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단! 한국교회

교회 내 무신론자, ‘경건주의’ 영성으로 변화시켜야

by 데오스앤로고스 2015. 12. 14.
728x90
반응형

 

독일 경건주의 영성과 한국교회 / 주도홍 교수(백석대)

 

 “21세기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제대로 찾고 있는 것인지, 신앙생활은 올바로 하고 있는지 올바로 진단하고 처방해야 한다. 교회 내 실천적 무신론자나 숨은 무신론자들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 영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 박사)이 지난 18일 오후 4시 학술원 세미나실에서 ‘경건주의 영성과 한국 교회’를 주제로 개최한 ‘제37회 월례발표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주도홍 교수(백석대)는 독일 교회 경건주의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의 영성과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이날 주 교수가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교회 내 경건성이 약화되거나 상실되면 ‘실천적 무신론자’(신앙생활을 단지 종교적 행위로만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 신앙인)들이 교회 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무신론자들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는 교회 내 소그룹 경건모임의 활성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17세기는 역사 속에서 인본주의적 계몽주의가 경건주의와 함께 출현하는 시기였다”며 “당시 유럽인들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7세기 경건주의 운동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떤 이들은 교회의 제도적 신앙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조명해야 하는 원천적 고뇌를 했다”며 “당시 독일교회 성도들은 ‘과연 우리가 찾는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고, 신앙이 제대로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며 교회 안팎의 무신론에 대해 분석하며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리며 개혁을 시도해갔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17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개혁교회 경건주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운데어아익((Theodor Undereyck, 1635~1693)을 중심으로 언급되는 무신론주의(Atheismus)는 경건주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라며, 한국 교회 영성 회복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운데어아익의 ‘경건주의 영성’을 제시했다.

주 교수는 “당시 인본주의적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이론적 무신론자의 본격적 등장이 시작됐다”며 “운데어아익은 비밀스러운 교회 내 무신론자들을 밝혀내려고 했다. 이들이 누룩처럼 교회를 타락으로, 무력함으로 떨어뜨리고 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운데어아익은 교회 타락의 근원적인 두 가지 악을 신앙에서의 무지와 예정교리로 말미암은 잘못된 안정감이라고 지적했다. 즉, 맹목적이며 신앙 경험도 없이 미신적으로 구원과 거룩을 추구하는 자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성을 통해 이해하려는 자들, 실생활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인들, 진정한 신앙의 가장 근원적 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리스도의 삶을 뒤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실천적 무신론자’로 보았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경건주의자였던 운데어아익은 세례를 받으면서 전혀 그리스도적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을 어떻게 진정한 신앙인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목회의 주안점으로 삼았다”며 “그것은 화석화되어가는 힘없는 ‘습관화된 기독교’를 깨우는 영적 소그룹 경건모임이었다”고 강조했다.

 

즉, 운데어아익은 교회 내 존재하는 무신론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교회 속의 작은 교회운동인 소그룹 모임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그룹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성경과 함께 교재, 찬송가도 새롭게 만들어 도입하려고 했다. 물론 운데어아익은 교회 안의 무신론자를 없애기 위해 소그룹 경건운동 이외에도 신앙체험,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교제하는 열심 있는 성도, 거룩한 삶을 사는 신자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주 교수는 “17세기 독일 교회가 무신론자들 문제와 같이 정신적 황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한국 교회도 물질주의, 쾌락주의, 안일주의, 명예주의, 다원주의 등 여러 가지 많은 도전 앞에 유혹을 받으며 세속적이고 물량적인 기준이 목회의 성공으로 여기는 속물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

 

 

현재 총체적 위기에 내몰린 한국 교회의 문제는 경건성의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 주 교수는 “17세기 운데어아익이 독일 교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하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렸던 것처럼, 한국 교회도 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제 한국 교회도 바른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교회다운 거룩한 노력을 다시 기울여야 한다”며 “17세기 독일교회의 부흥을 위해 운데어아익이 추구했던 경건모임을 20세기 옥한흠 목사의 작은 교회 운동인 제자훈련을 통해 한국 교회를 깨웠다. 이제는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을 세워 말씀을 함께 공부하며 기도하며 나누는 교회 속의 소그룹 경건모임 시작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 교수는 “한국 교회가 경건성을 회복했을 때, 형성된 거룩한 삶을 세상에 모델로 제시해줄 수 있다”며 “그저 물질 넘치는 풍요로운 사회가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참 인간으로 바른 성도로 세상에서 세상을 변혁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평자로 참여했던 한영태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는 “교회 안의 무신론자들은 명목상으로는 그리스도인이고 훌륭한 교인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며 “한국 교회 안에서 어느새 ‘실천적 무신론자’나 ‘숨은 무신론자’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박사는 “주 교수가 설명했듯이 교회 안의 무신론의 중요한 근거, 그리고 교회 타락의 근원적 악은 ‘신앙적 무지와 눈 먼 확신’, 곧 예정교리에 근거한 잘못된 안정감”이라며 “외적 성장지상주의에 빠져서 부흥과 성장을 위한 방법론만 추구하다가 교회의 본질(신자의 본질)을 망각한 한국 교회는 거룩한 삶을 위해 이제 경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경건주의 영성과 한국 교회:17세기 개혁교회 경건주의 무신론주의 이해’라는 주도홍 교수의 주요 발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일부 정리했다.

1.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앙 세계 속에 파묻혀 살아가며 교회 안에서 무신론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 무신론을 제기하는 근거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7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개혁교회 경건주의 창시자 테오도르 운데어아익(Theodor Undereyck, 1635~1693)을 중심으로 언급되는 무신론주의(Atheismus)는 경건주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이다.

 

2. 무신론은 성경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울 서신 에베소서 2:12의 “하나님도 없는 자”에서 나오는 ‘atheos’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17세기 경건주의에서 일컫는 무신론자와는 조금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경건주의는 이론적 무신론과 실천적 무신론으로 나누었는데, 특이하게는 교회 안에 숨어 있는 무신론을 ‘숨어있는’ 또는 ‘비밀스런’ 무신론으로 추적한다.

 

3. 무신론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은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이다. 운데어아익은 잘못된 신앙 타성에 젖어 있는 신앙인들을 ‘이름 크리스천’(Scheinchristen)라고 했는데, 다르게는 ‘실질적 무신론자들’(praktische Atheisten)로 일컬었다. 즉, 경건의 아름다운 명목하에 나름대로 진리에 입각하여 외적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이고 능청을 부리지만 힘없는 생활 가운데서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4. 이 ‘실천적 무신론자들’이야 말로 운데어아익이 보기에는 마귀들, 적그리스도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들인데, 드러나지 않은 상태 가운데서 스스로 잘못된 안정감 속에서 더 깊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죄악의 잠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5. 운데어아익에게 이들을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해악’(den groesten Schaden)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중생과 성화의 삶이 없이 살아가는 교인들이다. 운데어아익은 실천적 무신론자를 목회자에게서도 발견하게 되는데, “능력도 기백도 생활의 모범도 없이 자신들의 목회를 유지하고 있다”고 고발하며, 운데어아익은 “참으로 탄식을 감출 수 없는 영적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위험한 마지막 때”라고 절규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운데어아익은 두 가지를 드는데, 신앙적 무지와 눈먼 확신이다. 그들에게는 “중생도 없고, 성화도 없고, 회개와 자아부정인 삶의 부재”만이 있을 뿐이다.

 

6. 결국 운데어아익은 청교도의 경건을 독일 개혁교회에 실질적인 아이디어로 가져와 독일 교회에 이식하게 되었다. 그는 신앙에서의 무지와 예정교리에 근거한 잘못된 안정감을 교회 타락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운데어아익은 개혁교회의 목사로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근거하여 순전한 개혁교리를 신앙의 본질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7. 운데어아익은 문맹으로 인해 신앙적 무지에 머무르고 있는 자들에게는 목회자적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사랑으로 가르치려 했다. 그에게 있어 목사의 가르침은 강단 위에서 뿐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가르치는 교리공부나 제자훈련을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 ‘경건한 소그룹’은 운데어아익에게 사랑의 의무였다.

 

8. 운데어아익은 무신론의 폐해를 주목하며 먼저 정확한 진단을 한 후, 이제 보다 나은 삶과 교회로의 처방을 하는데 노력했다. 17세기 독일 교회는 타성에 젖어 더 이상 활력을 잃어버린 채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모든 것으로 알고 있는 교인들에 의해 점점 더 무력화되어 갔다. 이때 운데아익은 “설교자들은 능력도 기백도 생활의 모범도 없이 자신들의 목회를 유지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이러한 무력한 목회가 교회 내적으로 실천적 무신론자를 양성하고 있다고 보았던 운데어아익은 이에 대한 대처로 ‘교회 속의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인 소그룹 경건모임(collegium pietatis)을 도입해야 했다.

 

9. 운데어아익이 추구한 소그룹 경건모임은 서로 간에 시너지를 발휘하여 교회를 영적 부흥에로 이끌어야 한다는데 있었다. 그는 “우리는 성경을 함께 읽고, 들었던 설교를 다시금 경건을 위해 반복하여 함께 대화하며 상고하고, 서로를 가르치고, 위로하고, 권면하며, 경건을 고양시키고, 기도와 찬송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나누는 경건모임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 운데어아익은 이러한 소그룹 경건모임을 위해서 독자적으로 교재를 저술해야 했는데, 당시에 교회를 어지럽게 한 무신론자 내지는 교회내적 실천적 무신론자를 주목하며 목회적 마인드에서 기록된 저술로서, 부분적으로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신부’, ‘할렐루야’ 는 자신의 경건모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재를 목적으로 집필된 것이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신부’는 영국에서 쏟아져 나왔던 청교도 경건서적과 같은 맥락에서 독일 경건서적의 효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11. 17세기 독일교회가 ‘30년 전쟁’과 계몽주의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신적 황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 21세기 한국교회는 20세기 후반부터 물질주의, 쾌락주의, 안일주의, 명예주의, 다원주의 등 여러 가지 많은 도전 앞에 유혹을 받으며 깊은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교회의 위상은 실추되어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2. 한국교회는 그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다. 그저 여전히 목회성공 기준이 세속적이고 물량적이다. 쉽게 말해 세상이 말하는 성공기준과 목회의 성공기준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일치한다. 큰 교회건물, 많은 교인 수, 많은 재정이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인들도 세상적 성공을 신앙의 척도로 여길 정도로 속물이 되어 버린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13. 이제 우리 한국교회도 바른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교회다운 거룩한 노력을 다시 기울여야 할 줄로 생각한다. 17세기 독일교회의 부흥을 위해 운데어아익이 추구했던 경건모임은 20세기 옥한흠의 작은 교회운동인 제자훈련을 통해 한국교회를 깨웠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한국교회는 어디서 우리의 병을 치유해야 할지 처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초대교회들이 가졌던 순전한 소박한 영성으로 돌아가는 일이어야 한다. 작은 부분부터 기본을 다시 쌓아가는 일이다.

 

14.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을 세워 말씀을 함께 공부하며 기도하며 나누는 교회 속의 소그룹 경건모임을 도입을 기본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후 형성되는 거룩한 삶을 세상에 모델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저 물질 넘치는 풍요로운 사회가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참 인간으로 바른 성도로 세상에서 세상을 변혁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누리는 자들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한국교회는 21세기 오늘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꿰뚫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려는 소명의식을 갖는 일이 요청된다.

 

15. 17세기 운데어아익이 독일교회를 진단하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렸던 것처럼 그리고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며 교회부흥을 이뤄냈던 것처럼, 21세기 한국교회도 바른 진단을 내려야 할 것이며 앞선 선진들의 귀한 역사의 교훈을 들으며 지혜를 얻어 기본에 충실한 옳은 처방전을 갖고 실천하여 다시 새로워지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위의 내용은 기독교학술원이 지난 2014년 4월 18일 오후 4시 학술원 세미나실에서 ‘경건주의 영성과 한국 교회’를 주제로 개최한 제37회 월례발표회의 내용 중 일부 발췌 및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단체에 문의하면 된다.

 


<Copyright데오스앤로고스 / 무단 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