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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창조과학, '창조론’의 가장 권위있는 해석 아니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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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의 신학적 배경 소고 / 김재섭(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

창조과학, “문자적 해석에 기초한 창조론”이라는 뜻 내포
창조과학 운동,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종말론적 사상 따라
근본주의ㆍ문자주의적 해석방법과 성경을 과학의 교과서로 보는 것은 잘못

김재섭은 “21세기 과학문명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많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정설로 받아들이는 창조과학의 신학적 배경을 살펴보고, 창조에 관한 보다 성경적인 견해가 무넛인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여 연구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본 연구는 특정한 단체나 개인을 비방하기 위함이 아니라 창조와 관련된 과학적 논의의 다양성과 성경 해석에 대한 신학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 간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작성됐다”고 덧붙였다.

 

 

 

 

 

 

 

 

 

# 발표내용 중에서

1. 한국 교회에서 창조과학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창조론이라는 말과 같이 광범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사용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창조론과 창조과학을 거의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2. 창조과학이라는 말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소재하고 있다가 지금은 텍사스 주 달라스로 이주한 창조과학연구소를 비롯해 근본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일부 개신교들과 안식교가 주장하는 특정한 창조론을 가리킨다.

3. 조지 마스덴은 창조과학이란 ‘창세기 1장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기초한 창조론’이라고 종의한다. 즉, 창조과학에서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천지창조에 대한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우주와 만물이 지금과 같은 태양일 6일(155시간) 만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1장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자연스럽게 지구나 우주의 나이를 1만년 이내로 보도록 하기 때문에 창조과학은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Creationism, YEC)라고 불리기도 한다.

4. 창조과학은 창세기 1장에 대한 철저한 문자적 해석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어떤 진화적 요소도 용납하지 않는다. 즉, 창조론이 아니면 진화론이라는 두 가지 입장만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흑백논리에 기초한 전투적인 성향 때문에 창조과학은 진화론은 물론 다른 여러 창조론의 주장들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자세를 취한다.

5. (다원주의 이전의 창조론) 창조과학은 다윈의 진화론 혹은 다원주의에 대해 강력한 반발에서 시작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창조론은 다원주의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다.

6. 다윈의 ‘종의 기원’을 통해 자연선택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진화 메커니즘을 주장하기에 앞서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비롯해 다양한 진화론이 제기됐다. 본격적인 진화 사상의 등장과 더불어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현대 지질학에서는 종래의 6천년 지구/우주 연대가 아닌 오래된 지구/우주에 관한 연구결과들도 속속 등장했다.

7. 오래된 지구에 관한 지질학적 증거들이 축적되어감에 따라 당연히 젊은 지구/우주 연대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연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에만 기초한 젊은 지구/우주연대는 천문학이나 지질학, 생물학 등 과학의 연구가 등장하기 전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과학적 연구를 통해 오래된 지구/우주연대의 증거가 쏟아지면서 창세기 1장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등장했다. 이때 간격 이론(Gap Theory)과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이 있다.

 

 

 

 

 


8. 간격 이론은 창세기 1장 1절과 이하의 창조기록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1절의 첫 번째 창조가 있었고, 이후 타락한 천사의 반란으로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에서 3절 이하에 기록된 새로운 창조, 즉 재창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반면, 날-시대 이론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주간의 날(하루)이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정한 시대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조주간의 하루하루를 지질학적 시대와 대응시키려고 시도한다.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지구의 연대는 상당히 길어질 수 있으며, 더불어 지질학적 주장과도 어느 정도의 일치와 조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이론은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과학자들이 상당한 애정과 열정을 갖고, 받아들이고 있다. 일치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9. (다원주의의 등장) 날-시대 이론이 통해 과학적(지질학적) 발견과 이와 연관된 주장이 성경본문과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일종의 지적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바로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이었다. 물론 종의 기원이 서구사회와 교회를 뒤흔든 것은 아니었다. 다윈 이전에도 여러 진화론이 제기됐기 때문에 ‘종의 기원’은 서구의 기독교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10. 다윈의 주장이 과학과 기독교 간의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은 그것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물론 처음부터 심각한 논쟁을 촉발시키지는 못했다. ‘유신론적 지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적 변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이론에서는 진화를 하나님께서 태초에 설계하신 하나의 물리세계의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11. 다윈의 주장이 갖고 있는 신학적, 혹은 형이상학적 함의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비판한 사람이 프린스턴 신학교의 찰스 핫지였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에는 바로 신적 간섭이 철저하게 배제된 무신론적 자연주의(Atheistic Naturalism)가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다윈주의는 기독교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임을 핫지는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핫지의 주장은 이 후에 미국에서 있게 될 반진화론 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12. (북미에서의 반진화론 운동) 1920년대 이르러 사태는 변하기 시작했다. 진화론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만연하게 됐고,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이 일종의 참된 신앙의 징표가 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전후 미국 내에서 사회의 여러 방면에 걸쳐서 ‘진보 대 보수’라는 일종의 대결구조를 형성하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대결구조의 형성을 위해 근본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는 결코 성경과 양립할 수 없다’는 반진화론 운동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13.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운동에는 보수적인 장로교인이자 1922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gs Bryan, 1860~1925)이었다. 그는 반진화론 운동의 열렬한 지도자가 돼 이 운동을 주도했다.

14. 반진화론 운동을 이끈 헨리 모리스(Henry Madison Morris, 1918~2006)는 그레이스 신학교 구약학 교수였던 존 휘트콤 2세와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라는 책을 저술함으로써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질수 있었다. 이후 모리스는 미국 창조과학연구소(Institute for Cration Science, ICR)를 설립했다. 1970년에 설립된 이래 ICR은 노아의 방주 탐사, 진화론적 예측에서 벗어난 인간 발자국 화석 발견, 꽃가루에 대한 연구, 방사는 영대 측정 비판 연구, 젊은 지구를 보여주는 물리학적 연구 등 앞서 간 아마주처 선구자들에게 비해 상당히 주목할 만한 학술활동을 진행했다.

15. 겉으로 보기에 창조과학 운동은 창세기 초반부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과학을 접목시킨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는 독특한 종말론적 사상이 있다.

16. 창조과학은 천년왕국에 대한 편협한 해석이다. 그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문자적 해석에 충실한 결과, 자연스럽게 천년왕국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전천년설’로 이어지게 됐다.
17. 전천년설(천년왕국 이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주장)은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왕국을 최대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해석으로써 주로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미국 남침례교 중심의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경해석이다.

18.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과학’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왜 그토록 과학이라는 용어에 집착할까. 그 이유는 그들이 과학에 상당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발견하는 일에 있어서 과학은 중요한 도구이자 상당한 역할을 감당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과학이 기독교와 성경의 진리성을 밝히는 일에 있어서도 역시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19. (창조과학의 신학적 문제) 창조과학은 창조론의 전부가 아니며 다양한 창조에 관한 이론들 가운데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의 본문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기초한 하나의 창조론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문자주의적 해석방법은 반문화적이고, 반지성적인 근본주의 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종말론적으로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 창조과학은 과학을 지나치게 절대시함으로 또 다른 신학적 문제점을 노출한다. 이것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의 그들의 해석을 살펴보면, 그것은 마치 자기들이 내세우는 과학적 주장만이 성경본문에 대한 참다운 해석인 것인양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 이것은 성경을 성경으로서, 혹은 성경을 신학의 자료로서 신학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오직 과학의 자료로서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한편으로 과학을 지나치게 절대시하며 어떤 면에서 과학을 우상시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1.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성경은 과학의 교과서”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이라는 성경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성경이라는 특별계시를 자연이라는 일반 계시의 영역에서 과학의 도구로 사용하게 될 위험을 내포한다.

 

 

 

 

 

 

22. 자연은 자연 그 자체가 교과서로 사용되는 것이 더 마땅하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현상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성경은 다만 참고서로 사용하는 것이 성경의 본래 기록목적에 부합하는 올바른 성경이해라고 생각한다.

23. 그렇다면 왜 창조과학의 주장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호소력을 가지는가? 그것은 그 주장이 성경적이기보다는 그 주장의 단순함과 선명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단순함이 주는 확실함, 그리고 확실함이 주는 편안함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24.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분명히 숙지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어느 정도 긴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칭의와 성화, 이미 실현된 종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종말 등과 같은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이성으로 분명하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로 인한 긴장이 있는 것이다.

25. 21세기 과학기술 시대에 한국 교회가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진리가 갖고 있는 긴장감에 대해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익숙해져야 한다. 이런 긴장감을 인정할 때, 단순한 흑백논리에 기초한 공격적이고 과격한 자세를 버리고, 신학적 주장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면서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노력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게 될 것이다.


* 위 내용은 창조론오픈포럼(공동대표:박찬호ㆍ양승훈ㆍ이선일ㆍ안명준ㆍ조덕영ㆍ최태현)가 지난 2012년 1월 30일 중앙대학교 대학교회에서 개최한 ‘제10회 오픈포럼’의 발표자료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단체에 문의해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김재섭, “창조과학의 신학적 배경 소고”, 창조론오픈포럼-제1회 오픈포럼(제6권 1호, 2012.1), 2012년 1월30일, 서울:중앙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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