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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한국교회

한국개신교의 배타주의, 과연 타자를 ‘악마화’하는가?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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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화쟁문화아카데미 종교포럼서 발표

 

2015년 3월 30일 기사

 

“배타주의로 인한 혐오스러운 역사와 가장 긴밀한 관계가 있는 종교라면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교(서방교회, 동방정교회, 개신교 교파 등)일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공산주의라는 정치적인 적그리스도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었지만 정부가 복수를 대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속 정치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다른 ‘적’을 필요로 했다.”

“구원의 종교임을 주장해 온 개신교는 사람들의 갈망에 다가서는 종교가 되기는커녕,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의 마음 속에 증오를 심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절망적 위기를 타자화된 적에 대한 증오의 행위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와 바울이 아닌 그들이 싸웠던 체제를 닮아가고 있고, 예수와 바울이 함께 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증오의 영을 심어주고 있다. 최근 한국의 개신교는 바로 이러한 ‘콘스탄티누스적 전환’의 길 한 가운데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한국 개신교를 걱정하는 핵심 논리다.”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은 지난 28일 오전 10시 불교 정신을 연구하는 단체인 화쟁아카데미가 개최한 ‘제2회 종교포럼’에 참여해 ‘개신교의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화쟁아카데미는 지난 2월 말부터 올해 말까지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 등 3대 종교를 중심으로 △(제1부) 무엇이 걱정인가 △(제2부) 경계너머:왜 걱정인가 △(제3부) 지금 여기: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섹션으로 세 종교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포럼을 기획,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엇이 걱정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제1부 포럼에서 개신교 발표자로 참여한 김진호 연구실장은 그리스도교의 배타주의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진호 실장은 “1세기초부터 3세기 말까지 빈민들의 천박하고 저속한 종교라는 낙인 아래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그리스도교가 현재 이렇게 극적인 반전의 주역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슬픈 아이러니”라며 “그리스도교가 권력의 맛을 본 4세기 이후 성서나 그 밖의 여러 문서들의 신학적 개념들은 누군가를 향한 적대감과 얽힌 배타주의적 언어로 속속 재해석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위기 속에 그리스도교가 갖고 있는 적대감의 언어는 대대적인 폭력의 불꽃을 일으켰다”며 “무수한 이단들이 발명됐고, 이웃 종교들은 이교도로 낙인 찍혔으며, 이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과 학살, 재산몰수 등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며 “이러한 배타주의적 재해석이 오랜 제국종교의 역사를 거치면서 마치 ‘본래부터’ 그랬다는 ‘기원의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교의 ‘배타주의’ 역사를 설명한 김진호 실장은 한국 개신교에서 나타나는 배타주의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20세기 역사에서 미국적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폭력성이 가장 잔혹하게 발현된 곳은 미국이 아닌 한국이었다”며 “공산주의라는 정치적인 적그리스도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었던 개신교도들의 활약으로 남한은 빠르게 극단적인 우편향 사회로 변모하면서 최악의 배타주의적 종교의 얼굴을 보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와 지속적으로 얽히면서 초고속 성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종교의 속성이 되어버린 ‘증오의 신앙’은 전혀 청산하지 못한 채, 현재도 배타주의 신앙의 프레임 속에 갇혀 이웃 종교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시키고,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악마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등 서로를 적대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1997년과 2008년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이 가장 야만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의 하나가 되고 있다”며 “사람들은 탈락할 것이 두려워 절망적인 생존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종교임을 주장해 온 한국 개신교는 사람들의 갈망에 다가가는 종교가 되기는커녕 이들의 마음 속에 증오를 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개신교는 자신의 종교를 제외한 타 종교와 그리스도인이 아닌 타자들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날 발표한 김진호 실장의 주된 내용을 아래에 요약 정리했다.

 

 

# 그리스도교 배타주의의 역사, 그 ‘기원의 신화’

그리스도교는 4세기 이후 권력을 맛보면서 여러 문서들의 신학적 개념들이 누군가를 향한 적대감과 얽힌 배타주의적 언어로 속속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적대감의 언어는 대대적인 폭력의 불꽃을 일으키면서 무수한 ‘이단들’을 만들어냈고, 이웃 종교들은 ‘이교도’로 낙인찍혔고, 이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과 학살, 재산몰수 등으로 이어졌다.

서기 1세기 초부터 3세기 말까지 지중해 지역에서 문자를 전유한 소수집단의 지식 권력이, 빈민들의 천박하고 저속한 종교라는 낙인 아래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그리스도교가 이렇게 극적인 반전의 주역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슬픈 아이러니다.

그리스도교 신학계에서는 이러한 전환의 결정적 기점이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이라는 점에서 그 전환을 ‘콘스탄티누스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 이전에도 신앙담론의 배타주의적 권력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본격화된 시기는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의 최고 통치자가 된 이후 그리스도교를 통치의 종교적 파트너로 삼게 되면서다. 즉, 로마황제의 파트너가 된, 이른바 ‘정통파 그리스도교’가 탄생한 것이다.

4세기부터 본격화된 이러한 권력화된 그리스도교가 점차 그 위상을 확장해 절정기에 이르게 된 때는 세속권력의 하위 파트너였던 관게를 전도시켜 최고 권력이 된 11, 12세기다. ‘콘스탄티누스적 전환’을 표제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제국화’에 대한 연구는 레이건과 부시가 집권하던 시대(1981~1993)에 활발하게 논의됐다. 이 연구들이 주목한 것은 권력화된 그리스도교의 전환이 ‘적대감의 종교’가 되는 결정적 계기였다는 점이다.

이를 단순화해 이야기하면 ‘콘스탄티누스적 전환’ 이전의 그리스도교에서 증오는 ‘왜’라는 물음과 결합돼 있었다. 예수나 바울에게서 드러나듯 그것은 자신들이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는 폭력과 배제의 역사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저항의 산물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적 전환’ 이후의 그리스도교는 ‘왜’라고 묻는 대신 ‘누구’인지를 묻는다. 결국 언제나 ‘적그리스도’는 존재하며 각 시대마다 하수인을 만들어냈다. 신학자들의 역할은 이들을 색출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색출은 정통파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 권력과 부를 배가시켰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정 집단을 이단 혹은 이교도로 낙인찍을 수 있는 권력이 공증되었고, 그렇게 낙인찍힌 집단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강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통파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이단심판관이 주도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신학에는 역사는 없고 시공을 초월하는 증오, 그리고 그 증오의 시대적 번안 행위만 가득하다.

이렇게 ‘콘스탄티누스적 전환’ 이후의 정통파 그리스도교 신학, 그 배타주의적 증으로 채색된 신학 담론의 한 가운데에는 ‘유일신 신학’이 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교 뿐 아니라 뿌리를 같이 하는 인접 종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배타주의적 증오의 신앙을 구성하는 중심 논리다. 이와 같은 유일신 신앙은 제국주의적 타자화 담론의 중심논리로 작동했다.

#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 역사

유럽의 그리스도교는 20세기 초에 자신들이 자행해왔던 가학적 배타주의를 청산하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에큐메니칼 신학 운동이 가장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전개된 성찰 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가학적 배타주의는 새로운 제국 미국에서 다시 왕성하게 부활한다. 사실 미국은 유일종교사회를 지배담론으로 유럽제국과는 달리 처음부터 국교 거부를 입법화했다. 즉, 법률상 미국은 유일종교사회이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일본의 종교학자 모리 고이치는 헌법과는 달리 미국사회를 추동하는 사실상의 국교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국교’라고 명명한 사실상의 국교는 바로 ‘개신교’다.

그런데 20세기 역사에서 미국적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폭력성이 가장 잔혹하게 발현된 곳은 미국이 아닌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은 미국발 개신교 중 가장 원초적인 배타주의적 언어로 무장한 근본주의적 개신교의 세례를 받은 대표적 나라다.

서북지역(평안도와 황해도) 장로교는 20세기 초 이후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성공한 개신교 종파였다. 해방 직후 북한의 개신교 신자수는 20~30만 명에 달했고, 남한은 1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여기서 주지할 것은 서북의 장로교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였다는 점이다.

 

 

해방 직후 북한 지역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패배한 뒤 개신교도들은 공산당으로부터 가혹한 정치적 탄압을 받았고, 대대적인 월남 현상으로 이어졌다. 북한 개신교 신자 중 무려 35~40%가 월남을 선택했다. 이는 남한 개신교 신자의 거의 맞먹는 수였고, 주로 젊은 남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심에 불탄 얼굴로 남한으로 왔다.

당시 미군정 당국이 조사한 남한 지역의 이념 성향은 전체의 77%가 좌편향으로 기울여져 있었다. 이런 좌편향 사회에서 미군정은 남한을 기독교 반공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이때 미군정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파트너는 개신교 세력이었다. 남한 사회에서 가장 친미적이고 극우적 성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북 출신의 장로교 신자들은 죽음을 불사할 만큼 열렬한 적극적 협력자였다. 그리고 개신교도들의 활약에 힘입어 남한은 빠르게 극단적인 우편향 사회로 변모했다.

1960년대 이후 개신교는 전혀 새로운 얼굴로 한국사회와 얽힌다. 물론 정치적인 소란스러움은 지양됐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개신교는 너무나 시끄러운 종교로 나타났다.

1960~1990년 한국 개신교의 교세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빌리 그레이엄 식의 부흥회(대규모 전도집회)와 조용기 식의 부흥회(기도원 혹은 기도원화한 교회에서 벌어진 발광적인 영성집회)로 소란스러운 종교가 됐다.

군사정권 아래서 집회, 결사에 대한 통제가 강력하게 실시됐다는 점에서 이러한 소란스러움은 종파의 특권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즉, 사람들의 일상적 생각에는 개신교가 정부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정부보다도 더 강한 존재인 미국으로부터 특별한 수혜를 받는 종교로 여겨졌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특권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문화적인 소란스러움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포착된다. 대중가요에서도 미군 전속가수가 더 우대되된 시절, 가장 미국적인 종교인 개신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시각을 자극하는 크리스마스트리나 청각에 호소하는 통기타와 싱얼롱으로 표상되는 포크음악 스타일의 복음성가는 교회 밖을 향해 과시적으로 전시됐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적대감은 과연 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콘스탄티누스적 전환’으로 종교의 속성이 되어버린 ‘증오의 신앙’을 한국 개신교는 전혀 청산하지 못했다. 한국 개신교는 제국종교에 대한 청산을 본격화했던 유럽의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여전히 제국종교를 선망했고, 그것은 포스트식민지 시대의 새로운 식민지성의 발현이기도 했다.

공산주의라는 정치적인 적그리스도교에 대한 증오심은 여전히 신자들의 영혼 속에 깊게 새겨 있었지만 정부가 복수를 대행하고 있으니 교회는 세속정치에 관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신앙은 다른 ‘적’을 필요로 했다. 이때 포착된 새로운 적은 이단과 이교 같은 종교적 범주에서 발견됐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이단이나 이교는 ‘전근대’로 표상되는 전통종교들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통파 그리스도교 세력에 의해 이단으로 지목된 집단들은 대부분 전통종교적 요소와 혼합주의적 성격을 지닌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리고 대표적인 전통종교들인 불교나 유교, 무속 등도 새로운 적으로 지목됐다.

개신교 신자들은 물론이고, 전 사회적으로 전통종교는 근대화를 지체시키는 낡은 종교라는 상식이 널리 퍼졌고, 개신교회는 미국적 이상이 한국에 실현되는 교두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하는 것은 이 ‘미국적 이상’이라는 것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로 번안해 썼다는 것이다. 이 용어의 개념화를 주도한 이들은 주로 개신교 지식인들이었다. 미국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선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선망이었을 뿐, 아직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은 권리와 풍요로 제약돼 있었다. 하나는 북한 공산주의자와의 싸움을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궁핍을 초래한 구습으로서의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박정희는 이 현실로서의 자유민주주의의 반공주의적이고, 반전통주의적인 성장 지상주의, 그것을 위한 권리의 제약을 함축한 민주주의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 지식인들이 개념화한 자유민주주의에는 미국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함의와 이승만-박정희를 잇는 권위주의, 그리고 박정희의 성장 지상주의를 한데 묶는 이념적 지향이 숨어 있다.

이것은 한국의 정통파 개신교의 친미적, 반전통주의적, 성장 지상주의적 신앙이 야기하는 배타주의와 정확하게 부합된다. 그런데 이 시기 이러한 정통파 개신교의 흐름에 대한 저항도 비록 소수이지만 존재했다.

첫째는 공산주의자를 옹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념적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는 방법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신앙운동으로, 둘째는 전통의 가치, 전통의 종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대화를 강조하는 신앙운동으로, 셋째는 성장 지상주의가 낳은 사회적 격차로 빈곤층을 증언하고 옹호하는 신앙운동이다.

 

 

# 한국 개신교 현재의 ‘배타주의’

1990년대까지의 성장에서 멈춘 한국 개신교는 현재 마이너스 성장으로 치닫고 있다. 2002~2008년 사이 매년 1,300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각 교단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의 취업난은 극심해졌다. 각 교단에 소속된 미자립 교회들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가 잇따랐다.

또 최근에는 이탈교인 문제가 아니라 재적 교인의 출석률 저하를 다루는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규모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오늘의 개신교가 겪고 있는 위기는 규모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재 시민사회로부터 교회는 청산 대상으로 낙인찍힌 대표적 범주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신교에 대한 이러한 따가운 시선은 교회와 성직자들에 관해 숱한 추문을 공론화하게 했고, 이것은 개신교의 신망도를 더욱 낮게 했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자존성에 깊은 상처를 냈다.

이런 위기에 대해 개신교의 일각에서는 통렬한 성찰과 개혁을 모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에 비추인 교회의 모습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퇴행적인 모습이 두드려져 보인다. 성직자의 성추행 사건, 공금 횡령과 배임 사건, 심지어 돈세탁 사건 등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퇴행적 행동들이 연이어 들춰지고 있다.

게다가 정부나 지자체 장들의 성시화 선언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이는 장로대통령 만들기 운동, 명분 없는 기독정당 만들기 운동 등으로 나타난 질 낮은 정치세력화, 그리고 아프칸 피랍사태로 크게 주목받은 문제적인 해외선교 열풍. 이것들은 개신교 신자들을 재결속시키고, 실추된 자존성을 높이는데 일정한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얼마 안가서 부작용으로 더욱 위기를 깊게 했다.

그런데 또 다른 퇴행적 행보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즉, ‘증오의 종교’로서의 성격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출현한 이러한 배타주의적 경향 강화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한기총에 참여한 이들의 상징적 위상은 남한 개신교 전체를 다시 이념 프레임으로 재편하게 했다.

 

 

한기총의 상징적 위상이 불러일으킨 주된 효과는 무수한 미시동원체들을 생성시키거나 재활성화했다는 점이다. 이들 단체들은 미시적인 영역에서 이념적 적그리스도를 찾아내고, 그들을 향한 공격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미시동원체들은 지난 1945~1960년 사이에 공격적 개신교도들이 벌인 전면전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망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다시 내걸은 단체의 태동이다. 단, 이들의 주된 공격의 장이 사이버 공간이라는 점에 1940, 50년대의 공격적 기독교 신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 극우적 미시동원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종북 마케팅의 자원이 되었다.

최근 이러한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신앙은 이념 프레임을 넘어 무슬림을 적으로 삼는 인종주의적 프레임(제노포비아)과 성소주자를 적으로 하는 이성애주의적 프레임(호모포비아)으로 지형을 확장시키고 있다. 또한 이웃 종교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대중음악, 영화 등 문화적 영역에서도 악마화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공격성은 사회적으로 실추된 개신교의 위상을 반전시키는데 거의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있다. 또한 위축된 교세를 다시 성장기조로 전환시키는데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더욱이 상처 입은 신자들의 자존성을 회복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다만 공격적 활동가 신자들을 활성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는 현재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이 가장 야만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려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무한생존게임에 올인했다가 이제는 그 게임에서 탈락할 것이 두려워 절망적인 생존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거기에서 탈출할 계산 가능한 미래를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누구는 몰락했고, 누구는 몰락의 예감 속에 고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종교적 해방의 꿈을 꾼다. 하지만 구원의 종교임을 주장해 온 개신교는 사람들의 갈망에 다가서는 종교가 되기는커녕,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의 마음 속에 증오를 심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절망적 위기를 타자화된 적에 대한 증오의 행위에 몰입하게 한다.

고통당하는 이를 위로하고, 죄인을 사면하며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에게 축복을 선포했던 예수, 그리고 그 예수의 정신을 더욱 발전시켜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실천하면서 신학적 체계의 틀을 놓았던 바울. 그들은 사회 속에 타자를 증오하고 하고, 그러한 배제의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체제와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배타주의적인 정통파 그리스교는 예수와 바울이 아닌 그들이 싸웠던 체제를 닮아가고 있고, 예수와 바울이 함께 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증오의 영을 심어주고 있다. 최근 한국의 개신교는 바로 이러한 ‘콘스탄티누스적 전환’의 길 한 가운데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한국 개신교를 걱정하는 핵심 논리다.

 

 

한편, 아래는 화쟁아카데미가 발표 이후 진행된 논평과 토론에 관한 정리글이다. 화쟁아카데미에서 보내온 자료를 싣는다.

발제에 대한 논평에서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은 “개신교가 타자를 악마화한다면 가톨릭은 자신을 천사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내가 천사라고 남이 악마인 것이 아니고 남을 악마로 지목한다 해서 내가 천사인 것은 아니다”라며 “타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아니라 권력과의 담합을 통해 성장해온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배경에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였다.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리를 가진 종교의 교인이 왜 악마를 만들어내는지 묻고 싶다”며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본래 성격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성택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는 “배타주의는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성향이 아닌가 한다”며 “또한 배타주의의 핵심이 증오라면, 증오의 이면에는 열정적인 사랑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신교는 근대 한국에서 부정적 영향만큼이나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에 반해 불교가 보여준 것은 냉소와 수동적인 반응 밖에 보여준 것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개인 신앙으로서의 종교는 배타이고 절대일 수밖에 없다. 내 믿음은 상대적일 수 없으며, 오늘날 사회는 다수의 절대가 병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라고 논평하였다.

이후 토론은 총 네 가지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자기 정체성과 종교의 관계이다. 김진호 실장은 “내가 주목한 것은 근대 한국에서 개신교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했는지에 관한 것”이라며 “개신교가 근대 한국사회의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종교와 권력이 영합하게 되면 일어나게 되는 잘못이라고 본다. 이는 가톨릭이나 불교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떠한 종교라도 권력과 영합하여 배타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조성택 대표는 “그렇다고 종교에서 배타주의적인 성격을 버릴 수는 없다.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다른 이들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절대가 복수라는 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사적영역으로서의 신앙과 공적 영역으로서의 종교를 구분하자”고 제안하며, 종교에 대한 ‘시민사회의 룰’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김근수 소장은 “배타성이 이웃종교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 간의 대화를 일상적인 전투장으로 만들 뿐이다.”라고 지적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두 번째 주제는 종교가 배타주의를 요구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였다. 김진호 실장은 “그리스도교가 처음부터 배타주의적인 성격을 띄는 것은 아니었다”며 “배타주의가 성장한 것은 교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여러 교리에서 어떤 것을 취사해서 재구성했는가의 문제”라며 그리스도교가 공격적인 성격을 띈 유일신 신앙으로 발전하는 것이 필연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조성택 대표는 “불교는 배타주의를 전면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교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역사 속에서 주류종교로서 기능하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권력과 관계한다면 불교도 배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김근수 소장은 “유일신론은 배타주의로 가는 나쁜 길이다. 현대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은 종단을 수호하는 수호신처럼 여겨지는데, 가난과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 번째 주제는 정전(Canonization)의 문제였다. 김진호 실장은 “정전화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정전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교권화’와 관련되어 있다. 성경의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이 정전의 성립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정전의 성립은 상당히 불행한 문제이다”라고 비판하였다.

김근수 소장은 “가톨릭 내부에서 오직 고위 성직자만이 성서를 해석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신학자는 모두 성직자였다.”며 “이들의 문제는 가장 권력을 탐한 계층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유능한 평신도 신학자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불교에서는 정전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본래부터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정전의 논의가 근대 불교학에 들어온 것은 서구 불교학자들이 신학의 방법론을 도입하면서 부터이다. 우리가 소위 ‘근본불교(Original Buddhism)’라고 하는 것도 근대 불교학의 산물이다.”고 평가하였다.

 

 

마지막 주제는 정치과 종교의 관계였다. 김진호 실장은 “권위, 혹은 권력과의 연관은 종교의 필연적인 부분이 있다. 문제는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자원을 독점하려는 소위 ‘나쁜 권력’에 있다. 나쁜 권력의 두 가지 속성은 ‘자원의 독점’과 ‘장기간의 유지’이다. 이것은 타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근수 소장은 “가톨릭 내부의 권력은 성직자가 독점하고 있으며 평신도는 구경꾼의 위치에 있을 뿐이다. 진리와 권력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조차 어떠한 갈등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복종,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가톨릭 내부의 분위기는 쇄신되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조성택 대표는 “권위와 권력은 다른 의미이다. 오히려 권위는 만들어 가야하며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 내부의 문제는 종교적 권위가 떨어지고 많은 승단 내의 문제들을 세속법에 기대어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다.”며 “사실 종단은 근대사회에서 법에 의해 조직된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권력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여기에 종교적인 권위를 부여하려고 하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역으로 종교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권력에 대한 추종과 저항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보는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종교에 필요한 프레임은 ‘누가 고통받고 있는가’라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김진호 실장은 “최근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 이때 종교가 앞장서서 분노와 공격을 조장하고 특히 개신교는 증오의 대상 - 대부분 자신들보다 약자들인 - 을 지목해준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에 대항하는 신자나 성직자들이 있지만, 결국 개신교의 프레임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러한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를 조장하고 있는 권력세력이다.”고 주장하였다. 김근수 소장은 “오히려 악마를 제대로 식별해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권력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가톨릭은 오히려 권력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어지는 플로어 토론에서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배타주의의 매커니즘, 선악의 문제, 근대 종교가 가지고 있는 내재화된 배타주의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은 약 세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각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종교 내부의 문제들과 원인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다음 종교포럼은 제1부 “무엇이 걱정인가”의 마지막 순서로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이 “가톨릭의 권위주의”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맡을 예정이다. 4월 25(토) 오전 10시부터 열리며, 참여 신청은 홈페이지(www.hwajaeng.org)를 통해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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