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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직운동3

[기고] 케직(Keswick)운동의 영성(3)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2015년 5월 26일 기사 (3) - 목차 - I. 케직운동의 시작: 역사적 기원 II. 케직사경회 III. 케직운동의 영성 --------------------------- III. 케직의 영성 1. 케직사경회의 지향점: 고도의 영적 삶으로서 그리스도의 성결 지향 아더 피어선은 1895년 여름 무디의 노스필드(Northfield)집회에 참여하여 영국의 케직집회 강사였던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와 웹 펠로우(Webb Fellow)의 간증을 들으면서 케직 영성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그의 생애 마지막 15년을 케직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케직영성의 핵심이란 성결이며 고도의 영적 삶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 “케직 영성의 핵심은 그리스도인의 .. 2016. 1. 7.
[기고] 케직(Keswick)운동의 영성(2)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2015년 5월 20일 기사 (2) - 목차 - I. 케직운동의 시작: 역사적 기원 II. 케직사경회 III. 케직운동의 영성 --------------------------- II. 케직사경회 1. 제1회 케직사경회 1875년 7월 케직사경회(Keswick Convention)는 "성경적 성결의 증진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서 호수지방의 휴양도시 케직에서 역사적으로 열렸다. 옥스퍼드 집회에서 크게 은혜를 받고 “안식하는 신앙”(resting faith)을 경험한 캐논(Canon, 주교(主敎)) 배터스비(Thomas Dundas Hartford Battersby)가 이 브라이턴 집회에서 케직사경회를 계획하였고, 다음해 1875년 7월에 그가 시무하는 케직.. 2016. 1. 7.
[기고] 케직(Keswick)운동의 영성(1)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2015년 5월 13일 기사 (1) - 목차 - I. 케직운동의 시작: 역사적 기원 II. 케직사경회 III. 케직운동의 영성 머리말 오늘날 한국교회는 초창기의 거룩성과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 기독교 본래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하나의 대안이 1907년의 평양 대각성운동의 신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한국교회 초창기의 영성은 큰 틀에서 청교도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청교도영성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875년 성공회 목사 하트포드-베터스비(T.D. Hartford-Battersby)가 시무한 성 요한 교회에서 개최한 이래 오늘날까지 14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케직사경회와 연결될 수 있다. 케직사경회는 성공회 목사로서 강해설교..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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