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페미니즘의 선구를 계몽주의적 자유주의에서 보다는 신약교회 전통을 이어받은 종교개혁 전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존 스토트가 지적하는 것처럼 복음주의자들이 페미니즘을 비기독교운동이나 비성경적으로 보는 것이 잘못이다. 성경과 종교개혁 전통에서 신앙에 입각한 페미니즘(여성운동)을 찾을 수 있다."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이 지난 9얼 16일(금) 오후 3시 양재 온누리교회 화평홀에서 '제95회 월례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페미니즘에 대한 성경적 복음주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개회사를 전한 김영한 박사의 주장이다.
한국 페미니즘의 전신은
기독교 선교를 통한 여성 교육
김영한 박사는 "한국 교회 보수 진영 안에서 페미니즘(여성주의 내지 여성 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상이 있다. 이는 개신교 선교가 시작한 여성 인권 신장과 여성 교육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라며 "기독교 선교는 가부장제를 사회주도적 이념으로 하여 여성억압적인 조선 사회에 여성학교를 세우고 여성들이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 나와서 사회적 소통의 광장에 나올 수 있게 한 것은 조선사회를 제도적으로 변혁시키는 계몽운동이요 여성인권신장운동이었다"리고 평가했다.
기독교는 여성옹호 종교다
김 박사는 "성별 때문에 억압받는 여성들의 가정적 사회적 지위에 대한 정의로운 가르침은 성경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등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라며 기독교는 남녀의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 옹호 종교라고 설명했다.
즉,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성, 상호보완성을 말하는데, 타락에 의해 양성 동등성이 왜곡됐다는 것. 김 박사는 "창세기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는 창조 본연의 질서가 아닌 타락으로 인한 것으로 본다"라며 "창세기 3장의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말씀은 창조의 질서로서의 양성의 동등성과 상호보완성이 타락으로 인해 왜곡되어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변질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성경적 페미니즘의 기원: 종교개혁
김 박사는 "‘여성 종교개혁가들은 격동의 시기였던 16세기 종교개혁기 유럽 중남부 지역에서 성차별을 받으며 제도적·종교적 억압 속에서도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옹호하고 당당하게 개혁운동에 헌신한 주인공들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1499-1550)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배우자로 남편이 건강한 신학적 조망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르굴라 폰 그룸바흐(Argula von Grumbach, 1492∼1568)도 독일 귀족 출신으로 만인사제설을 신봉하며 자신의 권위와 그리스도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성서에서 끌어냈다.
또한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복음주의 신앙을 공고하게 하려 했던 엘리자베스 폰 브란덴부르크(Elizabeth von Brandenburg, 1485∼1555), 여성 평신도 신학자이자 교회 지도자로 추앙받았던 카타리나 쉬츠 젤(Katharina Schutz Zell, 1497∼1562), 제네바의 개혁자이자 저술가인 마리 당티에르(Marie Dentière, 1495∼1561) 등도 남성에 가려진 종교개혁의 숨은 영웅이었다.
여성목사 안수 반대?
페미니즘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
김 박사는 "예수님은 여성의 존엄성과 남성과의 동등성을 인정하셨고, 바울은 양성 평등(갈 3:28)을 말했다"라며 "여성목사 안수 반대 구절로 인용되는 고린도전서 13:34("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과 디모데전서 2:13("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말씀은 바울의 다른 말씀과의 연관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즉,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1("그러나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과 갈라디아서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의 말씀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
김 박사는 "남성과 여성은 상호보완을 인정해야 한다"라며 "오늘날 여성들의 존엄성과 능력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성경적 페미니즘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억압하는 사회적 제도와 관습과 사고방식을 개혁하고 여성의 존엄성과 성적 평등, 여성이 자신의 비전과 능력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사회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요청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페미니즘의 선구를 계몽주의적 자유주의에서 보다는 신약교회 전통을 이어받은 종교개혁 전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라며 "성경과 종교개혁 전통에서 신앙에 입각한 페미니즘(여성운동)을 찾을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존 스토트가 지적하는 것처럼 복음주의자들이 페미니즘을 비기독교운동이나 비성경적으로 보는 것이 잘못이다"라며 "한국 교회는 여성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직을 인정해야 하고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적절한 사역 공간(여성 안수, 담임 목회, 교수 및 설교, 상담, 심방, 전도, 선교, 호스피스)을 만드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페미니즘, 복음주의 이해'라는 주제로 진행된 포럼에서 발제자로 참여한 이동주 박사(아신대 은퇴교수)는 현대 페미니즘을 비평하는 한편, 웨인 그루뎀의 반 여성안수 신학을 평가하면서 '복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 발표했다.
여성 성직안수 반대한 웨인 그루뎀
무엇이 문제인가?
'성 평등'을 주장하며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의 결합 속에서 진행되는 글로벌한 성 혁명의 정치문화로 볼 수 있는 현대 페미니즘의 현주소에 대해 비평한 이동주 박사는 <복음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통해 여성 성직 안수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던 웨인 그루뎀의 입장을 반박했다.
이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그루뎀은 여성안수에 관해 철저하게 비판하며, 여성안수는 성경말씀을 거역하는 것으로써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무엘 선지자의 권면을 어기고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린 것과 같은 죄라고 판정한다.
이와 관련 이 박사는 "그루뎀은 여성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편이 성경적이고, 이와 맞지 않는 주장은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판단한다"라며 "오늘날 그루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인류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의 복음전파 사역이 금지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루뎀은 여성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남녀 영혼들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는 일이 있더라도 여성들의 복음전파 사역 행위 자체가 복음 훼손에 해당하므로 여성들의 입을 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며 "그는 여성 사역자가 전한 복음이 올바로 전달되었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누가 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 박사는 "물론 그루뎀의 주장을 뒷받침 할 성경적 근거는 다분하다. 반면, 그와 반대되는 근거 또한 성경에 확실하게 기록돼 있다"라며 "그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여성이 설교나 복음을 전하는 행위가 정말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인지 그루뎀과 토론하고 싶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루뎀은 여성 리더십과 관련해서 성경에 있는 양면적 진술 중 하나만을 강조하며 여성 성직 안수를 반대했다.
즉, 고린도전서 14:34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말씀과 , 사도행전 2:18의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라는 말씀은 충돌이나 모순이 아닌 여성 사역자가 성령의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인데, 그루뎀은 오직 전자에만 집착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여성 사역은 성서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복 진술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인간은,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남편과 아내, 남종과 여종의 관계도 회복된다. 모두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요 동역자들이 된다"라며 "각자의 기질에 따라서 은사는 다르나, 그것이 우열과 차별의 뜻은 아니다. 바울은 뵈뵈나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성 사역자를 천거하고 동역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롬16:1~4). 우리가 이 땅에 거하는 것은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며 이를 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엡 5:21)"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지나친 종속을 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세를 탈취하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전도사역과 구령 사역의 위축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 여자가 지나친 해방운동으로 교회에서 충돌을 야기한다면 그 또한 선교목적에서 벗어난 자기해방 운동의 굴레로 격하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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