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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정죄보다 이단의 서식환경 만든 것부터 반성해야 본문

교회와 이단

이단정죄보다 이단의 서식환경 만든 것부터 반성해야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11:29

 

김영재 박사, 개혁신학회 학술대회서 교회의 각성과 개혁 촉구 / 2014년 4월 기사

 

한국교회 이단정죄, 종말론 분야에만 지나치게 치우쳤다
이단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교회의 잃어버린 정체성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단들의 발흥으로 한국 교회는 물론 사회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도대체 막을 방법이 없다. 이단들의 성격도 저마다 다르고, 포교활동도 너무 교묘하다 보니 미리 막거나 제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바라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혁신학회(회장:김길성 교수, 총신대)가 지난 12일 오전 10시 새에덴교회에서 ‘한국교회의 이단문제와 종말론’을 주제로 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신학적 관점에서 이단의 특징 및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날 여러 신학자들이 신천지를 비롯해 동방번개파, 종말론, 신사도개혁운동 등 이단과 종말론 사상의 문제점을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기에 앞서 김영재 박사(전 합신대 교수)가 주제강연자로 나서 ‘교회 역사에서 본 이단과 종말론’을 주제로 발표했다.

   

▲ 김영재 박사는 "한국교회의 이단정죄는 종말론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로 전했다.

 

 

김 박사는 “한국 교회는 130년의 선교역사 속에서 부흥을 이룩했지만 교회의 끊임없는 분열과 그 분열된 교회와 교단들의 틈새에서 준동하며 발호하는 이단들의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며 “이단들도 교단을 형성하면서 분열된 전통적인 교회나 교단들과 대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가운데 교회의 권위가 현저하게 약화됐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실 ‘이단’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왜곡하거나 잘못 가르치는 자, 그를 추종하는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교회 역사에서 이단들은 사도 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종교개혁 시대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삼위일체 교리를 왜곡하거나 부인하는 자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그러나 계몽사조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가 하면 예수의 역사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합리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 안에서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부터는 이단에 대한 정의가 수정되다시피 했다는 것이 김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삼위일체를 잘못 설명하는 양태론이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대다수의 교회에도 만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사상과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조차도 ‘이단’이란 말로 정죄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즉, 오늘의 교회는 ‘이단’이란 말을 잘못된 신론과 기독론을 말하는 자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시한부 종말론을 말하거나 종말론적 그리스도임을 사칭하는 자에 한하여 ‘이단’이란 말로 정죄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그 이유는 아마도 윤리적인 기독교를 지향하는 신학적 자유주의를 따르는 교회들이 기독교 내에 주류를 형성해 윤리성과 사회성을 유지하며 문화에 적응하는 반면에, 잘못된 종말론을 말하거나 재림한 그리스도라고 사칭하는 교주들과 광신적인 그들의 추종자들은 흔히 비윤리적이며 반문화적인 반사회적 집단을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단들이 기독교 교리를 왜곡하거나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래서 교회는 마땅히 이단을 가려내고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밝혀내는 한편, 전통적인 정통교리를 보수하고 변증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김 박사는 “그러나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마 13:24~30)의 말씀에서 보듯이 이단들이 서식하는 것을 미리 막거나 제거할 방법이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성도들이 이단들에게 미혹을 받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고 선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히 “사회와 시대적 환경과 배경 뿐 아니라 교회 또한 본의 아니게 이단들에게 그들이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거나 신자들을 공략할 수 있는 틈을 주고 있다면 그러한 여건들에 대한 반성과 개선은 이단에 대한 비판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냉랭한 예배 분위기, 이와는 다른 극단으로 열렬함을 넘어서 열광을 추구하는 집회의 성향, 예배 신학의 빈곤, 지나친 문자적 성경 해석, ‘영해’임을 빙자하는 주관적인 풍유적 성경 해석과 설교, 본문과는 동떨어진 설교, 전통적인 올바른 신앙교육을 위한 요리문답을 방치해 온 성경 공부 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상징적 언어로 가득한 요한계시록과 다른 묵시록에 대한 풍유적 해석이나 암호풀이식 해석은 다양한 주관적 해석과 함께 이단적 해석을 유발하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임의의 해석에 익숙하게 함으로써 분별력을 잃게 만든다”며 “이러한 것은 올바른 성경교육을 통해 반드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이러한 것보다 더 심각하는 여건은 빛과 소금의 맛을 잃어가는 한국 교회 정체성이라고 진단했다. 무분별한 교회 분열, 교주를 방불케하는 많은 목회자들의 의식과 자세, 성경의 가르침을 떠난 교회 경영, 많은 교회들의 비윤리적 성향 등은 한국 교회를 허약하게 만드는 치유 난망의 고질병이라는 것이다.

김 박사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각성과 개혁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며 “새로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 개혁신학회가 지난 12일 새에덴교회에서 '한국교회의 이단문제와 종말론'을 주제로 2014년 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신천지, 동방번개파, 신사도개혁 운동, 종말론 등의 문제점을 신학적으로 집중 조명했다.

 



한편, 김 박사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교회 역사적 측면에서 이단과 종말론에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주요 발표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종말론은 ‘종말에 있을 일’에 대한 종교적인 교리다. 기독교 신학은 종말론을 개인적 종말론과 역사적 종말론으로 구분한다. 개인적 종말론에서는 인간의 죽음,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의미, 부활, 영생불사 등을 다루며, 역사적 종말론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최후의 심판, 의인이 누릴 복된 상태와 악인이 견디어야 할 상태에 관해 논의한다.

2. 기독교 종말론의 특이성은 기독교 역사관과 결부된 역사적 종말론이다. 역사의 종말에 있을 사건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바로 천년왕국에 대한 것이다. 천년왕국에 대한 신앙 혹은 견해는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로 분류된다. 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다는 견해이고, 후천년설은 천년왕국 이후에 있다는 견해이다.

3. 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휴거, 공중 잔치, 유대인들의 회복,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건설과 통치를 믿는다.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교회가 왕성해 황금기를 누린다는 견해이다. 무천년설은 천년기를 교회 시대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적인 통치가 신자들의 마음 속에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

4. 개혁주의 교회의 종말신앙의 전통은 루터교회의 것과 마찬가지로 무천년설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세대주의적 색체를 띤 전천년설이 한국에 온 초대 선교사들을 통해 전수됐으며, 1930년대 이후 성결교회 부흥사들을 통해 그러한 신앙이 더 일반화됐다. 보수적 장로교회의 대표적인 두 신학자 박형룡 교수와 박윤선 교수가 초대 부흥사 길선주 목사의 전통을 이어 전천년설을 고수하며 교수했다.

5. 이러한 경향은 한국 장로교회가 개혁주의를 표방하지만 신앙 면에서 경건주의와 복음주의 영향을 다분히 받았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시한부 종말론을 말하는 이단이나 종말론적 이단들이 예외 없이 천년왕국 신앙을 견지하거나 빙자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6. 천년왕국에 대한 신앙은 대다수의 속사도 교부들과 많은 초대 교부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대교적 배경을 가진 교부들, 특히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의 글에서 천년왕국에 대한 신앙이 더 현저함을 발견한다. 그 밖에도 바나바서, 파피아스, 클레멘트의 첫 편지, 이그나티우스 등을 비롯해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한 때 몬타누스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등 여러 교부들이 천년왕국에 대한 신앙을 말했다.

7. 오리겐은 천년기를 풍유적으로, 혹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한 최초의 사람이다. 어거스틴은 오리겐의 영적인 해석을 받아들여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해 교회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235년의 니케아 공의회 때까지 동방의 그리스도 신학은 오리겐의 지대한 영향 아래 있었음에도 그의 종말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의 제자 그레고리를 비롯해 메토디우스 등 많은 신학자들이 스승인 오리겐과는 다른 천년왕국 사상을 피력했다.

8. 오리겐 이후의 동방 교회와 터툴리안 이후의 서방 교회의 신학을 종합한 히포의 감독 어거스틴은 자기 나름의 종말론을 개진했다. 어거스틴은 요한계시록 20:1~6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지상에 이루어지는 왕국의 천년은 온 기독교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9. 중세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재림을 그림으로 보듯 좀 더 생생하게 고대하게 해주는 천년왕국 신앙은 소위 무천년설로 대치됐다. 가톨릭교회는 어거스틴의 건해를 정통적인 교리로 받아들여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는 천년왕국 신앙을 미신적인 탈선이라고 정죄했다.

10. 어거스틴이 중세의 종말론에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교리는 연옥설이다. 연옥설은 어거스틴이 시안으로 제시했으며, 그레고리 1세가 그 기초를 설정했다.

11. 초대 교회 시대의 교부들이 천년왕국 신앙을 말할 때, 그것은 신앙인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양자택일 할 수 있는 무해한 종말론 신앙의 하나일 뿐이었으나 기근과 가난, 질병과 역병에 시달리는 중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기적적으로 벗어나 곧 실현될 이상 사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신앙이며 꿈이었다.

12. 이러한 상황에서 천년왕국 건설을 빙자해 메시아를 사칭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게 됐으며, 천년왕국 신앙은 배타적이며 무력을 행사하고 소요를 동반하는 천년왕국 운동으로 발전했다. 12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동반한 민간의 천년왕국 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다. 천년왕국을 신앙하는 이들은 철장을 가지고 원수를 제압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일을 대행한다는 명분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고 성직자와 수도사를 응징하는 일도 자행했다. 하지만 십자군 시대부터 수세기에 걸쳐 꼬리를 물고 일어난 무력행사를 불사하던 광신적 천년왕국 운동은 재세례파의 뮌스터 소요가 평정되자 그 막을 내리게 됐다.

13. ‘말씀으로’만 신앙의 척도를 삼아야 한다고 주창한 루터와 칼빈은 그들의 종말론에서 중세 교회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연옥설을 거부했다. 연옥설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교리일 뿐 아니라 공로사상, 사자를 위한 기도, 면죄부의 관행과 연계된 교리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종교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과 견해를 달리했으나 천년왕국 신앙을 배격한 점에서는 동일했다.

14. 종교 개혁자들은 초대 교회 신앙을 본받는 것을 이상으로 했지만 천년왕국 신앙이 모든 초대 교부들이 지지한 전통은 아닐뿐더러 중세에는 천년왕국 신앙에 이교적 종말론이 뒤섞여 있는데다가 그러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가공할 일들이 연출됐기 때문에 천년왕국 신앙에 대해 더 한층 부정적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5. 칼빈은 천년왕국 신앙을 ‘광신자들의 겁주는 말’이라 간주하고 거부했다.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이 천년으로 한정될 수는 없다고 하며 루터가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영광 가운데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시면 이 세상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다시금 현세의 연장을 바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했다.

16. 종교개혁 이후 100년 동안은 유럽에서 정통주의가 지배한 시대였다. 개신교 신학은 로마가톨릭에 대항해 교리를 더 확고히 하고 체계화한 시대였다. 정통주의 신학은 그런대로 종말론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계몽신학자들은 도덕적인 종말론을 개진했다. 계몽사상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경건주의를 추구하는 경건주의자들은 종말론을 두고 정통주의나 계몽주의자와는 달리 개인적 종말보다는 역사적 종말에 더 관심을 보였으며, 천년왕국 신앙을 견지했다.

17. 경건주의 창시자 슈페너는 생동성이 있고 실천적 신앙을 가지려는 열심에서 천년왕국 신앙을 받아들였다. 경건주의 대표적인 성경학자 벵겔(1687~1752)도 천년왕국을 강조했다. 종말 사상과 역사의 상세한 부분을 요한계시록에서 읽을 수 있다는 벵겔의 사상은 부흥운동, 즉 각성운동을 거쳐 오늘의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 벵겔의 천년왕국 신앙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일어난 부흥주의 신학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성경을 일반 문서로 보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사상에 반하여 부흥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나머지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성경 문자주의에 빠져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에 관한 문자적인 해석을 더 신뢰한 만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9. 17세기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가졌던 또 다른 종말론 신앙은 소위 후천년설의 신앙이다. 역사의 종말과 교회의 과업을 긍정적이며 낙관론으로 본 후천년설의 종말론은 사회 개혁과 칼빈주의 문화 건설을 주창한 19세기 화란의 소위 신칼빈중늬 사상 운동을 자라게 한 토양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20. ‘언덕 위의 도시’ 건설을 지향한 코튼을 위시한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도 후천년셜의 종말 사상을 피력했다. 이는 종교 개혁 당시에 사회개혁과 천년왕국 건설을 꿈꾸었던 제세례파들의 천년왕국 신앙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21. 제세례파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생존을 위해 그들을 반대하는 로마 가톨릭과 종교 개혁교회의 세력이나 이들을 옹호하는 정치권력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반사회적이거나 혁명적인 그룹으로 낙인 찍혔다.

22. 계몽주의 전통을 따라 역사적 비평으로 성경을 비판하는 합리주의 신학자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의심함으로 그들의 종말론은 일반적인 개인의 종말론에 머물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다.

23.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이를 극복하려던 20세기의 소위 현대신학자들도 종말론을 다루면서 기독교를 종말론적 종교라고 정의하지만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전통적인 이해와 같지 않다. 그러므로 역사적 종말에 대한 그들의 이해도 전통적인 이해와 다르다. 그들의 종말 개념은 실재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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