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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성경과 신학

에베소서가 말하는 교회는 ‘연합’ 이루는 통로와 매체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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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스털링 교수, 한신교회 제9회 신학심포지엄에서 강연

 

2015년 6월 10일 기사

 

 “에베소서는 교회를 높게 보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인류와 연합을 이루시는 통로이며 매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그리스도와의 특권적인 관계를 누립니다. 성도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인류와의 연합을 위해 교회는 일을 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급격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역할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는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신교회(담임:강용규 목사)가 지난 6월 8일부터 11일가지 한솔 오크밸리에서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신학과 설교’를 주제로 개최한 제9회 신학심포지엄에 강사로 참여한 예일대학교 그레고리 스털링(Gregory Sterling) 교수는 에베소서에서 나타난 교회상은 하나님이 인류와 연합을 이루는 통로이며 매체라고 설명했다.

 

* 한편, 스털링 교수는 에베소서 저자는 바울이 아니라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에베소서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문체가 매우 다르고, 바울서신에 흔히 사용되는 대화체가 에베소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바울서신에서 ‘하팍스 레고메나’(hapax legomena)라는 말이 90번 나오는데 모두 에베소서에만 등장한다. 에베소서의 본문이 바울전서 중에서 매우 독특하게 느껴진다. … 에베소서 저자는 편지의 대상인 공동체를 아예 모르는지, 또는 공동체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아는지 궁금하다. 저자는 공동체의 신앙에 대해 들었고(1:15), 전에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3:2)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긴밀하게 연결됐다.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의 구조적인 틀을 제공한다. 골로새서에 나오는 단어 중 3분의 1이 에베소서에 나온다. 가장 비슷한 부분은 골로새서 4:7~8절과 에베소서 6:21~22절인데 말이 거의 일치한다. … 이런 이유로 에베소서가 1세기 말에 바울의 제자가 쓴 것으로 확신한다. … 바울이 죽은 후에 바울의 경력과 사상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여러 그룹이 각각 발전시켰다. 바울전서 내에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제2바울서신이라고 생각하는 서신이 여러 있다. 하지만 에베소서 저자는 바울전통을 고정된 표준으로 굳힌 목회서신의 저자와는 달리 공동체의 구체적인 상황을 다룬 바울서신을 갖고, 전체 교회에 적용함으로써 보편화했다. 따라서 에베소서는 제2바울서신보다 사도행전과 더 비슷하다.”

 

‘다양한 세상 속의 일치’라는 주제로 에베소서의 특징에 대해 강조한 스털링 교수는 그의 세 번째 강의(‘인간 사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회’)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라는 말을 이론의 여지가 없는 7개의 바울서신에서 73번 사용했다”며 “바울은 이 말을 거의 항상 개체 교회를 가리키는데 사용했다. 초기에 기술한 데살로니가전서와 마지막 편지인 로마서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즉, 사도바울은 구체적인 지역에 있는 한 교회나 여러 교회들을 언명하며 편지를 시작하는데, 7개의 편지 중 4개(살전 1:1, 갈 1:2, 고전 1:2, 고후 1:1)가 그런 식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편지에서 ‘교회’라는 용어를 쓸 때는 거의 개체 모임이나 공동체를 의미했다. 한 개 이상의 개체 공동체를 염두에 두었을 때는 복수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스털링 교수는 “바울이 ‘교회’라는 말을 전체 교회라는 넓은 개념이나 적어도 전체 교회의 부분을 가리키는데 쓴 본문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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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고린도에서 카리스마적인 은사들의 역할을 다룰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몇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림이요,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요…”(고전 12:27~28)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이 본문은 개체 공동체에 적용한 것이지만 사도들을 언급한 것은 바울이 마음 속으로 교회를 넓게 이해했음을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다고 언급하는데(갈 1:13, 고전 15:9), 이는 개체 교회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스털링 교수는 “교회를 전체 교회로 언급하는 것이 바울에게 표준은 아니지만 바울은 이 넓은 개념을 알고 있었다”며 “바울의 후대 제자 하나가 이 예외를 표준으로 만들었다. 에베소서는 ‘교회’라는 말을 9번 썼다. 에베소서는 ‘교회’라는 말을 신앙인들이 모인 개체 공동체를 가리켜 쓰지 않고, 전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셨을 때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1:22~23)라고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신비가 초자연적인 권세들에게 밝혀지는 매체이고(3:10),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드려진다(3:21).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교하기도 한다(5:23~32).

한마디로 에베소서에서 언급되는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반면, 스털링 교수는 “에베소서 저자가 ‘교회’라는 단어로 개체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에 반대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것은 에베소서의 준거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가 말하고자 하는 교회상은 무엇일까? 스털링 교수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한 매체로서의 교회를 강조하는 세 본문을 중심으로 에베소서는 ‘연합’ 차원에서의 교회를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본문은 2장 11~22절까지인데, 이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던 독자들의 과거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 이제부터는 너희도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본문에서는 처음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 백성, 계약들, 약속 등의 순서로 이야기하지만 “그때 멀리 있던 너희”와 “가까워진 너희” 사이의 대조로 설명하고 있다. 요점은 이방인이 이제 유대인과 연합했고, 같은 지위를 갖는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스털링 교수에 따르면 에베소서 2장 13~18절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신 일, 곧 우리의 평화가 됨을 강조하는데, “둘을 하나로 만드셔서…”, “가르는 담을 허무셔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등을 통해 연합을 말하고 있다.

특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는 말씀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2:21~22)는 말씀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연합해 성전을 만들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스털링 교수는 “새 성전은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라는 기초에 서 있다. 헤롯성전은 파괴된 채 있다. 그 성전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했지만 에베소서에서 새롭게 세워진 성전은 이런 구별이 없다”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구분이 긴 세월동안 전해 내려오는 상황 속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이라는 비전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 ‘새 사람’ 또는 ‘새 성전’을 세운 사람이었다. 이것은 기독교 안에서조차 좀처럼 실현되지 않은 인류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한 비전”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본문인 에베소서 4:1~5절에서도 교회는 하나님이 인류와 연합을 이루시는 통로이며 매체임을 강조한다. 에베소서에서 독자들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따라서 그에 맞도록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4:2),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4:4),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4;5),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4:6) 등의 말씀을 통해 개인의 헌신뿐만 아니라 더 넓은 교회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 “주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로 하나”, “하나님도 한 분” 등의 말씀 속에서 연합의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털링 교수는 “‘하나’에 대한 강조는 ‘한 몸’과 ‘한 성령’을 강조한 고린도전서 12:12~13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세 번째 본문은 에베소서 5장 21~33절이다. 여기서도 가정생활, 가정규범을 통해 교회는 하나님이 인류와 연합을 이루시는 통로이며 매체임을 말한다.

“피차 복종하라 …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 아내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스털링 교수는 “이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며 “아내와 남편 간의 관계 속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넣어 설명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친밀함과 연대가 있다”며 “에베소서는 아내와 남편 간의 관계를 통해 주님이 궁극적으로 지상의 교회와 하나라는 것, 교회가 하나님이 인류와 연합을 이루시는 통로이며, 매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우리 모두는 연합을 위해 일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연합이라는 이상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그리스도와의 특권적인 관계를 누리면서 연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털링 교수는 “현재는 문화와 민족 사이의 다른 점을 무시할 수 없는 세계화의 시대다. 따라서 우리는 연합을 위해 노력할 긴박한 필요성이 있다”며 “에베소서는 이 연합을 정치적인 동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이번 한신교회 ‘제9회 신학심포지엄’에서는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 제임스 맥도날드 총장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을 향한 교회의 공적 증언’을 주제로, 동 대학원 그레고리 러브 교수가 ‘우리 안에 있는 희망’을 주제로 강의했으며, 국내에서는 박준서 박사(연세대 구약학 명예교수)가 ‘신명기 연구’를, 오영석 박사(전 한신대 총장)가 ‘한국 교회의 소생과 별세신학’을 주제로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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