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을 지나치게 악마화한다면 창세기 3장과 4장, 그리고 더 넓게는 인류의 원역사를 담고 있는 창세기 1-11장이 전달하려는 인류 보편의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에 대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있다 ...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주장하는 궁극의 메시지이다."
박성숙 박사(서울한영대 교수)의 주장이다.
*이 글은 목회현장에 직접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지만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가치 있는 연구 결과물을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박성숙 박사의 <가인의 형제살해:살인인가 과실치사인가?>, 개혁주의생명신학회, 「생명과 말씀」, 제36권(2023년).
가인의 살해, 어떻게 볼 것인가?
박성숙 박사는 "창세기 4장의 가인이야기는 단순한 악인의 범죄 이야기이기보다는 커지는 죄 속에서도 꾸준하게 인간을 가르치시고 돌보시고 생존을 보장하시는 하나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지 못한 인간의 이야기이다"라고 설명한다.
박 박사는 "창세기 3장과 4장은 앞으로 인간역사 속에서 펼쳐질 죄의 모형을 전하고 있다"라며 "가인의 살해이야기는 타락 이후 죄악을 반복하게 된 인간과 이러한 반복성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멀어져 가는 하나님과 인간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폭력이 강렬하게 폭발하는 살해 장면들 속에서 가인은 잔인한 살인자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 4장 11-12절이 담고 있는 저주와 추방이라는 하나님의 판결은 성화들이 묘사하는 것과 같은 잔인한 살인 행위에 내린 판결이라 보기 어려운 가벼운 처분이다"라고 분석한다.
이와 관련 박 박사는 가인의 범죄가 계획된(premeditated)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임을 창세기 4장의 연구를 통해, 그리고 출
애굽기 2장의 모세의 경우와 비교 분석을 통해 밝혀 나간다. 이를 위해 살해 장면을 담고 있는 창세기 4장 8절과 판결을 담고 있는 창세기 4장 11-12절을 중심으로 가인의 범죄를 살핀다.
가인의 흉악한 살인자인가?
가인의 살해는 과실치사인가?
박 박사는 "창세기 4장 8절의 텍스트 자체로는 가인의 살해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것이었는지, 논쟁이나 싸움이 격화되어 일어난 우연적인 살해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라며 범죄에 대한 판결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인은 동생 살해 이후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와 관련된 하나님의 판결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박 박사는 "하나님이 가인을 소환한 것은 아벨이 흘린 피가 하나님께 부르짖었기 때문이다"라며 "모든 인간 생명에 대한 의로운 감시자이며 정의로운 피의 복수자인 하나님은 땅을 더럽힌 아벨의 피에 대해 동일하게 보복하신다. 하지만 가인의 추방은 아벨의 피해에 상응하는 판결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박 박사는 "가인의 호소와 이에 응답해서 준 하나님의 표는 가인의 처벌이 정확히 그의 범죄, 즉 과실치사에 준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라며 "그의 호소는 추방이라는 하나님의 판결이 아닌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이 보호받기를 간청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가인의 행동과 도피성 제도
박 박사는 "가인의 형벌과 온전한 형 집행을 위한 하나님의 안배는 도피성에 관한 율법에 나오는 죄에 상응한다. 도피성 제도는 인명(人命)에 관련된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적절한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라며 "도피성 제도는 죽음의 원인과 동기를 조사해서 적법한 형벌을 내리기 이전에 성급하게 피를 보복하려는 행위를 방지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가인에게 주어진 표는 그가 형제살해자이고 땅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라는 표시가 아니라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아래 있으며 하나님에게 목숨을 구제받았다는 자비의 표시이다. 사형이 아닌 추방형을 내리고 또 그것이 바로 집행되도록 하나님은 안배하셨다"라며 "이러한 조치들은 가인의 범죄가 계획적인 살인이 아닌 하나님의 지도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며 자신의 죄를 다스리지 못한(창 4:7) 과실치사 사건으로 분류할 근거를 마련한다"라고 주장한다.
박 박사는 가인의 동생 살해는 과실치사로 봐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모세의 미디안으로의 피신과 출애굽이라는 도피성 제도의 실제 예를 살펴보면서 모세와 가인을 비교한다.
모세의 피신과 도피성 제도에 대해 설명한 박 박사는 "도피성 제도에 대한 내러티브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도피성 제도의 실행을 타당하게 느끼게 한다. 동시에 살해자라 하더라도 쉽게 버리지 않으시고 그에게 구원과 속죄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는 역할도 담당한다"라고 강조한다.
가인의 추방과 모세의 피신
박 박사는 "가인과 모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하지만 가인과 모세의 도피처를 찾아가는 내러티브 속에서 공통점은
매우 명확하다. 가인의 추방과 모세의 피신은 살해-도피(정착과 출산)이라는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박 박사는 가인의 모세의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가인이 들에 있을 때, 즉 피해자가 도움을 청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형제를 살해한 것처럼(창 4:8) 모세도 주변에 증인이 있는지를 살핀 후에 애굽 사람을 살해했다(출 2:12).
가인의 피해자의 피가 땅에 흘렀고(창 4:10, 11) 모세의 피해자는 모래 속에 감추어졌다(출 2: 12). 둘다 범죄를 숨기려 했지만 피의 절규로 인해(창 4:10) 그리고 동족의 반감(출 2:14)에 의해 범죄 사실이 폭로되었다.
가인은 폭로된 죄로 인해서 땅으로부터 저주받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창 4:12) 그를 살해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표를 받았다(창 4:15).
모세는 피의 복수를 하려는 파라오를 피해 도피처를 찾아 나서며 미디안으로 갔다(출 2:15). 가인이 땅으로 부터 쫓겨나고(창 4:14) 떠도는 것처럼 모세도 쫓겨났고, 유업이 없는 거주자가 되었다(출 2:22). 둘의 살인은 계획되지 않은 것이었기에 비록 기존의 삶의 자리로부터 쫓겨났지만 여전히 삶을 지속할 수는 있게 되었다.
이들이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함으로써 (창 4:17; 출 2:22) 이들의 생명은 지속되고 확산되었다."
도피성, 생존보장 위한 안전장치
박 박사는 "하나님은 부당하게 피의 복수를 당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도피성 제도를 제정하셨다. 그 안에서는 피의 복수가 그치고 안전이 보장되도록 안배되었다. 가인의 표는 도피성처럼 하나님이 보장하는 확실한 생존을 보장하는 장치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이 그에게 표를 주어 안전을 보장해 주었음에도 스스로 성을 쌓았다. 성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능력에 대해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안전에 대한 갈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간적 노력의 산물이다. 참된 피난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안식의 상태이기에(시 73:28), 하나님과 분리된 가인의 안전에 대한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라고 분석한다.
가인의 지나친 악마화,
성경 메시지 놓칠 수 있다
연구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박 박사는 "가인을 지나치게 악마화한다면 창세기 3장과 4장, 그리고 더 넓게는 인류의 원역사를 담고 있는 창세기 1-11장이 전달하려는 인류 보편의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라며 "가인은 창세기 3장이 에덴으로부터 추방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된 후 이어진 창세기 4장에 나타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 때의 축복과 땅을 경작하라는 창조 때의 소명이 유지되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의 중심에 있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에 대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은 타락 이후에도 창조의 축복을 취소하지 않으셨기에 인류의 종족 번식은 진행되었고 저주받은 상태 속에서도 인간은 땅의 소산도 얻을 수 있었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인간에게 범죄의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 하나님은 미리 훈계하신다(창 4:7).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인간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의 피의 호소를 대변하시면서(창 4:10) 가해자마저도 돌보시어 기계적인 응보가 아닌 의도에 따라 차등을 두어 추방을 판결하신다(창 4:11-12)"라며 "그리고 과도한 복수를 막기 위해 범죄자에 게도 표를 주어 그를 보호하신다(창 4:15)"라고 설명한다.
박 박사는 "그러나 인간은 훈계와 경고를 받아들이지 못해 범죄하고(창 4:8), 범죄를 부인하고 책임을 회피한다(창 4:9). 죄악을 핑계로 하나님의 낯을 멀리하고(창 4:14) 죄인도 돌보시는 하나님을 은혜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하나님이 아닌 다른 헛된 것에 구원과 안식의 희망을 둔다(창 4:17). 같은 구조를 가진 모세의 살인과 도피처 찾기, 그리고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낯을 피하려는 죄인들의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이 결국은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한다.
박 박사는 "결국 가인의 이야기는 악한 존재의 악한 행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타락을 심판하시면서도 동시에 은혜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안배에 대한 이야기이다"라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주장하는 궁극의 메시지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절정을 이루었지만, 이미 가인이라는 형제 살해자를 돌보시는 모습에도 예표되어 있다. 결국 그 생명을 화목제로 내어주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만을,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봐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연구논문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형제살해(fratricide), 살인(murder), 과실치사(manslaughter)
Ⅲ. 살해자의 도피처 찾기
1. 도피처 찾기1: 모세, 이스라엘 그리고 도피성 제도
2. 도피처 찾기2: 가인의 추방과 모세의 피신
Ⅳ.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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