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리꾀르의 윤리는 자기 존중, 배려, 정의 등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공통의 윤리다. 구속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지평은 개인에서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리쾨르는 칼뱅의 개혁주의 윤리관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윤리는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희망과 긍정의 윤리이며,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며, 종말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기독교철학자였던 폴 리꾀르(Paul Ricoeur, 1913-2005)의 윤리에 대한 서혜정 박사(파리개신교신학대)의 평가다.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이 지난 2월 11일(금) 오후 3시 양재 온누리교회 화평홀에서 '리꾀르의 윤리'라는 주제로 '제92회 월례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서혜정 박사는 '폴 리꾀르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리꾀르의 윤리적 인간학
서 박사는 "폴 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는 끊임없는 사고와 대화를 통해 사상의 지평을 넓혀가는 반성과 중재의 철학자이다"라며 리꾀르의 철학적 윤리적 인간학에 나타나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리꾀르의 윤리는 먼저 삶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acceptation)하는 작업이 선행된다.
서 박사는 "리쾨르는 ‘믿음’을 통한 종말론적 ‘희망’에 둔다. 이런 의미에서 리쾨르는 종말론적 낙관론자에 속한다"라고 주장했다.
둘째, 리꾀르는 개신교 신앙을 토대로 자신의 사상 체계를 세우려 했기에 철학적 이성과 성경적 신앙이라는 두 축을 이룬다.
서 박사는 "리꾀르는 신앙과 이성의 산물인 ‘신학’을 토대로 믿음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성경 텍스트’에 믿음의 토대를 세우고 믿음의 지성을 근원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라며 "그의 주체 이해는 이처럼 철학적 이해와 신앙적 이해의 지평으로 확장된다"라고 주장했다.
셋째, 리쾨르의 철학적 반성은 행동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천적이다. 이 행동의 문제에 나와 타자의 문제, 나와 사회의 문제가 맞물려 윤리의 문제로 이어진다.
타인과 같은 자기 자신
서 박사는 "리쾨르의 주체에 연구는 1990년에 발표된 『타인과 같은 자기 자신(Soi-même comm e un autre)』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리쾨르는 윤리적인 이상(목표)인 ‘소 윤리(petite éthique)23)’를 '정당한 제도 속에서 타자와 더불어 타자를 위한 좋은 삶(la visée de la vie bon avec et pour autrui dans des institutions justes)'이라고 규정한다"라고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리꾀르는 윤리적인 목표를 이루는데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 윤리의 단계다. 좋은 것, 선한 것 등 윤리적인 목표를 갖고, 이 모델은 목적이 된다.
즉, 리꾀르가 말하는 윤리란 기본적으로 욕구하는 의지에서 시작한다. 욕구하되 그 방향성(orientation)은 ‘좋은 것, 선한 것’을 향한다는 것.
서 박사는 "리꾀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약하고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여기는 등 인간 자체에 대한 비관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다. 반면,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총을 강조한다"라며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 인간은 ‘가능한(capable)’ 인간이 된다. 인간 자체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희망의 근거는 외부, 하나님의 은총에 있다. 리꾀르의 철학적 인간관과 윤리는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게 된다"라고 강조했다.
둘째, 도덕의 단계다. 이 단계는 규범(norme), 책무(obligation), 의무(devoir)의 단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다. 보편성과 강제성이다. 의무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서 박사는 "도덕의 문제는 타자의 문제로 이어진다. 리꾀르에게 주체의 문제 있어 ‘자기존중(estime de soi)’은 타자로 확장된다"라며 "리꾀르는 타자의 관계에서 '배려'를 강조한다. 이 배려는 도덕적 의무라기보다는 ‘좋음’이라는 윤리적 지향성인 자율성에 가깝다"라고 주장했다.
셋째, 실천적 지혜(sagesse pratique)이다.
서 박사는 "리꾀르는 비극을 극복하고 충돌과 모순에서 다음의 삶의 단계로 넘어가는 가는 과정에 실천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여겼다"라며 "여기서 등장하게 되는 합의(concentement)는 악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에서 선택하는 지혜이다. ‘좋은 결정’이라기보다는 가능한 한 ‘나쁜 결정’을 피하고 악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을 택한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성경에서 찾는 '나'라는 주체
"부르심 속에서의 주체"
서 박사는 "리꾀르는 칼뱅처럼 '응답하는 주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부름에 응답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나에 집중되는 거싱 아니라 부르는 자에 집중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리꾀르는 성경 앞에 선 자기는 '위임을 받은 자기'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자기’는 절대적 자기(un soi ab-solu)가 아닌 관계에 있는 자기(le soi en relation)를 강조했다"라며 "리꾀르가 말하는 주체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르심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주체다"라고 설명했다.
서 박사는 "이와 같은 특별한 지명과 부름은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런 새로운 형상의 재창조는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된다"라며 "부르는 자와 부름을 받은 자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고 종국에 신앙고백의 형태로 응답한다. 결국 리꾀르는 구원론과 윤리학을 연결시키는 시도를 하면서 성경 속에서 찾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은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특히 서 박사는 기독교윤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리꾀르가 강조하는 이웃사랑에 대해 설명한다.
첫째, 이웃 사랑의 문제에서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 2인칭의 상대인 이웃을 찾는 것이 아니라, 1인칭으로 내가 이웃으로 합당한 행위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두 사람, 제사장과 레위인은 한 개인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사회 계층’으로 표현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서 박사는 "리꾀르는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쳐 간 두 사람은 제도, 역사의 주류를 대표한다면, 사마리아인은 제도 밖의 한 개인으로 ‘사건’을 만난 사람이라고 해석한다"라며 "다시 말해서 사회 제도의 영역에서는 ‘정의’의 영역, 질서의 영역에 속하기에 ‘사랑’의 원리가 자리잡기 어려운 영역이다. 리꾀르는 제도 속의 원리인 정의와 초윤리에 해당하는 사랑을 어떻게 제도 속에 적용하는 문제를 변증법적으로 풀어간다"라고 설명했다.
셋째,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종말의 때를 이야기하고 있는 마태복음 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
서 박사는 "가난하고 헐벗고 소외된 자를 '소자'라고 한다. 이들은 사회와 제도권에서 소외된 자들이다. 따라서 사마리아인의 자비의 행위는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웃 사랑은 제도라는 매개에 속하지 않고, 행위자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웃사랑,
사회 속에 어떻게 적용할까?
서 박사는 "기능과 역할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사회 제도의 정당성과 기준은 바로 ‘이웃 사랑’에 두어야 한다"라며 "사회 제도가 그 뱡항을 잃을 때, 즉 우리라는 이웃 사랑의 정신에서 위배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사회를 비판하고 고발하며 제동을 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리꾀르는 자기 존중, 타인을 위한 배려, 타인들과 함께 살기 위한 정의로운 제도(정의)에 대한 기대 등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공통의 윤리를 말하며 '책임'을 강조했다"라며 "이 책임은 바로 '타자' 앞에서의 책임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리꾀르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자신의 삶을 타인을 위해 주는 삶'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증인으로서의 삶의 모습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는 것.
서 박사는 "구속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지평은 개인에서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리꾀르는 칼뱅의 개혁주의 윤리관을 갖는다"라며 "결국 리꾀르의 윤리는 성경을 기반으로 하며,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며, 종말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경청과 용서의 윤리,
한국사회에 필요한 공공성 윤리
한편, 기독교학술원장 김영한 박사는 개회사를 통해 "리꾀르가 강조하는 경청과 용서의 윤리는 한국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공공성 윤리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도덕적 자기를 예수의 황금률과 사랑의 새 계명의 변증법으로 세우고자 하는 리꾀르의 윤리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를 오늘날 기독교적 정신의 보편적 윤리로 제시하고 있다"라며 "5.18 광주사태, 일반의 식민지배 등 사회역사적 관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용서의 윤리를 제시하는 리꾀르의 제안은 타당성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적 행위를 용서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학자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종교·윤리적 용서와 화해 개념, 곧 종말론적인 역사 이해에 있음을 제시하는 리꾀르의 윤리는 해석학에서 출발하면서도 오늘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학적 길 제시라고 볼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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