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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교회갱신 위한 공공신학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인가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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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연구(21)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한국교회와 신앙의 공공성’ 주제로 제14차 정기논문발표회

 

2014년 11월 23일 기사

 

물량주의, 예배당 대형화, 교회 내 재산 분쟁, 불투명한 교회재정 운용, 목회자의 비윤리적 행실 등 교회 안의 여러 문제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하면서 ‘공공성 회복’이 교회의 주된 갱신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교회의 공적인 책임과 역할에 대해 논의하며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으로써 ‘공공신학’ 혹은 ‘공적신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회장:최영태 교수, 한국성서대)도 지난 11월 22일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한국 교회의 신앙의 공공성’을 주제로 제14차 정기논문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김병권 박사(침신대), 김진혁 박사(횃불트리니티신대), 정재영 박사(실천신대), 정광덕 박사(샬롬의교회), 최경환 연구원(현대기독연구원) 등이 △한국 교회 갱신의 관점에서 본 공공신학 논의 △‘공공하다’의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시민사회에서 교회의 공적 역할 △아브라함 카이퍼의 교회론으로 본 공공신학의 의의 △공공신학의 기원, 특징, 최근의 이슈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 누구를 위한 공공신학이어야 할까?

공공신학을 중심으로 교회의 공적 역할을 모색하는 주된 연구논문이 발표되기 전 최경환 연구원은 공공신학의 기원과 발전양상을 따라가면서 공공신학의 주요 이슈들과 특징들을 소개했다. 또한 공공신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살펴보면서 공공신학에 대한 단순한 시대적 요청과 필요성을 넘어 공공신학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누구를 위한 공공신학이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최경환 연구원에 따르면 오늘날 공공신학을 둘러싼 논쟁점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공공신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신학과 공공신학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다.

최 연구원은 “이 둘은 서로 독립된 논쟁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주제이고, 더 나아가 공공신학을 이해하는 두 개의 큰 흐름이라 할 수 있다”며 “이미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복지체제와 경제민주화를 고민하는 북미와 유럽에서의 공공신학은 당연히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에서의 공공신학과 다른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공신학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그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며 “공공신학은 ‘신앙공동체의 모든 당사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공공성을 도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공공신학은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 투쟁이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다양성을 수용하고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논의를 진행하는 대화 당사자가 출신이나 조건에 의해 배제되지 않고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호혜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공신학의 역할과 과제는 다름 아닌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시켜 주고, 이들을 위한 자리와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희생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적인 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주는 것, 그들의 편에 서서 눈물을 닦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 이런 작은 행동과 몸짓이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신학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공공신학 활용 지침

한국 교회 갱신의 관점에서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김병권 박사는 한국 교회가 ‘신앙의 사사화’를 벗어나기 위해 공공신학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해왔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는 변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김 박사는 “신앙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한국 교회의 갱신 과제에 부응하는 ‘새로운 신학’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기 전에 그러한 갱신 과제가 계속해서 완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박사는 명시적 측면과 실제적 측면에서 한국 교회 내에서 지금까지 논의돼 왔던 공공신학을 평가했다. 명시적 측면이란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론적으로 서술되고 가르쳐지는 신학의 내용이며, 실제적 측면은 이와 같은 신학의 내용이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서 공유되고 있는 내용을 말한다.

그는 “그간의 공공신학 대 공공신학의 논쟁 내용을 검토해보면 한국 교회 갱신과제를 해결하는데 유익하게 작동되기보다는 명시적 공공성에 대한 이론 논쟁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공공신학에 대한 내용과 태도는 신학적 유형론에 입각한 ‘진영논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 교회 및 신앙의 개인주의적 퇴행에 대해 공공신학이 갖는 현실 적합성에 대해서는 모두 일치한다. 그러나 공공신학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신학적 진영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 결과 한국에서의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가 배태된 한국 교회의 현실적 문제, 즉 교회 및 신앙의 개인주의적 퇴행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교회 실천적 관점에서의 논의는 경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 박사는 “한국 교회의 갱신을 위해 모색되기 시작한 공공신학이 또다시 신학자들 사이의 고준담론(高峻談論)의 대상으로만 머물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며 한국 교회 갱신을 위한 공공신학의 활용 방식 몇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신학의 공공성은 공공신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각 교단 신학자들은 자기 교단 신학 속에 내장된 공공성의 내용들이 현 한국 교계의 실정에서 갖는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소속된 교단 신학의 공공성이 교단 내 교회에 실제적으로 얼마만큼 내면화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명시적 공공성과 실제적 공공성 사이의 간극 좁히기 위해서).

넷째, 교단 신학의 틀 안에서 진영 논리에 따라 공공신학을 대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도덕적이고 영적인 에토스(ethos)를 형성하는 것이다. 여섯째, 교회의 에토스를 변화시키기 위해 교인들 사이에 편하게 주고받는 작은 이야기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김 박사는 “교회와 신앙의 공공성과 관련해 강조되는 교단 신학의 거대한 담론이나 설교단 위에서 선포되는 성경적으로 합당한 설교가 아무리 교회에서 가르쳐지더라도, 교회에서 성도들 사이에 비공식적 모임에서 편하게 나누어지는 작은 이야기들이 ‘개인주의적 퇴행’을 조장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면, 교회와 신앙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교회 갱신의 과제는 여전히 공허한 주장으로 한국 교회 위에 떠돌게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교단 신학에 내장돼 있는 명시적 공공성의 내용들이 교우들의 실제적 삶의 이야기로 풀어져서 교우들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실제적 공공성이 교회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시민사회에서의 교회의 공적 역할

정재영 박사는 “개신교의 공신력 약화는 교회의 활동이 공공성을 상실한 것에서부터 기인한다”며 “시민사회에서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공적인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 정 박사는 “시민사회는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하고 또한 조정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초월성의 종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참 이웃, 참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시민다움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죄를 가진 인간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이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역시 도덕성을 상실하고 있다. 흔히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듯이 바른 시민덕성도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선하고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을 만들 뿐만 아니라 바른 시민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시민사회에서 교회가 추구할 수 있는 공적 역할은 무엇일까? 정 박사는 소그룹을 통한 시민사회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 안의 소그룹들은 집단 구성원들의 대면 교섭을 통해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일반 사회의 대규모 집단이나 조직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친밀한 교섭을 소그룹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이러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형성되면 불확실성이 감소함으로써 공공활동에 함께 참여하기는 더 쉬워진다”며 “이는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시민사회는 법과 정치의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사의 자유가 적용되는 자원의 영역이고, 이윤과 이기심보다는 헌신에 의해 동기 부여되는 삶의 영역들과 관련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공공 영역에서 사람들 사이에 사회 교섭을 증가시키고 도덕성에 대해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집합적인 가치들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교회의 소그룹은 교회 자체를 공동체화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가 사회와 접촉점을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소그룹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서는 교회 차원에서의 적절한 지원도 반드시 요구된다.

 

 

정 박사는 “소그룹이 교회와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소그룹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며 이를 적절하게 운용하는 것은 교회 및 소그룹 지도자들의 몫”이라며 “교회 소그룹이 또 하나의 끼리끼리의 집단이 되지 않고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그룹의 구성원들이 사회성을 키우고 유지하는데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무엇보다 교회 소그룹이 사회적 실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식전환이다. 교회 안에서의 삶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모든 기독교인들의 사회생활에도 확대해 적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세속 사회의 모든 활동에 대해 기독교의 가치를 부여하고, 기독교인들이 따라야 하는 윤리적인 지침을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소그룹 활동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전개돼야 한다.

또한 소그룹 참여자들이 사회의식을 갖고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소그룹 참여자들은 개인으로서 그들이 관심 갖는 시민단체, 사회운동단체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소그룹을 통한 사회봉사 활동도 전개되어야 한다.

특히 정 박사는 소그룹을 통한 시민사회 참여의 실천적 방법의 하나로 ‘지역공동체 운동 참여’를 제시했다. 교회가 공공성을 견지하며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한다고 할 때, 최근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즉 지역공동체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교회는 일차적으로 예배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민공동체이기도 하다. 하나의 의례행위로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 윤리의 행동 지향성이 삶의 무대인 사회생활에서 표출돼 나타나야 한다”며 “교회는 물질과 제도 자원을 지역사회를 위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교회 구성원들은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지역사회에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노력할 때는 교회 중심의 사고를 지양하고, 교회 역시 지역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며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가 연계하고, 필요에 따라 지역 사회의 시민단체와도 연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그것이 세상에 ‘보냄 받은 교회’로서의 본질적인 사명이라는 인식으로 묵묵히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럴 때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게 되고, 사회로부터의 공신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아브라함 카이퍼의 공공신학

‘아브라함 카이퍼의 교회론의 관점에서 본 공공신학의 의의’를 주제로 발표한 정광덕 박사는 “카이퍼의 공공신학적 근거이며 방법인 일반은총론은 유기체로서 단일화된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 위에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보여준다”며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에 근거한 교회론적 공공신학은 신앙이 공공의 영역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는 개신교에게 신자의 사회, 정치적 영역의 삶을 이해하는 분명한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혼구원의 문제에 몰두해 교회의 수적 성장만을 추구해 오던 개신교회들에게 신자의 삶의 영역이 창조의 전 영역에로 확장되어야 하는 세계관을 열어준다”며 “교회들이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했던 수많은 영역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리스도의 왕권을 세워가야 할 소명의 일터로 회복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학과 신념을 제시해 준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카이퍼의 사상이 개혁주의적 전통의 노선에 서 있다고 해서 무비판적 수용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우리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답습이 직면하게 될 위험요소가 있다”며 “카이퍼의 공공신학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태도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무례하고 비난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종교와 문화적으로 다원화되고 있는 만큼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와 행동은 공정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즉, 기독교인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배타적인 행동을 신앙적인 태도로 오해함으로써 신자들만의 교제로 이루어지는 교회 내적인 모임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여과 없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공적인 영역에서 십자군 전쟁과 같은 ‘승리주의’의 시각으로 행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다원화된 사회에서 주변의 사람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신자들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회 밖에서도 신자로서 사랑과 배려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불신자를 대할 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소통의 단절을 배격하고, 진정성 있는 배려로 이웃의 마음을 먼저 사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공공하기’는 의무가 아닌 그리스도인의 권리

‘다시 두 왕국론:공공하다의 관점에 본 마틴 루터의 신학’을 주제로 발표한 김진혁 박사는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으로 구분되는 루터의 두 왕국론과 ‘이신칭의’를 중심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공공하다’의 의미를 분석했다.

김 박사는 “루터가 강조했던 이신칭의가 왜곡돼 행위를 무시하는 진공상태가 교회에 만연했고, 그 때문에 한국 개신교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비판을 오늘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성화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칭의 개념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신학적 작업 없이는 성화를 아무리 강조해도 신앙의 공적 실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공공신학 자체가 해외 신학에 정통한 전문 신학자들의 전유물화가 될 수 있고, 서구 공공신학의 핵심 범주인 공적 영역 혹은 공공장 등이 공공성에 대한 담론과 시민사회 전통이 얕은 한국 기독교 상황 속에 얼마나 적실성이 있을지에 대한 연구와 설득작업의 일환으로 한국의 공공철학자로 알려진 김태창의 공공성 담론에 대해서 우선 언급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김태창의 공공성은 활사개공(活私開公)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성이라는 말은 영어로 ‘Public’인데 김태창은 영어권과 한자문명권의 공공개념의 차치를 보여주고자 공공철학의 세 가지 다른 의미를 제시했다는 것. 첫째는 공공의 철학이고, 둘째는 공공성의 철학이고, 셋째는 공공하는 철학이다.

즉, 공공의 철학은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철학으로 전문화를 피하고, 대중과 호흡하며 대화하는 융합학문적 성격을 취한다. 공공성의 철학은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를 철학적, 역사적, 현상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 지향의 철학 형태다. 공공하는 철학은 공공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이해하며, 공과 사를 나눠보는 이원론적 사고를 넘어 공과 사를 공공을 통해 상생시키고자 하는 삼원적 사고를 특징으로 한다.

김 박사는 “동사로서 ‘공공하다’에 대해 김태창은 ‘공공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과 ‘사’의 사이의 상호관계의 문제라고 말했다”며 “공공을 뜻하는 영어 ‘public’은 한자어인 공공(公共)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김태창은 공공은 자기와 타자,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사이’를 중심축으로 자타상관(自他相關), 곧 ‘나’와 ‘너’ 사이의 상호관계가 형성하고 발전하고 진화하는 역동성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사회적 실존을 통해 형성되는 다차원적인 ‘사이’를 인식하고, 그 ‘사이’를 중재하고자 함께 기획하고 일하며,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를 달성해 결국 상생하는 것이 동사로서 ‘공공하다’의 참 뜻이라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공공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를 중재한다는 주장 자체는 어떤 면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김태창의 특수함을 공공을 양자로 매개하는 ‘작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공과 사가 끝없이 대화하고 상생하는 움직이는 것으로써 ‘공공하다’는 본질적으로 공가 사 어느 쪽도 예상치 못했지만 쌍방이 인정할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가는 활동으로 봤다”고 피력했다.

이어 “동아시아 공공철학자들은 ‘정부의 공’, ‘민의 공공’, ‘사적 영역’의 세 범주를 중요시한다. 이 때 민의 공공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자기-타자-공공세계’의 역동적이면서도 다차원적인 구조다. 특히 김태창은 동아시아에서 정부의 공이 민의 공공을 질식시키거나 흡수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며 “비록 김태창의 ‘공공하는’ 철학에 오늘날 공공신학이 중요시하는 가치의 초월적 근거, 악을 향하는 인간과 사회의 본성, 은혜의 절대적 필요성 등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공공철학은 우리가 신학함에 있어 근원적 통찰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공을 실체로 상정하지 않고, 공과 사를 매개하는 ‘사이’로 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범주와 타자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범주의 긴장 속에서 기독교인의 공적인 삶을 정의하려 했던 루터파 종교개혁 신학과도 유사성을 보인다”고 피력했다.

그렇다면 루터신학에서의 공공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김 박사는 루터신학에 등장하는 ‘공공하다’의 개념으로 개신교의 공공신학의 가능성을 조명했다. 그는 “루터의 두 왕국론(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은 칭의론으로부터 확장된 교리이기 때문에 칭의론의 윤리학적 약점이 두 왕국론에서 공공성의 부재로 드러난다”며 “하지만 김태창처럼 공공을 우선적으로 공과 사를 매개하는 활동으로 본다면 두 왕국을 구분하면서도 둘 ‘사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자 했던 루터의 노력 속에서도 오늘날의 ‘공공신학’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루터의 두 왕국론이 분명 이중 구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그는 인간 실존의 두 구조와 두 왕국의 역할을 포함하는 하나의 사랑윤리를 제시하려고 했다”며 “두 왕국 사이의 벌어진 틈에 거슬러 작용하는 매개의 동력을 보지 못하면 루터신학에서 공공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루터의 공공신학이 ‘활사’를 기반으로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은혜를 이웃사랑으로 구체화하면서 이루어지는 활사라고 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급진적인 윤리적 비전은 세속정부의 권위 혹은 세상왕국 신민의 도덕적 책임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공공적 실존의 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고 강조했다.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은 하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시고자 세우신 질서다. 그러나 악에 대항해야 할 세상의 왕국이 쉽게 악해질 수 있다는데 문제의 복잡함이 있다. 결국 기독교인은 현실 정치에 만연한 공(公)의 부패와 부정의와 폭력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심각하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김 박사는 “세속 권위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는 개인의 결단으로 그치지 않고, 그 권력 아래 있는 타자를 살리는 활사와 깊이 연결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에게서 이웃 사랑은 구체적 형태의 공공하기라고 볼 수 있다”며 “루터는 고난과 이성 이해가 어떻게 두 왕국 사이를 매개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고 피력했다.

즉, 공공성에 대한 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이 인간 이성의 기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루터는 그러한 이성의 합리적이며 소통적인 기능을 크게 강조할 뿐만 아니라 자연적 실천 이성의 요구를 넘어서는 고통과 인내를 통해서 공공하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것은 본질적으로 ‘대리적’이며 ‘자발적’ 고통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아니라 여전히 지상의 왕국에 있는 이웃을 위해 고통을 인내한다. 이성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지상 왕국에서의 삶을 매개하려던 루터의 노력은 결국 십자가 앞에서 인간 이성과 자연법의 한계를 드러내며 그 정점에 오른다”고 강조했다.

고통의 인내는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권리와 자연적 권리를 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권리’에 속한다는 것이다. 영적 정부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현실 세계를 살면서 현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의”(마 5:2)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로 의로워진 신자만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타율적이 아니라 자유롭게 고통을 통해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공공적인 삶을 꾸려가는 것에는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 정답은 없다. 또한 공공성을 이해하고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화과학이나 정치철학이 신학보다 더 좋은 안내자라고도 할 수 있다”며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가 공존하고,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남용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기독교의 정치 프로그램화는 반대하면서도 신앙인의 공공적 삶의 필연성을 보여주는 루터의 두 왕국론에 우리는 다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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