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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시대착오적 반공주의와 우상숭배적 경제주의 탈피해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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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에 대한 복음주의의 실패, 이제는 넘어서자 / 김형원 목사

 

2014년 7월 29일 기사

 

“이제 우리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버리고 성경적 사회윤리에 기초한 행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령 그렇게 해서 교회가 손해를 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결국 승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1. (한국 보수교회 사회참여의 역사) 해방 후 장로인 이승만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한국 보수교회는 이승만 대통령의 노골적인지지 하에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들은 이승만 정권을 거의 기독교 정권으로 인식했고, 그 정권의 유지를 위해 부정부패까지 묵인하고 감쌀 정도로 당시 정치세력과 밀착된 모습을 보였다.
 
2. 독재정부 시설 기독 청년들이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가르침은 “통치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니 절대 복종하라. 데모하지 말라, 만약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도하라”는 말이었다.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복종하는 것과 동격으로 취급됐다.
 
3. 한국 보수교회들이 사회정치참여를 기피했던 성경적, 시학적 근거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롬 13장을 기초로 하는 ‘정교분리’ 신학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보수교회는 이 가르침을 절대적인 것으로 해석해서 국가 통치세력들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4. 둘째,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날카롭게 분리해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성속이원론’이다.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전도를 더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5. 셋째, 설령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책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직접적인 사회변화에 나서는 것보다는 개인의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나 사회참여가 아니라 복음으로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거론할 것도 없이 개인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변화로 연결된다는 근거 없는 순진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의 삶이 개인적인 영역과 사회구조적인 영역이 모두 섞여 있기에 변화도 두 영역 모두에서 시도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6. 이와 같은 신학적인 인식의 결핍 문제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보수교회 지도자들이 말로는 이원론적인 입장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와 정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60~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비록 신학적으로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면서 마치 정치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독재 정권에 협력하고 지지하고 동조하는 정치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보여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신헌법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표명과 국가조찬기도회였다.
 
7. (적극적 정치참여로 전환) 1980년대까지 명목적으로 정교분리를 내세웠던 보수교회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9년 KNCC에 대항하는 보수 교단의 연합체로 결성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발족이었다. KNCC보다 더 많은 교단과 교회들을 규합한 한기총은 대형교회 목사들의 야망적인 주도 하에 정치적으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장로대통령 만들기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 어느새 정치 일선에 나서게 됐다. 이후부터 그렇게 강조했던 “정부에 무조건 순복하라”는 가르침은 더 이상 교회에서 들을 수 없게 됐고, 교회 강단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같은 정치적 언설로 가득차게 됐다(주5일제 반대, 햇볕 정책에 대한 비판, 전시작전권 이양 반대,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 사학법 개정 반대, 수도 이전 반대 등).
 
8. 그 결과 21세기에 들어 기독교 보수세력은 한국사회 보수세력의 가장 충실한 지원세력이 됐다. 어느새 과거에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정교분리와 성속이원론 신학을 버린 것이다. 그 대신 진보교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9. 그렇다면 한국 보수교회는 왜 이렇게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돌아서게 됐을까? 첫째, 1987년 민주화 항쟁 이전에 독재정권을 비판하던 진보교회의 인사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러나 당시 보수교회 지도자들은 군사정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독재와 정의와 같은 부담스러운 이슈가 사라지면서 점차 현실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탄압의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보적 인사의 노력으로 얻은 민주화의 혜택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10. 둘째, 독재정권 시절 정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내적으로 세력을 키웠던 보수교회들은 1980년대 이후 초대형교회를 건설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한기총이라는 거대 집단의 결성과 더불어 한국사회와 정치권에서도 그 파워가 통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보수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한국사회에서 관철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신학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점차 현실 정치의 맛에 끌리기 시작했다.
 
11. 셋째, 가치관의 위기다. 군사독재 정권은 보수 기독교가 원하는 친미-반공 논리를 그대로 정책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이후 이러한 기조에 조금씩 변화가 시작됐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진보 정부는 보수세력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정책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보수교회들의 확신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보수교회는 ‘공산주의=기독교 박해=반공=미국의 도움=친미=친자본주의’라는 도식을 확고하게 만들었고, 그것과 반대되는 ‘반미=공산주의와의 대화와 타협=사회주의=반기독교’라는 반대명제도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반대 명제에 하나라도 해당되면 결국 기독교 자체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기독교를 사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거리로 나서게 됐다.
 
12. 보수교회가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나설 때, 성경적-신학적 사회윤리 외에 근거로 삼는 행동원리나 가치관은 무엇인가?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핵심가치는 성경적이거나 신학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현실적인 이유뿐이다. 그것은 크게 반공주의와 경제주의다.

 

 

13. 한국 보수교회는 반공을 강하게 내세우고,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북한과 관련 있어 보이는 사회주의적 경제를 반대하고, 미국식 경제체제를 지지하며, 자유세계의 수호자로서 미국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세력은 무조건 동지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것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거나 정책을 시행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마치 신앙에 대한 박해를 가하려는 세력으로 간주하면서 비판하는 것이다.
 
14. 한국 보수교회에서 반공과 한 쌍을 이루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맹신이다. 이들은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국가로 추앙하면서 우리도 무조건 그런 길로 가야한다고 확신한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하나님의 경제체제라고 굳건히 믿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북한이 채택하는 공산주의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지지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제동을 거는 것은 결국 북한을 편드는 것이고, 반미를 선동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한국 보수교회는 천민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이 됐다.
 
15. 반공주의와 경제환원주의를 맹목적으로 수용한 결과 한국 보수교회는 이 두 개의 연결고리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성경적 비판 과정 없이 수용하면서 수구 정치세력을 거의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맹목적 지지는 필연적으로 왜곡된 모습을 노출시켰다. 수구 정치세력의 주장을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검토와 반성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따르게 됐다. 보수 정치시력이 비성경적인 모습을 보여도 전혀 비판하지 않게 됐다.
 
16. 이렇게 보수세력과 정치적으로 결탁한 가장 참담한 결과는 교회, 목사, 신학자라고 이름 하면서도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들을 내팽개친 행태를 보이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성경적인 사회윤리와 사회와 정치 참여의 기준을 놓쳐버린 것이다.
 
17. 기독교 사회윤리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핵심 가치는 정의, 평화, 공평, 인권, 약자보호, 생태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 보수교회는 이런 가치들을 마치 공산당 선언에나 써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성경적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행태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기독교윤리를 저버린 것이다. 이것은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다.

 

 

18. 결국 잘못된 가치관과 행동원리로 움직인 것은 필연적으로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신학적 기초가 결여된 사회참여로 오류를 낳았다. 무조건 수구세력을 지지하다보니 그들의 잘못된 행태까지도 관용하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무조건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점차 신임을 잃고 있다. 보수정권의 부패와 불의와 무능력도 용인하고, 국민들의 정의 관념에는 무감각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사회적 가치들을 무시하는 ‘반기독교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19. 상처도 남긴다. 성경적 가치보다 현실적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반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온 몸으로 전해준 결과 정의와 공평의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들은 점차 교회를 떠나고 있다. 불신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도 던져주고 있다. 기독교는 비인간적이고, 부정의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호전적이고, 약자보다 강자편이고, 인간보다 돈을 중시하고, 섬기는 것보다 권력을 좋아하고, 희생하기보다 이용하려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비기독교인들 사이에 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20.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소중한 유산을 모두 폐기하고 시대착오적 반공주의와 우상숭배적인 경제주의라는 허상에 기초한 잘못된 현실인식으로 똘똘 뭉쳐서 정치현장에서 수구세력과 합세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왜곡된 교회와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21. 이제 우리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버리고 성경적 사회윤리에 기초한 행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령 그렇게 해서 교회가 손해를 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결국 승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22. 지금 한국 교회는 가진 힘을 이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약자와 고통 받는 자들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뼈를 깎는 자기 절제와 섬김의 삶이 지속될 때, 이 땅의 기독교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사회문제에 대한 복음주의의 실패, 이제는 넘어서자-기조발제 / 김형원 목사
 

* 위의 내용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지난 25일 오후 7시 ‘세월호 참사와 문창극 사태로 비추어 본 한국 교회와 신학’(부제:고통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우정의 신학)을 주제로 진행된 긴급포럼에서 발표된 것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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