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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목회와 신학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예배전쟁 멈추고 ‘예전적 예배’ 추구해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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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연구(4) * 


 

신촌포럼, 기성 예식서개정특별위원회와 공동으로 ‘제34회 포럼’ 개최

 

2014년 5월 23일 기사

 

 

신촌포럼(대표:이정익 목사)이 지난 22일 오전 10시 신촌성결교회에서 ‘예배, 차분하게? 뜨겁게?’를 주제로 한국 교회 예배를 역사적, 신학적으로 고찰하는 ‘제34회 포럼’을 개최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식서개정특별위원회(위원장:양정규 목사)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날 포럼에서는 서울신대 조기연 교수가 ‘성결교회의 예배, 그 기원과 방향’을 주제로 발표했으며, 김형락 박사(나눔과섬김의교회)가 ‘예배 전쟁을 넘어 요한 웨슬리의 예전적 예배를 향하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우선 조기연 교수는 “열 두 사도를 비롯한 최초의 교회공동체는 예배를 스스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서 명령받았다”며 “이 명령 속에는 예배의 정신뿐만 아니라 예배의 구조와 형식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예배는 열두 사도들과 그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의 제자들에게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세기, 종교개혁시대, 근대를 거치면서 이와 같은 예배에 대한 오해와 변형이 일어났다.

조 교수는 “현재 한국 교회는 소위 열린예배 또는 경배와 찬양 형식의 예배로 일선 목회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한국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배전쟁은 다름 아닌 이 두 예배 형식 사이의 갈등이다. 하지만 두 예배 모두 실용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지닌 예배”라고 주장했다.

# 예수에 의해 지정된 예배, ‘성만찬’

이와 같은 예배들이 예수께서 명하신 예배의 정신을 온전히 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한 조 교수는 성결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예배의 방향성은 예수의 분명한 명령에 의해 제정된 예배에 있다고 피력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고 포도주를 부으면서 자신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해답은 바로 십자가에 있다. 따라서 최초의 교회는 예수의 이 명령을 충실히 따라서 모일 때마다 떡을 뗌으로써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렸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행위 자체가 바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예배의 근본적인 정신이다.그렇다면 신약시대 예배의 형식은 어떻게 재구성됐을까? 조 교수는 “신약성경보다 약 60여 년 후에 기록된 순교자 저스틴의 문헌에 따르면 당시 주일 낮 예배는 ‘성경봉독-설교-기도-(떡과 포도주의) 봉헌-(성찬 감사)기도-성찬참여 등 여섯 가지 순서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초대 교회의 예배의 구조 속에는 예배신학이 존재했다. 예배에서 구약을 봉독했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가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함이고, 신약을 읽는 이유는 그것이 지상의 예수를 따라 다니면서 그 분이 일으키시는 기사와 이적,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을 통해 그가 곧 메시아 되심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초대 교회에서의 성경봉독은 중요한 예배의 순서였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예배에서 성경봉독은 설교를 위한 하나의 보조문서로 밀려나 버렸다”며 “성경봉독은 설교를 위한 하나의 증거본문일 뿐,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초대교회에서는 성경이 읽혀진 뒤 설교가 행해졌다. 설교는 어디까지나 봉독된 성경에 대한 해석과 권면이었다. 설교의 본 취지는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이야기, 즉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행위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성만찬의 경우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봉헌의 행위는 창조신학과 결합돼 있다. 즉, 봉헌자의 손에 들려진 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햇빛과 비를 내려 자라게 하신 밀에다가 그것을 경작하기 위해 땀을 흘린 인간의 수고와 노동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결실이다.

성만찬에서 드리는 감사의 기도는 단순히 빵과 포도주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넘어서 하나님의 인류 구원사 전체를 포괄한다. 즉, 예배공동체는 성만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재림이라는 구속자 전체를 언급하며 감사를 드린다.

# 지속적으로 변화된 예배의 구조와 형식

3세기까지는 예배는 매우 간단하고 단순한 형식을 띠었다. 반면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부터 예배는 활짝 꽃을 피웠다. 소규모로 은밀하게 행해졌던 예배는 당시 로마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바실리카 법정 건물을 본 딴 예배당 건물에서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의 옷을 본 딴 예복을 입은 주교와 사제들에 의해 거행됐다.

예배형식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는 지극히 간단한 예배가 행해졌지만 보다 격식을 갖춘 예배형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말씀예전과 성찬예전이라는 큰 틀에서 과거와 동일한 구조와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도 예배는 많이 변했다.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예배의 전통은 크게 루터교, 성공회, 개혁교회로 나뉘었다. 루터는 초대교회 예배의 회복을 위해 설교를 회복해 말씀과 성찬의 균형을 이뤘다. 회중찬송을 도입했으며, 회중들에게 성만찬을 회복시켜줬다.

조 교수는 “그렇다고 루터가 예배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며 “성만찬기도를 삭제하고, 주님의 제정사만을 남겨둔 것과 예배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시간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특히 한국 교회에 전해진 성만찬 거행방식도 바로 루터의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혁교회의 창시자로 불리는 쯔빙글리가 가져온 예배의 변화는 가장 급진적이고 치명적이다. 예배의 본문과 의식을 극도로 단순화시켰음을 물론, 예복, 교회력, 교회음악을 모두 폐지시켰다. 무엇보다 ‘주의 만찬’은 하나의 생생한 영적훈련,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떠올리는 명상의 시간 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조 교수는 “종합적으로 개혁자들로 말미암아 예배는 중세 미사의 폐해를 극복하고, 말씀의 회복, 회중참여의 제고, 회중찬송과 자국어예배 등 긍정적 결과를 얻었지만 쯔빙글리 같은 급진주의자들로 말미암아 ‘말씀과 성찬의 균형’이 파괴되고, 예배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의 행위가 아니라 신자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행위로 전락됐다”고 피력했다.

결국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공동의 행위’로서의 객관성이 중시되는 예배가 교제와 기도, 권면과 교훈 등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예배’로 변화됐다는 설명이다.

 

 

 

 

# 뜨거운 예배인가? 차가운 예배인가?

예수의 성만찬 예배와 초대 교회 이후 예배의 변화에 대해 설명한 조 교수는 전통예배와 현대예배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첫째, 설교가 예배의 맨 뒷부분에 위치해 그 앞에 오는 모든 순서들을 설교를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으로 전락시킴으로써 회중을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주체가 아니라 말씀을 듣는 청중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둘째, 예배에서 한 곳만 읽혀지는 성경봉독은 신약과 구약을 봉독하는 예배 형식 자체에 내포된 예배의 구속사적 차원을 상실하는 것이다. 셋째, 성만찬이 예배에서 배제되는 것은 예배의 그리스도 중심성과 구속자적 차원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도 배치된다.

조 교수는 “요한 웨슬리는 부단한 성만찬 참여의 의무를 강조했다”며 “웨슬리는 평생 동안 평균 4일 내지 5일에 한 번씩 성찬에 참여했다. 따라서 성만찬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넷째, 현대예배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예배의 구조와 형식 안에 내재된 구속사적 내러티브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다분히 감성적 접근방법에 의존하며, 본질적으로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라기보다는 회중의 신앙강화를 위한 부흥집회 또는 전도집회 성격이 짙다.

조 교수는 “뜨거운 예배와 차가운 예배를 감성적 접근과 이성적 접근으로 구분한다면 두 예배 모두 미흡하다고 판단된다”며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는 지ㆍ정ㆍ의가 총동원된 전인적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예배는 단지 복음을 선포하고, 결신자를 이끌어내는 행위만이 아니며 신자들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행위만도 아니다”라며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하신 구원의 사역을 기억하고, 재현하며, 선포함으로써 성령께서 예배자들에게 모든 구원사의 은총을 힘 입혀 주시는 신학적 행위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께 드리는 회중 공동체의 감사와 찬양”이라고 피력했다.

조 교수는 “앞으로 일선 목회자들이 먼저 예배의 신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립해 성서적, 구속사적 충실함이 있는 예배, 통전적인 신앙으로 이끄는 예배, 영적으로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이 길 맨 앞에 한국 교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성결교회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 예배 갈등의 해결책은 ‘예전적 예배’

한편, 김형락 박사는 예배의 전쟁을 넘어 요한 웨슬리의 예전적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20세기 말부터 북미의 교회들과 예배학계 내에서 예배 전쟁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게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예배가 존재하기 때문에 예배 간에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회중과 회중, 혹은 목회자와 회중 사이에서 더더욱 긴장과 갈등이 야기된다. 하지만 김 박사는 한국 교회는 예배와 예전이 잘 어우러져 함께 공존하는 ‘예전적 예배’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예배(예전)는 곧 신학이다.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의미한다. 예전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며 체험적인 방법이다. 매주 드려지는 예전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확립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 박사는 예배의 문헌과 성례전을 강조하는 예전이 회중들의 감정에 중요하게 여기는 예배의 전통에서 오는 부족한 부분들을 메꿔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예전의 전통은 회중들에게 보다 균형 잡힌 하나님의 이해와 신앙을 형성시킨다는 것. 둘째, 예전적인 예배는 회중들에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들이 해야 할 이웃에 대한 사랑을 확증시키고, 세상으로 나아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고백하게 한다는 것, 셋째, 예전적 예문에 있는 공동의 고백과 신학은 예배 공동체를 하나가 되게 하고, 공동체를 이끌어 온 귀중한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받게 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모든 기독교 전통의 교회들은 그들만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이끌어가는 신앙의 고백과 신학이 있다”며 “이 신앙고백과 신앙이 예배 안에서 회중들의 입으로 말해지고, 귀로 듣게 될 때, 이 전통이 회중들에게 계속해서 전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예배와 예전의 조화-요한 웨슬리의 예전적 예배

그렇다면 예배의 요소들과 예전적 요소들이 조화롭게 결합된 예전적 예배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김 박사는 요한 웨슬리가 추구했던 예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웨슬리는 그가 살던 당시에 유행하던 예배의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익숙한 예배와 예전의 보편적 전통을 존중하는 예배를 추구했다.

웨슬리가 구성한 예배는 모든 순서마다 집례자가 해야 하는 말과 제스처의 지시문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기도문은 미리 작성되어진 기도문과 즉흥적인 기도를 병행했다. 또한 성만찬 예전의 대감사기도 중에서 예비기도 역시 절기별로 마련돼 집례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박사는 “이번에 개정될 성결교회 예식서는 초대교회 뿐 아니라 요한 웨슬리의 예배 전통과 성결교회의 신학적 특색인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의 신학이 예전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작업을 하고 있다”며 “예전적인 요소 뿐 아니라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특징 중 하나인 성별회를 재구성해 수록했고, 초기 성결교회 예배를 현대적으로 구성한 구도자 예배(열린예배)까지도 수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결교회 예식서를 통해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 전통과 초대교회 중심의 고교회 예전적 전통의 충돌을 넘어서 웨슬리가 추구했던 예전적 예배를 통해 성결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깊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기대한다”며  “이제 성결교회 예배는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차분하게, 예배 전쟁을 넘어서 웨슬리의 예전적 예배를 향해 나가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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