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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원문] 로봇과 함께하는 미래 교회, 미래 영성 준비됐는가?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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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미래사회를 만드는 미래영성

/ 최윤식 박사(아시아미래협회장)

 

2014년 6월 14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회장:김영한 박사)이 지난 2014년 6월 14일 오전 7시 동산교회에서 ‘건강한 미래사회를 만드는 미래영성’를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이다. 본지에서 독자들에게 원문으로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힌다. <편집자 주>

 

'신유목교인'이 늘고 있다. 현재와 미래 세대는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동성'의 능력을 부여받은 세대다. 세계화가 상식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살아온 곳에 대한 집착이 약해진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편하게 해 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특성이 있는 사람을 피코 아이어로는 [지구적 인간(The Global Soul)]이라는 작품에서 '지금여기주의자(Nowherians)'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신유목교인,
"한 교회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들은 "집만 한 곳이 없다"는 전통적인 세대들의 사고에서 벗어나 "원래부터 집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지역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문화와 장소를 연결해 새로운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인터넷이나 자유로운 여행 등을 통해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의 총합이 ‘나’이며 앞으로도 나에 대한 정체성은 계속 진보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미래 교회에서도 이런 사고와 태도를 보이는 크리스천들이 늘어날 것이다.

 

 

교회와 목사에게 충성?
"그건 옛말이다"

 

이들은 교회선택의 기준도 기존세대와는 다르다. 특정한 건물이 자기를 위한 영원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교회가 '지금' 옳고 편안한 곳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면 교회공동체에 대한 깊은 관심이나 애착을 스스로 제거하고 헌신과 봉사를 거부한다.

10년 전에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로는 당시에도 전체 교인의 3.2%가 교회를 중복으로 다니고 있었다. 신유목교인의 특성이 10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3.2%라는 수치는 겉으로 보기에 무시해도 될 것 같지만, 이 통계는 건물적인 교회 개념의 중복일 뿐이다.

 

사이버 상(인터넷, 케이블TV 등)에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니는 신유목교인까지 파악한다면 그 수는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신유목교인에게 여기가 당신의 본래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먹을 풀이 떨어지면 다른 목초지를 향해 떠나는 유목민에게 죽더라도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 예전처럼 교회와 지도자를 향한 충성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버지 세대에는 집사 장로들이 타지방으로 직장을 옮기더라도 주일에 자신의 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현대인은 자신만을 위해 산다. 국가나 교회보다는 개인을 우선한다. 이러하기에 이들에게 교회를 위한 절대적 헌신, 희생, 충성의 요구들은 설득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조용히(?) 신앙생활을 즐기려는 이들 늘어가고 있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이처럼 개인주의 신앙으로 빠져드는 데는 신뢰결핍(Trust deficit)이라는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갈수록 사람들은 교회가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의 눈을 들이댈 것이다. 목회자의 교회운영에 대해 예전만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자신들이 교회의 일에 이용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의 눈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신뢰결핍의 사회를 산다 할지라도 교회만큼은 신뢰를 회복하는 희망이 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사생활 보호에 대한 두려움도 개인주의나 신유목민교인의 증가를 가속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세상이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기계가 되어 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기보호와 요새화의 경향을 보인다. 기업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사활을 걸고 소비자의 정보를 캐내려한다. 대부분의 상업적인 이윤의 금맥은 소비자들과 그들의 구매 습관에 관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가 먼저 소비자들의 정보를 좀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리고 빠르게 수집하느냐에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다.

소비자 트랜드가 곧 돈이다. 그래서 기업은 앞으로는 철저한 사생활 보호라는 말을 하면서도 뒤로는 소비자의 사생활을 기술적으로 침해하는 일을 빈번하게 일으킨다. 미래는 소비자의 정보만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하는 비윤리적인 장사꾼들이 늘어날 것이다.

일례로 미국의 초이스포인트(ChoicePoint)는 소비자에 대한 여러 데이터베이스를 뒤섞고 연결해서 돈을 버는 회사다. 세금 기록에서부터 과속 벌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보를 축적한 후 이들은 국민의 사생활을 주요대기업과 미국 정부기관에 판매한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00년 당시 거의 6억 달러였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교회라고 다를까?”라는 생각이 교인들의 마음속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미래의 한국교회에는 ‘신유목교인’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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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교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메가트랜드(Mega Trend)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다. 한국교회와 교인들도 이 세 가지의 영향권 아래 있다. 3가지 메가트랜드는 현대 교인들의 신앙 모습을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변하는 세상, 변하는 신앙


먼저 세계화가 교인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단어가 유행한 지 20년이 훨씬 넘었다. 한 때 유행으로 끝나고 말 것처럼 여겨졌던 '세계화'라는 단어는 세계가 하나로 묶이는 것을 넘어 ‘세계 융합’의 수준까지 확장되었다.

 

미래학자인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fonte)는 "10년 20년 뒤 지금의 아이들은 더 이상 국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며 세계화의 절대적 흐름을 예측했었다. 일명, '지구지방화(glocalization)'라고 한다.

피터 드러커는 1989년 [새로운 현실]이라는 책에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열거했다. 13세기에 일어난 '도시문화' 1455년에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 1776년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그리고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이후 사회'들은 인류역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중요한 전환점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런 역사적 전환점에는 반드시 새롭고 피할 수 없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특별히 '자본주의 이후 사회'를 구성하는 3가지 중요한 구조적 변화의 축은 '지식' '네트워킹' 그리고 '세계화'라고 예견했다. 세계화란 결국 인류 역사적으로 피할 수 없는 구조적인 변화의 물결이다.

세계화 속에서는 자본, 재화, 노동, 문화, 정보, 종교 등이 국경을 넘나들어 전 지구적으로 교류 ‘확산’과 ‘교배’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세계 모든 것들이 융합된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간과 공간의 사고와 행동 개념도 급진적으로 변화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경제적 세계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IMF 시절과 미국발 금융위기가 그 실례다.

 

이제 국가경제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촌스런 사람이다. 세계화 속에서는 진정한 국가경제란 없고 세계경제라는 시각만 존재한다. 세계화 속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 간 문화 간 상호의존성이 점점 더 강해진다. 국가 내부 단위를 넘어 세계 단위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정보통신기술, 운송기술, 생산기술의 발전은 세계화를 가속한다.

 

종교다원주의가 다가온다


이런 피할 수 없는 세계화의 현상을 교회에 적용해 보자. 세계화의 가속화로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실시간으로 교회와 교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세계화는 모든 영토와 경제 문화 환경 등이 표준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미국발 경제 적신호가 농촌의 작은 교회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며, 일본발 문화충격이 한국교회의 청소년문화를 강타한다.

급속한 세계 융합의 영향으로 종교의 혼합도 가속화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동양은 서양의 종교와 교배하고 서양은 동양의 종교와 교배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미국은 동양 종교나 신비주의를 배우는 데 열광하고 있다. 요가나 명상은 금기항목이 아니다. 종교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건강에 좋고 사람에게 좋다고 소문이 나면 요가 명상 뉴에이지 할 것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10년 후 한국 기독교는 교회 안의 다종교 문화라는 새로운 사탄의 공격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종교 간의 혼합 추세는 작게는 교파 간의 색깔을 희미하게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인들은 교파 간의 구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지 복음주의인지 아닌지가 교회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뿐이다. 당연히 교단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고 있다. 교파 교단 간의 경쟁을 뛰어넘어 개 교회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교회 간의 생존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수록, 건강치 못한 교회 심하게 병들어 가는 교회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 갈 것으로 예측된다.

 

 

2030년, 가상공간에서 영생을 꿈꾸는 시대가 된다.

앞으로 개발되는 미래의 기술들은 인간의 삶의 방식에도 큰 영향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미래의 기술들이 가져올 미래변화와 그에 따른 교인들의 삶의 방식의 변화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다룰 내용은 ‘가상공간에서 영생을 꿈꾸는 인간’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컴퓨터와 인터넷은 가상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앞으로 대략 20여 년간 펼쳐질 후기정보화시대는 가상공간이 더 진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대중화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클라우딩 컴퓨팅, 위치 추적 기술 위에, 10년 이내 상용화되는 100배 빠른 인터넷, 스마트 네트워크 기술, 인공지능, 휴먼인터페이스, 사물네트워크가 더해진다.

 

그리고 2017년이면 활성화되는 마음대로 접히는 그래핀 디스플레이, 2018년에 가능한 고속도로 자동화 기술, 2020년에 완성되는 3차원 인텔리전트 유비쿼터스, 2020년경에 촉감까지 전달하는 홀로그램 모니터, 2022년에 적극 도입될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더해진다.

 

 

이번 변화들로 미래는 도시와 지구 자체가 컴퓨터처럼 될 것이다. 그러면, 컴퓨터 속에 사는 느낌을 갖는 시대, 내게 필요한 정보가 스스로 알아서 나를 찾아오는 시대,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게 된다. ‘현실이 가상으로 흡수되고, 가상이 현실로 탈출하는’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모니터를 경계선으로 했던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니터가 없이도 현실 공간에 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기가 된다.

 

가상공간의 '아바타'
"나는 영생을 꿈꾼다"


지능화된 가상공간 탓에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목적들에 최적화된 정보(Just-in-purpose)를 최적의 시간(Just-in-time)에 자동으로 받아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날리지(Premium Knowledge)’의 시대가 온다. 포털, 스마트폰, 검색엔진이 사라지고 수많은 창의적 산업들이 새로 태동하게 될 것이다. 지능화된 3차원 가상 공간 안에 가상의 정부, 가상의 정치, 가상의 회사, 가상의 학교, 가상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현실의 세계와 절묘하게 결합되는 사회가 된다.

 

이미, 미국에서는 3차원 가상공간을 활용해서 환자가 의료 상담 및 진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2030년 이후가 되면 영화 <아바타>와 같은 가상사회 구현이 가능한 기술도 개발되면서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내가 서로 연동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 간의 소통방법도 지속해서 변화할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도 새로운 소통의 도구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 사람과 사물의 소통, 사물과 사물의 소통 등으로 소통의 영역이 확장된다. 사람과 로봇의 소통, 사람과 건물의 소통, 건물과 건물의 소통, 사람과 상품들의 소통 등 새롭고 무한한 소통의 대상들이 생긴다. 즉, 전 세계의 모든 것들이 통신의 대상이 된다.

이런 미래사회가 현실이 되면, 가상공간에서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에 자신의 기억과 역사가 주입된다. 그 아바타는 내가 살아 있을 때는 현실에서 나타내지 못하는 다양한 인격과 모습을 보여 주는 도구가 되고, 내가 죽더라도 가상공간 안에서 나를 대신해서 영생하는 존재가 된다.

 

한 마디로, 지옥과 천국의 중간지대인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내가 영생하는 시대가 된다.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영생을 박탈당했던 인간이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기억과 과거를 주입한 인공지능 아바타를 통해 영생을 꿈꾸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2030년, 로봇과 함께하는 교회가 된다.

SF영화를 보면,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끔찍한 일이 종종 묘사된다. 교인들도 로봇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혜택보다는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고 경계하는 것 같다. 과연 미래의 로봇은 인간에게 해가 될까? 득이 될까? 결론을 말하면, 당분간은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정복하는 데는 최소 100년 이상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로봇의 능력이 향상될 때마다 지혜로운 인간들이 로봇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는 통제력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로봇을 닮고
로봇은 인간은 닮고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미래는 인간은 로봇을 닮아 가고, 로봇은 인간을 닮아 가면서 ‘공존’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국내외의 로봇산업은 10년 이내 유망한 산업으로 대두할 것이다. 로봇 산업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인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로봇의 일부를 인간에게 접목하는 사이보그 산업, 그리고 사람의 뇌를 닮은 인공지능 산업이다.

우리는 지금도 로봇의 시대에 산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증기기관을 장착한 ‘기계적 로봇’이 등장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했다.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기계가 연산기능을 갖게 되면서 ‘연산적 로봇’의 시대가 열렸다.

앞으로 20년은 2가지의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는 로봇이 아주 낮은 수준이지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면서 ‘인식적 로봇’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또 하나는 로봇이 공장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인간을 돕거나 경쟁하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로봇은 ‘인간을 닮은 로봇(일명, 휴머노이드 로봇)’이 될 것이다.

로봇은 사람의 일을 대신해 주는 기계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집에 있는 냉장고 세탁기 등도 로봇의 일종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 모든 기계적 로봇, 연산적 로봇을 통제하는 로봇이다. 현존하는 휴머노이드 중 가장 진보한 것은 일본의 혼다가 개발 중인 ‘아시모’다.

 

아시모는 2000년 세계 최초로 직립보행에 성공한 이후 2007년 주인이 생각만 해도 그 명령을 알아차리고 행동을 수행하는 수준까지 진보했다. 혼다의 아시모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악수를 하고, 다양한 안내 및 생활 서비스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시속 8km로 뛸 수 있으며 배터리가 방전되면 스스로 충전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이런 로봇들의 수요는 더 커질 것이다.

 

 

반대로 사람은 로봇의 일부 기능을 활용해서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약점을 극복하면서 점점 로봇을 닮아 갈 것이다. 일명, 사이보그 인간이 일상화될 것이다. 사이보그 인간은 로봇의 일부 기능을 자신의 몸에 이식하거나 착용하여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다. 이런 욕구 역시 고령화 사회를 계기로 급속하게 늘어날 것이다.

인간은 이미 사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있다. 눈이 흐려지면 안경을 쓰고, 사고로 손발에 장애가 생기면 의수, 의족을 착용한다. 몸 안에도 철을 박거나 전자 기계를 삽입한다. 앞으로는 좀 더 기능이 향상된 기계를 몸에 심거나 착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은 가짜 안구가 아니라, 인공망막이나 인공눈 기술을 활용하여 시력을 완전히 회복할 것이다. 인공와우 기술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아이에게 시술하는 사이보그 기술이다. 이외에도 로봇팔, 로봇다리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로봇 친구들, 어서 오세요
101호에서 예배드립니다


입는 로봇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이보그도 가능하다. 현재 일본과 미국에서 개발하고 있는 입는 로봇은 최대 200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연구가 진행되었다. 또한, 사이보그 기술을 통해 뇌 기능을 향상할 수도 있다. 뇌심부 자극술이라고 하는 치료법이다.

 

가슴 부위에 작은 컴퓨터를 달고 컴퓨터에 연결된 전선을 뇌에 삽입하고 이를 통해 뇌에 전기 자극을 주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정상인처럼 살 수 있다. 미국에서만 이미 2만여 명의 사람들이 이 시술을 받았고, 치료 후 걷고 달리고 춤까지 출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기술이다. 현재의 인공지능의 수준은 쥐의 지능 정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20~30년 이내에 인간의 수준까지 향상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로봇, 사이보그, 인공지능의 3가지 기술들이 종합되면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영유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새로운 인공생명체로서의 로봇의 시대가 현실이 된다.

미래의 교회는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교회 사무실로 안내하고, 교인들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인공지능로봇과 친구가 되고, 로봇의 능력을 닮아가는 사이보그 인간이 교인으로 등록하고,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여 일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쟁사회 속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되면, 어쩌면 주일날 교회에서 이런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로봇 친구들은 101호에서 따로 예배드립니다!”

 

 

2040년, 생명을 재창조하는 시대가 열린다.

하나님은 5일째 되는 날 바다와 하늘의 생물을 만드셨다. 6일째 되는 날은 땅의 생물을 만드시고, 흙으로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이것이 생물과 인간 창조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바다와 하늘과 땅의 생물, 그리고 인간 자체까지도 재창조할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 바로, 생명공학기술(BT) 응용산업이다. 바이오 생명산업은 21세기 고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산업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우리는 '재창조'한다.


체세포 복제, 유전자 분석, DNA 합성기술 등을 통해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 몸 안의 신비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DNA 합성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DNA 기술은 매년 유전자 정보의 양이 2배씩 느는 추세라 반도체 기술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0년 후면 100만 종 이상의 생명체에 대한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를 축적할 수 있어, 대부분의 생물체 DNA 정보를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에서 검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한다.

인공복제, 줄기세포, 맞춤형 유전자 조작 및 맞춤형 아기 기술 등은 생물과 인간의 생명 창조와 재창조를 다루는 영역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깊이 있게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국가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산업의 규모가 상당히 큰 영역이기 때문에 기술연구나 산업응용에 대해서도 주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줄기세포 기술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지만, 그동안 윤리적 문제로 부시 대통령 때까지는 공식적으로 연방정부가 줄기세포 산업에 대해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연방정부가 직접 지원하기로 했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고 바이오산업이 큰 부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민간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줄기세포, 바이오 기술 연구가 상당 부분 많이 진행되고 있다. 2009년 우리나라 연구팀이 세계에서 4번째로 유전자 게놈 지도를 분석했다. 그때 총 책임자는 현재의 기술에 따르면 개인도 100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유전자 분석 지도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5년 안에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유전자 지도를 분석하면 현재 인간이 걸릴 수 있는 질병의 6,000가지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성과는 미래 비즈니스와 연관해서 아주 중요하다. 분석된 유전자를 기반으로 예방의학이나 혹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병이 걸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분석해보니 40대가 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하자. 이런 정보를 알게 되면 예방할 수 있다. 체질을 바꾸든지, 면역력을 증식시키든지, 식이요법을 하든지 해서 유전자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발병 확률을 낮추거나 발병 이후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물론 유전자 배열 구조를 바꿈으로써 질병의 발생 확률을 근본적으로 낮출 수도 있다. 삶의 재창조가 가능해진다.

 

재창조, 변종적 창조
신학적 답변은 준비됐는가?


이런 기술이 5년 후에 100만 원 정도 된다면 국가나 보험회사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발병 이후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예방 비용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나 보험공단이 의무적으로 실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보험료를 별도로 계산하든지 할 것이다.

 

조만간 이런 가능성을 활용한 의학적 비즈니스가 생길 것이고, 사이보그 기술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의료관광산업을 태동시킬 수도 있다. 의료 관광산업도 2012년이면 1,000억 달러(120조 원)를 넘어서는 차세대 미래 산업군에 속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도전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생명 창조의 근원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본 인간은 종국에는 생명의 재창조와 새로운 변종생물의 창조에까지 탐욕을 부릴 것이다. 본래부터 하나님이 되기를 원했던 인간이기에, 타락 이후 파편적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최대한 결합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천지 창조를 꿈꿀 수 있다.

어쩌면 21세기는 생명의 재창조와 변종적 창조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죄에서 구원받은 교회 공동체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님은 교회가 죄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중심이 되기를 원하신다. 동시에, 인류문명이 타락하고 멸망해 가는 속도를 더디게 하는 일에도 중심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점점 더 이 두 가지를 외면한 채 자신들만의 도피성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윤리 전쟁, 변증 전쟁이 시작된다.

가상공간에서 영생을 꿈꾸는 시대, 사람 닮은 로봇, 로봇 닮은 사람의 시대, 생명공학기술이 생명을 재창조하는 시대, 나노기술이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과 물질의 구조를 재조합하는 시대, 화성과 같은 새로운 곳에 인류를 정착시켜 새로운 민족과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계획이 실행되는 시대.

이런 모든 기술과 시도는 새로운 산업을 태동시켜 경제성장과 인류문명의 발전, 그리고 삶의 편리함을 선물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류에게 심각한 윤리적 고민을 안겨 줄 것이다. 이런 기술과 산업이 시작되는 시대를 상상해 보면,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가?” “미래에는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규정할까?”

 

이런 우려 섞인 질문들과 심각한 윤리적 도전에도 인간은 새로운 기술을 통한 더욱더 편리한 문명과 생명연장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결국, 미래는 예측한 모습대로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미래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한국의 신학계와 교회 지도자들은 이혼이나 우울증으로 말미암은 자살과 관련된 윤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도 목회현장에서는 재혼하는 교인들의 주례를 목사가 집례한다. 자살은 지옥에 가는 죄라는 해석을 따라 감리교 신자였던 전태일의 죽음을 외면했고 지금도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교인들에게 싸늘한 시선과 조롱과 정죄의 눈길을 보내며 쉬쉬한다.

 

그런데 한국 최초의 장로교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웠던 맥킨지 선교사도 엄청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으로 우울증과 비슷한 상황에 빠진 가운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과연, 그분은 지옥에 갔을까?

 

미래 사회 질문
교회,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그나마, 일반의학계에서는 우울증으로 말미암은 자살을 질병으로 말미암은 죽음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한국 교계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믿음이 약하거나 기도하지 않은 결과로 치부하고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공간에서 기억을 주입한 인공지능 아바타가 영생하는 시대, 가상현실을 활용한 사이버섹스가 가능한 시대,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간의 탄생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시대, 병이 들면 모든 장기를 다 새것으로 교체하여 완벽히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시대, 인간복제 기술을 통해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탄생시킬 수 있는 시대, 인간의 몸에 사이보그 기술을 접목해 기계 인간이 될 수 있는 시대, 화성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하나님이 주신 이 지구를 떠날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은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할까?

필자의 마음속에는 “이런 시대 속에서 발생할 많은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과연 대응력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2030년 이후 현실화되는 미래의 이슈들은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2030년이라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미래다. 그리고 이런 이슈들은 2030년이 되기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만약, 교회가 이 문제들에 대해서 올바른 성경적 입장을 연구하여 제시하지 않는다면 교인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심각한 영적 고갈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과학기술 발달은 인간의 삶을 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생명윤리 문제를 비롯해 개인의 사생활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낼 정도로 정보유출의 가속화가 나타나고 있다. 구글의 무료 위성사진 서비스인 ‘구글 어스(Google Earth)'는 금기의 영역에 있던 정보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보로 만들어 버렸다.

 

최고 권력자들이나 소유할 수 있었던 정치적 군사적 일급기밀에 해당하는 주요 시설(군사, 행정, 기간시설)의 정보를 초등학생까지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없어져 간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버려서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진다. 테러리스트들도 별다른 정보기술 없이 인터넷만 접속하면 얼마든지 국내외의 주요 전략시설들을 정찰하고 공격할 수 있는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영적, 심리적 공허함 속에
성도들은 하나 둘 떠난다


그런데 정보 유출이 심해지면 자신을 지키려는 반사작용도 함께 심해진다. 타인과 접촉하지 않고 고립된 생활을 하더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돕는 기술을 자신을 지키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차가운 기계와 접촉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영적인 고갈은 심각해진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떤 공동체에도 평생 안정적으로 몸담을 수 없는 환경, 어디를 둘러보아도 자신 외에는 차가운 기계밖에 없다는 두려움, 하루에도 셀 수도 없이 찍히는 감시카메라의 공포들은 우리의 마음에 심한 공허함과 심적 고갈을 만들어 낸다.

미래 사회는 갈수록 그리스도인이든 불신자든 이런 영적 심리적 공허함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교회에 새로운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영적 고갈과 철저한 개인주의 성향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을 맞을 새로운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영적인 갈증을 다른 교회나 다른 종교 혹은 신비주의 철학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교인의 급속한 이탈을 부추길 수도 있다. 이단이나 신비주의가 흥왕하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심각한 영적 고갈은 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의 두려움과 불안, 불편함, 좌절과 무력감 등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앞으로도 세계적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를 거부하면 할수록 불안과 두려움, 좌절, 무력감은 더 심해진다. 변화하지 못하거나 경쟁을 회피하면 낙오되어 버린다.

 

 

3무(三無) 시대를 경계하라.

현대 사회의 중요한 메가트랜드인 '정보화'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전기 정보화시대를 지나 후기 정보화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츠는 1982년에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를 예측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역시 '정보'가 이 시대의 '기본적인 원료'가 되어간다고 예측했다.

지식시대는 유형의 생산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컴퓨터나 통신기기, 기타 엔터테인먼트 기계 같은 유형의 물건들은 결국 새로운 정보를 생산해 내기 위한 도구다.

 

이런 정보화 사회가 교인과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1차적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교회 내에도 정보화 행정기법이 도입되어 교인 관리의 효율성이 증대되었고, 저렴하고 간편한 미디어 장비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생산해내는 주체가 되었다. 앞으로 펼쳐질 후기 정보화시대는 더욱 큰 변화가 교회와 교인의 삶에 일어날 것이다.

 

무기력, 무관심, 무의미

 

생산품 대신 지식이라는 추상적인 것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아이디어, 개념, 지식이 지배한다. 또한, 이런 것들을 독창적으로 가공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실용지식을 만들어내는 전문성이 보다 강조되고 주목을 받는다.

 

미래 교회도 개발된 창조적이고 전문적인 사역지식, 목회지식을 갖는 목회자가 등장할 것이다. 교회교육 내에도 홀로그램 커뮤니케이션, 가상 시뮬레이션, 휴먼 인터페이스 기술이나 3차원 인터넷의 물결이 휘몰아칠 것이다.

반대로 후기 정보화 시대의 부정적인 측면도 예측된다. 정보화 시대는 모순과 역설, 그리고 모호함으로 가득 찬 시대다. 후기 정보화의 흐름은 학문 분야, 산업, 사회적 활동 사이의 전반적인 경계가 무너뜨리면서 기존 지식의 창조적 활용과 유통을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 경제, 학문, 종교 등 각 부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특성이 나타날 것이다.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모호함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모호함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불안을 낳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은 불안에서 비롯되는 '무기력, 무관심, 무의미'이란 3무(三無)의 강화일 것이다. 경제, 경제, 사회적 불안은 무관심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을 낳는다. 교인들이 사회에 대한 불안과 무기력이 가중되면 국가와 사회 심지어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서마저 무관심해진다.

 

자신이 맡은 일만 잘하면 되지 교회나, 회사, 국가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진다. 주일에 한 번 예배만 드리면 된다는 식의 싸구려 은혜만을 탐하는 교인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무관심’의 증가는 ‘무의미’의 증가로 이어진다. 신학적 옳고 그름에 대한 무의미, 교회의 일에 대한 무의미, 목회자의 인격에 대한 무의미가 증가할 것이다.

 

 

무관심, 무기력, 무의미는 소외를 낳는다. 소외는 사회와 타인에게서 떨어져 혼자가 되었다는 고독감을 모두 포함한다. 자신의 존재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주위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소외되는 교인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영적 우울증은 미래교회를 공격하는 사탄의 최고 전략이다. 영적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신이나 타인을 영적으로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이 유발될 수 있다. 염세주의적 태도, 기독교 윤리적 판단의 보류, 불가지론 등의 정신적이고 신학적 위기가 발생한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영적, 인적 네트워크 강화하라


이런 시대에는 분명하고 절대적인 가치관의 중요성이 커진다. 교회가 문제 해결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여러 분야 사이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모호성과 불안이 증가하는 사회에서 중요한 생존 수단의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네트워킹 기술'이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사회적 형태를 구성하는 힘이다.

 

이때의 네트워크는 물리적인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 지식 네트워크, 사고 네트워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정보화시대에서의 기업, 정부, 개인은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더 많이 의존해야만 한다.

불안, 무관심, 무기력, 무의미 그리고 소외 등을 이기고 생존하는 교회와 교인이 되려면 먼저 수직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수평적인 측면에서 이웃과 사회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생각의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영성, 지식, 비전을 공유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서로 연결하여 '영적 공동체'를 확장시켜야 한다. 네트워크를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 교인을 연결하고 용기와 비전을 나누어 주고 영성을 고취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모든 지체의 열정, 신념, 재능, 헌신을 동원해야 한다. 전도와 선교를 힘 있게 하기 위해서도 지역사회와 다른 교회, 단체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중심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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