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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뉴스

타종교 지도자들도 ‘성자’라고 인정한 故 한경직 목사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1. 13:15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 한경직 목사’ 기념강연회 / 2014년 4월 기사


 

▲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가 지난 9일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 한경직 목사'를 주제로 개최한 기념강연회에는 타종교 지도자들이 발제자로 나서 한경직 목사의 생애를 조명했다.

 

 

타종교 지도자들도 교회와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한경직 목사를 향해 성자의 삶을 살았다고 인정했다.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이철신 목사, 영락교회)가 지난 9일 오후 3시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 한경직 목사’를 주제로 기념강연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날 타종교 지도자들이 발제자로 나서 고(故) 한경직 목사에 대해 조명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송월주 승려(전 조계종 총무원장)를 비롯해 이성택 원로교무(전 원불교 교정원장), 박남수 선도사(천도교 교령) 등이 발표했으며, 교계에서는 손봉호 박사(서울대 명예교수)와 박경조 주교(전 대한성공회 주교원 의장) 등이 참여했다.

이날 발제자로 참여한 타종교 지도자들과 교계 지도자들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고 한경직 목사(사진출처: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 목회자 한경직, 참회와 기도의 지도자 / 송월주 승려


1. 한경직 목사는 한국기독교사의 거목이다. 교육과 사회복지사업에 매진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다시 일으켜 세운 생애는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2. 한경직 목사님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회자이자 설교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능이 뛰어나고, 학식이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치열한 자기부정과 희생의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의 종이자 백성의 종이 됨으로써 참다운 인간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3. 한경직 목사는 수난과 질곡의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인물이다. 만약 그가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연약함과 타협하면서 현실에 안주했다면 그가 이룬 장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 한경직의 진면목은 참회와 회개, 기도와 눈물에서 드러난다. 평생토록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며,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까지도 자신이 짊어지는 길을 걸었다.

4. 인간 한경직은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였다. 교회는 곧 봉사기관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인간을 잘 봉사함이 하나님을 잘 봉사함이다”라는 명제를 일관되게 지켰다. 또한 한경직 목사는 화평과 협력의 목회자였다. 생전에 자신의 신앙은 보수적이지만 교회론에서 만큼은 에큐메니칼하다고 말하곤 했다.

5. 그는 신앙행태의 모든 좌우를 그의 넓은 가슴 안에 품으려는 대인이었다. 교파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비록 교파는 다르더라도 이를 초월해서 교회가 다같이 당면한 일, 곧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위한 봉사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누차 역설했다.

6. 한경직 목사의 생애 연꽃은 반드시 진흙 속에서만 꽃핀다는 이치를 우리에게 확인해준다. 이것은 지금 우리 종교인들이 스스로 되새기고 이웃에게 전해야 할 가치다.

# 교육선진화, 나눔을 통한 종교의 사회적 역할 구현 / 이성택 원로교무

1. 교육입국을 실천한 선구자였다. 우리나라가 서구식 선진교육을 간절히 요청하는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한 후, 국내에서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목사로서 성직의 길로 들어서서 처음 시작한 일도 교목이고, 교사였다. 따라서 한경직 목사를 우리나라 교육입국의 선구자로 평가하고 싶다.

2. 나눔을 통한 종교의 사회적 본질을 구현하신 분이다. 한경직 목사와 해외선교사와의 만남은 사회사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 특히 선명회(월드비전)와 같은 것은 국제적인 단체로 발전하게 됐다. 홀트 아동복지회 이사장을 비롯해 부산 다비다모자원 설립, 영락사회복지재단 설립, 쌀나누기 운동 전개, 영락세선회 설립 등 수많은 나눔의 운동을 조직적으로 실천했다. 이런 나눔의 실천으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타파하는데 혼신을 힘을 기울이신 목회자다.

3. 종교 다원주의의 문화적 풍토를 조성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종교다원주의의 문화적 풍토가 공존하는 사회다. 기독교는 우리 문화의 토양 속에 토착화 과정을 거칠 때 지도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문화적 충돌을 극복하면서 서서히 기독교를 문화 풍토에 심는 작업을 한 것이다. 한경직 목사도 그 중 한 분이시다. 종교 다원주의의 문화적 풍토 안에서 종교간 대화와 협력이 공조하는 지역을 만드는데 선지자적인 안목을 갖고 계셨다.

# 체험과 수양, 시련의 한경직 목사 / 박남수 선도사

1. 한경직 목사는 한국 교회 신앙 전통사의 정점에 서 계신 분이다. 오늘 어떤 종교를 신앙하든, 신앙인의 기본자세로서 한경직 목사로부터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 한경직 목사의 신앙체험은 일상생활에서든 학교나 교회에서의 기도를 통해서든 오랫동안 쌓아왔던 신앙적 수행의 결실이다. 그의 신앙체험은 오직 신의 능동적인 감응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수양하고 신앙하되, 신의 감응을 마음으로 고대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신의 뜻에 맡겨 두는 태도를 확인한 것이다.

3. 한경직 목사는 또한 신앙의 궁극적인 대상인 절대자와 만나고 그 분의 말씀을 듣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배움의 길을 확장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수행자의 길을 걷기로 하고, 또 성실하게 그 길을 걸어갔다.

4. 한경직 목사의 생애는 시련이었다. 시련 속에 예비된 신의 섭리를 읽고, 의연하게 대처하면 성공의 길을 가는 것이요, 시련을 시련으로만 받아들이고 굴복하여 불의와 타협하거나 하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득 채워 세속으로 돌아가 버리면 실패하는 것임을 명명백백히 보여주는 것이 한경직 목사의 일생이었다.

# 탐심이 없는 지도자 / 손봉호 박사

1. 한경직 목사는 성경이 제시하는 지도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스스로 대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지도자가 누릴 수 있는 명예나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즐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상당수의 주요한 직책을 맡아 잘 수행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누군가가 져야 할 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부패한 기독교를 개혁하기 위해 나서야 할 일부 존경받는 인사들에게 중요한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2. 한경직 목사는 돈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 설교나 강의의 사례나 강사료도 받지 않았다. 교회가 그를 위해 건축한 은퇴목사관을 사양하고, 매우 비좁은 남한산성 거처에서 여생을 보냈다. 돈 한 푼, 땅 한 평 자녀들에게 남기지 않을 정도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3. 성자는 자신이 성자인지 모른다. 자신의 신앙 인격과 지도력이 훌륭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면서도 한경직 목사는 그런 사실로 교만하지 않았고,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템플턴상을 수상하면서도 자신은 신사참배를 했기 때문에 수상자격이 없다고 겸손해 했다.

4. 그러나 약점도 있다. 영락교회를 대형 교회로 만든 것이다. 존경 받는 목회자가 대형 교회를 이룩한 것은 대형 교회를 이룩한 목회자는 모두 훌륭하다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결국 누구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덩치만 키우려는 교회성장이라는 우상이 생겨났고, 그것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타락하게 한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다. 영락교회를 계속 키우지 말고 작은 교회로 계속 분립시켜야 했다.

5. 또 한 가지 약점은 교회의 잘못과 교계 지도자들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충분히 고쳐주지 못한 점이다. 온유하고 겸손해 남의 흉을 보지 않고 비판을 삼가는 것은 그 자체로 옳고 좋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성숙한 인격이지만 공동체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지도자에게는 큰 약점이다. 그가 교계와 사회의 잘못과 약점을 좀 더 정확하게 지적하고 엄중하게 꾸짖었다면 오늘의 한국 교회가 이처럼 타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경직 목사는 주기철, 손양원, 장기려, 김용기와 더불어 한국 교회가 사회를 위한 더없이 귀중한 보배요, 중요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자신을 비쳐보고,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거울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가. 후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잘 이용하면 큰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부족함을 돌아보며 울게 하는 한경직 목사 / 박경조 주교

1. 한경직 목사의 일생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민족의 고난과 시련의 한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구원의 은혜가 눈에 밟히듯이 들어와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고, 그러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가는 한 인간의 감동적이고 위대한 삶을 보았다. 한 목사의 생애는 나를 비추는 거울같이 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이 되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2. 한경직 목사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자신 안에 있는 어두움과 죄악을 깨달은 분이고, 그것을 자신 안에 품어 안고 용기 있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셨던 분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야망과 명예욕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성자의 길을 걸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유혹과 싸워나가셨으며,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드러냄으로써 새롭게 변화되어 가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한경직 목사는 복음적인 삶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따라갈 수 있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증언해주셨다. 가난하셨고, 약하셨고, 많은 고난을 당하셨지만 한경직 목사는 강하셨다. 그 강함은 세상의 권력과 힘으로 무장된 강함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어리석은 복음의 힘이었다.

4. 한경직 목사는 주님과 하나가 된 마음으로 민족의 고난과 시련을 가슴에 품고 같이 아파하셨던 분이다. 자신의 야망을 가슴에 품고 공부를 하던 젊은 청년에서 마침내 크고도 넓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이를 정도로 위대한 신앙인의 풍모를 보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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