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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한 권의 신학

[책 안의 한 줄] 우상숭배 "무엇이든 가짜 신이 될 수 있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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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캘러의 내가 만든 신: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 팀 캘러 저 / 윤종석 역 / 두란노 / 280p / 2017.05 / 14,000원

 

 

 

우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

 

 

 

무엇이든 워낙 당신 삶의 중심이자 필수여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가짜 신이다.

 

 

 

가정과 자녀, 직업과 돈벌이, 성취와 평론가의 호평, 체면과 사회적 지위가 다 우상이 될 수 있다.

 

 

 

로맨틱한 이성 관계, 업계의 인정,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 외모나 두뇌, 정치나 대의명분, 도덕과 가치관, 심지어 기독교 사역에서 성공하는 것도 다 우상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삶을 고치는 데 인생의 의미를 거는 것을 흔히 “상호의존”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것도 우상숭배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 이런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가장 적합한 말은 ‘숭배’(worship)일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는 지극히 복잡한 개념이라서 지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영적 범주를 모두 아우른다. 

 

 

개인의 우상으로는 로맨틱한 사랑과 가정, 돈, 권력, 성취, 속한 분야의 인맥, 타인이 정서적으로 의존하기를 기대하는 것, 건강, 몸매, 매력적인 외모 등이 있다. 

 

 

 

문화적 우상은 군사력, 기술 발전, 경제 번영이다.

 

 

 

지적 우상도 있는데, 흔히 이를 ‘이데올로기’라 한다.

 

 

 

 

 

 

 

 

우리는 우상을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나쁜 경우는 거의 없다. 더 좋은 것일수록 그것이 우리의 가장 깊은 욕구와 희망을 채우리라는 기대도 커진다. 무엇이든 가짜 신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삶의 가장 좋은 것일수록 더 그렇다.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이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 이런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가장 적합한 말은 ‘숭배’(worship)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녀를 참 하나님의 자리에 두면 거기서 우상숭배 같은 사랑이 싹튼다. 그 사랑은 자녀를 숨 막히게 하고 관계의 목을 조른다.

 

 

 

로맨틱한 사랑과 관련된 남녀의 전형적 우상은 양쪽 다 막다른 골목이다.

 

 

모든 우상숭배는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바울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지적했다(골 3:5; 엡 5:5 참조). 누가도 복음서에서 똑같이 가르친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청중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상숭배에 대한 성경의 기본 은유를 모두 가져다 탐심과 돈에 적용하신다. 성경에 따르면 숭배자가 우상을 상대로 하는 일은 세 가지다. 우상을 사랑하고, 우상을 신뢰하고, 우상에 순종한다.

 

 

돈을 위해 살면 당신은 종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되시면 돈은 왕위에서 밀려나 강등된다. 당신의 정체성과 안전이 하나님께 있으면 돈이 염려와 욕심을 통해 당신을 지배할 수 없다.

 

 

 

 

 

 

 

 

우리 마음의 죄성은 동기적 욕구에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우상숭배로 변질시킨다. 바로 이것이 ‘근원적 우상’이다.

 

 

‘표면적 우상’은 근원적 우상이 자신을 충족시키려는 통로로서 돈, 배우자, 자녀 등에 해당한다.

 

 

 왜 우리는 정치적 대의와 사상을 신이나 악마로 둔갑시키는 것일까? 라인홀드 니버에 따르면 우리가 정치의 우상화를 통해 권력을 신으로 삼기 때문이다.

 

 

우상이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얻고자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이다. 교리적 진리가 거짓 신의 지위로 격상되면 종교 공동체 안에도 우상숭배가 널리 퍼진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을 그분과 은혜에 의존하기보다 교리의 정확성에 의존하면 그렇게 된다. 이는 미묘하지만 치명적인 과오다. 이런 형태의 자기정당화에 빠진 사람의 징후는 잠언이 말하는 “거만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인종적 우월감과 문화적 편협성은 은혜의 복음과 공존할 수 없다. 상호 배타적이라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밀어낸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문화나 계층의 특성이 나머지 모든 이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복음은 이런 본능적 성향을 저지한다.

 

 

우상숭배를 미래에 대입해서 우상이 위협받으면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무력해진다. 우상숭배를 과거에 대입해 우상을 실망시키면 우리는 불치의 죄책감에 빠진다. 우상숭배를 현재의 삶에 대입해서 우상이 환경에 막히거나 없어지면 우리는 분노와 절망으로 몸부림치게 된다.

 

 

우상숭배는 단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 마음을 하나님 아닌 다른 데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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