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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원문] 동성애는 창조본연의 가정질서 거슬리는 죄악이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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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회장)

 

2015년 3월 6일 기사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이 지난 3월 6일(2015년) '동성애 이슈와 교회 영성'을 주제로 제44회 월례발표회를 개최했다. 기독교학술원의 제공으로 이날 발표된 내용을 원문으로 제공합니다. <편집자 주>


"동성애는 창조본연의 가정 질서를 거슬리는 죄악"
개회사 /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회장)

머리말

작년 미국장로교회(PCUSA)) 총회(221차 미국총회 (2014년 6월 21일)의 [공민적 결합과 결혼 문제에 관한 위원회]에서 결혼에 관한 정의를 수정하는 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결혼의 정의를 “한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두 사람 사이”로 변경하는 안을 상정하기로 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안을 전체회의에 내기로 한 것이다. 이미 미국 장로교 내 허드슨 리버, 뉴욕시, 이스트 아이오와, 레드우즈 등 네 곳의 노회가 결혼에 대한 미국장로교회의 정의를 바꾸자는 헌의를 제출했다. 게이 커플(gay couple)이 함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하니 교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탄이 나온다.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해 크게 환영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 교황과는 달리 개혁적 행보를 거듭하여 큰 찬사를 얻었다. 그런데 그는 급기야 지난 2014년 10월 5일부터 전 세계 주교 200여 명이 참석해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에서 지난 2000년간 죄악시해 온 동성애를 허용하는 혁명적인 예비보고서를 발표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교황은 자신의 개혁적 의지를 반영하기 위해 시노드 지도부에 6명의 진보파를 긴급 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성애 허용 보고서가 낭독되자마자 41명의 보수적 주교가 ‘신앙의 진리에 벗어났다’며 공식 반대의사를 밝혔다. 결국 가톨릭교회는 보수파의 반발에 부딪쳐 동성애 허용은 무산되고 말았다.

 

교황까지 허용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러한 추세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은 한탄하시고 계신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동성애 이슈에 관하여 전혀 다르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따듯하게 대하셨는데 교회는 왜 정죄하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사랑으로 대하셨다고 죄까지 용인하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품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동성애자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동성애 자체를 옳다고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짓는 다른 죄들은 해결하지 않고 왜 동성애만 물고 늘어지느냐고 따진다. 때로 교회 속에서 죄악이 저질러지는 것을 인정하며 가슴아파 한다. 그런데 기억할 것이 있다. 횡령이든 간음이든 그런 죄를 짓고 그것을 옳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동성애의 경우는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 하는 식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니 다른 분야의 죄들과 달리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적이고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다음 6가지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

1. 동성애는 이성애(異性愛)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지는 가정이라는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결혼제도는 문화가 아니라 창조의 질서이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나 창조질서는 보편적이며 영구적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7-28). 그리고 가정이란 남자와 여자의 결혼으로 성립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동성애 지지자들은 논의에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생략하고 있다.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대한 위반이므로 문화질서로 간주하여 허용될 수 없다.

2.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야기는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본보기다.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 및 그들과 함께 멸망당한 도시들인 아드마와 스보임(신 29:23)은 간음과 남색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분한의 징벌 심판(창 19:1-26)의 본보기로 이야기 해준다. 사도 유다도 소돔과 고모라 주민의 가증한 행위에 대하여 다음같이 해석한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모세의 율법은 동성끼리의 성행위를 가증하다고 금하고 있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3. 사도 바울은 동성애 행위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난다(역리, 逆理)고 정죄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시대에 있었던 동성애에 관하여 장조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정죄하고 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6-27). 바울이 이 구절에서 성 질서에 관하여 언급하는데 순리란 이성 간의 관계를 말하며 역리란 동성 간의 성관계를 말한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순리(順理)”란 인간의 성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말한다. 동성애자들은 자기들의 성향이 타고 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말한다. “정상성이나 자연스러움을 정하는 영원한 기준이란 없다”(Norman Pittenger)는 동성애자의 주장은 성경의 기준에 맞지 않다. 로마서 1장에서 말하는 “순리”란 이성애자들의 성도착 행위가 아니라 “자연, 즉 창조 질서에 대립되는 모든 인간의 행동”이다.

4. 사랑과 새 도덕(new morality)내지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자들도 동성 간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동성 간의 사랑도 이성간의 사랑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왼손잡이’에 대한 비난 이상으로 ‘동성애’를 비난해서는 않된다” (The Friends report towards a Quaker View of Sex, 1963, 21). “관계의 성격과 질이 중요하다”(Ibid., 36) “남성 및 여성 동성애자들이 가지는 영구적 관계는 자신의 성을 표현하는 적절하고도 기독교적인 방식일 수 있다” (Methodist Church's Division of Social Responsibility. A Christian Understanding of Human Sexuality, 1979, chapter 9)고 주징한다. 이러한 동성애 옹호자들의 주장은 동성애를 명확하게 거부하는 하나님의 뜻을 인본주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존 라빈슨이나 조셉 플레처가 말한 새 도덕이나 상황윤리와 다를 것이 없다. “새 도덕”이나 “상황윤리”는 1960년대 결혼 외적 성관계를 정당화하는 용어였다. 이제는 이러한 용어가 “동성 간의 사랑”으로 왜곡되고 있다.

5. 동성애 문제는 결혼과 같이 근본적인 문제이지 문화적 문제가 아니다.

여성안수 문제는 문화적 문제이지만 동성애 문제는 결혼제도에 관한 것이므로 교리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우상숭배는 당연히 금지된 신학적 문제이지만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문제는 문화적 문제이므로 기독교인의 자유에 맡겼다. 동성애 문제는 사회를 존속케 하는 가정의 질서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이다. 기독교인의 자유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1996년 11월 미국의 Christianity Today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Pannenberg)도 동성애에 관하여 아주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명백하게 거부해야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성애 결합을 결혼과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 (Christianity Today, November, 1996).

 

 

6. 억압, 해방, 권리, 정의의 개념을 성경의 가르침에 기반하여 바르게 정의해야 한다.

인간의 권리는 하나님의 법 안에서 주장되어야 한다. 남아연방의 주교 데스먼트 투투(Desmond Tutu)는 성적 기호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않된다고 말한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공포증의 희생자라면, 그들이 멸시받고 거부당한다면 그들의 억압, 해방, 권리, 정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부당함과 불의가 동성애 관계를 이성애 결혼과 동등하게 합법적인 양자택일 사항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라면, 이들의 주장은 부적절하다.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타트는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권리’로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John Stott, 57)라고 말했다. 동성애자를 노예, 흑인, 여성해방과 유비관계로 보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노예제도, 흑인차별, 여성차별 등은 창조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게이 내지 레즈비언 해방이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인간의 의지적 반항(게이와 레즈비언 행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7. 용납과 복음이라는 논거는 그대로 동성애자에게 적용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말은 동성애를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계속 동성애를 행하는 죄인을 용납하신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는 “죄인들의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죄 가운데 그대로 있어라고 하지 않고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라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요8;11)고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하여 우리를 환대하신다.

결론

아직 한국 교회는 동성애로 인한 논란이 크지 않다. 동성애자들끼리의 결합이 정상적인 결혼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하는 흐름도 약하다. 그러나 언제라도 잘못된 문화가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씀의 기준을 지켜나가야 한다. 죄(동성애)를 더 이상 죄로 말할 수 조차 없게 만드는 법안(차별 금지법 그리고 동성애 허용의 서울시민헌장)이 두 번이나 통과될 뻔한 것을 겨우 막았는데 깨어 기도하며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야할 때이다.

교회의 과제는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편견과 차별을 하는 “동성애 혐오증”에서 나와야 한다. 교회는 이들을 소외된 인간으로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공감과 위로와 격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들이 변화된 인격과 세계관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회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이들을 우리 가운데 있는 타자로 대해야 할 것이다. 이들을 위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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