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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철학자가 보는 설교, “이런 설교 듣고 싶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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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연구(7) * 


 

 

박순영 박사, “신자들을 더 깊은 체험으로 안내하는 설교자가 되어야”

 

2014년 7월 7일 기사

 

“철학자로서 설교자에 대해 요청하는 것은 말씀선포에서 말씀이 지시하는 ‘더 깊은 곳’, 즉 더욱 근원적인 체험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박순영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는 “대체로 설교자들은 텍스트 의미의 심층적 해석이나 주제 개념의 심층적 이해를 돕도록 주제와 연관시켜서 회중과 깊은 관계를 매개시켜 주지 못하고, 그냥 당위적인 설명 또는 동어반복적인 설명에서 끝나고 있을 때가 가장 아쉽다”며 “설교의 메시지가 충분한 내용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의미를 재해석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동어반복이라 부른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그냥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한다면 단어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교자는 구원에 대한 신비스런 체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지고 최종의 고백으로 끌어가야 하며, 그것을 통해서 신자들을 더 깊은 체험으로 안내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지 상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 교회 강단설교의 현주소

그렇다면 한국 교회 강단설교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신학자, 목회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성차별적이고 권위적인 설교, 정치적인 성향의 설교, 설교를 왜곡시키는 돈의 힘, 교회의 회중에 지나치게 영합하는 설교, 설교에서의 부적절한 언어행위 등이다.

특히 정용섭 목사의 경우 ‘기독교 사상’(2003년, 4월호)을 통해 한국 교회 강단설교에 대해 ‘대중추수주의’라고 평하며, 설교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한 바 있다. 박순영 박사는 그의 비판에 대해 설명했다.

박 박사가 인용한 정 목사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교회 유명 설교자들의 문제점은 첫째, 성서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난 역사적 사건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 일반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성서를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끌어들이는 아전인수적 해석이다.

둘째, 복음을 지나치게 실용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왜곡이다. 말하자면 복음을 교회성장이나 신자들의 도덕성을 강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 지나치게 신자들에게 죄의식을 불어넣어 죄책감을 갖도록 하는 편향된 인간론을 끌어들이는 왜곡이다. 이것은 죄의식과 자기만족의 왜곡인데, 새벽기도회에 빠졌다는 죄책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성수주일을 못했다는 불안감이 신자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설교는 신자들의 이런 약점을 직간접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신자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넷째, 천박한 시대정신과의 결합이다. 한국 교회에 거의 일반화되어 있는 성공신화 부추기기와 엘리트주의다. 물론 겉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라고는 하지만 의식 중에는 인간중심주의, 업적주의, 자기만족주의가 가득 차 있다. 이런 설교는 비록 종교적인 단어를 나열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성취해야 할 도덕성, 사회봉사, 능력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세속적이다.

다섯째, 성서주석이 결여된 설교의 왜곡이다. 이것은 설교가 교양강좌 수준의 설교이거나 도덕설교에 그친다는 것이다.

# 설교를 위한 성서해석

박 박사는 이와 같은 한구 교회 강단설교의 문제점에 대해 무엇보다 성서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교는 성서 텍스트의 제대로 된 해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그는 “한국 교회 강단설교를 바로 세우려면 성서해석의 부재를 극복해야 한다”며 “성서해석 없는 설교는 공허하고, 영성 없는 설교는 맹목이라는 외침에 주목하고, 올바르게 성서를 해석하고, 재생시켜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 박사는 “설교자는 자신의 지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동시에 자신이 이해한 것을 회중의 지평에로 옮기는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하나님 말씀 앞에, 그리고 성서 텍스트 앞에서 설교자는 깊은 신앙적, 영적 체험을 통해서 성서를 해석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두 번의 지평융합을 이루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먼저 설교자가 말씀을 만나는 순간에 설교자의 지평과 성서의 지평이 융합되고, 자신이 해석한 성서의 말씀을 회중에게 전달할 때, 회중의 지평에서 다시 한번 더 지평의 융합인 이해와 해석이 이루어진다는 것.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이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설교자 자신이 만난 말씀의 생생한 체험을 다시 전달하면서 얼마나 회중의 지평에서 그 말씀이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가능해지도록 설교자는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노력하는 매가자로서 서 있어야 한다. 그는 “설교자의 사명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에서 얻었던 것과 같은 ‘체험의 비시간적인 동시성’의 감동을 회중들에게, 그들이 서 있는 지평을 향해서 전달하는 것”이라며 “만약 은혜로운 설교가 완결되는 순간에 설교자가 성서 안에서 만난 하나님의 경험과 회중들의 영혼의 경험에 지평융합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즉, 1세기 사도 바울에게 일어났던 회심의 체험은 사도 바울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같은 메시지로 21세기에 살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이 시간에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 나는 이런 설교를 듣고 싶다

그렇다면 철학자인 박 박사는 한국 교회 강단에서 어떤 설교를 듣기를 원할까.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로 말씀하신 성서 텍스트는 신자들 신앙적 삶의 시작과 끝이고 모든 것의 원천”이라며 “성서와 밀접한 관계를 생활화하는 이런 저런 방식을 설교의 핵심에 세워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성서 텍스트와의 만남을 준비했던 설교는 신자들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한다. 말재주 좋았던 선생님의 강의내용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텍스트와 씨름하게 했던 선생님의 강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설교에서 성서 텍스트를 흥미롭게 다가오게 하고, 그 깊은 맛을 안겨주는 설교자가 제일 훌륭한 설교자라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설교 메시지나 설교주제에 긴밀하게 관련돼 있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리사와 교회사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해주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설교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서 설교주제를 정하여 회중에게 편식을 시키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그는 “성서해석은 진지한 성서주석을 참고하면서 시작한다. 훌륭한 주석들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한 기록들이기 때문에 성서의 깊이에로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된다.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원어를 읽어내는 형식적이고 현학적인 언어놀이가 아니라 진지하게 글자 뒤에 숨어있는 뜻을 해독해 내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밝혀내는 신비로운 암호해독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설교자들은 회중, 즉 개개인의 신자들이 스스로 자기의 이해지평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단답형의 신자들로서가 아니라 신자들 스스로 질문하도록 하고, 스스로의 지평을 형성하고 자신의 지평을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성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교육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복음과의 만남이 완결될 수 없는 것으로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신앙교육 프로그램(일대일 양육, 제자훈련, 알파 등의 프로그램)은 신앙을 심화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박 박사는 “한국 교회 강단이 ‘더 깊은 곳’, 곧 더욱 근원적인 체험을 성도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위의 내용은 연세대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이 지난 2014년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설교자가 묻고 성서가 답하다’를 주제로 개최한 2014년 미래교회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박순영 박사의 ‘이런 설교를 듣고 싶다’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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