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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선교와 신학

불교권 선교, ‘개종’보다 ‘온전한 회심’에 맞춰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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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권 선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 이교욱

 

“강력한 불교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상좌부 불교권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완강한 선교의 저항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이교욱은 “불교권 선교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가되 지역과 종족에 오랜 시간 영향을 준 지역적, 개인적 특성을 이해하면서 시도되어야 한다”며 “상좌부 불교는 교리상 기독교와 가장 멀리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화의 물결만 의지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회심을 목적으로 하는 복음의 본질과 능력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회심한 삶을 나타내는 선교적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선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연구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불교권 선교의 어제
Ⅱ. 불교권 선교의 오늘
Ⅲ. 불교권 선교의 미래
1. 미래 불교권 선교의 주도국
2. 선교의 주된 대상과 바람직한 방식
3. 불교권에서의 바람직한 회심선교 원리
Ⅳ. 결론

 

 

 

 

 

 

 

# 연구내용 중에서


1. 1910년 에딘버러 대회시 불교권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7.8%였으나 100년이 지난 201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6.8%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이슬람이 12.6%에서 22.4%로 두 배 가까운 성장을 한 것에 비하면 불교의 교세는 축소된 셈이다.

 

그런데 이 기간 기독교가 34.8%에서 33.2%로 줄어든 것과 비교할 때, 기독교와 불교가 비슷하게 퇴조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상황은 이슬람교가 기독교권과 불교권이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지역으로 확장한 반면, 기독교의 확장은 일정 부분 불교권으로 이어지고, 불교도 부분적으로 기독교권으로 확장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런 상태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심화되면 이슬람권만 남고, 기독교권이나 불교권이라는 말은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2. 초대 교회의 전통을 지키며 하나의 교파를 형성했던 기독교가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던 기원 후 처음 500년 간 불교는 상좌부 불교(Theravada)와 대승불교(Mahayana)라는 형태로 북인도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로 기독교와 별 만남과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확장해 갔다.

 

 

 

 

 

 

* 상좌부 불교란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가 죽은 뒤 몇 백 년 동안 불교 공동체는 여러 부파(部派)로 갈라졌다. 상좌부, 즉 테리바다는 정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근본상좌부의 한 부파이다. 이 상좌부 불교는 석가모니가 사용한 언어인 팔리어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하며, 부처의 말씀을 근거로 수행을 통한 개인의 해탈을 강조한다.

 

즉 상좌부 불교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불교도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달음에 이른 완전한 성인 곧 아라한(阿羅漢)이다. 이는 중생들의 교화와 타인을 위한 선행이라는 보살사상을 우선하는 대승 불교와 차이를 갖는다. 이들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는 완벽한 스승으로 보지만, 대승불교에서 숭배하는 신격화된 다양한 부처와 보살은 받들지 않는다. (백과사전 참고)

 

3. 불교와 기독교의 실제적 만남은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교의 견제 속에 공존할 때였다.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적 영향을 받은 페르시아 기독교가 동진하면서 아시아로 확장되어 나간 기원 후 두 번째 500년에 이 양대 종교는 상생을 도모한다.

 

 

 

 

 

 

 

 

4. 불교가 기독교의 중추 세력인 유럽과 미국에 전래되기 시작한 시기는 19, 20세기에 들어와서다. 20세기 후반 서구 여행자들이 아시아로 여행하면서 불교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불교 선교사들의 활동과 아시아 불교도들이 서구로 이주하면서 유럽과 아메리카 불교사회를 형성했다.

 

5. 불교는 20세기 전반기에 쇠퇴하는 듯했으나 20세기 후반기에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교세를 회복하고 있다. 불교 교세는 1910년 전 세계 인구의 7.8%에 달하던 것이 1970~80년에서 저점을 찍고, 다시 상승해 2010년에는 6.8%가 됐다. 불교는 1910년에서 2010년까지 평균 성장률 1.23%로 인구 증가율 1.38%보다 낮았으나 최근 10년 간 성장률은 1.25%로 평균 인구 증가율 1.21%보다 높았다.

 

6. 21세기 선교의 주도국, 특히 불교권 선교를 이끌고 나갈 주도국으로 새롭게 등장할 곳은 중국과 캄보디아다. 앞으로 중국이 한국과 미국과 더불어 세계 선교를 선도할 것으로 본다면 캄보디아는 한국과 더불어 불교권 선교의 첨병이 될 것이다.

 

7. 불교권 선교 지역에서 미래에 여전히 각지각처에서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가야 할 곳은 상좌부 불교권이 될 것이다. 대승불교권은 이미 현지 교회와 교단이 스스로 선교할 수 있는 곳이며, 티벳 불교권은 중국의 강한 교회들이 선교할 것이다.

 

 

 

 

 

 

 

8. 상좌부 불교권 선교의 해법은 강력한 보루를 파괴한 후 선교하려는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보다 이 보루 안에 거주하고 있는 불교도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 전도하고, 이들의 보루 안에 하나의 좋은 이웃으로서 기독교 사회를 건설하는 방식이 최선의 방향이다.

 

9. 불교권 선교의 미래에 있어서 선교의 방식도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뤄진 불교권 선교는 대체로 4가지 방식이다. 첫째, 필요 충족 방식이다. 불교에 부정적 견해를 가져 불교도들의 육체적,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를 채워주면서 반강제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게 하는 방식이다. 둘째, 접촉점을 통한 방식이다.

 

초보적인 상황화 선교전략이다. 셋째, 변증법적 방식이다. 심층적인 상황화전략으로 설득 전도, 진리 대결, 세계관의 대결, 비교종교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넷째, 능력 전도다. 말하자면 신유나 축귀나 능력행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10. 불교권 선교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불교와 불교사회 붕괴를 목표로 하는 대결 형태보다 불교라는 종교를 이해하고, 이들의 사회를 포용해 선교의 닫힌 문을 여는 것에 일차 목표를 두어야 한다. 마치 석가가 사람에 따라 같은 내용을 달리 설법한 것 같이 불교권에 있는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서 서로 다른 불교 신학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에 맞춘 개별 선교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

 

11. 불교와 기독교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불교를 접촉점으로 삼기보다 불교와 관련되지 않은 대상자의 문화나 역사, 삶의 문제를 접촉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선교의 대상으로 불교 공동체의 영향이 적은 소수종족이나 이주민을 선택해야 하고, 철저한 불교도라면 인내심이 많은 지속적 대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점검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12. 시간이 필요하고 온유함이 요구된다. 선교사가 기다리지 못하고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그 결과는 배척이나 포기다. 영혼 구원을 위해 인내와 온유, 그리고 지혜로움을 가지는 것이 올바른 선교적 자세다.

 

13. 단순한 개종이 아니라 온전한 회심을 선교의 목표로 확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복음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신학적으로 상좌부 불교는 기독교와 반대적 위치에 있으므로 회심 과정이 길다. 특별회심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전환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14. 상좌부 불교권의 사람들은 고행하고 정진하며 수행하며 모든 것을 헌신하는 승려와 사회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는 사원의 존재를 매일 본다. 교회가 승려나 사원보다 이러한 모습을 갖지 못한다면 선교는 불가능하다. 초대 교회에서 보여준 회심자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

 

15. 불교도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갈망하는 선교사는 불교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전해야 한다. 전형적인 불교에서는 진리를 보고,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맹목적인 신앙을 갖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예수께서 와 보라고 하신 것처럼 선교사는 말뿐 아니라 직접 구원받은 삶을 보여줘야 한다. 불교와 다름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비교하게 하고 복음의 능력을 맛보게 함과 동시에 철저한 재교육을 통해 불교적 관점을 완전히 교정해주고, 강력한 회심자의 공동체인 참된 그리스도의 몸을 보여줘야 한다.

 

* 위 내용은 한국연합선교회(KAM)가 지난 2010년 6월 22일부터 24일까지 장신대학교에서 ‘세계 선교의 어제ㆍ오늘ㆍ내일’을 주제로 개최한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 기념 2010 한국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총 10분과(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와 회고와 전망, 성경과 선교신학, 선교와 타종교, 선교와 현대사회, 선교와 영적지도력, 선교와 교회(목회), 한국선교와 신학교육, 문화와 사회변동, 선교와 연합, 한국 교회와 세계평화)로 나눠 수십 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원문을 참고하면 된다.

이교욱, “불교권 선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한국연합선교회-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 기념 2010 한국대회, 2010년 6월23~24일,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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