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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와 변화가 있는 신화적이고 비유적인 예배 추구해야” 본문

목회와 신학

“중재와 변화가 있는 신화적이고 비유적인 예배 추구해야”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16:58

비유적, 신화적 예배 / 최승근 박사(웨신대) / 2014년 11월 27일 기사

 

“개회예전, 말씀예전, 성찬예전, 파송예전 등 예배의 4중 구조는 비유와 신화가 교차되는 시간이다. 결국 예배가 신화적이면서 동시에 비유적일 때 ‘중재’와 ‘변화’가 일어나는 바람직한 예배가 될 수 있다.”

최승근 박사(웨신대)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주된 통로가 예배다.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의례화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예배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이야기가 어떻게 말해지고 행해지느냐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이야기를 신화적, 비유적으로 실행하는 시간이라며, 예배를 통해 중재와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신화적, 비유적일까?

# 예배는 신화ㆍ비유적이다

   
▲ 최승근 박사(웨신대)
최 박사는 “모든 종교 공동체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성한 존재, 그리고 그 신성한 존재와 자신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거대담론이라고 불리는 이야기를 의례로 만들고 행한다”며 “한 종교 공동체의 종교적인 의례는 그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예배는 신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기독교의 예배는 인간의 죄로 인해 절대로 화해될 수 없는 두 존재인 거룩한 하나님과 타락한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됐다고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의례화한 것이기 때문에 신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예배는 비유적이다. 그리고 비유적이어만 한다. 최 박사는 그래야만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예배이고, 그러한 예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성경을 의미한다.

최 박사는 “우리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예배이어야 한다”며 “따라서 예배는 비유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비유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비유의 사건”이라고 역설했다.

둘째,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는 공동체, 즉 교회가 행하는 의례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라고 한다면 그 몸인 교회도 비유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행하는 의례인 예배도 비유적이어야 한다.

최 박사는 “예배는 교회를 표현하고 형성하고, 실현한다”며 “예배를 통해 교회는 교회가 된다. 세상은 예배를 통해 교회 안에서 예시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비유이시고, 교회는 예배를 통해 비유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예배는 비유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예배의 주된 목적은 안정이 아니라 변화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목적은 세상 안에 있는 교회를 세상과는 다른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세상과는 다른 문화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최 박사는 “신화는 안정의 대행자이지만 비유는 변화의 대행자다. 따라서 예배의 목적이 변화라면 예배는 비유적이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 예배의 사중구조에 나타난 비유와 신화

세례는 예배를 위한 초석이다. 따라서 아무나 예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이것은 초대교회에서부터 강조된 원리였고, 이 원리는 세례를 받은 자들만이 예배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는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의 공동체, 세례를 받은 자들이 지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하는 행위다. 따라서 예배는 비유적이고 신화적이다. 세례 자체가 비유적이고 신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유적이면서 신화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제대로 실행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교회는 그 구조를 갖고 있다. 바로 예배의 사중구조인 개회예전, 말씀예전, 성찬예전, 파송예전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면 된다.

우선 최 박사는 ‘개회예전’은 예배로의 부름, 기원, 죄의 고백과 용서의 확증, 평화의 인사, 찬송 등을 포함한다며 개회예전은 예배가 비유적, 신화적이 되도록 한다고 피력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로 부르신다.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하지만 죄로 인한 타락으로 원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따라서 예배로의 부름은 창조의 원래 목적의 회복을 위한 부름이다. 예배하는 자들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킨다는 차원에서 예배로의 부름은 신화적이다.

또한 개회예전에는 죄의 고백이 포함된다. 죄의 고백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괜찮지 않다는 것으로써 비유의 초청이다. 교회가 죄의 고백을 요구할 때,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약속이 담긴 성경구절을 통해 죄를 고백하도록 초청한다. 이런 차원에서 개회예전은 비유이기도 하다.

‘말씀예전’에는 성경봉독, 설교 전과 설교 후의 기도, 설교에 대한 반응, 설교 등이 포함된다. 성경봉독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 무엇보다도 설교의 목적은 변화다.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최 박사는 “설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변화의 목적 중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설교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변화해야 한다. 비유로 시작되는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나의 사랑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잘못됐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그 사랑을 알게 되는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말씀예전에는 말씀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의식들이 포함되는데, 그 중 하나가 봉헌이다. 봉헌은 상징적으로, 실제적으로 우리의 주가 하나님이시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소유하기보다는 남을 위해 내어놓음으로써 이웃에 대한 사랑도 보인다.

최 박사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비유의 행위를 통해서 세상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신화의 행위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성찬예전’도 비유로의 초청이다. 우리는 배고프고 목말라 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우리가 음식과 음료를 취함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연정한다는 의미다. 이는 생명과 연관이 있는 동시에 죽음과 연관이 있다. 생명을 위해 죽음과 싸워야 하고,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야 한다.

최 박사는 “성찬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는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우리를 위한 음식과 음료를 상징한다. 성찬은 또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하는 식사이며, 그리스도 몸이 함께 하는 식사다. 서로와의 관계가 회복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만큼 비유적이고 신화적”이라고 설명했다.

‘파송예전’은 목적이나 사명이 전제된다. 예배는 세상을 향한 목적, 세상을 위한 사명이 포함됐음을 암시한다. 그 목적과 사명은 세상에서 비유로서 새로운 신화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적이고 신화적이다.

그는 “예배는 그리스도를 통한 중재가 드러나야 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가 시도되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사실 예배로 볼 수 없다. 예배가 신화적이 되려면 시도된 중재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내어드려야 한다. 그래야 비유적으로 시작한 예배가 신회적인 예배로 마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기도’는 중요하다. 개회예전의 기원, 말씀예전에서의 설교 전 기도, 성찬예전에서의 기도, 파송예전에서의 축도 등을 하는 이유는 비유적으로 시작되는 예배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 박사는 “설교 전에 기도하는 것은 선포될 말씀이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응답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며 “만일 설교가 기도 없이 받아들이기 쉬운 메시지라면 기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내용이라면 우리는 그 설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축도로 파송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비유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배가 기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할 만큼 우리를 흔들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비유적이고 신화적인 예배가 아닐 수 있다”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하는 예배, 비유적ㆍ신화적 예배가 될 때 한국 교회는 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 중재가 성공하는 예배는 반드시 변화하고, 그로 인한 이득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위의 내용은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와 개혁주의생명신학실천신학회가 지난 12월 24일(2014년) 과천소망교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복음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최승근 박사의 연구논문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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