 감소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인한 유소년 인구의 감소는 교회학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교회학교 학생수의 감소는 인구 감소라고 하는 요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요인은 전체 유소년 인구의 감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인하여 이러한 교회학교 학생수 감소 현상은 향후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현재 한국교회의 교회학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미래가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자라나는 세대의 인구 감소로 나타나게 되고, 이는 교회학교 학생수 감소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미 한국 교회의 많은 교회들에서는 교회학교가 사라지고 있다. 농어촌의 교회들은 물론 도시의 많은 교회들도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다. 교회학교의 특정 부서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전체 교회학교가 폐교되듯이 문을 닫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3.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교회학교 패러다임의 한계

저출산, 고령화의 도전 속에서 교회교육은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 속에서는 교회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될 수밖에 없다. 최윤식 박사는 ‘한국교회 미래지도’에서 한국교회 미래 부흥의 핵심 레버리지로서 자녀의 미래, 가정회복, 그리고 은퇴자의 미래를 들고 있는데, 이 세가지 이슈는 모두 교회교육과 관련된다. 자라나는 세대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교회와 가정에서 교육의 중요성은 더 증대되고, 노년기가 길어지면서 노년교육의 중요성은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는 미래 사회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교육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하면서 자녀의 신앙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였고, 부모가 교회를 선택하는 우선적인 기준이 ‘교회교육의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미래사회는 가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유발되기 때문에 교회가 가정사역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은퇴 이후에도 30-40년을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은퇴세대들에 대한 교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프로그램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기존의 전통적인 교회교육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추세 속에서 오늘날의 교회학교 체제가 과연 이러한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교육구조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교회학교 학생수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서 종래의 전통적인 학교식 체제(schooling system)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요청하고 있다. 기존의 교회학교는 자라나는 세대 중심이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발달단계에 맞춘 교육구조이며, 대중을 전제로 한 일방적인 교육체계이며, 가정과 분리된 교육구조라는 점에서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지 않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교회학교의 부적합성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먼저 전통적인 교회학교의 태동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자.

로버트 레익스(Robert Raikes)가 1780년에 영국 글로체스터에서 시작한 주일학교(Sunday School)는 영국은 물론, 미국과 전세계에 퍼지면서 230여년 동안 기독교교육의 확고한 장으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처음 로버트 레익스가 시작한 주일학교는 주일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 진행되었고 후에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로 연장되었는데, 교육내용으로는 ‘읽기’ ‘찬송’ ‘예배’ ‘교리교육’ ‘성서연구’ ‘영어공부’ 등이었으며, 당시 거리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상적 사회교육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레익스는 학생들이 입을 옷과 신을 구두를 제공하기도 하면서 생활 훈련을 겸한 교육을 실천하였다. 주일학교는 초창기에는 영국교회와 귀족사회로부터 비도덕적 조직이며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승시키는 운동으로 비판받으며, 당시의 교회지도자들과 신도들로부터는 안식일을 범하는 이교집단으로 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4년 후에는 영국에서만도 주일학교 학생수가 25만명에 이르도록 급증하게 되고, 1785년에는 ‘런던 주일학교공회’가 결성된다.

이러한 영국의 주일학교 운동은 미국으로 전파되어 확산되는데 1790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주일학교협의회가 조직된다. 미국에서의 주일학교운동은 영국에서의 사회교육적 성격과는 달리 ‘복음전도의 수단’으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1787년 미국의회가 제정한 ‘교회-국가 분리법’으로 인해 미국의 공립학교에서는 더 이상 종교교육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주일학교가 신앙교육의 책임을 지는 중추기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1824년에는 미국주일학교연합회가 결성되었고, 1872년에는 만국통일공과를 출판하게 되었고, 1940년대 이후에는 종교교육협의회(Religious Education Association)의 영향으로 주일학교라는 이름 대신에 경험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보다 강조하는 교회학교(Church School)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의 주일학교 또는 교회학교의 발전은 이러한 미국의 주일학교 운동이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 전파된 결과이며,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기독교교육의 시작은 1885년 아펜젤러(H. G. Appenzeller)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이라는 기독교학교로부터이지만, 새문안교회를 비롯한 교회가 세워지면서 활발하게 주일학교가 태동하게 된다. 이미 1907년에 한국의 주일학교 수는 전국에 613개였으며, 학생은 45,918명이었으며, 그 후 계속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일학교 또는 교회학교는 기독교교육의 장으로서 중요한 논쟁을 유발시키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일학교, 또는 교회학교라고 하는 ‘학교성’이 지니는 문제이다. 교회교육이 과연 학교식 체제(schooling system)와 동일시 될 수 있는가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관계없이도 주일학교는 기독교교육학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교회학교의 ‘학교성’이 지니는 한계를 가장 잘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고 있는 기독교교육학자는 존 웨스트호프(John H. Westerhoff III)이다. 그는 그의 책 Will Our Children Have Faith? 라는 책에서 주일학교 또는 교회학교를 ‘학교-수업형 패러다임’(Schooling-instruction paradigm)으로 명명하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웨스트호프는 참 의미에서의 교육(education)은 학교형 교육(schooling)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학교-수업형 패러다임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로서 ‘신앙공동체-문화화 패러다임’(a community of faith-enculturation paradigm)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기독교신앙은 학교식 수업이나 강의를 통해서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공동체 안에서 형성되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웨스트호프는 교회학교보다는 신앙공동체를 더 중요한 기독교교육의 장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학교식 구조가 신앙교육에 맞지 않는 근본적인 한계 외에도 저출산, 고령화 추세와 관련하여 기존의 교회학교가 지니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다. 첫째는 기존의 교회학교 구조는 발달단계를 기본으로 한 학년별 구성이라는 점이다. 아동의 발달단계에 따라 지적 성숙이 다르고 교육은 이에 맞추어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정 위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영아부,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등으로 분류되는 전통적인 부서 편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교회학교 학생수의 감소는 일부 중, 대형교회 외에는 더 이상 이런 식의 발달단계별 분류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구조가 되고 있다. 둘째, 교회학교는 출발부터 모든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자라나는 세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오늘날 고령화 현상은 교육이 자라나는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생 지속되어야함을 요청하고 있고, 특히 노인교육은 매우 중요한 교회교육적 과제가 되고 있다. 셋째, 교회학교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전제로 한 일방적인 교육체계라는 점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교회의 자라나는 세대의 숫자가 증가하는 상황에 적합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규모가 적은 대상을 위한 교육은 보다 대화적이고 쌍방적이며 공동체적인 구조가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넷째, 교회학교는 가정과 분리된 교육구조라는 점에서 다음세대 신앙계승에 맞지 않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교회학교가 신앙교육의 중심에 자리잡게 됨으로써 가정의 자녀신앙교육의 기능을 오히려 약화시키기 되는데, 이는 부모가 자녀신앙교육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여기게 하고, 결국 신앙의 대 잇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학교는 학생들의 가장 심각한 고민인 학업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신앙과 학업이 분리됨으로 그 학생의 삶의 변화를 도모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신앙과 학업, 교회와 학교가 연계되어 그 학생의 진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될 때 교회교육의 실제적인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4. 교회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그렇다고 한다면 저출산, 고령화 사회 속에서 교회교육은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인가? 기존의 교회학교 패러다임과는 어떤 다른 교육구조가 가능할 것인가? 학생수가 적어도 적용가능한 교회교육 구조는 무엇일까? 저출산, 고령화 현상 속에서 오히려 신앙교육의 본연의 모습을 추구함으로 진정으로 복음을 소통힐 수 있는 교회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1) 관계구조

교회학교의 축소가 신앙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자라나는 세대의 인구가 감소하게 되고, 교회학교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한 영혼에 대한 귀중함과 소그룹(small group)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교회교육의 성격도 많은 수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형태가 아닌 관계를 강조하는 구조로의 변화가 요청된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을 소통하고 기독교교육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강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 교회교육에 있어서는 명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관계이다. 전통적인 ‘학교식’ 교육형태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용이한 구조였지만 신앙을 형성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신앙적인 변형(transformation)을 위해서는 관계구조가 요청되는데, 더욱이 저출산, 고령화 현상 속에서는 교회교육의 구조가 학교식 체제보다는 보다 관계지향적인 구조가 바람직하다. 인원이 많지 않아도 가능한 교육구조일 뿐만 아니라 소규모 인원일 때 오히려 내면을 변화시키는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이 요청된다. 오늘날 인터넷만을 대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아이들, 가정에서조차 부모와의 대화가 상실되어 가고 있는 아이들, 그들의 내면에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있다. 교회교육은 이러한 관계성으로 이들의 마음을 엮고, 사랑으로 마음 문을 열어 복음을 소개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관계야말로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다. 관계적 구조의 상징적인 모델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일 것이다. 교사와 학생, 학생 상호간의 관계는 그 어떤 교육내용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관계 자체가 교육하는 것이요, 서로가 관계 속에 있다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다고 할지라도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관계적 교육구조에는 멘토링을 비롯한 일대일 만남의 관계구조가 있고, 토의를 강조하는 소그룹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그리고 가정과 회중 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방식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 구조가 가장 바람직할 것이지는 교회의 상황과 목회철학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인격적 관계를 통해 삶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파커 팔머가 말하듯이 가르침은 진리를 순종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인데, 진리는 3인칭으로 관계 밖에 사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2인칭의 관계 속에서 인격적으로 존재한다. 교회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치느냐보다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느냐이다.

 

 

(2) 공동체 교육

교회교육은 학교식 체제보다는 공동체적인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경을 보면 복음의 소통은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교사 1인이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식 구조보다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나눔이 가능한 구조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오늘날 교육, 그것이 일반교육이든 종교교육이든, 모든 교육의 영역에서 감지되는 중요한 변화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경향이다. 오늘날에는 공동체와 분리된 개인이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근대주의적 이원론(dualism)이나 개인주의(individualism)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지식은 사적인(private)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communal)인 것이다. 모든 지식은 함께 아는 자들(co-knowers)이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앎은 공동체적 성격을 지닌다. 웨스트호프는 기독교교육의 자리를 학교 교실로부터 신앙공동체로 옮길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신앙공동체 안에 참여함을 통해 한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문화를 내면화 하듯이 일종의 문화로서의 신앙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앙공동체가 다음의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공통적인 기억 혹은 전승, 곧 삶에 대한 공통의 이해와 삶의 방식, 그리고 공통의 목적과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 둘째, 신앙공동체는 상호작용을 유지할 수 있는 소규모이어야 한다. 셋째, 신앙공동체는 세 세대(generations)의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앙공동체는 다양한 은사를 지닌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웨스트호프는 이러한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식(ritual), 경험(experience), 그리고 활동들(activities)을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터전으로 보았으며, 이를 통해 신앙이 형성되어 간다고 본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근대시대에는 ‘말씀신학’이 중심이 되고 ‘설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어온 성례전이나 공동체의 여러 종교의식의 중요성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느냐가 신앙형성에 관건이 되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는 종래의 일방적인 학교식 구조에서 탈피하여 비록 소수의 인원이라고 하더라도 공동체를 형성하고, 세대 간의 만남과 구성원 간의 삶의 나눔을 통해 신앙이 형성되어 가는 공동체 교육이 요청되는 것이다.

(3) 참여적 구조

새로운 교회교육은 보다 학생들의 참여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구조가 요청된다. 복음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기에 복음을 소통하는 교회교육은 참여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 신앙적 앎은 스스로 참여하여 경험할 때 비로소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기독교적 인식론은 앎에 있어서 조망적 의식을 강조하는 객관주의적 인식론과는 대조적으로 알려지는 존재(하나님)에 대한 아는 자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존의 교회학교 구조는 교사의 강의나 설명에 의존한 교육구조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면 저출산, 고령화 현상 속에서 교회학교는 보다 참여를 강조하는 교육구조의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경험하고 참여하여 온 몸으로 체험하는 신앙교육이며, 청각이나 시각만을 사용하는 교육이 아니라 오감을 활용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기도에 관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교육이며, 전도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전도에 참여하고 경험하는 교육이다. 이러한 참여적 교육방법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걸맞는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매우 적극적인 참여의 성격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이 참여할 수 없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TV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작가가 본디 작성한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네티즌의 활발한 활동은 나라 전체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이런 참여의 힘 때문에 정치, 언론, 방송,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이 여론의 흐름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움직여 가곤 한다.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기반의 소통 방식을 갖춘 곳이 살아남는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상호 작용할 수 없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소유하거나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그 생산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교회교육에 있어서 학생들이 수동적인 관중이나 청중이 아니라 앎의 주체자로서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경험하게 될 때 진정한 신앙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4) 교회와 가정의 연계

새로운 교회교육은 보다 교회와 가정의 연계를 통한 전인교육의 추구를 요청하고 있다. 복음적 앎이 아니라 복음적 삶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주일 아침 분반공부만으로는 불충분하다. 6일 동안의 삶과 연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정과 연계되어야 한다. 주일학교가 역사상 많은 공헌을 하였지만 결정적인 한계가 있는데 바로 교회학교와 가정의 분리이다. 교회학교에서는 교사들에 의해서 교육이 이루어질 뿐 가정의 부모들과의 연계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점점 가정, 특히 부모의 자녀신앙교육의 사명이 약화되어가고, 교회학교는 자체의 성장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고,이로 인해 교회학교와 부모의 분리는 더 심화되어 가는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현상 속에서 향후 교회교육은 이런 ‘학교식 체제’에 의한 교회와 가정의 분리의 한계를 극복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교회와 가정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교회에서 실시하는 부모교육이다. 부모를 자녀교육의 책임자로 세우는 교육이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담당하는 ‘신앙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사명감과 목적의식, 그리고 내용과 방법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미국의 노스포인트(North Point Community) 교회가 시도하고 있듯이, 주된 신앙교육의 책임을 부모가 지니고 교회는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하여 제공하고, 주일에는 부모들과 학생들이 함께 모여 축제의 예배를 드리고 가정에서 배운 내용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가정 같은 교회가 되고, 가정은 교회 같은 가정이 되어 서로가 연계될 때 진정한 기독교교육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5) 신앙과 학업의 연계

교회교육은 학교교육과 연결되어 있고, 신앙은 학업과 연계되어 있다. 성경을 관통해서 흐르는 하나님의 교육원리는 바로 신앙과 학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성경 구절이 잠언 1장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씀이다. 필자는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교육학적인 원리이기 때문에 이를 ‘여경지근의 원리’라고 표현한다. 이 원리의 핵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지식의 근본’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부모들과 학생들이 ‘신앙’과 ‘학업’이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상충한다고 생각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학업에 지장이 오고, 학업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등한히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주일 아침에도 교회학교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학원에 가는 학생들이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부모들이 있다. 우리는 여경지근의 원리에서 중요한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신앙 - 태도 - 학업의 관계 구조이다. 신앙과 태도, 그리고 학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경지근의 원리는 바로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할 때 권위를 인정하고, 경청하게 되며, 새 성품이 형성되며, 꿈과 비전이 생기고, 통찰력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바로 학업성취를 향상시키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통전적인 기독교교육은 이 세 가지의 연계성에 주목하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녀로 세우고, 그래서 그 자녀의 태도가 달라지고, 그 태도의 변화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학업을 향상시켜 나가도록 돕는 것이다. 신앙과 태도가 형성되지 않은 채, 학업 성적만을 올리려는 노력은 지혜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기본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곧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앙과 학업을 연계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는데, 교회가 기독교(대안)학교를 설립하는 방법 외에도 방과후 학교, 주말학교 형태로 연계를 시도할 수 있고, 학업과 진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확립하도록 하는 단기교육도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5. 나가는 말

오늘날 다음세대의 위기는 과연 교회학교가 존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제기하게 하고 실제적으로 교회학교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교회학교의 위기는 복음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교회교육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양적 성장에 취해서 보지 못했던 한 영혼의 귀중함에 주목할 수 있고 규모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중심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실있는 목회와 신앙교육으로의 변화를 도모함으로 보다 진지하게 복음을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이러한 위기는 축복으로 향하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상황에 종속되지 않고 어떻게 응전하느냐가 중요하다. 교회학교 학생수의 감소로 인하여 교회교육이 위축되거나 기독교교육의 소명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에게 집중하여 생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복음적 교회교육으로 새로워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복음적인 관점으로 응전하지 못하고 과거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에 매여있게 될 때에는 오늘의 위기는 한국교회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그동안의 ‘교회학교’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교회학교 성장주의’를 넘어서 복음을 소통하는 교회교육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 원문출처: 미래목회포럼 홈페이지(http://www.mira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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