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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원주의’, 기독교에 전혀 낯설지 않아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16:58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복음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크리스티안 그레트라인(독일 뮌스터대학교) / 2014년 11월 27일 기사

 

“포스트모던의 실제 특징은 다원주의다. 그와 함께 다양성에 주목하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기독교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네 개의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사역과 운명에 대한 다원적인 시각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그레트라인(Christian Grethlein) 교수(독일 뮌스터대학교)는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 복음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과제는 계속돼 왔다”며 “복음은 계속적으로 문화를 뛰어넘는 차원, 문맥상의 차원, 반문화적인(혹은 문화비판적인) 차원, 그리고 문화 상호작용적인 차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와 개혁주의생명신학실천신학회가 지난 24일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그레트라인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복음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라는 주제강연에서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 대해 해석학적으로 설명하고, 복음의 소통을 위한 몇몇 방법론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 다원주의 시대 속 복음과 문화의 소통

   
▲ 크리스티안 그레트라인 교수(독일 뮌스터대)
사실 포스트모던 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다원주의다. 하지만 다원주의는 현대사회의 특징이 아니다. 이미 고대에도 다원주의를 통한 도전이 있었다고 그레트라인 교수는 설명했다. 특히 그는 신약성경의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상이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레트라인 교수는 “예수님의 사역과 운명에 대한 보도는 처음부터 다원주의 양식 속에서 일어났던 것”이라며 “각각의 복음서 저자들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일깨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원주의’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대에 와서 윌리엄 제임스의 ‘다원주의적 세계’(1909년)로 인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다원주의 개념이 현대 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것.

현재 다원화는 교회 내, 기독교 신앙의 조직 내에, 일상적인 공동생활 영역에서의 종교, 세계관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종교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한 그레트라인 교수는 “다원화된 컨텍스트 속에서 지금 복음의 소통이 일어나고 있다”며 “복음은 기독교가 시작될 때부터 그 당시의 문화와의 관련성에 대한 질문이 있어왔다. 기독교 역사는 그에 대한 반대에서부터 완전한 순응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다양하게 규정되어졌다”고 피력했다.

특히 그레트라인 교수는 기독교 예배와 문화 사이에는 역동적인 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6년 1월 세계연합 루터연구단체가 만들었던 실천신학적 해석을 위한 문서를 예로 들었다. 당시 이 문서는 기독교 예배는 △문화포괄적이며 △문맥상에 놓여져 있고 △반문화적 혹은 문화비판적인 차원에 있으며, △문화적인 상화작용을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레트라인 교수는 “위의 네 개의 시금석은 어렵지 않게 복음의 소통을 위한 모둔 분야에 전가될 수 있다”며 “세분화된 방식으로 복음과 각 문화와의 커뮤니케이션의 연관성과 관련해 고려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즉, 문화포괄적인 차원은 바울이 언급했던 ‘지체’라는 은유의 정신에 들어 있는 기독교 일치의 의미를 수호한다. 그에 비해 문맥화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인 문화적 틀에서 계속해서 복음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분립 독립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적절히 적응할 때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단순히 긍정적이 되지 않도록 문화비판적 차원의 진지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활환경의 세계화에 직면해 기독교는 문화적 상호작용을 해 나가야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레트라인 교수는 “근본적으로 복음의 소통은 모두 네 개의 차원을 포괄하지만 각각 전적으로 다양한 특징과 정체성을 갖고 있다”며 “문화비판이 지배적이라면 복음의 성육신적 차원이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비판적으로 물어보아야 한다. 반대로 현재 문화와 동일시하는 것이 지배적인 것으로 비쳐진다면 복음의 비판적인 차원의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복음 소통의 방법

기독교 신앙, 곧 복음은 소통을 전제로 한다. 소통은 예수님의 사역과 운명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수님은 도래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 말로 소통하셨고, 식사공동체를 통해 소통하셨고, 치유사역으로 소통하셨다. 따라서 복음의 소통은 반드시 실제적이어야 한다.

그레트라인 교수는 “소통은 끊임없이 구체적인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진다”며 “복음의 소통의 구체적인 방법을 강조하려고 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세 개의 화법 구분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즉,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화법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소통이 그 중심에 있게 되고, 공동체적인 축제 가운데서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은 삶을 도우려 할 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레트라인 교수는 복음의 소통의 기초적인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소통’의 기초적인 형태들은 ‘이야기’(신앙고백, 그림, 책, 영화, 소셜매체)로 이루어져야 하며, 보다 전문적인 소통은 ‘서로 이야기하기’(함께 침묵하기, 공부하기)로,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세련된 소통의 형태는 ‘설교하기’(십자가 신문사건, 대화식 설교)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소통’의 기초적인 형태는 ‘기도’(명상)이며, 전문적으로 세련된 소통 형태로는 ‘찬양’(악기연주, 춤)이다.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세련된 소통의 형태는 ‘성만찬 축제’(금식)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통’의 기초적인 형태는 ‘축복’(기름바름, 일어서거나 무릎꿇기, 저주하는 것)이다. 전문적으로는 참회할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는 ‘세례’ 등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의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레트라인 교수는 “이러한 방법들은 결국 개신교를 위한 소통 형태들로서 설교, 성만찬, 세례에서 신학적 정련화가 계속되어진다”며 “이러한 것들은 동시에 그 소통의 모든 형태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음의 소통은 문화 해석적이고, 소통 이론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소통 이론적으로 분석하면 가르치고 배우는 것, 공동체적인 축제, 생명을 돕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복음의 소통을 위해서는 문화와 소통하는 과정 중에 나사렛 예수의 사역과 운명과의 관련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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