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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세속화시대, 무엇이 전도를 어렵게 만드는가?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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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시대의 전도, 평가와 제언 / 하도균 교수(서울신대)

 

2014년 11월 21일 기사

 

“효과적인 복음전도를 위해서는 복음 전도의 장(場)이 되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그 가운데 나타나는 복음 전도의 방해요소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고, 복음전도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하도균 교수(서울신대)는 “21세기 한국 교회는 정체를 넘어선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며 “교회적, 신학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지만 세속화가 바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부딪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세속화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속화는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세속화 시대에 전도를 방해하는 요소는 또한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세속화 시대 속에서 교회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도균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세속화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

세속화는 기독교에 가공할만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화의 영향을 받고 반교회주의자들이 되거나 명목상의 교인이 되거나, 물질주의자가 됐다. 또한 그들은 돈, 성, 물질, 성공, 권력, 사교적 인정 등 자신들만의 신들을 갖게 됐고, 그 결과 교회와 기독교는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부더베인 리트펠트(Budewijn Rietveld)는 그의 논문 ‘신학적 윤리의 문제로서의 세속화’에서 세속화를 ‘세상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존재하기 위한 삼위 하나님으로부터의 이탈’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세속화로 인해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 옮겨가게 됐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대신하게 됐다.

세속화는 복음전도에게 영향을 미쳤다. 세속사회에서는 자연과학은 사실의 세계로, 종교나 도덕과 같은 영역은 가치의 세계로 분리한다. 자연과학적 인식만이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말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며, 종교나 도덕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속사회에서 종교의 자리, 즉 기독교 신앙은 사회의 공적 영역으로부터 추방돼 사적 영역에 머물게 됐다. 이제 더 이상 공개적인 활동으로서의 복음전도는 세속 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려워졌다. 세속사회에서의 종교는 개인의 선택사항이며, 선호도의 문제가 되었다.

교회는 세속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고, 세속화로 인해 복음전도도 이전 세대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교회조차도 세속화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이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

# 교회 속에 나타난 세속화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다. 세상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때로는 세상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오늘날 세상에 흐르는 세속화의 물결은 교회에도 침투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바로 ‘번영의 신학’이다. 번영의 신학은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복음주의 사상이다. 번영의 신학은 미국에서 발생했고, 한국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에 대한 번영, 주로 물질적 축복이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들의 가르침대로라면 하나님은 내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감동시켜야 할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정적인 번영을 위해 오시지 않았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잘되고 형통하며, 축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을 강조하다보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본질이 상실된다.

이것은 전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전도는 복음을 전해 생명을 살리고 세우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일이 생기거가 그것 때문에 교회가 건강해지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전도는 힘들고 어려워지며 급기야는 쇠퇴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번영의 신학은 한국적인 상황에서 볼 때, 샤머니즘에 근원을 둔 기복신앙에 편승해 더 활개를 치고 있다. 그 결과 교회를 물질지상주의로 이끌고 있으며, 교회도 기업처럼 성장은 추구하지만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그 영혼을 생명으로 세워가는 복음의 본질적인 의미는 퇴색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복음 안에 있는 ‘십자가’라는 중심 주제도 잊혀져가면서 희생과 헌신보다는 자신의 안일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외적으로는 기독교인의 사회적인 책임과 사명도 망각하게 만들고, 내적으로는 이단과 사이비들들이 판치는 형국을 만들게 된다. 실제로 한국 교회는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과 치열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데, 이는 번영의 신학에 물들어 복음의 본질을 상실해 가는 교회가 처한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가 세속화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또 다른 현상은 ‘복음전도의 도구화’다. 대부분의 교회가 양적 성장을 통한 대형 교회만을 지향하면서 교회 성장에 대한 개념마저도 바뀌어버렸다. 결국 복음전도는 자연스럽게 양적 성장을 위하 도구로 변질됐다.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교회를 홍보하고 선전하는 것에만 급급하다.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오기 위해 갖갖 상품을 내세우기도 한다. 보이는 열매에만 집중하다보니 다른 교회 신자들을 데려오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전도의 행위가 생명을 얻는 일보다는 하나의 행사나 실적 위주의 영업 또는 사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 전도를 어렵게 만드는 종교사상적 요인들

세속화 시대에 전도를 어렵게 만드는 종교사상적 요인들 중 하나는 ‘무신론’이다. 무신론은 세속적인 사람의 특징 중 ‘불경성’과 관련이 있다. 불경성이란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들의 지상적인 시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그들의 인생을 정의하는데 어떤 초월적인 실재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사람들을 ‘불경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신성을 더렵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전통적 신을 베제하고 온전한 인간 존재를 선택했다.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의 원천이 인간 스스로에게 있다고 여기며, 그들의 인생에 그 가치와 방향을 지시하는 어떠한 신성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불경성은 무신론의 기초가 된다.

무신론은 전도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접촉점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그들은 이미 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있으며, 인간 스스로에게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접촉점을 찾기 힘든 전도는 일방적인 선포로 끝나 버릴 수 있고, 또한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복음전도를 어렵게 하는 두 번째 종교사상적 요인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의 시대정신이며, 새로운 세계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합리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 관계적 세계관, 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으로 요약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가치를 개인적인 영역에서 해석한다. 가치판단의 모든 기준은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실용주의적 계산에 두고 있다. 실용주의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기울인다. 종교를 판단할 때도 절대적인 가치 판단이 아닌 나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가를 보며 상대적인 가치 판단을 내린다.

실용주의적 사고를 하고 절대 가치가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은 종교에 있어서도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만이 진리라고,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외치는 것은 배타적으로 보여지고, 실제로도 배타적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 전도를 어렵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요인들

첫 번째, 물질지상주의다. 세속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산업화에 따른 경제의 발전이다. 산업화에 따른 경제발전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물질적 가치 창출이 바로 자본주의의 목적이다. 이는 물질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물질지상주의로 이어진다.

도덕적, 윤리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 앞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만 창출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탄으로 이끄는 도박장을 건설해도, 학교 주변에 숙박업소를 건축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떠한 비윤리적인 행위도 경제적 가치만 있다면 용인된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이름’이 아닌 ‘연봉’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기고 있다.

물질지상주의는 세속인들의 특징인 ‘무명성’을 극대화한다. 무명성은 인간관계에 있어 이름 없이 기능으로만 인간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다양한 사람들과 폭넓은 접촉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선택해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나머지 사람들과는 이름 없이 기능적으로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사람’은 사라지고 ‘기능’만 남게 되어버렸다.

이러한 물질주의가 교회에 흘러들어오면서 기복신앙과 합쳐져서 극도의 개인주의 현상으로 치닫거나 교회가 본질을 외면하고 겉치레에 치중하는 모습을 낳았다.

두 번째, 스포츠와 연예문화의 종교화다. 종교에 있는 신화 혹은 전설 같은 것을 스포츠나 연예문화도 갖고 있다. 또한 신화적 인물도 함께 존재한다. 오늘날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우상으로 군림하며 일종의 교주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종교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스포츠나 연예문화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스포츠와 연예문화의 종교화는 세속인의 특징인 이동성을 통해 그 영향력을 점점 확장시켜가고 있다. 세속인은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들은 고정돼 있는 것에 쉽게 싫증을 내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이동하려고 한다. 이러한 성향은 종교의 영역에서도 나타나는데, 기존의 종교에 싫증을 낸 사람들은 그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새로운 종교를 찾아 이동하려고 한다. 스포츠와 연예문화는 그들의 종교적 욕구를 쉽게 채워줄 수 있는 대안이 되며, 또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이다.

복음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복음이 전도 대상자들에게 그들이 겪고 있는 한계와 불안, 그리고 삶의 무력함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신론, 포스트모더니즘, 물질지상주의, 스포츠와 연예문화의 종교화 등은 복음전도를 어렵게 했고, 그 안에는 불경성, 실용주의, 무명성, 이동성 같은 세속인들의 특징 속에서 기존의 전도방법으로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이제 세속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도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 세속화 시대에 효율적이고 능력 있는 전도

첫째, 세속화 시대에 열매 맺는 전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 전도자 스스로가 복음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 시대 속에서 예수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담대하게 외치기 위해서는 전도자에게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 없이는 배타적이라는 종교다원주의의 비난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둘째, 전도 대상자의 필요와 욕구를 알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사후의 세계보다는 현세 지향적이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죄의 문제는 복음을 통해서 다루어져야 한다. 결국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세속인의 욕망에 복음은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셋째, 전도 대상자들의 욕구를 파악했으면 그들과의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관계 속에서 복음이라는 훌륭한 생명력 있는 내용이 전달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 관계를 기능적 관점에서 맺는 익명성을 갖고 있는 세속인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외롭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도자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넷째, 전도 대상자와 관계가 형성됐으면 이제 그들과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스스로 나름대로의 진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 세속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화 중에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을 통해 전도 대상자는 자신의 실존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의 사고가 잘못됐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그 때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의 원리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질문을 통한 대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설령,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말이 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을 갖고 그들을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겸손한 자세로 경청하며 대화할 때, 전도 대상자는 전도자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위의 내용은 새세대아카데미와 예장 통합총회 목회정보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지난 11월 20일(2014년) ‘21세기 한국교회의 전도,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2014 새세대아카데미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하도균 교수의 ‘세속화시대의 전도, 평가와 제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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