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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한 권의 신학

<책 안의 한 줄> 구원은 ‘사후 천국행’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변화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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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중에서(IVP)

 

 

 

 

1. ‘오시는 심판관이라는 예수님의 그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타협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특징이다(p223).

 

2. 믿음에 의한 칭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게 될 미래의 판결을 예견하면서 현재에 일어나는 일이다(p227).

 

 

 

3. 복음의 메시지는 재림이 없이는 완전하게 서 있을 수 없다. (p230).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 직후에 어떤 상태로 들어가든지 그 이후에 오는 새로운 육체적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죽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을 일컫는 말이었다(p241).

 

4. 새로운 육체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선물이 될 것이다(p256). 부활은 현재 우리가 복음을 위해 열심히 하는 일이 낭비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미래에 그 일은 완성될 것이며, 성취될 것이다(p257).

 

 

 

 

5. 구속받은 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죽음 이후의 ‘천국행’이 아니라 육체가 부활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p266).

 

6. 하나님이 어떤 인간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고, 어떻게 그 일을 하실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이간을 통해서 자신의 창조계를 구속하시고 회복하실 것인지, 그리고 모든 것의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그 과정의 일부로서 인간들도 구원하실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p290).

 

7. 부활의 요점은 죽는다고 해서 현재의 육체적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죽은 육체를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시키실 것이다. 현재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 육체를 위해 위대한 미래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p298).

 

8. 새 창조에 대한 약속이 그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사명에 대한 문제다(p299).

 

 

 

 

9. 우리가 ‘구원’을 ‘사후 천국행’의 관점에서 보는 한, 교회가 하는 주된 일은 그 미래를 위해서 영혼을 구원한다는 관점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신약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그 새롭고도 영광스러운 물리적 구체성을 지닌 실재에 우리가 동참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부활시키겠다는 약속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지금 여기에서 하는 교회의 주된 일은 그 관점에 따라서 다시 생각되어야만 한다(p304).

 

10. ‘구원’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궁극적 구원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우리의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존재가 구원받는 것이다(p306).

 

11. 구원의 온전한 의미는 (1)단지 ‘영혼’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것이며, (2) 미래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것이며, (3)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교회의 전체ㅅ적인 사명을 위한 역사적 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p309).

 

12. 구원은 인간을 위한 구원이면서 동시에 구원받은 인간을 통한 더 큰 세상의 구원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받은 사명의 굳건한 기초다(p315).

 

 

 

 

13. 현재의 세계가 존재하는 한 창조주 대신에 창조물을 예배할 우상숭배의 위험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우상숭배는 언제나 선한 것의 왜곡이다. 욕구와 욕구를 부추기는 것을 숭배하는 탐심은 선한 창조물을 제대로 즐기라고 하나님이 주신 본능을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우상숭배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시간-공간-물질을 그것 자체로 악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기고 거절하는 이원론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p324).

 

14. 교회는 새 창조에 대한 희망을 믿는 가족이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성이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온 지역 사회로 뻗어나가기 위한 거점이 되어야 한다(p351).

 

15. 전도는 교회가 정의의 일(지역 사회 안에서 잘못을 바로잡는 일),과 아름다움의 일(창조의 영광과 앞으로 드러날 영광을 강조하는 일)에 자신을 바친다면 가장 잘 이루어질 것이며, 그러한 전도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너희가 보여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새로운 세상이 있는데 그 세상은 이미 시작됐고, 치유와 용서와 새로운 시작과 신선한 에너지로 작동하는 세상이라고?” 교회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p351~352).

16. 부활은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위에 주님이신 예수님의 주권에 기초해 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명을 의미한다(p356).

17. 부활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셨던 그 일을 이제는 제자들이 온 세상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는 사건이다(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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