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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에 대한 한국 교회 인식

역사와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5. 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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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희망의 상징에서 정치적 기득권의 도구로 전락"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산하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이재근)가 지난 5월 1일 오후 2시 비대면으로 '제393회 학술발표회'를 진행했다. 이날 홍승표 박사(감신대 객원 교수)가 '한국기독교의 태극기 인식과 그 흐름에 대한 소고'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초기 한국 기독교의 '태극'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태극기 인식의 굴절과 왜곡, 최근 광화문 광장으로 운집한 태극기에 대한 한국 교회의 인식 등에 대해 발표한 홍 박사의 결론을 정리해봤다.

 

# 새로운 시대정신과 희망의 상징이었지만...

초기 한국기독교의 태극기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근대국가, 자주독립을 성취한 대안적 시민사회를 꿈꾸게 해 주는 표상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동양적 세계관을 표현한 '태극'을 기독교 신앙 안에 녹여냄으로써 동서의 조화를 모색했다. 

일제강점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현실 속에서도 태극기를 손수 제작해 만세시위를 하면서 구체적 희망을 표현했다. 태극기는 식민지민의 비애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도록 견인해 주는 푯대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해방의 때는 오지 않고 일본제국의 강화와 확대 앞에 상실과 절망을 체험한 한국인들은 결국 일장기를 숭배를 강요받거나 자발적 숭배의 길을 선택했다. 일장기 숭배의 길은 굴욕적이지만 달콤한 안전과 권력을 허용해 주었다. 사실 한국교회의 역사적, 신앙적 타락과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홍승표 박사는 ZOOM으로 발표하면서 "한국 교회는 일제 강점기때 태극기를 흔들며 3.1운동에 참여했지만,  결국 신사참배 및 교회 내 일장기 게양을 수용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 물질적 번영과 정치적 기득권의 도구로

교회는 일장기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을 시작으로 마침내 신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기독교신앙은 독재(파시즘)와 폭력에 순응하며 물질적 번영과 정치적 기득권이라는 단맛에 중독되어 갔다.

해방이 도적 같이 찾아왔다. 하지만 교회는 해방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교회 안에서 움트기 시작한 욕망의 첨병들이 기독교인 듯 기독교가 아닌 변종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태극기를 내걸고 민족의 메시야인양 행세했다. 일제에 기생한 기성교회 또한 회개하지 않았다. 민족분단이라는 위기 앞에서 ‘친일’을 덮기 위해 ‘반공’의 안전한 그늘로 숨어들었다.

‘분단’을 극복하는 세력이 되지 못했다. 잘려진 한반도의 남한 사회에서 기독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치며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물질적 제도적 특혜에 도취되었다. 일제 파시즘 시기보다도 더욱 강력한 물신과 권력의 맛에 중독되어 갔다. 분단과 냉전체제는 일제강점기 순전한 신앙을 고수했던 보수신앙의 태극기에 대한 일말의 저항마저도 용공, 공산주의, 반체제인사로 왜곡해 나갔다. 결국 태극기는 죄가 없지만, 태극기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병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태극기에 대한 숭배의 메커니즘은 일제 파시즘 시기에서부터 싹텄고 오늘까지도 한국사회와 교회를 아프게 한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와 성조기(사진출처:연합뉴스)

#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지금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정신세계는 크게 ①트라우마, ②소외감, ③선민의식, ④증오 등의 마음으로 분석된다. 트라우마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기초된 것이며, 소외감은 장기간 유지한 정치, 경제, 사회적 기득권 상실에 따른 소외감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소외를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욕망의 표상이자 모델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에 이스라엘국기가 등장하는 것은 태극기와 이스라엘기를 동일시하고자 하는 선민의식의 발로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와 상실을 상쇄시키고 정당화할 증오의 대상을 상정한다. 태극기는 이러한 욕망과 증오가 뒤엉킨 분단과 냉전의 표상이 되어 버렸다.

 

# 태극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반세기 동안 태극기의 가치가 철저히 훼손, 왜곡, 굴절되어오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태극기 본연의 정신과 가치를 온전히 인식해 온 건강한 시민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이 태극기를 관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에는 '독재와 군국주의를 배격하고 인권의 기본적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성취를 오늘 우리의 역사에 실현하도록' 힘쓰겠다는 대전제와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잃고 권력과 물신의 노예가 되는 순간, 태극기는 언제든지 민족과 시민사회를 분열케 하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추악한 깃발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날 홍승표 박사의 발표에 대해 논찬한 김상덕 연구실장(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은 "태극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진 현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극우 정치세력이 광장에 모여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이 대중들에게 집간접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목격되기 시작한 어느 즈음부터일 것"이라며 "'태극기 집회'나 '태극기 세력'이라는 신조어는 특정한 정치적 배경과 집단을 떠올리게 한다. 쉽게 말해, 태극기가 그 본래의 의미와 사용의 방식에 있어서 특정한 집단에 의해 전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태극기의 수난시대'를 겪고 있다고 분석한 김 연구실장은 "최근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는 “태극기 집회”에 상당한 지지 그룹처럼 여겨지고 있다. 특별히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태극기 집회는 종교집회와 정치집회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기독교 집단의 상당한 지지를 받는 듯 보인다"며 "특히 이 집회에서는 태극기와 더불어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함께 등장하거나, 종교인과 정치인들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묘한 조합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특히 이날 "'촛불'정신이 곡 태극기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피력한 홍 박사의 주장에 대해 "21세기 한국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되찾아야 할 정신이 반드시 민족민주의 상징으로서 ‘태극기’만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포용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는 없을까하는 질문을 하고 싶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화합과 공존을 위한 태극기의 기독교적 해석이나 상상은 민족민주를 넘어 태극의 조화와 평화나 혹은 국기가 제한하는 영역을 초월하는 상징과 실천이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질문하며 논찬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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