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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경건주의는 교회갱신운동으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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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 월례발표회서 경건주의 정신 강조

 

2014년 4월 기사

 

“경건주의는 신비주의나 율법주의가 아니라 종교개혁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는 교회와 사회를 위한 갱신운동이었다.”

기독교학술원장 김영한 박사는 지난 18일 '경건주의 영성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개최한 제37회 월례발표회서 개회사를 통해 “경건주의는 교회갱신운동으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경건주의는 종교개혁이 1세기 이후 소진한 종교개혁 정신을 다시 일깨워서 종교개혁의 불길을 다시 점화해 종교개혁을 완성하자는 정통교회 내에서 일어난 교회갱신운동이었다”며 경건주의 운동은 △인격적 체험적 종교를 가져다 줬고, △청교도 운동의 독일 버전이었으며, △성경연구의 열정을 가져다 줬고, △한국 교회가 자기 갱신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유산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비록 경건주의는 미완성의 종교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신비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사변적 경향으로 빠지지 않고 실천지향적으로 나아갔다”며 “경건주의는 오늘날 한국 교회 갱신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고 덧붙였다.

 


한편, 다음은 김영한 박사의 개회사 전문이다.

 

경건주의는 교회갱신운동으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김영한 박사(본원 원장,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 설립원장)독일교회의 경건주의 운동은 영국 청교도 운동의 영향 아래서 생겨났다. 영국 청교도주의, 특히 캠브리지의 월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의 청교도 사상과 네덜란드의 “나데레 레포르마치”(nadere reformatie)가 독일교회의 경건주의를 탄생시켰다. 

 

경건주의는 루터교 경건주의와 개혁교회 경건주의로 나타나는데 전자는 마인강변에 위치한 프랑크 푸르트의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를 중심한 루터교에서 일어난 운동이며, 후자는 라인강변 북서부 지역 중심으로 뮐하임, 카셀, 브레멘에서 운데아아익(Theodoer Undereyck, 1635-1693)을 주축으로 한 개혁교회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경건주의는 종교개혁정신이 한 세기 후에 고갈되었을 때 종교개혁정신을 삶에 있어서까지 완성시키자는 교회갱신운동으로서 하나의 신학적 현상으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 종교개혁이 중단되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살리고 “교리에의 종교개혁”은 삶의 종교 개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교회 내에서 경건주의에 대한 오해는 시정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경건주의는 단지 개인주의적 신앙운동으로 그리고 자유주의를 불러 들이는 운동 그리고 개인의 공로를 쌓는 도덕주의로 간주되어 왔다. 이것은 경건주의에 대한 3가지 오해다. 경건주의는 종교개혁이 1세기 이후 소진한 종교개혁 정신을 다시 일깨워서 종교개혁의 불길을 다시 점화하여 종교개혁을 완성하자는 정통교회 내애서 일어난 교회갱신운동이었다.

 

 

1. 경건주의는 개인주의적 신앙운동이 아니다.

경건주의는 교회를 등지고 자기 스스로의 경건을 추구하는 신비적 일탈적 운동이 아니었다. 특히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리출은 경건주의를 “순전히 사적이고 탈세주의 기독교”(rein privates, weltflüchtiges Christentum)로 비난하였다. 그러나 경건주의운동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운동으로 오늘날 셀(cell)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경건주의는 “교회 안에서 교회”(Ecclesiola in ecclesia) 운동을 통해서 공교회를 새롭게 하는 작은교회 운동이었다. 스페너가 경건회 모임을 시작한 지 5년 후 1675년에 「피아 데시데리아」(Pia Desideria: 경건의 욕망)을 출판하였다. 이 책에는 신자들의 경건성을 양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진술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가 개혁되어야 함을 주장하였고 참된 기독교는 교리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영적 생명력이 생활 속에 나타나야 된다고 하였다. 마르틴 슈미트(Martin Schmidt)가 경건주의의 핵심개념을 “중생”(Wiedergeburt)으로 본 데 대하여 요하네스 발만(Johannes Wallmann)은 “갱신”(Erneuerung)으로 보았다.

2. 경건주의는 자유주의의 계기를 만든 운동이 아니다.

경건주의는 주관적 체험을 강조함으로써 성경 비평을 하는 자유주의신학을 불러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정통주의의 비난일 뿐이다. 오히려 경건주의 운동은 성경 읽기와 성경 연구를 하는 데 기여하였다. 독일 남부 지역의 경건주의 지방에서는 여전히 식사 전후에 성경을 읽는 아름다운 경건의 전통이 있다. 성경주의는 오직 성경만을 신앙의 규범으로 인정하는 성경 문자주의 모습을 보였다. 경건주의자들은 소그룹으로 모여 경건서적을 일고, 성경을 함께 읽고 묵상하며 은혜 받은 바를 서로 나누었다. 오히려 경건주의자들은 오로지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신앙 전통 위에 굳게 서 있었다.

 

3. 경건주의는 도덕주의가 아니었다.

경건주의는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도덕주의로 오해되었다. 칼 바르트는 1918년 로마서 주석 초판에 경건주의를 율법주의 내지 신인협력주의로 비판하였다. 경건주의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였으나 단지 도덕의 개선을 추구한 운동은 아니었다. 경건주의는 인간의 도덕성이나 인간의 종교적 공로를 주장한 운동이 아니라 이신칭의를 생활하는 성화운동이었다. 성화나 성결이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며,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4. 경건주의는 교회와 사회갱신운동이었다.

경건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격적 체험적 종교를 가져다 주었다.
둘째, 경건주의는 청교도 운동의 독일 버전이었다.
셋째, 경건주의와 청교도 운동은 동일한 교회 내의 교회운동이었다.
넷째, 성경연구의 열성을 가져다 주었다.
다섯째, 경건주의는 한국교회가 자기 갱신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유산이다.


경건주의는 신비주의가 아니었다. 내면적 개인의 경건생활에 그치지 않고 사회변혁운동으로 나아갔다. 한국교회에서는 경건주의가 내면적 개인적 신앙생활운동에 그치는 것으로 오해되었다. 개인적 성결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오해되었다. 경건주의는 독일 할레를 중심으로 대학교육기관과 연결되어 학문적으로 연구되었고, 고아원 사업과 양로원 사업 그리고 해외선교사업으로 구체젹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업으로 나타났다.


맺음말


경건주의는 미완성의 종교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 신비주의를 받아들였으나 사변적 경향으로 빠지지 않고 실천지향적으로 나아갔다. 경건주의는 신비주의나 율법주의가 아니라 종교개혁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는 “교회와 사회를 위한 갱신운동‘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갱신이 요구된다. 경건주의 정신이 새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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