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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칼빈, 성경적 교회제도 회복 위해 ‘교황 수위권’ 비판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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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 연구 / 김요섭 박사(총신대)

 

2014년 10월 15일 기사

 

“칼빈이 그의 교회론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참된 교회의 바람직하고 건강한 제도는 모든 지체들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해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현하려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와 같은 신학적 기준에 따라 당시 교황 제도와 그 근간이 되는 교황의 수위권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총신대 김요섭 교수(역사신학)는 “교황의 수위권 주장은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결여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제 계급의 세속적인 권력욕과 인간적인 편의를 위해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와 권위를 침해했다”며 “칼빈의 비판은 교황 수위권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 뿐 아니라 언제든지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모든 공동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고 강조했다.

김요섭 교수는 개혁신학회가 지난 10월 11일(2014년) ‘개혁신학과 로마가톨릭주의’를 주제로 개최한 가을학술대회에 발제자로 참여해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의 발제내용을 일부 요약 정리했다.

 


1. 종교개혁자로서 칼빈은 참된 종교를 회복하기 위한 세 가지 개혁의 주제를 정했다. 첫째는 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 둘째는 성례를 순수하게 시행하는 것, 셋째는 성경적인 교회 통치의 실현하는 것이었다.

 

2. 이 가운데 성경적인 교회 제도의 회복은 바른 진리의 가르침과 순수한 예배의 실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실질적인 개혁의 주제였다. 이를 위해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의 교황제도와 차별되는 성경적인 교회제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교황제도의 비성경적인 신학적인 전제와 이로부터 나오는 성례전의 우상숭배적인 왜곡이 참된 종교를 부패시킨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3. 칼빈은 그의 사역 전체에 걸쳐 일관된 신학적 전체와 성경 이해를 갖고 교황 제도의 근본적 토대를 거절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초판(1536)에서부터 교황 수위권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명백하게 직시했다.

4. 칼빈은 교회론을 주로 다룬 ‘기독교 강요’ 4권을 1장에서 3장에 걸친 교회의 정의와 바른 교회의 제도를 서론적으로 논의한 후, 이어지는 4장과 5장에서 교회 제도의 역사적 발전과 타락의 과정을 서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6장과 7장에서 교황 제도의 문제들 가운데 교황 수위권 문제를 비판하는데 집중한다. 이는 아무런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갖지 못한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야말로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 교회의 주권을 독점하고, 지배하고 있는 교황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기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5. 칼빈은 교황 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의 운영상 발생하는 부패가 아니라 이 제도의 근간이 되는 교황의 수위권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 세계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갖는 최고의 권위를 거절하는 것이 교회 일치를 깨뜨리는 것이라는 공격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6. 베드로의 계승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로서 보편적이며 최고의 수장으로서의 교황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교황과의 친교로 이루어지는 주교단과 함께하는 것을 교회의 일치로 여기는 사고, 공의회를 비롯한 공식적인 교회의 교리와 예전의 근거를 교황의 수위권에 기초시키려는 입장은 모두 종교개혁 시대 칼빈이 비판했던 교황 수위권의 핵심적인 주장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7. 그리고 이와 같은 교황 수위권에 대한 2차 바티칸공의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지난 50여 년 동안 어떤 교황의 교령이나 공식적인 문서에 의해 반박되거나 수정된 바가 없다. 따라서 종교개혁자 칼빈의 교황 수위권에 대한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 비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8. <교황 수위권의 성경적 비판>
칼빈의 교황 수위권의 성경적 근거에 대한 비판의 첫 번째 초점음 과연 성경이 베드로를 모든 사도들 위에 수위권을 가진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둘째 초점은 베드로가 상대적인 우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이후 로마 교황들이 전 세계 교회에 대해 갖는 수위권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9. 칼빈은 베드로가 우월한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 교황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증거 본문들을 실제로는 교황수위권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마태복음 16장의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약속과 요한복음 21장의 “내 양을 치라”는 명령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러나 그들의 증명에 충분한 근거가 있으려면 그들은 우선 양을 먹이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 모든 교회에 대한 지배권이 위임됐다는 것과 매며 푸는 일은 곧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기독교강요 제4권 6장)

10. 물론 칼빈 역시 성경이 어느 정도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가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음을 인정하다. 그러나 베드로가 차지하는 이 중요성이 곧 그가 사도들 중 최고의 권력을 부여받았다는 수위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제 일인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영예나 지위를 물론 베드로에게 기꺼이 돌린다. 만일 그들의 원하면 모든 사도들 중의 첫 자리를 주어도 좋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 위에 수위권을 가진다고 그들이 추론하는 것을 허용할 수는 없다. 대체 이런 연역법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자리를 주어라. 그러나 지위의 영예는 권력과는 아주 다르다.”(기독교 강요 제4권 6장)

 

 

11.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기초는 베드로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그가 고백한 바른 신앙고백이다. 칼빈이 볼 때 이 본문에서 베드로에게 받은 열쇠의 권한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결과에 대한 약속이지 특정 인물에게 부여한 수위권에 대한 것이 아니다.

12. 칼빈은 ‘기독교강요’ 4권 6장에서 요한복음 21장에 나타나는 “내 양을 먹이라”는 베드로에게 주신 예수님의 명령이 베드로 개인과 그의 후계자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장로들을 향한 보편적인 명령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해석들 통해 베드로가 지닌 수위의 권력이 곧 로마 교황의 수위권의 성경적 근거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13. 결론적으로 베드로라는 한 인물이 모든 사도들 위에 차지하고 있던 수위권의 주장이나 그 수위권으로부터 로마 교황이 전 세계 교회 위에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나 모두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14. <교황 수위권의 역사적 비판>
칼빈은 ‘기독교강요’ 4권 7장에서 교황 수위권은 역사적 근거가 없음을 지적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당시 근거가 없는 교황 수위권 주장이 등장해 점차 확립해 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15. 첫째, 로마 교황의 수위권이 고대로부터 시작됐다는 교황주의자들의 주장은 초대 교회의 교회 회의 기록과 대표적인 교부들의 언급들을 살펴볼 때, 역사적 근거가 없다. 이와 관련 칼빈은 니케아 회의 이전과 이후의 대표적인 교회 회의인 니케아 회의(325), 에베소 회의(431), 2차 에베소 회의(449)에서 로마 감독이 회의를 주관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6. 그리고 최초로 로마의 교회 대표들이 황제의 배려로 회의의 첫 자리에 앉게 된 칼케돈 회의(451) 역시 로마 교구의 수위권 때문이 아니라 교황 레오가 보낸 대표들이 유능한 의장으로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칼케돈 이후의 5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와 어거스틴이 참여한 카르타고 회의 역시 로마 감독이 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다.

17. 둘째, 칼빈은 초대 교회에서의 주장된 바가 없었던 교황의 수위권이 등장해 확립된 과정은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의 부패한 타협의 결과라고 비판한다. 칼빈은 초대 교회 시대 로마 교구는 본래 감독 임명과 회의 소집, 상소 수락 또는 재판권, 그리고 징계 명령과 견책의 네 가지 영역에서 다른 교구와 구별되는 우월한 권위를 소유하지 않았었다고 말한다. 교회 회의 소집이나 견책과 관련해서는 교황보다는 도리어 황제가 더 큰 권을 행사했었다. 그리고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이와 같은 제한적이고 평등한 위상에 만족했음을 지적한다.

18. 특히 칼빈은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 교구만큼이나 콘스탄티노플 교구가 중요했음을 지적하면서 콘스탄티노플 교구의 중요성이 칼케돈 회의에서 인정됐을 때 이를 반대한 레오의 결정을 도리어 비판한다. 초대 교회 당시 어느 교구가 가장 중요한 교구인지의 문제는 제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다. 칼빈은 이처럼 교회 제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마땅히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19. 칼빈은 새로운 신성 로마 제국의 세속적 권력과 로마 교황의 종교적 권력이 결탁하면서 이전까지는 주장된 바가 없던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 전면에 등장해 정착됐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중세 시대 로마 교황청은 자신들의 절대권력을 옹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여러 조작 문서들을 역사적 근거로 삼았음을 비판한다.

 

 

20. 셋째, 칼빈은 역사적 비판의 결론으로서 당시 로마 교황의 수위권이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로마 감독의 본래 역할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많이 부패해 있는지를 비판한다. 칼빈은 교황 제도의 부패상과 관련해 베르나르두스의 비판적 언급을 인용하면서 중세 시대 로마 교황청의 부패와 근거 없는 수위권 주장의 참담한 결말을 비판한다.

21. 칼빈이 보기에 교황의 수위권 주장의 핵심은 교황이 전 세계 교회 위에 독점적 재판권을 소유했음을 주장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교황이 모든 세계 교회 위에 최고의 권력을 소유했다는 주장은 정작 자신들의 오류를 시정할 제어 장치를 부인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22. 교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교황의 절대 권력 개념은 인간적인 상식에도 위배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교황주의자들의 반역사적이며 비상식적 타락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그들의 잘못된 신학적 이해 때문이다.

“그들 사이의 지배적인 비밀신학의 제1조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며 제2조는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기록과 교훈은 허위요 기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세와 최후의 부활에 관한 교리들은 우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제3조이다.”(기독교강요 제4권 7장)

23. 칼빈은 이런 비판을 바탕으로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지나친 평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칼빈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도덕적 타락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교황주의가 보여주는 치명적인 영적 권리 침해 때문이다. 그것은 로마 교황이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를 압박하며 대항하는 것이며, 이 독재적 제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을 말살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악용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예를 빼앗아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24. 결국 칼빈이 교황 수위권을 비판하는 것은 그 운영의 잘못에 대한 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교황이 목회자로서의 본문을 넘어서 전 세계 교회 위에 보편적 감독으로 주장하는 교황 수위권의 근본적인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다. 즉, 교황 제도는 단순히 그 당시 운영의 실패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인 문제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시작에서부터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채 특정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며 발전한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다.

 

 

25. <교황 수위권의 신학적 비판>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성경적, 역사적 비판은 결국 교황 수위권이 전제하고 있는 신학적 기초의 문제를 지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성경적인 참된 교회 제도의 신학적 기초를 제시하는 논의로 이어진다.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신학적 비판의 초점은 교황주의자들이 로마의 주교를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보편적인 ‘머리’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26. 따라서 교황 수위권을 반박하면서 칼빈이 강조하고자 하는 참된 교회 제도의 신학적 기초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머리되심’이라는 영적 원리다. 칼빈은 그의 고린도전서 주석(1546)에서 3장 11절을 해석하면서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특히 그의 주석에서는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던 교회의 근본 교리를 흔드는 자들은 ‘기독교강요’에서 교황 수위권을 주장하는 교황주의자들로 명시된다.

27. 칼빈은 교황 수위권의 성경적 근거를 비판할 때 ‘그리스도의 머리이심’이라는 신학적 원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한 예로 칼빈은 교황주의자들이 교황의 수위권의 근거를 구약 제사장 제도로부터 찾으려 하는 논리를 반박하면서 이 주장의 문제는 결국 유일한 구속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28. 또 베드로의 수위권이 교황에게 계승됐다는 주장의 문제 역시 유일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가 누군가에게 위임된 성경의 기록이 없다는 데 있음을 지적한다. (기독교강요 6권 9장)

29. 교황 수위권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비판할 때도 칼빈은 참된 교회 제도의 신학적 기초는 그리스도께서만 교황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받으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칼빈이 보기에 권력 유지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들의 강단과 가정과 생명까지 지키려는 듯 치열하게 싸우는” 교황주의자들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를 손상시키고 가로채려 하는데 있다.

30. 따라서 칼빈이 교황 수위권을 비판하는 것은 이런 주장이 단순히 역사적 근거를 결여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자의 수위권을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서 현재적인 통치를 실현하고 계심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31. 칼빈은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종교개혁 시대 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면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가지셔야 할 권위를 손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칼빈이 보기에 교회의 부패와 혼란의 문제는 로마 교황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보다 더 큰 권위를 교회 안에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32.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은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칼빈의 궁극적인 목적인 이 비판을 출발점으로 삼아 바람직한 교회 제도의 신학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밝히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몸으로서의 한계를 넘는 주장을 멈추고,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진술하신 교회 제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3. 칼빈이 그의 교회론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참된 교회의 바람직하고 건강한 제도는 모든 지체들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해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현하려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34.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앙공동체들 안에 특정 인물이나 일부 계층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사람들의 편의와 민족을 위해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의 교황 제도의 대한 종교개혁적 비판의 실천적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35. 그것은 외적인 제도나 인간적인 권력에 의한 교회 일치나 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주권을 구현하기 위해 늘 교회를 새롭게 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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