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교리와 신학

[그때 그 기사-2]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영혼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by 데오스앤로고스 2021. 5. 9.
728x90
반응형

 

[특집: 그때 그 기사] '코로나 19' 팬데믹은 현재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된 문제이며, 최고의 관심사다. 목회 현장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보니 한국 신학계의 주된 논의 주제도 '코로나 19'다. 코로나 19로 한국 교회 목회현장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에 따른 목회적 방향성을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지 등 코로나 19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현 시대 목회적 상황에 매우 적절하면서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슈지만 한국 교회 목회 현장을 위해 보다 다양한 신학적 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아쉬움도 든다. 이에 본지는 '그때 그 기사'라는 특집 코너를 통해 코로나 19 전에 신학계의 주된 논의가 무엇이었는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어떤 내용에 관심을 가졌는지 본지의 기사 중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던 내용을 다시 게재함으로써 '그 때 그 묵상'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14년 12월 12일 기사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이들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던져질까? 아니면 이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이들은 원천적으로 구원으로의 접근조차 차단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에게도 구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있는 것인가?

 

김윤태 박사(백석대)는 “미전도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와 그리스도의 사역의 보편적 의미를 말하는 성경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것,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과 미전도인들의 연관성, 타종교의 믿음과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의 상관성,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날카로운 구별의 정당성 및 일반계시의 구원의 통로로서의 가능성에 관한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오늘날 세계화, 다종교 사회, 종교다원주의, 다양성의 공존이란 말들은 ‘구원’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을 배타적이라고 인식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때문일까? 타종교와의 공존을 모색하면서도 구원에 관한 기독교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신학적 논의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한 번도 들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죽는 이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기독교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미전도인의 구원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밀라드 에릭슨(Millard J. Erickson)은 이와 같은 문제는 오늘 시대를 사는 모든 기독교인들, 심지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까지 관심이 있는 주제이며, 또한 그들의 매일의 삶에 중요한 문제로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 교리에 관계된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윤태 박사는 미전도인의 구원에 관한 문제는 사실 오늘날에 완전히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1세기 초대교회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던 때에도 역시 다신 다종교 맥락 속에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 구약 이스라엘 또한 항상 주변의 다신 다종교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뜻과 관련하여 세상 속에서 이스라엘과 교회가 자리하는 위치와 목적은 어떤 것인지, 이스라엘과 교회 밖의 다른 종교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가능한지 하는 문제는 성경 역사와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항상 있어왔던 문제인 것이다.

물론 1세기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논의가 됐고, 때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 구원의 문제 등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 사상이 들어온 오늘날 20세기, 21세기의 시대적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김 박사는 “20세기 초(1910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처음 개신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교파간 대화(교회일치운동)운동으로 시작된 World Mission Conference는 로마가톨릭의 참여로 신구교 간의 대화로, 그리고 이어진 그리스정교회의 참여로 동.서방교회의 대화와 교회일치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런 에큐메니칼 운동의 흐름 속에서 마침내 1948년 WCC(WorldCouncil of Churches)가 등장하게 되어 이제는 WCC의 주도로 기독교내의 다양한 종파나 교파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타종교간의 대화와 종교일치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오늘날 WCC의 주도로 진행되는 기독교와 타종교간의 대화의 움직임은 WCC 안에 종교다원주의 세력을 용인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WCC 내부에 만연한 종교다원주의 경향은 보수 진보를 막론한 전체 기독교계에 성경적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미전도인의 구원 문제는 복음주의 신학에 중대한 도전을 던져주는 신학적 주제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미전도인의 구원 문제는 오늘날 복음주의, 특별히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이 시급히 응답해야 할 가장 심각하고도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며 “하지만 복음주의, 개혁주의 신학은 이와 같은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 박사는 “복음주의 입장에서 미전도인의 구원 문제를 다루는 신학자들의 다양한 신학적 시도들을 그 특징에 따라 정리하고 분류했다”며 “이 연구물이 한국 교회의 현실적 상황 속에서 오늘날의 복음주의, 개혁주의 교회들에게 던져주고 있는 시대적 문제인 미전도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 보다 활발한 신학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윤태 박사가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제64회 정기논문발표회’(2014년 10월 25일 / 주제:복음주의와 성경해석 / 장소: 새에덴교회)에서 발표한 연구논문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자들의 최종운명에 관한 신학적 논의들>
김윤태 박사(백석대)


# 미전도인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죽은 사람”

‘미전도인’이란 영어로는 ‘the unevangelised’로서 이 땅에 사는날 동안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죽은 사람을 말한다. 곧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복음전파자가 와서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따라서 믿을지 믿지 않을지를 스스로 선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죽게 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문화적, 정치적, 지리적 또는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으며 그 장벽을 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러 오는 사람들도 없었고 당연히 그들 가운데 교회도 없었던 그런 사람들이다.

대개 오늘날 이슬람 국가나 불교 국가 등과 같은 이방종교를 믿는 나라나 공동체에 속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에 속하며, 또한 외부세계로부터 동떨어진 아프리카 정글 등의 오지에 사는 민족들, 북한과 같이 폐쇄된 사회에 수용되어 사는 사람들 등과 같은 경우가 이에 속한다. 한편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나, 특별계시 전통 밖에 놓여졌던 구약시대 이스라엘 공동체 밖에 살았던 이방종교를 가진 민족들도 이런 미전도인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전도인들은 종종 “잃어버려진 자”(the lost)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밖에 외인으로서 성경의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도 없이 영적 어두움 가운데 살다가 죽는 자들로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전도인들을 이렇게 잃어버려진 자들로 이해하는 것은 이미 미전도인들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고 전제하는 것으로 미전도인의 구원의 문제를 다룸에 이미 한 쪽으로 결론을 내버림으로 편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해는 제한주의(Restrictivism) 또는 배타주의(Exclusivism)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미전도인들을 “이교도”(the heathe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표현 또한 기독교회를 중심으로 구원의 문제를 생각하는 제한주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교도들이란 명칭 또한 “기독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보는 배타주의 입장에서 볼 때 미전도인들은 기독교회 밖의 타종교인들과 일치되며 타종교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놓여지는 것으로 이해됨으로 이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사용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잃어버린 자”나 “이교도”란 표현은 그 속에 이미 미전도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확신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음으로 이런 명칭 보다는 “미전도인”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중립적이고 더 타당하다고 생각되며 또 이 용어가 실제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미전도인의 문제’란 이런 미전도인들의 최종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던져지는가? 아니면 이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이들은 원천적으로 구원에로의 접근조차 차단되는가? 아니면 이들에게도 구원에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있는 것인가?

성경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인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신 구원의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곧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으며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는 이가 없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따라서 한 번도 믿을지 안 믿을지를 스스로 선택할 기회조자 갖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단순히 듣지 못했고 그럼으로 한 번도 믿음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단순히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최종적으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던지시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의 성격에 맞는가? 또한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 할 수 있는가? 또한 이것이 만일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작정의 결과라면 그것은 너무도 잔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미전도인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

1) 제한구원론(Restrictivism) / 배타주의(Exclusivism)


미전도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보수적인 태도는 미전도인들을 유기된 자들로 봄으로 이들의 구원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입장일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형태는 전통적 어거스틴주의의 입장에서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Hyper-Calvinism의 Supralapsarianism(타락전예정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아담의 죄는 인간의 본성 전부를 오염시켰고 따라서 인간 본성에는 어떤 선도 남아 있지 않으며 선을 행할 의지의 자유도 선을 행할 어떤 능력도 없다. 또한 이러한 죄성은 아담 이후 모든 인류후손에게 유전되어 아담의 모든 후손은 나면서부터 죄성을 가지고 출생함으로 구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무능력하다.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은혜에 달린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영원전에(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그의 불변하시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주권적인 뜻으로 선택하신 자들만 구원을 받게 된다.

따라서 미전도인들은 처음부터 선택되지 않은 자들, 곧 유기된 자들로 여겨지며 따라서 이들은 처음부터 구원에의 접근 가능성조차 부정된다. 이처럼 처음부터 구원의 가능성이 오로지 선택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고 보는 제한주의의 입장은 타종교인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타주의(Exclusivism)의 입장을 가진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린젤(Harold Lindsell)에 따르면 미전도인들의 최종운명은 복음을 듣고도 거부한 이들과 마찬가지 운명으로서 이들은 다 함께 근본적으로 ‘버리운 자들’(the lost)로 이해되어진다.

2) 보편구원론(Universalism)

미전도인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한 또 다른 한편의 극단적 입장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는 보편구원론의 입장이다. 전통적으로 초대교회 이후 교회역사 속에서 제시되어온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보편구원론은 오리겐(Origen)의 만유회복설(Apokatastasis)이다. 이 견해는 유출(emanation)과 회귀(return)라는 플라톤적 순환사상에 기초하여 행 1:6에 나타나는 회복(restoration)을 의미하는 헬라어 ‘apokatastasis’를 하나님께서 마침내 사탄까지라도 포함한 모든 창조의 질서를 완전한 상태로 회복하실 것이라고 보는 견해로서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상이다.

전통적인 오리겐의 만유회복설과 달리 현대에 제기되고 있는 보편구원론은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먼저 로빈슨(J. A. T. Robinson)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 호소하는 보편구원론을 제시한다.

로빈슨에 따르면 성경에는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본문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본문이 동시에 나온다. 그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진술은 동시에 진리일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이 공의이시면 모든 인간은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고, 만일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된다. 그는 이 두 가지 진리에 대한 진술 중 어떤 것이 최종적인 진리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은 역사의 끝에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빈슨의 주장은 곧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의지가 역사의 종국에 역사운영의 최종목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로빈슨은 이러한 모든 인류의 보편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의지를 말하는 신약성경의 근거로 에베소서 1:10; 골로새서 1:20; 요한일서 2:2; 요한복음 3:17; 디모데전서 2:4; 로마서 8:19-21; 사도행전 3:21 등의 본문을 예시한다. 로빈슨에 따르면, 필연성의 논리에 따라 만일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 실패로 끝난다면, 이는 결국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이 된다는 것이다.


바르트(Karl Barth)는 그의 독특한 예정교리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에 근거한 보편구원론을 펼친다. 곧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그의 절대적 주권으로 모든 인간을 선택하셨고 오로지 버림받은 단 한사람은 바로 성자 자신이라는 바르트의 독특한 예정교리는 결과적으로 보편구원론으로 이해된다.

바르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또한 선택받는 인간이며, 모든 인간은 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어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동시에 선택자이며 또한 유기자가 되는 유일한 인간인 것이며, 남자이든 여자이든 모든 인간은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정체성이 정의되어진다. 결국 역사는 원역사에 의해 결정됨으로 역사 이전의 초월의 영역, 곧 원역사(Urgeschichte)의 영역에서 성부께서 신인이신 성자 안에서 모든 인간을 선택하시고 성자는 유기된 단 한사람이 된다는 바르트의 예정에 대한 이해는 결과적으로는 보편구원론으로 이해된다.

3) 불가지주의(Agnosticism)

미전도인의 문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장 손쉽게 가질 수 있는 태도는 한편으로는 전통적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미전도인들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하는 불가지주의(Agnosticism)의 입장을 가지는 것이다.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이 이런 입장의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한편 린젤(Harold Lindsell)의 근본주의적인 제한주의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 그와 같은 입장이 미전도인의 최종운명과 관련하여 도전받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전도인의 운명에 대하여 맥가브란은 린젤의 근본주의적 제한주의의 입장과 같은 결론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맥가브란은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게 된다는 전통적 입장에 서있으면서도 또 한편 미전도인의 운명과 관련하여서는 조심스런 낙관적 태도를 견지한다. 미전도인의 운명과 관련한 맥가브란 자신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숨겨진 주권적 뜻에 호소하는 것이다.

곧 미전도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숨겨진 뜻에 달려 있는 것으로서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숨겨진 뜻은 우리에게는 감추어져 있고 따라서 우리는 미전도인의 최종운명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맥가브란은 미전도인의 최종운명에 대해 어느 정도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미전도인들의 구원에 대해서 회의적인 불가지주의의 입장을 가진다.

케인(Herbert Kane) 또한 이런 불가지주의의 입장을 가지는 복음주의 신학자이다. 케인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였음으로 복음에 대한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책임지울 수 없는 이교도들”의 운명에 관한 문제에 관하여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숨겨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돌리는 점에서 맥가브란과 같은 불가지주의의 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미전도인의 운명과 관련한 케인의 입장은 맥가브란과 마찬가지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호소함으로 미전도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두게 된다. 곧, 복음전도를 듣지 못한 미전도인들은 일반계시의 빛에 반응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기준으로 판단 받지만, 일반적으로는 타락한 자연인으로서는 이런 일반계시의 빛에 반응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이교도나 이방인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약 그의 주권으로 어떤 이방인을 일반계시의 빛을 통해 부르신다면 우리가 거기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이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으로 그들을 부르실 수 있는 가능성마저 우리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에게는 숨겨져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케인의 불가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 이름으로 알고 고백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정당화 시켜주는 어떤 성경구절도 열거하기를 거부하는 맥가브란의 부정적 불가지주의와 달리 롬 2:6-7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불가지주의라 할 수 있다.


4) 낙관주의(Wider Hope View)


미전도인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하여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대부분은 미전도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말할 수 있는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구원에의 보편적 접근 가능성에서 찾고자 한다. 미전도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구원의 가능성은 제공되며 구원에로의 접근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입장을 샌더스(John Sanders)는 “Wider Hope View”라 부르는데, 본 글에서는 이 용어를 그 의미를 따라 “낙관주의”로 번역하고자 한다.

샌더스에 따르면 구원의 보편적 접근가능성을 말하는 낙관주의의 입장은 “하나님께서는 은혜 안에서 모든 개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제공하심으로 어떤 인간도 구원의 은총의 유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서 박탈되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낙관주의는 한편 모두가 구원받는다고 하는 보편구원론도 거부하고 또 한편 처음부터 구원의 접근가능성마저 제한되는 제한주의도 거부하며, 그러면서도 불가지주의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미전도인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적 죽으심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사역을 통한 구원에로의 부르심은 모두에게 차별없이 보편적으로 제공되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샌더스는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적 죽음을 ‘객관적 의미’와 ‘주관적 의미’로 나눔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그는 이러한 그의 입장을 “낙관주의”(Wider Hope View)라고 부르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대속적 죽으심으로 이루신 공로는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objective)으로 제공되고 있으나 그러나 구원 곧 그 죽으심의 공로가 적용되는 것은 오로지 믿는 자들에게만 ‘주관적’(subjective)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 대속사역의 공로가 인류에게 차별 없이 제공된다는 다양한 논의

1) 특별계시를 통한 구원의 보편적 접근 가능성


복음주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로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대해 확신한다. 또한 인간의 타락과 원죄를 인정하며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 곧 말씀을 들음을 통해서 갖게 되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게 됨을 확신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말씀 곧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주의의 성경관에 보다 충실하려는 의도에서 성경계시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임을 주장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구원의 접근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오직 성경으로만’(Only Bible)의 입장을 가진 학자들이 있는 반면, 한편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성경 밖에도 구원에로의 접근이 가능함을 주장하는 ‘성경 밖에도’(Extra Bible)의 입장을 가진 복음주의 학자들도 있다.

‘오직 성경으로만’(Only Bible)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구원얻는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할 때 그 말씀을 성경의 복음 곧 특별계시로 한정한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 곧 특별계시가 전파된다고 주장한다.

* 보편적 파송 이론 혹은 보편적 기회 이론

‘보편적 파송 이론’(Universal Sending Theory)은 ‘보편적 기회 이론’(Universal Opportunity Theory)으로도 불리는데, 기본적으로 일반계시는 구원에 불충분하며 특별계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믿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임을 확신하는 바탕에서 출발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누구라도 구원을 진심으로 갈망함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특별계시 곧 성경의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복음전파자를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을 열망함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땅 끝까지라도 복음전파자를 보내어 주시던지 아니면 꿈이나 환상으로라도 성경의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구원의 기회를 갖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어느 민족이나 공동체 안에서 누구라도 진심으로 경건함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을 찾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성경의 복음을 듣게 하신다는 것으로 따라서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나 공동체의 사람들은 그들 중 누구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을 진심으로 찾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위한 성경구절로는 히 11:6; 요 4:23 등이 있으며, 성경에서 이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방인 백부장이었지만 하나님을 찾는 경건한 사람이었던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 복음전파자로서 베드로를 보내주신 경우와, 경건한 이집트 내시에게 빌립을 보내주신 경우를 들 수 있다.


* 중간 지식 이론


‘중간 지식 이론’(Middle Knowledge Theory 혹은 “If” Theory)이란 하나님의 전지성을 바탕으로 비록 성경계시처럼 충분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계시의 정도에 따라 반응하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충만한 계시의 빛이 주어지기만 하면 믿을 것으로 아신다는 이론이다. 곧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신약의 성도들의 믿음과 같이 보시듯 미전도인들의 믿음도 그렇게 보신다는 이론이다.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약의 사람들만큼 인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부활 사건의 역사적 내용들을 몰랐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빛의 정도에 반응하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실 때 그들도 만약 신약의 성도들처럼 충만한 성경계시의 빛을 받는다면 믿을 줄로 간주하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전도인들의 경우에도 비록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무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받은 빛의 정도에 반응하는 믿음을 보실 때 그들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만 했다면 믿을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성경적 근거로는 마 11:21-23을 제시한다.

* 종말적 복음전파 또는 최후의 기회 이론

‘종말적 복음전파’(Eschatological Evangelisation) 또는 ‘최후의 기회 이론’(Final OptionTheory)이란 생의 마지막 순간 까지도 복음전파자가 와서 성경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기 직전에 누구나 복음전파를 들음으로 최후의 구원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곧 미전도인의 경우 마지막 죽기 직전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되고 믿을지 안 믿을지를 선택할 수 있는 구원의 마지막 기회를 갖게 된다고 본다.

* 사후 복음전도, 또는 제2의 기회 이론

‘사후 복음전도’(Post-Mortem Evangelisation) 또는 ‘제 2의 기회 이론’(Second Chance Theory)은 이생의 기간 동안 복음전파를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경우에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으로 바로 가지 않고 중간세계에서 다시 한 번 복음전파를 들을 기회를 갖게 된다는 이론으로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는 Gabriel Fackre, Stephen Davis, Donald Bloesch 등과 같은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밖에서는 George Lindbeck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입장의 성경적 근거 구절들로는 마 12:40; 막 16:15-16; 요 15:22; 살후 1:8; 딤후 1:16-18; 벧전 3:19-20 등이 있다.

2) 특별계시 밖 구원의 보편적 접근 가능성(Extra Bible Position)

특별계시인 성경 밖에도 구원의 보편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는 ‘성경 밖에도’(Extra Bible)의 입장은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구원얻는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의 공로가 효과있게 적용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다시 ‘믿음의 원리’(Faith Principle)의 입장과 ‘성령론적 포용주의’(Pneumatological Inclusivism)의 입장이 있다.

* 믿음의 원리(Faith Principle)

믿음의 원칙은 John Sanders가 제시하는 미전도인의 문제에 대한 그 자신의 신학적 해결책이다. Sanders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객관성 또는 보편성의 바탕 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얻게 된다는 보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주관성 또는 효과성을 구별함으로 그의 미전도인의 구원의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객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지만 그러나 객관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Sanders가 주목하는 것은 믿음의 성격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주관성 또는 효과성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Sanders는 믿음을 인식론적(epistemological) 믿음과 존재론적 또는 궁극적(ontological) 믿음으로 구별한다. Sanders에 따르면 구원얻는 믿음은 존재론적 믿음이지 인식론적 믿음이 아니다. 만일 구원얻는 믿음을 인식론적으로 이해할 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동적으로 구원에서 탈락하게 된다. 왜냐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부활 사건을 인식론적으로는 신약의 성도들처럼 충분하게 알고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정도의 빛에 반응하는 그들의 존재론적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효과있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이것은 미전도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Sanders는 비록 주어진 계시의 빛의 정도는 달랐지만 구원 얻는 믿음으로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나 구약 이스라엘 밖의 이방인이었지만 구원 얻는 자들로 여겨지는 욥이나 멜기세덱 등의 사람들의 믿음이나 신약의 신자들의 믿음은 다 같이 구원의 효과를 가져오는 믿음으로서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본다.

구약의 사람들과 신약의 사람들의 믿음은 인식론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구원의 근본 바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공로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공로는 믿음으로 효과있게 되며 이는 미전도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대한 지식은 구원얻는 믿음에 필수적 요소는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임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구원은 선물의 성격이나 선물을 주는 자가 누구인지 아는 지식이 없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 안에서 나타내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구속사역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모든 시대, 문화, 장소에 관계없이 주어져 왔고 또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성령론적 포용주의(Pneumatological Inclusivism)


성령론적 포용주의는 클락 피녹(Clark H. Pinnock)의 미전도인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데, 기본적으로는 존 샌더스(John Sanders)의 ‘믿음의 원칙’과 큰 틀에서 궤를 같이 한다. 다만 차이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구원에로의 접근 가능성을 말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효과있게 적용되게 하는 믿음을 이해함에 있어서 믿음과 성령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데 있다.

피녹은 샌더스 등의 사람들과 함께 소위 ‘열린 신학’(Open Theology)의 범주에 드는 신학자이다. 열린 신학이란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우리에게 미래가 열려 있듯이 하나님께도 미래는 열려있다고 보는, 전통적인 신론에서의 하나님의 속성과 특별히 하나님의 작정(예정)을 반대하는 신학사상이라 할 수 있다. 열린 신학에 따르면 역사란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음으로 하나님도 인간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에게 미래는 알 수 없이 열려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도 미래는 알 수 없이 열려있다고 본다. 열린 신학을 견지하는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신관을 “The Openness of God”이라고 부르며, 피녹은 이러한 사상을 “free-will theism”)이라 부른다.

성경의 역사를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가운데, 피녹은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로부터 이어지는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편구원의지의 정점(climax)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중심에 그는 성령을 둔다. 곧 창조로부터 계속 일관되게 이어져 오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의 중심에는 성령이 있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곧 성령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역사의 중심에 있는 성령은 또 한편 이러한 역사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피녹의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으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이해함에 있어서 ‘말씀 기독론’(Logos Christology)과 성령 기독론 가운데서 ‘성령 기독론’(Spirit Christology)의 입장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피녹에게 있어서 미전도인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보편적 접근 가능성을 말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령 때문이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역사의 어느 특정한 시점에 일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오시기 이전이나 이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구원의 길이 되는 것은 성령 때문이다.

곧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 뜻은 역사 속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나타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역사의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정점을 이룬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나 이후 오게 될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 뜻이 적용되며 이렇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인류구원을 위한 그의 뜻을 창조세계와 역사 속에 항상 현존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려오셨다. 피녹은 이것을 ‘선행하는 은총’(prevenient grace)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 창조세계와 역사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은총을 제공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총을 통해 모든 인류와 구원을 위한 관계를 가지고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살았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사람들과도 은총적으로 구원의 관계를 가지신다.

* 제 3의 계시(The Third Revelation)

제 3의 계시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들음으로만 따라서 성경의 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고백해야만 구원을 얻는다면 미전도인들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게 되고 그러나 성경 밖에도 구원 얻는 믿음이 가능하다고 하면 성경의 절대적 권위가 위협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선교의 필요성이 도전받게 된다고 생각함으로 그 대안으로 미전도인들에게는 제 3의 계시가 있다는 견해를 갖는다.

이는 특별히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한 종족인 요루바(Yoruba) 종족의 경우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요루바 종족은 최초의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들어가기 전에 자신들의 전통 종교 속에서 이미 성경계시와 매우 유사한 수준의 내용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전도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함에 있어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접근을 살펴봄을 통해 우리는 미전도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생각하려 할 때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음을 정리해 볼 수 있다. 그것은 1)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와 그리스도의 사역의 보편적 의미를 말하는 성경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과, 2)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과 미전도인들의 연관성, 3) 타종교의 믿음과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고 성령의 사역의 상관성, 4)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날카로운 구별의 정당성 및 일반계시의 구원의 통로로서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바라기는 앞으로 복음주의 신학의 틀 안에서 이러한 여러 사항들을 바르게 살핌으로 성경적 복음주의 신학적 입장이 나올 수 있는데 이 글이 작은 기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내용의 원활한 게재를 위해 각주 및 참고문헌은 생략했습니다.

 

* 그때 그 기사 링크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 과연 천국에 갈 수 있나?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자들의 최종운명에 관한 신학적 논의들 - 김윤태 박사(백석대) / 2014년 12월 12일 기사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이들은

www.theosnlogos.com

 


<Copyright데오스앤로고스 / 무단 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