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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선교와 신학

조상제사(조상숭배), 기독교적-선교신학적 관점은?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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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상제사(조상숭배)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유산이기보다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유교적 산물, 외래종교 예식이다. 이것은 역으로 얼마든지 기독교가 복음을 통해 문화를 변혁시킬 수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나라 조상제사(숭배) 문화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개혁주의선교신학적 측면에서 고찰한 연구논문이 있어 소개한다.

 

* 이 글은 목회 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배춘섭 박사의 <조상제사에 관한 개혁주의 선교신학적 접근>, 개혁신학회, '개혁논총', 제50권(2019).

 

 

조상제사,
복음화의 걸림돌인가?

 

배춘섭 박사(총신대)는 "조상제사는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논의할 때 중요하게 제시되는 주제 중 하나이다"라며 "실제조상제사는 국내복음화에 상당한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가 서양의 종교이자 조상을 공경하지 않는 종교'라고 인식한다"라고 설명한다.

 

그 이유에 대해 배 박사는 "기독교가 조상을 향한 제의적 예(禮)를 고유의 한국적 미풍양속(美風良俗)으로 여기기보다, 단순히 우상숭배로 치부하여 전통적인 유교의 관습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라며 "대체로 많은 한국사람들이 전통적 관습에 따른 조상제사 예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조상제사의 사회적 기능

 

배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조상제사는 '효의 연장'과 '가족공동체 의식의 회복'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다.

 

조상제사는 유교가 강조하는 가족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사람들은 제사를 통해 개인적 소속감뿐 아니라 내면적 정결(淨潔)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아울러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발견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배 박사는 "이런 이유로, 후손들은 조상제사를 함으로써 향후 자신들의 자손으로부터 영원히 기억되고 존중받기를 갈망하는 기대지평이 생성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가족공동체 의식의 회복에 있어서 후손들이 조상제사를 행함으로써 죽은 조상들과 만남을 갖고, 그들을 통해 현세의 가족공동체의 의식이 더욱 강화됨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조상제사 기원

 

한국의 조상제사는 중국의 제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 조상제사의 기원은 유교로부터 전승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배 박사는 "조상제사에 관한 문헌은 중국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때 정식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라며 "삼국
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13세기 고려 말(末)에 중국의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훌륭한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사당(祠堂)을 짓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된 후 국교(國敎)는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바뀜으로써, 조상제사는 더욱 사회에 보편화되었다"라고 설명한다.

 

배 박사는 손봉호 박사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결론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사가 한국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풍속이라는 것이다. 본래 우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해 오던 전통이 아니고 13세기 이후에 그것도 억지로 본래 왕가에서 제사를 지내라는 강요에 의해 생겨난 풍속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본래 한국 사람이 해오던 버릇도 아니다. 단지 유교에서 들어온 풍속, 그것을 정착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손봉호, “제사와현대문화,” 『한국교회와제사문제』, 이종윤편(서울: 엠마오, 1995), 38.

 

천주교와 조상제사

 

배 박사는 "한국의 초창기 기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는 조상제사에 관해 본질적으로 다른 신학적 관점을 지닌다"라며 "초기에 천주교는 조상제사를 이교적인 행위로 간주함으로써 강하게 거부했지만, 차후 로마 교황청의 결정이 번복되어 '문화적 차원'에서 수용 가능한 제의로서 통합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1940년에 이르러 한국의 천주교는 조상제사에 대해 포용적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죽은 조상 앞에서 절하고, 고인의 초상이나 묘지에서 절을 해도 좋다고 수락했다. 심지어 죽은 조상을 위해 향을 피우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허용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한다.

 

배 박사는 이렇게 정리한다.

 

"이런 포용적 자세는 결국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회의인 제 2차 바티칸회의(1962-1965)에서 '교회는 전(全) 공동체의 신앙과 선(善)을 수용하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엄격하게 통일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 교회는 미신이나 오류와 관련되지 않는 생활양식을 동정적으로 취급하고 가능한 그대로 유지한다. 사실 때에 따라 교회는 그와 같은 의식들을 성례전 안에 포함시킨다'라는 수용주의 선교정책을 결정짓게 된다."

 

 

BIG

 

개신교와 조상제사

 

반면, 개신교는 문화보다 복음적 차원에서 시종일관 조상제사의 수용을 반대했다.

 

배 박사는 "조상제사의 이해 및 수용에 있어서 개신교 안에서도 논란이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개신교 선교사들은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간주했다"라며 개신교 초기 선교사들이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간주해 반대했던 5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조상숭배는 죽은 자의 영혼에게 종교적 희생제물을 바치는 행위이므로 십계명 중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둘째, 기제사의 영혼은 사람이 만든 나무조각에 거주하고 후손에게 복을 내릴 수 있다는 유교의 가르침 때문이다. 이것은 비기독교적인 종교적 사상이다. 따라서 조상제사의 영혼에 관한 신앙체계는 기독교의 부활 교리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셋째, 제사가 말하는 죽은 자와 산 자 간의 상호 영향력은 천주교가 주장하는 성자숭배와 연옥설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넷째는 화체설과 천주교의 미사는 미신적이고 비성경적인데, 마치 유교의 조상숭배도 그와 같다.


다섯째, 조상숭배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전통적인 악습을 수반하는 신앙관을 지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육적 혈통을 잇기 위해 남자 상속인을 확복하는 관습, 축첩제도, 여성차별, 값비싼 장례식, 조혼 등의 관습은 기독교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조상제사:성경신학적 관점

 

배 박사는 "조상제사에 관해 논의해야 할 중요한 신학적 과제는 역시 '산 자와 죽은 조상과의 관계'이다. 종교현상적 관점에서 조상제사의 세계관은 먼저 '죽은 자가 여전히 살아있고 남겨진 후손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상과, 동시에 제사를 바치는 후손은 '제사예식을 통해 죽은 조상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종교심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죽은 존재와 소통할 수 없다

 

배 박사는 "성경은 어떤 점술(divination)이나 예언 그리고 강령술 (necromancy)도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레위기 19:26, 31~32의 말씀은 사람이 무당이나 이미 죽은 영혼에게 어떠한 소통이나 관계를 맺으려는 모든 종류의 행위가 금지된 것임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성경은 죽은 자들이 산 자들과 소통하거나 접촉할 능력이 없음을 증거한다(욥 7:10~10; 전 9:4~5)"라며 "죽은 자는 결코 산 자와 접촉할 수 없고, 산 자들이 누리는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지상에서처럼 똑같이 소망할 수 없다. 이런 시각은 구약시대의 전형적 죽음관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성경은 현생과 내세의 삶이 현격히 다르고 사후(死後)에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가르친다(눅 16:19~31, 부자와 거지 나사로)"라며 "이것은 결코 이 땅에서의 삶이 지속하여 내세에서 그대로 병행되거나 영위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동시에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에게 소통하거나 영향력을 끼친다는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사후, 죽은 자의 거처는?

 

그렇다면 성경은 사후 죽은 자의 거처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배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구약성경은 죽은 자의 거처를 나타내기 위해 '스올'(שאול)이라는 용어를 66회나 사용한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스올을 70인역(LXX)에서 '하데스'로 번역하여 10회 사용한다.

 

이 용어들은 주로 두 범주의 용례로 나뉜다. 하나는 지하세계의 뜻으로 표현되고, 다른 하나는 무덤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 이것은 스올이 악인이나 의인 상관없이 모두 가게 될 곳으로써 처벌장소로 이해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스올은 악인들이 거하게 될 형벌의 장소로 종종 쓰인다.

 

배 박사는 "로마가톨릭교회는 스올이나 하데스를 죽은 자들이 부활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연옥개념을 주장한다.  반면 개신교 신학은 이를 모든 인간이 겪는 죽음이나 불신자들이 처벌을 받는 지옥개념으로 이해한다"라고 주장한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3~14)

 

살전 4장의 말씀과 관련해서 "이 말씀은 죽은 인간의 영혼이 자기 마음껏 구천을 떠돌아다닌 것이 아님을 뜻한다. 성경은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께서 육체의 부활을 위해 데리고 오신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소멸되거나, 살아있는 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거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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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인간의 '중간상태'

 

배 박사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을 고려해 볼 때 개혁교회는 죽은 영혼들이 부활의 때인 예수님이 재림 시까지 영혼의 상태로 천국과 지옥을 제외한 다른 공간에서 거한다는 개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죽은 의인들은 천국에 즉시 올라가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 놓이고, 악인들은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됨을 강조한다(눅 23:41-13; 고후 5:1-8)"라고 주장한다. 

 

"무형교회 회원들이 죽은 직후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누리게 되는 영광이 교통은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영접을 받아 그곳에서 빛과 영광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의 몸은 비록 죽은 가운데 있어도 그리스도에게 계속 연합되어 마치 잠자리에서 잠자듯 무덤에서 쉬고 있다가 마지막 날에 그들이 영혼과 다시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 악인의 영혼들은 죽을 때 지옥에 던져져, 거기서 고통과 흑암 중에 머물러 있는 한편 그들의 몸은 부활과 큰 날의 심판 때까지 마치 감옥에 갇히 듯 무덤에 보존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86문)

 

배 박사는 "로마가톨릭교회는 중간상태를 베드로전서 3장 19절(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를 인용하여 연옥설(theory of Purgatory)의 근거로 삼는다"라며 "하지만 딕슨(Dixon)은 본문의 '옥'이 지옥인지, 연옥인지 아니면 베드로 사도가 살던 지옥 같은 세상인지 살펴야 하며, 적어도 로마가톨릭이 주장하는 연옥이 아님을 주장한다"라고 설명한다.

 

조상제사에 관한 선교적 접근
"상황화 선교, 변혁적 선교"

 

배 박사는 "선교지에서 조상제사의 문제는 복음과 문화의 관계로 귀결된다"라며 "즉, 조상제사가 복음의 절대성에 위배되는지 아니면 문화의 상대성에 부합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에 대해 배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종교현상학적 이유로 조상제사의 문화적 요소를 전적으로 거부하면, 현지인들로부터 기독교에 대한 반발과 영적 공황을 발생시킬 수 있다. 반대로 사회인류학적 관점에서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하게 조상제사를 단순히 문화적 요소로 치부하면, 현지인은 왜곡된 복음을 듣게 되고 기독교의 혼합주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타문화권에서 조상제사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배 박사는 "복음의 이해는 문화를 통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음이 지엽적 문화의 산물로서만 이해되거나 국한되면 결국 혼합주의에 봉착한다"라며 "타문화권에서 조상제사는 복음전도를 위한 교량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결코 복음의 우선성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성경에는 분명히 절대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진리가 존재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복음이 타문화에 오해 없이 바르게 증거 되려면 '상황화 선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상황화 선교는 복음(Text)이 특정한 문화(Context)를 위해 신학이 상황화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혼합주의를 양산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라며 "상황화 선교는 타문화권에서 복음이 효율적으로 증거 되게 할 목적으로, 그 문화와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여 복음이 왜곡이나 의미변형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선교사와 현지인 모두가 복음을 통해 죄로 오염된 문화를 변화시키는 변혁적 선교(Transforming Mission)를 실천해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배춘섭 박사의 연구논문 목차]

1 서론
2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조상제사
3 조상제사의 기원
4 조상제사와 기독교
 4.1 천주교의 조상제사 관점
 4.2 개신교의 조상제사 관점
 4.3 조상제사의 성경신학적 관점
5 조상제사에 관한 선교적 접근
6 결론

배춘섭 박사의 연구논문 RISS 검색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fc63d249338da2887ecd42904f0c5d65

 

www.ri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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