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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역사와 신학

존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 140주년, "한국인과 함께 번역했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22.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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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한규무 박사)와 대한성서공회 성경원문연구소가 공동으로 지난 4월 26일(화) 오후 2시 새문안교회 언더우드홀에서(온라인 ZOOM&Youtube 병행)에서 '존 로스 한글성경 번역 14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이날 '존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이 한국교회와 사회문화에 끼친 영향과 과제'를 주제로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발제자들의 주장을 일부 정리했다. <편집자 주>

 

올해는 성경이 한글로 처음 번역된 쪽복음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간행된 지 140주년을 맞는 해다.

 

특히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본은 매킨타이어를 비롯해 이응찬, 서상륜 등 한국인들과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발제문 및 발표영상 갈무리
사진출처: 발제문 및 발표영상 갈무리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 과정

 

 

기조발제자로 참여한 옥성득 박사(UCLA 교수)는 '존 로스와 한국 개신교-로스의 첫 한글 복음서 출판 140주년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옥 박사는 "조선 정부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한반도 안에 들어가서 전도할 수 없었던 로스는 1887년 한글 신약전서를 번역하고, 1882년 쪽복음부터 1887년 신약전서까지 완간하고, 한국인 권서를 통해 이를 반포함으로써 미래의 선교 사역을 준비하는 차선책을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로스는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먼저 출판해서 그 반응을 살펴본 후 수정 작업을 하면서 단권이나 합권을 발간하다가 1887년에 신약전서(로스본)를 출판했다. 1891년 마태복음을 출판했지만 1887년부터 번역은 중단했으므로 1876~86년의 11년간 로스는 신약전서를 완역했다.

 

옥 박사는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 과정을 5기로 나눠 설명했다. 

 

제1기는 준비기로서 1876~77년이다. 로스는 이때 한국어를 배우면서 문법을 정리하고 한국어 회화서를 발간하고 실험적인 소책자 번역을 하면서 어휘집을 만들고 적절한 성경 용어를 선택하면서 복음서 일부를 실험적으로 번역했다 한국인 번역자는 이응찬이었다.

 

제2기는 초역기로써 1877년부터 로스가 첫 안식년 휴가를 떠나는 1879년 4월 10일까지다. 로스는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등에게 한문 문리본(文理本) 신약전서를 저본으로 주고 마태복음부터 로마서까지 초역하도록 했다.

 

제3기는 매킨타이어의 초역 완성기로 1879년 4월부터 1881년 8월까지 로스가 스코틀랜드에 있을 때 잉코우의 매킨타이어가 신약 전체 초고를 완성했다. 매킨타이어는 이응찬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면서 이 일을 진행했다. 

 

특히  매킨타이어는 1879년 4명의 한국인에게 세례를 주고 이들을 훈련하기 위해 『예수셩교문답』과 『예수셩교요령』을 번역하게 하고 함께 공부했는데, 이 두 책은 1881년 로스가 돌아와서 출판하게 됐다.

 

제4기는 첫 복음서인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개정기이다. 로스는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만주로 돌아와서 선양에 문광서원을 설치한 1881년 9월부터 1882년 봄에 초고를 놓고 수정 작업을 해 첫 복음서인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출판했다. 

 

제5기는 신약의 완역기다. 기간은 1882년 여름부터 로스가 선양에서 신약전서 『예수셩교젼서』를 완역하는 1886년 가을까지로 매킨타이어의 초고와 출판한 두 복음서를 또 다른 서울 출신 학자의 도움을 받아 서울말로 수정하면서 나머지 복음서와 서신서를 번역하고 출판을 병행했다.

 

 

 

로스는 성경의 사람이었다

 

 

특히 『예수셩교문답』과 『예수셩교요령』(1881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 (1882년 3월), 『예수셩교요안복음젼셔』 (1882년 10월) 등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본의 특징과 번역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옥 박사는 "로스는 만주와 조선의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38년을 인내하며 전도자의 아름다운 발을 가진 개척 선교사로서 한국 개신교회의 첫 신자들을 만들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로스는 중국과 조선의 언어 역사 풍속 문화를 깊이 연구한 선교학자이기도 했다"라며 "그는 서구 기독교를 이식하는 문화 제국주의 대신 전통 종교 문화의 선한 요소를 기독교의 접촉점으로 수용하는 성취론을 지지하며, 무엇보다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번역하고 성경을 주석한 성서의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로스본 성경, 어떻게 보급됐나?

 

 

'로스역 한글성경의 보급과 현재 소장본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박형신 박사(남서울대교수)는 로스역 한글성경을 만주와 국내에 보급한 이들을 여섯 가지 부류로 설명했다.

 

박 박사는 "전도자, 권서시찰 감독을 받는 권서, 공회가 고용해 감독을 위탁한 권서, 한국 내 선교사들의 권서,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일본 지부의 권서 등이 로스본 성경을 보급했다"라며 "보급의 시기는 1882년 봄에 시작하여 국내에서는 1890년대 전반기까지, 그리고 만주에서는 1900년경까지 이어졌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로스본 번역본의 보급량은 '판본 합산 방식'으로는 67,000권, '누적 출판량 조정 방식'으로는 77,040권으로 추산된다"라며 "보급 지역 및 대표적인 권서들로서는 서간도 한인촌 및 만주 지역의 김청송과 이정근(추정), 평양과 북부 지역의 류춘천, 이영호, 이이, 서울과 중부 지역의 서상륜과 서경조 부산과 남부 지역의 일본인 나가사카 등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로스본 번역성경의 현재 소장본에 대해서도 설명한 박 박사에 따르면 국내외 현재 소장처가 확인된 판본은 총 12종이다.  그 가운데 2종인 『예수셩교요안복음젼셔』(1882)와 『예수셩교셩셔맛복음』(1886)은 국내 소장본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박 박사는 "로스역 한글 성경의 보급을 통해서 성경을 스스로 읽은 서민과 대중은 기독교 신앙에 더 쉽게 눈떴고 성경을 전해 준 전도자와 권서들은 교회와 사회를 위한 지도자의 길로 나아갔다"라며 "초대교인들이 가슴으로 읽었던 성경은 후손들을 통해 공개되어 신자들과 대중들이 누리는 신앙 및 문화적 유산이 되었고 세계의 성서공회들이 대한성서공회에 기증한 한글 성경은 세계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일치의 상징이 되었다"라고 강조했다.

 

 

 

로스본 성경, 원문에 충실했다
그리고 한국어 어풍을 고려했다

 

 

'로스의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가 한글 성경 번역에 끼친 영향과 앞으로의 과제-누가복음 20~24장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두희 박사(대한성서공회 부총무)는 그리스어 및 중국어의 저본 문제와 로스본 성경이 지닌 번역의 특징들을 설명했다.

 

이 박사는 "로스는 그리스어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에 적합한 절대적인 직역을 하기 위해 당시 가용한 여러 외국어 역본들(영어 KJV와 ERV, 중국어 『대표자 역본』 , 『브리지만 컬버슨 역본』 , 『북경관화역본』 ) 등을 참고하면서 새롭고 참신한 한국어 번역을 시도하는 등 우리말 어풍에 어울리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로스본 성경은 우리말의 자연스러움과 문화의 특징을 고려했다"라며 "우리말로 생략 가능한 부분을 생략하여 운율과 입말체를 살렸고, 단수와 복수를 한국어의 특성을 고려하여 자유롭게 번역했으며,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어 번역했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에 어울리는 대응어를 찾아서 번역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반면, "물론 로스역에서 보이는 아쉬운 점도 있다. 흔히 지적되듯이 여전히 어려운 한자어들이 많이 남아 있고, 한국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번역의 실수들, 중국어 역본의 영향으로 그리스어 원문에서 어긋난 번역 조판이나 식자 오류 등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라며 "평안도 사투리(아밤, 오맘, 사이 등)와 일관성의 결여를 보여주는 표기법도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라고 분석했다.

 

이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 저본, 역본, 절차와 그 번역을 수행하기 위해 기울인 로스의 각고의 노력은 큰 여운을 남긴다"라며 "로스가 닦아 놓은 번역4의 본보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그의 학문적 수준과 신앙적 열정을 잘 계승하여 후대의 번역자들도 개척자 로스가 닦아 놓은 기독교의 특징을 한국교회가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번역과 번역의 개정에 더욱 정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당부했다.

 

 

 

로스본 성경,
국한 혼용문 성경과 무엇이 다른가?

 

 

'역대 한국어 성경 번역문 대비를 통한 로스 번역의 언어·문화적 특징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유경민 박사(전주대 교수)는 "로스의 한글 성경이 제작된 19세기 말의 조선, '조선'에서 '대한제국'(1897년)으로 국호가 바뀌던 그 시기에 조선에서 만들어지는 문서나 책자의 문체는 국한 혼용문이 더 많은 시기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유 박사는 국한 혼용문 성경과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본의 차이점을 알기 위해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한자어로 번역된 부분과 고유어로 번역된 부분을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했다고 밝혔다.

 

3종의 국한 혼용문 성경의 한자어에 대한 한글성경의 대응어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 유 박사는 "국한 혼용문 성경은 한국어 번역 성경이 민중에 국한되지 않고 지도층에게까지 우리 민족의 각계각층에 전파되어 오늘날의 기독교 부흥에 이를 수 있게 한 간행물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라며 '특히 이번 연구를 통해 로스 번역본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가 다른 한글 성경보다도 많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유 박사는 "15세기(1443년)부터 이미 우리는 우리 문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말과 우리글을 제대로 쓸 줄 몰랐고 쓸 수 없었다"라며 "우리만의 문자가 있으면서도 활용할 줄 몰랐던 우리에게 순한글문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배포한 로스와 한국인 조사(助事) 및 권서인(勸書人)들은 우리 민족에게 제2의 독립투사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한글성경 번역의 길을 열다

 

 

한편, 이날 학술심포지엄 개최 전에 환영사를 전한 대한성서공회 권의현 사장은  "존 로스의 한글 성경은 최초의 한글 성경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순 한글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고 출판·보급하였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양반 지식인들로부터 '천대받던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 것은, 그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혁신적인 일이었으며, 한글 문화와 문명의 전환점이 되었다"라며 "이 성경은 한글 성경의 문장과 문체에 있어서 하나의 기준이 되면서, 이후에 이루어진 한글 성경의 번역에 길을 열어 주었다"라고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이 갖는 의의를 밝히기도 했다.

 

한글학회 제61대 회장이었던 권재일 박사(서울대 명예교수)도 축사를 통해 "한글이 국문, 곧 나라 글자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1894년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로스는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백성들에게 삶의 진리를 깨우쳐주며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단단하게 다졌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글자 생활에 한글 사용을 정착시키고, 체계가 잡혀 있지 않던 국어 표기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했다"라며 "당시의 표기 음운 어휘 문장의 특징을 고스란히 안고 있어 그 국어학적 의의는 참으로 크다. 따라서 우리는 한글성경 번역이 한글문화와 한국 기독교 발전을 위해 펼친 높은 정신을 받들고 계승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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