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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선교와 신학

기독교 선교와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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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뱁티스트의 선교는 새로운 선교의 방식을 제시했다기보다는 교회 원래의 존재양식으로써 선교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선교적 원천을 분석한 연구논문이 있어 소개한다.

 

* 이 글은 목회 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남병두 박사의 <기독교 선교와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역사적 의의>, 한국선교신학회, '선교신학', 제62집(2021).

 

 

초기 기독교인의 선교

 

남병두 박사(한국침신대)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집념과 노력은 AD 300년에 이르기까지 로마제국 전 지역에서 교회가 세워지는 결과를 낳았다"라며 "'순교'는 헬라어 <μάρτυριον>에서 유래된 말로서 원래는 '증언'(witness)의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라고 설명한다.

 

남 박사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죽음으로 증언한 사람을 영어권에서 참된 '증언자'(μάρτυρος)로서 순교자(martyr)로 부르게 되었다"라며 "기독교 초기 역사는 실로 '증언'이라는 말과 '순교'라는 말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역사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선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이었다"라고 강조한다.

 

한편, 남 박사는 연구논문에서 초기 기독교 시대에 로마제국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교의 역동성과 방식이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에서 시작해 서서히 형성된 국가교회 체제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설명하면서 동시대에 국가교회 체제의 청산을 주장하며 등장한 아나뱁티스트 개혁에서 초기 기독교의 선교 개념과 방식이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콘스탄티누스 전환과
식어버린 선교 열정

 

남 박사에 따르면 선교의 역사에 있어서 4세기 초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시기다. 그는 "기독교와 로마제국의 정치 사회적 연합이 시작되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띤 사도들의 교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로마 황제의 기독교 개종은 점차적으로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선택할만한 종교로 변모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이교도가 스스로 교회로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기독교는 점차 그 지역의 종교로서 그 지역민이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수용하는 종교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남 박사는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진지한 신앙고백이 교인됨의 전제조건이 되지 않았다"라며 "이것은 선교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현격하게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고 더 나아가 선교의 방식에 변화를 초래했다. 교회는 이제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는 일보다는 교회 안에서 자기 발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을 준비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들은 먼저 교회 빌딩을 짓고 그 빌딩을 치장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교회는 훨씬 권위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고, 교직자들은 그 권위를 독점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러한 일은 교회가 밖으로 나가 복음 증거를 통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보다는 내부적 체제 정비와 교권 강화에 더 치중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남 박사의 설명이다.

 

신앙의 강제화와 집단화
"선교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남 박사에 따르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5세기 이후의 상황을 보면 선교는 왕의 개종과 그에 따른 집단적 개종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8세기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Charlemagne)의 경우는 기독교 군주로서 군사적 정복을 통해 새로운 땅을 차지한 뒤에 현지의 이교도들을 강제로 개종시킨 사례다.

 

남 박사는 "당시 군사적 정복이 선교를 대체한 형국이었다"라며 "중세에는 수도원 설립을 통하여 기독교가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선교는 기독교 지역을 정복한 이교도 왕의 개종을 통한 집단 개종이거나 기독교 군주가 새로운 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복함으로써 그 지역민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집단 개종을 관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8세기에 교회가 프랑크 왕국과 맺은 새로운 관계는 과거 서방교회가 콘스탄티누스의 로마제국과 결합했던 사례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고, 소위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만들어냈다"라며 "교회는 제국의 보호와 혜택을 받고, 제국은 교회를 통해 정치적 일원화를 기하면서 공생관계가 만들어졌다. 교회가 세속정부의 물리적 힘의 보호를 받게 되면서 교회는 점점 폭력에 의존하는 습성에 길들어 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선교의 방법이기도 했다"라고 주장한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선교적 원천
"교회론적 자각"

 

남 박사에 따르면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은 개혁 방식과 범위에 따라 가톨릭 인문주의자들(Catholic Humanist)의 개혁, 관료의존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 근원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개신교 종교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관료의존적 종교개혁은 윤리적 개혁도 필요하지만 가톨릭교회의제도와 신학의 개혁이 더 근본적인 개혁이라고 보았다"라며 "하지만 종교개혁을 용인하고 후원해준 정치권력의 정치적 영역에서 개혁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선교 정신과 방식을 회복하는 데는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다른 개신교 개혁운동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교회론에 있었다. 이 교회론적 차이는 결국 그들 간에 선교에 대한 인식과 방식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라며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선교적 원천은 무엇보다도 교회론에 있다. 아나뱁티스트 개혁자들은 교회 타락의 근본적인 시작이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과 아울러 교회와 세상이 구별 없이 하나의 체제로 연합한 결과로 형성된 국가교회 체제로 보았다"라고 설명한다.

 

즉, 아나뱁티스트 개혁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들이 생각하는 신약성서적 교회를 의도적으로, 독자적으로, 세우면서였다는 것. 교회론적 자각이 첫 아나뱁티스트 개혁자들로 하여금 독자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곧 그들의 선교적 관심과 직결되는 문제였다는 설명이다.

 

신자들의 교회
침례(세례)의 회복

 

16세기 아나뱁티스트 개혁자들은 신약성서적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헌신된 신자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남 박사에 따르면 아나뱁티스트 개혁자들은 선교를 '구원받은 자로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거룩한 책임을 감당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특히 그들은 당시 기독교 사회의 구성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자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회심이 필요한 선교 대상이라고 여겼다. 

 

남 박사는 "따라서 아나뱁티스트 개혁자들은 오랫동안 당연시되었던 유아세례야말로 참 신자들의 공동체로서 교회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습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신자들의 교회 회복을 위해 신약성서적 침[세]례 의식의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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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9절
모든 신자의 '선교적 사명'

 

특히 아나뱁티스트 개혁자들에게 마태복음 28장 19절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과 함께 그들 가운데 가장 널리 언급되고 사용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신자침[세]례의 성서적 근거로 제시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제자도를 강조한 말씀으로 반복해서 사용되었다.

 

남 박사는 "스위스 형제단으로 불렸던 초기 아나뱁티스트 개혁자들은 그들의 교회를 세우자마자 곧바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다"라며 "그들에게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에 대한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의 자각과 모든 신자가 복음 증언자가 된다는 생각은 초기 기독교의 선교정신을 회복한 것이며, 곧 선교적 원천을 회복한 것이었다"라고 주장한다.

 

자발적 신앙과 종교의 자유

 

남 박사는 아나뱁티스트들은 처음부터 양심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주장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종교자유 문제는 선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강요된 신앙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으며, 결국 위선적 신앙을 조장한다"라며 "아나뱁티스트들은 교회가 진지한 자발적 신앙고백과 제자도의 삶으로 신자를 구별하고 그 신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교인이 되게 함으로써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와 세상은 쉽게 뒤섞이게 되고, 불신자는 더 이상 선교 대상으로 구별될 수 없다고 여겼다"라고 강조한다.

 

 

아나뱁티스트 운동과
근대 선교 운동

 

남 박사는 "19세기에 기독교 선교는 로마가톨릭보다는 개신교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 시기의 선교 주역은 정치적, 경제적 주권자들이 아니라 평신도들이었다"라며 "결국 근대 선교 운동에 있어서 아나뱁티스트와 같은 자유교회 전통에 있는 영국 및 미국 침례교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선교적 자각 역시 신자들의 교회(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에 대한 자각(예를 들어, 윌리엄 캐리), 자발적 신앙과 종교자유 정신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주장한다. 

 

교회와 선교의 사명
"정체성 회복에서 시작돼야"

 

남 박사는 연구논문을 마무리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그 정체성에 있어서 세상의 관점과 가치관에서 철저하게 분리된,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된, 공동체임을 말하는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할 선교 공동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부름’과 ‘보냄’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선교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온전한 ‘보냄’의 사역이 될 수 없을 것이다"라며 "그리스도의 ‘보냄’이라는 교회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부름’에 바탕을 둔 교회 정체성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나뱁티스트의 선교는 새로운 선교의 방식을 제시했다기보다는 교회 원래의 존재양식으로써 선교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마무리한다.

 

[남병두 박사의 연구논문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콘스탄티누스 전환과 선교
 1. 중세 교회
 2. 16세기 종교개혁과 선교
III.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선교적 원천: 교회론적 자각
 1.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와 신자침[세]례(believer’s baptism)의 회복
 2.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 모든 신자의 선교적 사명
 3. 자발적 신앙과 종교자유
IV. 아나뱁티스트 운동과 근대 선교 운동
V. 나가는 말

 

남 박사의 국내학술지논문 상세보기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ef6de98df19445bce9810257f7042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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