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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선교와 신학

[원문] WCC 부산총회 이후의 복음화와 선교이해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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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7일 기사

 

하단의 내용은 기독교학술원이 지난 5월 2일(2014년) ‘부산총회 이후 WCC의 영성’을 주제로 개최한 ‘제21회 영성포럼’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제공 단체(자)와의 협약에 의해 데오스앤로고스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하지만 모든 저작권은 제공 단체(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무단전제 및 불법적인 도용은 추후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합니다.


WCC 부산총회 이후의 복음화와 선교이해 / 이상규 박사(고신대 교수)

시작하면서

1948년 8월 23일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된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는 금년으로 66주년을 맞게 되었고, 지난 2013년 10월의 부산총회까지 10회의 총회를 개최한바 있다. WCC는 창립 당시부터 격한 논쟁에 휩싸였고, 복음주의 교회나 단체 혹은 개인들로부터 신학적 자유주의, 용공주의,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 혹은 동성애를 수용하는 반기독교적인 집단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WCC는 교회간의 연합, 전쟁과 폭력, 독제권력에 대한 저항, 사회정치적 위기 해소, 인종차별 철폐,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 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 재난에 대한 구호 등 여러 영역에서 기여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WCC는 전도와 선교 등 복음의 외연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을 기울여 왔고 특히 제10차 부산총회 이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떤 변화 혹은 발전이 있었을까? 이 글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해 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부산총회 이전의 WCC의 전도 혹은 선교에 대한 관심을 3가지 측면, 곧 역대총회의 주제, WCC의 형성과 그 역사, 그리고 WCC의 선교문서를 통해 검토하였다. 이어서 WCC부산총회가 전도 혹은 선교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소개하고, 부산 총회에서 발표된 선교관련 문서를 통해 WCC의 전도 혹은 선교 이해가 어떠한가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WCC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양측의 건실한 토론을 고려하여 이글은 보수주의 혹은 복음주의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기술하였다. 오늘 모임이 WCC부산총회 이후를 진단하는 성격임을 고려하여 WCC부산총회의 경과, 반대운동, 그리고 부산교계의 반응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1. WCC의 전도 혹은 선교이해

일반적으로 WCC는 전도 혹은 선교로 통칭되는 복음의 외연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실제로 WCC는 제1차 총회에서 채택된 헌장(Basis)에서 “세계교회 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 받아드리는 교회들의 친교이다.”(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a fellowship of Churches which accept our Lord Jesus Christ as God and Saviour)라고 규정하고 있어 교회들 간의 ‘친교’가 WCC가 지향하는 에큐메니즘의 본질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비록 WCC가 연원적으로 1910년의 에딘버러에서 모인 선교대회(Edinburgh Missionary Conference), 그리고 1921년의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에 뿌리를 두고 있다할지라도 복음의 외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전도 혹은 선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용어의 정의에서부터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복음주의 계열에서 말하는 전통적 의미의 전도 혹은 선교관과는 다른 의미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지향한다할지라도 영혼구원 혹은 복음의 외연이 WCC의 주된 관심사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WCC는 개신교와 정교회만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까지 어우르는 거대한 조직으로써 신앙고백적 일치보다는 외형적 연합을 추구하였고, WCC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현안들, 곧 전쟁과 폭력, 파시즘이나 군국주의 혹은 국가주의의 위협, 인권, 인구폭발, 핵무기의 위협, 생태계와 환경, 도시화와 산업화 등 현대사회에서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시도하면서 교회의 사회적 기여를 중시해 왔다. 이런 제반활동을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 광의의 혹은 포괄적 의미의 ‘선교활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실제적으로 WCC가 복음의 전파나 영혼 구원에 관심을 표명해 왔다고 볼 수는 없다.

 

 

역대 총회의 주제

이런 무관심은 2006년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모인 제9차 총회까지 WCC의 주제들을 고찰해 보면 더북 분명해 진다.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주제로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모인 제1차 총회는 전후(戰後)의 혼란한 상황에서 세상에 대한 교회의 공동의 책임을 환기시켜준 회의였고, 교회는 정치적 사회적 이념을 초월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유보한 회의였다.


1954년 에반스톤에서 “세상이 소망하는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소집된 제2차 총회는 탈식민지화와 신생국의 국가건설 문제에 집중했다. 이것은 1948년의 동베르린의 봉쇄, 1949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성과 냉전 구조, 중국의 공산화, 인도네시아의 독립, 한국 전쟁 등 당시의 정치현실에 대한 응답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는 교회의 책임이 강조되어 선교보다는 사회적 문제가 중시되었다.

1961년 뉴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제로 모인 제3차 총회에서는 4개의 동방정교회를 포함한 24개 교회가 새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증거 섬김 하나됨 등 3가지 주제가 논의되었다. 이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들(타종교)에게 말씀하시며 또한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과 그리스도에 대해 대화를 가져야 한다.”며 종교 간의 ‘대화’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1968년 웁살라에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는 주제로 모인 제4차 총회는 사회정의와 경제정의가 중요한 이슈였다. 월남전의 발발(1965), 중동의 6일 전쟁(1967), 체코의 민주화(1968), 마틴 루터 킹의 암살(1968)과 같은 사회적 변화의 와중에서 교회일치와 증거 보다도 ‘세상’에 더 큰 관심을 표명했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고, “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인과 대화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독특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며 타종교와의 대화가 중시되었다. 이런 기조에서 1977년부터 WCC는 회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회의를 지원했고, ‘다른 신앙들’이라고 부르던 타종교를 ‘살아 있는 신앙들’(Living faith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케 하시며 연합하신다”는 주제로 1975년 나이로비에서 모인 제5차 총회는 남미나 제3세계에서 일어난 자유와 해방운동, 해방신학 흑인신학 혹은 여성신학의 등장으로 구조악 제거를 위한 사회구원, 인종 및 성차별 철폐, 인간화 등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로잔대회에 대한에 대한 응답으로 복음전도와 사회행동을 동일하게 강조했으나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다른 종교에 나타나고 계신지 그렇지 아니한지, 또 어떻게 나타나고 계신지에 대해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상호이해와 실제적인 협력의 수단으로서 타종교인들 및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자들과 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확신한다.”고 했다.


1983년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이라는 주제로 벤쿠버에서 모인 제6차 총회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적 억압,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 인권유린, 핵무기의 개발 등을 생명살상세력으로 규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확인했다. ‘생명’은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었으나 영적 차원에서 강조되지 못했다. 특히 이 총회에서 타종교인들이 초청되었고 종교간 대화가 강조되었다. 동시에 “타종교인들 가운데서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인정한다.”고 했다. 이전에는 교회 전통에 따른 각기 다른 네 가지 형태의 성찬식이 거행되었으나, 이제는 리마예식서(Lima document)에 따라 공동성찬식이 거행되었고, 예배의 일치는 범교회적인 차원을 넘어 범종교적 성격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전통적 의미의 영혼의 구원, 교회의 설립과 같은 교회의 증거의 사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호주 캔버라에서 모인 제7차 총회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환경문제와 생태계, 창조신학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생태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강조되었다. 이 총회는 정현경의 초혼의식과 주제강연으로 WCC는 종교혼합주의라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을 정도였다. 이 총회에서는 타 종교와의 대화 자체가 기독교적 증거이며 기독교적 삶의 양식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라- 소망 중에 기뻐하자”는 주제로 모인 제8차 총회는 지구화(globalization)의 문제가 주요한 이슈가 되었고, WCC의 에큐메니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2006년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9차 총회 주제는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혁하소서”였다. 이 총회에서는 내적으로는 에큐메니칼운동의 위기 극복, 외적으로는 경제정의, 환경파괴, 교회일치, 다원적 종교상황에서의 기독교의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하게 취급되었을뿐 복음화의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은 시도되지 않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처럼 WCC 총회의 중요관심사는 교회가 처한 사회현실에 대한 성찰로써, 창립총회에서부터 뉴델리총회까지는 ‘세상 속에 있는 교회’가, 웁살라총회 이후에는 ‘사회 변혁 혹은 해방적 역할’이 강조되었다. 특히 웁살라총회 이후에는 전통적인 전도 혹은 선교 보다는 타종교와의 대화가 더욱 강조되고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죄나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이나 전도나 선교가 WCC 총회의 중심주제로 취급되거나 중시되지 못했다. 이런 점 때문에 WCC는 복음주의자들로부터 복음전도를 제대로 강조하지 못했고, 복음화를 인간화, 사회적 해방 혹은 타종교와의 대화로 혼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복음전파에서 타종교와의 대화까지

실제로 WCC는 복음전도에 대한 관심보다는 타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거나 우선시해 왔다. 이 점은 WCC의 역사에서 잘 드러나 있다. 앞에서 지적한 바이지만, 연원적으로 볼 때 1910년 에딘버러에서 모인 세계선교대회는 교회연합운동의 시작이 된다. 이 대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1,200여명의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각 지역의 선교현황을 보고받고, 선교에 따른 문제점을 함께 토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회의였다. 한국에서는 김활란, 윤치호, 그리고 만주에서 ‘예수셩교젼서’(Ross Version) 역간을 주도했던 존 로스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 문서를 보면 로스가 당시 선교계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대 안에 전 세계의 복음화”가 이 회의의 표제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방인의 개종과 교회의 설립 등 복음의 외연이 중요한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선교대회는 1921년의 국제선교협의회(IMC) 조직의 토대가 된다. 1928년에는 IMC 예루살렘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부터 전통적인 의미의 복음전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복음전도가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포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논쟁점으로 대두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타종교는 비록 기독교보다 열등하지만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으며, 기독교는 타종교의 부족을 보완, 완성시켜 준다는 소위 ‘성취설’(fulfilment theory)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대회는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를 진리와 거짓으로 보다는 우월과 열등의 관계로 이해하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촉구하였다. 이것은 변화의 조짐이었다.

1930년대는 이 변화가 심화되는데, 이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이 사례가 1932년 윌리엄 호킹(William E. Hocking)에 의해 제안된 『선교의 재고』(Re-thinking Missions)였다. 이 보고서는 “세상을 향한 복음전파가 선교”라는 인식의 전통적, 고전적 선교관의 재고를 요청한 것이다. 록펠러 재단의 선교연구 기금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순방한 호킹은 그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중국의 유교, 인도의 힌두교, 일본의 신도(Shintoism)는 모두 그 나름대로 그 문화와 전통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으므로 여러 종교 간의 관계는 앞으로 점진적으로 함께 진리를 탐구한다는 형태를 취해야 마땅하고 선교사는 이러한 비기독교적인 여러 종교의 멸망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와 계속 공존하면서 궁극의 목표를 향하여 성장하기 위하여 서로 자극하며 가장 완전한 종교적 진리에 있어서의 일치를 기대해야 한다.” 호킹은 동양종교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기독교 선교는 유교도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유교도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므로써 전통적 기독교 선교관의 포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선교의 재고였다.

 

 

1938년 인도 마드라스 탐바람(Masras, Tambaram)에서 모인 제3차 선교대회에서는 복음의 절대성을 경시하지는 않았으나 타종교와 문화가 중요한 의제로 취급되었고 타종교의 ‘경험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1947년 캐나다 휘트비(Whitby)에서 개최된 제4차 대회에서는 ‘협력’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었다. 즉 선교사와 비선교민과의 전통적인 수여자(受與者)관계는 끝나야 하고 이재는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하는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타종교와의 대화를 더욱 촉진하였다.

1952년 독일 빌링겐(Willingen)에서 개최된 제5차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이 등장했다. 이것은 선교를 교회의 영역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전 영역으로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선교는 전통적 의미의 복음전파라는 개념에서 인간 해방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1958년 가나공화국의 아크라(Accra)에서 모인 제6차 대회를 전후하여 IMC는 WCC와의 통합을 논의하게 된다. 소모적인 국제회의를 줄여 단일화하자는 것이 통합의 중요한 동기였다. 이 때 통합을 찬성한 대표적인 인물이 프린스톤신학교 교장인 매카이(John Mackay)였다. 남미선교사 출신이자 IMC 의장이었더 매카이는 통합을 통해 WCC가 세계선교를 핵심과제로 삼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영국성공회의 교회선교회(CMS) 총무였던(1942-1963) 막스 와렌(Max Warren)은 통합을 강하게 반대했다. 선교단체는 교회와 분리된 조직으로 남아 있어야 선교사역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WCC와의 통합은 선교활동의 독자성을 상실한다고 보았다. IMC 부회장으로 활동한 바 있는 한국의 김활란도 통합을 맹렬하게 반대했다.

IMC는 근본적으로 선교지향적인 복음주의 단체인데, WCC에 통합될 경우 복음전도의 열정이 약화될 것을 유려했기 때문이다. 격한 찬반논란이 있었으나 1961년 뉴델리회의에서 통합이 이루어져 IMC는 WCC의 ‘세계선교 및 전도국’(The Divi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이 되었다. 결국 통합에 반대했던 이들은 참여를 거부하였고, 반대로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이 옵저버로 가담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 WCC 내에서 복음주의적인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매카이의 기대와는 달리 전도 혹은 선교에 대한 이상은 현저하게 감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IMC가 가졌던 복음주의적 정체성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이런 변화는 그 이후의 WCC총회에 그대로 드러난다. 1961년의 뉴델리총회에서는 타종교를 ‘산 신앙’(living faith)으로 표현함으로서 대화를 더욱 권장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타종교에 대한 ‘선교’는 ‘대화’로 대치되었다.

 

 

이런 경향성은 1968년 웁살라에서 개최된 WCC 제4차 대회에서 더욱 가시화되었다. 복음적 선포는 타 종교와의 대화로 신속하게 대치되었고, 선교는 인간화, 사회해방적 형태로 인식되었다. 이제 WCC의 선교의 핵심 개념은 하나님의 선교이며, 이것은 전통적인 영혼구원보다는 가난과 불의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인간 해방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 이런 경향성이 보다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 1972년 방콕에서 개최된 선교대회였다.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을 주제로 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에서 전통적인 선교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였고, 부정과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이 선교의 주요한 논제가 되었다. 즉 구원이란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악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보아 ‘사회구원’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런 정신이 1975년 나이로비에서 모인 제5차 총회에서 두드러졌다. 총회는 방콕대회가 제안한 선교유예(모라토리움)을 수용하는 대신 선교의 동반자적 관계(partnership in mission)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오늘의 복음’의 의미는 개인의 회심의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 해석 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선교는 죄로부터 구원을 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변혁과 해방운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총무인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복음전파는 세상 안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 관련 된다.”고 보았다.

존 스탓트(John Stott)는 나이로비총회 이후 “복음전도가 이제는 사회적 정치적 해방의 요구로 인해 퇴색해가는 듯이 보인다. 우리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세계선교를 위해 더 이상 마음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WCC의 전도에 대한 무관심에 우려를 표했다.

이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전통적 의미의 전도나 선교는 WCC 역사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진술되고 해석되었고, 결과적으로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이 중시되어 오늘에 와서 WCC는 종교다원주의 혹은 종교혼합주의라는 비난을 듣게 된 것이다. WCC 일각에서 제기된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전도, 그리고 전도의 의미를 무력화시킨 상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결국 WCC에서 복음전도나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은 매우 소홀하게 취급되었고, 복음전도를 약화시켰고, 심지어는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빌리 그래함이 1966년 베를린대회를 개최하여 전통적 의미의 전도개념을 재확립하려고 했던 것은 이와같은 WCC의 변화에 대한 응답이었다. 또 복음의 외연에 대한 WCC의 무관심은 존 스탓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복음주의자들이 1974년 로잔대회를 개최한 배경이 된다. 1974년 7월16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대회’에서는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복음전도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동시에 그 동안 복음주의자들이 경시해 왔던 사회적 책임을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인정했다. 로잔대회에서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동등한 명령이지만, 별개로서 양자가 함께 교회의 선교를 구성한다고 하는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이 발표되었다.

 

 

로잔언약에서는, 그 동안 복음주의교회가 “사회적 관심에 대해 등한시한 점에 대해 그리고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간주해 온 점에 대해 참회 한다”고 했다. 이런 반성은 WCC로부터 배운 자성이었다. 그러면서도,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사회활동이 복음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은 아니다.”라고 하여 WCC와의 경계선을 분명히 했다.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로잔 언약을 기초할 때부터 중요한 관심사였고, 이 ‘사회적 책임’을 어떤 용어로 확정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했다.

 

즉 Social ministries, Social responsibility, Social assistance, social service, Social action, Social justice 등의 용어가 검토되었으나 결국 ‘사회정치적 활동’(socio-political activity)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이것은 사회책임의 의미를 WCC와 다르게 확정하려는 사려 깊은 고려였다. 로잔 언약은 '사회봉사'(social service)와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의 의미를 구분했다. 사회봉사는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고 개인과 가족을 위한 자선과 박애주의적인 봉사를 의미하는 한편, 사회적 행동은 정치적 경제적 활동을 통해 사회구조를 변혁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보았다. 이런 구분은 사회적 책임을 전도와 구분하고, 전도가 우선이며 사회적 책임은 차선의 것임을 말하기 위한 의도였다. 즉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 아니라 선택적 사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WCC 선교문서,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

로잔 언약으로 대표되는 복음주의자들의 반응에 대하여 WCC도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1975년의 나이로비총회는 복음전도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나이로비 총회는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복음전도를 중시하면서도 사회행동을 강조하였다. 자유하게 됨을 개인적 영생적 차원으로 제한하는 것이나, 죄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정치적 사회적 차원으로 제한하는 양자를 유감으로 간주하면서도 인간의 총체적 해방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고대해야 한다고 보아, 사회행동을 중시했다. 이 문제는 1980년 멜버른에서 개최된 CWME에서 다시 논의되었다. 멕시코시대회(1963)와 방콕대회(1973) 이후 개최된 멜버른대회의 주제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언급했으나 복음전도의 핵심은 신국의 도래였고, 그 나라는 가난한 자를 위한 나라였다. 즉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로 이해했다. 그래서 복음전도란 빈곤의 현장에서 불의한 구조를 지적하고 해방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선교를 그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재해석한 것이다.

 

 

멜버른 대회 이후 WCC의 전도와 선교에 대한 중요한 문서가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이었다. 로잔 언약은 세계복음화라는 전통적인 전도 혹은 선교 개념을 분명히 제시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는데, 이 로잔 언약에 대한 WCC의 응답이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이었다. 이 문서는 WCC부산총회에서 새로운 선교문서가 채택되기 이전까지 지난 30년간 전도 및 선교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서로 인정 받아왔고, WCC 문서 중에서 가장 복음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문서는 WCC선교신학이 ‘사회구원’으로 경도된 점에 대한 비판을 고려하여 어느정도 정통적인 개념인 복음전도를 수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선교를 지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는 말씀에 근거하여 선교로 부름 받은 교회는 선포와 증거를 통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지만, 이런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과 피조물(세상) 사이의 중보적인 사역으로 보아 이 문서는 선교와 전도의 개인적인 차원을 포함하지만 사회적인 구조 속에서의 구원이 강조되고 있다. 이 문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전제하고 이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가난과 불의에서의 해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복음전파는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에서 가난한 자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독교 전통은 죄에서의 해방을 강조해 왔으나 이 문서에서는 가난이라는 사회구조적 해방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문서는 타종교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타종교를 ‘살아있는 신앙’으로 호칭하면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만나면 매우 잘못된 방법을 사용했고, 다른 종교를 부정적으로 판단했음을 고백한다.”고 하여 지금까지의 전도가 일방적인 전도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 “어떻게 그리스도의 구원이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확신의 결핍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대한 증언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전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은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라도 스스로 증거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 문서는 선교의 우선 대상은 가난한 자이며, 이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가난에서 해방되는 길이며, 복음전파는 이런 해방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문서는 WCC는 복음전파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의식하면서 복음전파를 언급하고 있지만, 죄로부터의 구원이나 인격적인 삶의 변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 문서는 개인구원을 배제하지는 않으나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통한 인간화를 추구하고 있고, WCC의 선교신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선교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 벤쿠버에서 모인 WCC 제6차 총회 제1분과 보고서에서는 전통적인 선교에 대한 시사와 함께 타종교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즉 “죽음에까지 이르는 전도 즉 순교”는 “일방통행적 전도의 극단적인 예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타종교인들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전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점은 타종교에도 신적계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의 출생,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의 독특성을 확신하고 있지만 우리는 타 종교인들 가운데서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사역을 인정한다.” 이렇게 볼 때 WCC의 선교신학은 전통적인 선교관에서 점차적인 변화를 거쳐 타종교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으로 변화되었고, 1990년의 바르선언(Baar Statement)를 기점으로 결정적으로 종교다원주의로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WCC의 선교문서에서 영혼구원이나 복음의 외연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2. WCC 부산총회와 복음전도

WCC제10차 총회를 전후한 한국에서의 상황 또한 WCC의 전도 혹은 선교관을 헤아릴 수 있다. 2013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WCC 부산총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이후 아시아에서 열린 두 번째 총회였다. 이번 총회에는 345개의 WCC회원교회의 90% 이상이 총대를 파송하여, 공식적으로 파송된 825명의 총대를 비롯하여 해외참가자 2,629명, 국내참가자는 9,750명, 도합 약 12400여명이 참가하여 역대 총회 중 가장 규모가 큰 총회였다. 이번 총회에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도 소수의 대표를 파송했고, 로마교황청은 다수의 참관단을 파송하기도 했다. 부산 총회를 전후한 한국교회의 찬반 논쟁은 WCC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을 반영해 준다.

반대운동

2009년 8월 31일 WCC중앙위원회에 의해 부산에서의 WCC총회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후 거센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최초로 반대성명서를 발표한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총회였다. WCC부산총회개최반대 투쟁위원장 석원태(고려신학교 교장) 명의로 2009년 9월 25일자로 발표된 이 성명서에서, WCC는 종교다원주의, 인본주의 성경관, 세속적 구원론, 종교혼합주의, 기독교이름의 정치단체라고 주장하고, 또 선교무용론을 주장한다는 6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예장합동측은 2009년 9월21-25일 울산 우정교회당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WCC 부산총회개최를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2009년 10월 21일 WCC문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때부터 합동 고신 합신 등 보수적 혹은 복음주의 교회와 단체, 개인이 반대성명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 최낙재 목사는 2009년 9월 7일자의 성명서를 <기독교보>에 게제하고, WCC총회 유치위원회 조직위원장 김삼환 목사에게 공개질의서 형식의 반대성명서를 발표했다.

 

최낙제는 WCC에는 구원의 복음인 십자가의 도가 나타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찾아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2010년 1월 25일에는 19개 보수교단 대표들이 회집하여 WCC대책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이후 반대 결의문을 발표하였고, 이후 반대운동은 범 보수교단 전체로 확산되어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등 교회기구나 단체는 물론 이지만 광신대학교(2010.2.1),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2010.5.4) 등 신학교육 기관도 반대성명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40여개 단체, 기관, 혹은 학교가 WCC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성명서는 WCC는 사회구원, 용공주의 외에도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여 전도의 긴박성과 구령사업을 저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부산총회가 발표되던 2009년 성탄절을 앞두고 부산에서 발행되던 <교회복음신문>은 부산지역 기독교인 920명을 대상으로 WCC 부산총회개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WCC부산총회 유치 반대는 71.6%에 달했으나 지지하는 측은 28.4%에 불과했다. 또 WCC의 타종교 포용 반대가 79%가, WCC의 종교다원주의 인정을 반대한다가 81%에 달했다. 즉 부산에 거주하는 절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WCC는 타 종교를 포용할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를 반대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WCC 공동선언문의 합의와 파기

|이런 의견의 대치 상황에서 WCC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진보, 보수교회 지도자들 간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2013년 1월13일에는 공동선언문에 합의하게 되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WEA총회 준비위원회 위원장 길자연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WCC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가 각각 서명한 ‘WCC 공동선언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선언문>

한국교회는 지난 130년 동안 민족의 고난과 역경을 함께하며 괄목할만한 영적 성장과 대한민국의 성장과 성숙을 이끄는 중심에 있었으며, 환난과 전쟁 속에서도 민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세계선교 역사상 유례가 없이 짧은 시간에 눈부신 부흥의 역사를 일으켰고 이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개최를 앞두고 한국교회 안에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우려를 표명하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2013년 WCC 부산 대회를 앞두고 2013년 WCC 부산대회 개최에 대한 보수교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공동선언문을 선언합니다.

1.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합니다.
 1)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없음을 천명 합니다.
 2) 우리는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릴 수 있는 행위임을 고백하고, 그러므로 초혼제와 같은 비성경적인 종교혼합주의의 예배 형태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천명합니다.
2. 우리는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을 반대합니다.
3. 우리는 개종 전도 금지주의에 반대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행1:8)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대와 지역과 나라와 종교를 막론하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천명합니다.
4.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임을 천명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산하 모든 보수교단은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가 개최하는 2013년 WCC 부산 대회를 이해하며 이 대회가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2014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 역시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2013년 1월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진행위원장 김영주 목사
WEA 총회 준비위원장 길자연 목사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
 
이 문서에 대해 NCC계의 진보적인 교회와 단체 신학자들은 격하게 반발하고 폐기를 주장했다. 2013년 1월 당시 감신대와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 교수회,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기독교수협), 한국문화신학회 등 30개 단체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동선언문을 비판했다. 이들은 WCC총회 한국준비위원회의 전면 재조직과 책임자 처벌까지 거론하며 공동선언문은 에큐메니칼 정신을 본질적으로 부인하는 쓰레기라고까지 매도했다.

 

특히 2013년 1월 26일자의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전, 현직 회장단 및 임원 일동’ 명의로 발표된 “제10차 WCC 총회 준비와 관련된 1월 13일 공동선언문에 대한 한국문화신학회의 입장성명서”는 WCC에 대한 의혹을 가중시켜 주었다. 이런 격한 반발 때문에 ‘성공적인 WCC 총회 개최를 위한 합의’로 서명된 공동선언문은 발표 3주 후 파기되었다.

이 공동선언문 파기는 보수적 기독교회와 단체에 WCC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였다. 그 동안 복음주의 교회가 지적해 온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허용, 개종금지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WCC가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교회가, WCC는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허용, 개종금지를 허용한다고 비판했을 때 WCC는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줄곧 천명해왔으나 합의문파기를 통해 복음주의 교회의 우려가 사실임을 시인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특히 개종전도 금지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복음주의교회가 중시하는 전도 혹은 복음의 외연에 대한 무관심을, 그리고 종교다원주의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위해 주었다. 이점은 WCC 대한 불신과 격한 반대운동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WCC에 대한 강력한 반대로 돌아섰고, 양식 있는 기독교인들도 WCC 신학에 우려를 표했다. WCC 공동선언문의 파기는 결과적으로 WCC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불신을 가중시켜 주었다.

 

 

WCC 총회 철회 운동

2013년 초에 있었던 보수진보 교회 대표들 간의 공동 선언문의 파기는 WCC에 대한 찬반 양측의 경계를 분명하게 해 주었고, WCC 총회 반대 명분을 제공했다. 따라서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측 교회의 반대운동이 더욱 심화되었다. WCC반대 및 총회철회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단체들로는 한기총 외에도, 보수교단 연합회, 예장합동 WCC대책위원회, WCC 반대운동연대 준비위원회, 부산보수교단교회연합회, 브니엘 교단, 전남 광주 교회협의회 등이다. 또 부산에 거점을 두고 있는 브니엘 교단이 중심이 되어 WCC 철회촉구위원회 백만인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광신대학교, 광주 계자씨교회, 광주 안디옥교회, 연세중앙교회 등도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가담했다. WCC 철회촉구위원회는 반대성명서를 발표하거나 반대 전단지, 반대소책자를 발간했다. 반대운동에 편승한 이단 혹은 사이비 집단들도 있었고 일부의 부적절한 반대행위도 없지 않았다.

한기총과 WCC반대운동자들의 반대집회는 부산역광장, 서울역광장, 지역교회, 그리고 WCC총회장소였던 벡스코 등지에서 개최되었는데, 개별교회 단위의 집회 외에 연합적으로 모인 집회는 30여회에 달하고 동원된 연인원은 약 9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부산총회가 개최되기 하루 전날인 2013년 10월 29일 오후 1시 30분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반대집회에는 약 4만명(주최측 추산)이 회집했다. 이런 반대운동과 더불어 신문광고, 소책자, 그리고 2009년 이후 발표된 WCC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각종 논문과 여러 비판적 단행물들은 WCC의 역사와 신학, 의례(儀禮)와 교리, 수사(修辭)와 사실(事實)과 헤아리는 안식을 더해 주었다.

WCC부산총회가 남긴 것

2013년 10월의 WCC부산 총회를 전후한 각종 비판적 논문과 저술, 반대운동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WCC에 대한 부정적이 인식을 갖게 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WCC에 대한 피상적 호감을 가졌던 WCC 회원교회 성도들에게조차도 반대운동은 가악적(可握的, graspable) 실체를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2013년 부산총회는 WCC에 대한 부정적이미지를 더해 준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의 경우, WCC총회 부산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목회자 혹은 지도자들은 반대자들의 공개데모 혹은 반대시위 외에도 반기독교적 집회에 관여한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모 목회자는 “대놓게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고 어제까지 친구로 지내며 강단을 교류하고 협력했던 목회자들이 등을 돌리고 비난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회상했다. 부산준비위원회에 관여했던 목회자의 교회에서는 신도들의 이탈도 있었다. 부산준비위원회에 깊이 관여했던 한 목회자는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부산교계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일”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어떤 교회는 50여명의 청년, 200여명의 성도들이 WCC를 반대하여 교회를 떠났다는 보고가 있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고려해 볼 때 WCC 부산총회를 통해 WCC는 복음전도나 복음의 외연과는 무관한 교회연합기관이라는 인식을 더해 주었다고 평가된다.

 

 

3. WCC 부산총회의 새로운 선교 선언

2013년 부산총회에서는 사전에 준비된 10여개의 문서가 발표되었는데, 이 중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우리의 일치’(일치), ‘모두의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한 경제: 행동촉구의 부름’(정의),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에큐메니칼 소명’(평화), ‘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선교)를 4대 기본문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중 WCC의 선교관을 보여주는 4번째 문서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이 문서는 WCC가 1982년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을 발표한 이후 30여년이 지난 오늘의 변화된 상황에서 선교가 어떤 개념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하기 위한 필요에서 발표되었다고 말한다. 이 문서는 2012년 3월 22일부터 27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선교와 전도위원회(WCC-CWME)가 주최한 WCC 부산총회 사전 선교대회(Pre-Assembly Mission Event)에서의 토론을 거쳐 완성된 선언으로, 이 사전대회에는 WCC 회원교회와 유관 선교단체 뿐 아니라 비회원교회, 특히 로마가톨릭교회와 복음주의교회, 오순절교회 대표들까지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 문서는 서론을 포함하여 6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함께 생명을 향하여: 주제 소개, 2. 선교의 성령: 생명의 숨결, 3. 해방의 성령: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4. 공동체의 성령: 움직이는 교회, 5. 오순절의 성령: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 6. 생명의 잔치: 결론적 확언이 그것이다.

 

근본적으로 이 문서는 1982년의 선교확언과 선교인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선교, 종교 간의 대화 강조, 기술사회에 대한 대응 등에서 그러하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1982년의 선교확언은 케냐의 에큐메니칼 지도자 존 가투(John Gat)가 제기한 선교 모라토리움이 논란을 불러왔던 1975년의 나이로비총회에 대한 응답적 성격이 짙다. 가난한 자와 연대와 선교의 관련성에 대한 강조는 1973년 ‘오늘의 구원’으로 인식되는 인간해방과 사회전교 전통을 수용하는 것이었고, 그리스도의 방법에 의한 선교, 해외선교의 유용성, 교회와 선교의 유관성 등은 선교모라토리움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짙다. 바로 이런 점에서 1982년의 선교확언은 가장 복음적인 선언이라고 불려왔다.

 

 

이번의 선교와 전도문서는 네 가지 파라다임의 변화로 집약될 수 있다고 박성원 박사는 지적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trinity)로의 변화, 곧 선교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 둘째, 구원선교에서 생명선교에로의 변화, 셋째, 영혼구원, 인간해방 선교에서 모든 피조물의 구원으로 선교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 넷째, 중심부 중심의 선교에서 변방자 중심의 선교의 축이 이동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선교문서에서 복음주의자들의 참여가 있었고, WCC와 로잔언약(대회) 간의 상호 교류(1974, 1982, 1989 등)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예컨대 선교선언 83항이 전도를 대화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나, 종교 간의 대화를 말하는 94항이 타종교 신봉자들의 삶과 신앙전통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문서가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포괄적 용어를 통해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종교다원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82항은 개종전도를 금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82항에서 “오늘날 세계는 공동체를 치유하고 양육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파괴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종교적 정체성과 신념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개종(proselytism)이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 우리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 수단이나 권력의 악용을 통해 ‘개종’을 강요했기 때문에 때때로 전도가 왜곡되었고 그 신뢰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개종이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하여 개종전도를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비록 과거 역사에서 폭력을 동반한 개종 강요가 있었다 하더라도 개종전도 자체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서에서 ‘생명’ 이라는 단어를 약 100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서에서 말하는 ‘생명’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할 때 죄 사함과 동시에 주어지는 새 생명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복음주의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 문서가 선교에 있어서 성령, 성령이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성령을 성도들의 생명이 되는 구원의 영으로 보지 않고 “세상을 하나로 묶는 창조의 영에 불과한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


결국 이 문서는 선교의 본질이 다른 종교들에 대한 종교경험 가운데서 친교를 이루는데 있다고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모범적인 선교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을 뿐 그 자신이 유일한 복음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 문서가 포괄적인 용어로 타종교나 종교인을 전도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이 문서 또한 그리스도 유일성에 기초한 전도, 복음의 외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성명서 중 한 가지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인데, 이 성명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치하하고, WCC가 남북한 교회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공동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겠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또 이 문서는 1953년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있는 평화협정의 제정이 시급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6자회담 재개의 촉구,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재개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문서에서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우려를 표하고 한반도에서의 모든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외국군대의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이 문서는 진보진영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을 뿐, 김일성 정권의 3대 세습, 핵문제, 전대미문의 강압적 폭력적 독재정권에 대한 경고, 대량살상과 고문,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해체, 북한에서의 민주화의 지원, 혹은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과 이에 대한 개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대북제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일방적으로 미군의 철수, 군사훈련의 중단만을 요구하고 있다. WCC는 생영, 정의, 평화를 말하면서도 북한의 핵위협이나 군사적 위협, 더욱이 처절하고도 참혹한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런 점들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에 대한 복음 전도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


WCC 문서는 남북한 교회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공동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기독교인들에 대한 고려 없는 남북한 고회의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무관심하면서 생명 정의 평화를 논하는 자체가 위선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할 의미가 무엇인가? 이렇게 볼 때 WCC와 한국의 에큐메니칼 진영은 북한 문제를 보는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WCC의 성명서는 북한 주민에 대한 복음전도에 대한 의자가 없다.

4. 결론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에 대해, WCC 지지자들은 한국교회의 위상을 제고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과거에는 피선교국의 교회로서 세계교회 주변에서 활동해 왔으나 이제 세계교회의 중심부에서 지도력을 행사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이번 WCC 부산총회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다리 놓은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교회, 특히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이끌어가는 콘질리어 푸로세스를 주도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이번 기회를 통해 개화와 독립운동,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사회운동과 문화 발전 등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 온 한국교회를 세계교회에 소개하는 계기가 된 것은 큰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계교회 다양한 교파, 교회적 인사들이 한국의 외적 성장만이 아니라 새벽기도, 찬양, 헌신을 보게 된 것 또한 큰 소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조용기, 이영훈 목사로 대표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이번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교회일치운동의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WCC 총회는 보수적인 혹은 복음주의 교회가 제기했던 문제들, 종교다원주의, 개종금지, 동성애 문제 등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나 대답은 듣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WCC 문헌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선교와 전도,’ ‘증언,’ ‘생명,’ ‘복음,’ ‘성령의 역사’와 같은 복음적인 레토릭(修辭)에도 불구하고 WCC의 신학과 그 추구하는 바에 대한 불신의 경계선은 극복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런 점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개인이나 교회는 여전히 WCC를 불신하거나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번 총회를 통해, 1.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WCC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심화시키는 기회가 되었고, 2.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를 기하여 WCC를 지지하고 반대하는 교회들 간의 신학적 경계선은 더욱 뚜렷해졌다고 할 수 있다. 3. 뿐만 아니라 WCC는 복음주의교회가 이해하는 복음전도나 선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 주었고, 4. 새로운 선교관련 문서도 종전이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을 인식시켜 주었다고 평가된다. 결국 WCC 부산총회는 WCC가 추구해 온 신학과 이념의 연속적 과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원활한 게재를 위해 각주 및 참고문헌은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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