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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창조론 연구, "삼차원적으로 접근, 연구해야 한다”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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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박사, 성경신학적ㆍ과학적ㆍ과학사 및 과학철학적 연구 병행해야“ 강조

 

2015년 2월 9일 기사

 

창조론 종합 연구서 ‘기독교와 창조론’ 출간
창조론 오픈포럼에서 발표된 120여 편의 논문 중에서 20여 편 엄선

신학과 과학, 철학과 인문,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복음주의 학자들이 활동하는 창조론 오픈포럼(공동대표:양승훈ㆍ조덕영ㆍ박찬호ㆍ이선일ㆍ최태연)이 ‘창조론’의 종합연구서라 할 수 있는 ‘기독교와 창조론’(일용할 양식)을 펴냈다.

이와 관련 창조론 오픈포럼은 지난 7일 오후에 삼일교회에서 ‘기독교와 창조론’ 북콘서트를 개최하고, 책의 내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와 창조론’은 창조론 오픈포럼에서 그동안 발표했던 논문들 중에 20여 편을 엄선해서 엮은 책이다. 창조론 오픈포럼 공동대표를 비롯해 10여 명의 학자들의 소중한 연구논문들이 담겼다.

 


총 3부(제1부 창조론과 신학, 제2부 창조론과 과학, 제3부 창조론과 역사)로 구성됐으며 창조론과 신학/철학, 창조연대 문제를 다룬 제1부에는 △창조론의 중요성 △기독교와 과학철학 △창조의 세계관적 의미 △창조과학의 신학적 배경 △칼빈의 창조론 △창조연대 연구와 성경해석학 △지구 창조연대에 대한 신학적 검토 등의 연구논문이 담겨 있다.

우주의 창조, 생명과 인류 창조, 지적 설계 등과 관련된 연구논문이 담긴 제2부는 △힉스입자, 창조에 말을 걸다 △다중격변과 소행성 충돌 △생물진화와 우주진화:그 개념적인 다름에 대한 논의 △창조-진화 논쟁의 열역학적 측면 △자연발생론과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비판 △진화 중인 인류기원론에 대한 성경적 조망 △UFO 신드롬, 그 영적인 실체 △창조과학과 지적 설계, 양립할 수 있는가 △생명체의 적응능력, 또 하나의 설계의 증거 △신묘막측의 절정, 인체:진화인가? 창조인가? 등으로 구성됐다.

마지막 제3부는 △창조과학의 유사과학적 뿌리 △기원 논쟁의 주요 문제 △성경과 우리 민족의 기원 등이 담겼다.

한편, 이날 ‘기독교와 창조론’ 북콘서트에서 양승훈 박사(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은 ‘삼차원적 창조론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양승훈 박사는 “창조론은 성경/신학적 연구, 과학적 연구, 과학사 및 과학철학적 연구 등의 세 분야로 나눠서 연구를 해야 한다”며 “마치 다리가 세 개 있는 책상이 어느 한 다리 없이 바로 세워질 수 없는 것처럼 세 분야에 걸쳐 있는 창조론 연구에서 어느 한 분야만 집중하고, 나머지 분야를 소홀히 하게 되면 올바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 절름발이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박사는 “오늘날 창조론 연구가 기독교 진영 내에서도 많은 갈등과 논쟁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창조론에 대한 다차원적인, 혹은 학제적인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이 책에 담겨진 연구논문들은 창조론 연구의 세 영역에서 다룬 다양한 논문들이 들어 있다. 비록 부족한 책이긴 하지만 창조론 종합연구서인 이 책을 통해 창조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보다 다양한 학자와 목회자들에 의해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한 지성이 더욱 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신비를 연구하고 나아가 창조세계의 선한 청지기적 소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승훈 박사의 발표문은 다음과 같다.

< 삼차원적 창조론 연구> / 양승훈 박사(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한국에서 본격적인 창조론 운동이 시작된 지도 벌써 35년이 넘었다. 하지만 창조론 전체를 아우르는 한국 저자들의 서적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그 동안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나 교회의 호응, 지도자들의 학문적 배경을 보면 세계 창조론 운동을 이끄는 저작들이 많이 나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이는 창조과학 운동으로 대변되는 지난 한 세대 동안의 창조론 운동이 반지성적인 근본주의 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서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서 지난 2007년 8월에 시작한 창조론 오픈포럼의 작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와 창조론>(이하 본서)은 지난 2007년 8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창조론 오픈포럼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분야별로 선별하여 모은 것이다.

 


1. 창조론 연구의 세 차원

본서는 창조론에 대한 세 가지 차원의 연구들을 모은 것이다. 첫째, 성경/신학적 연구, 둘째, 과학적 연구, 셋째, 과학사 및 과학철학적 연구이다. 이것은 <창조론 오픈포럼> 논문집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저자 가이드에서 분류하고 있는 논문들의 카테고리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창조론은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누어서 연구를 해야 하는가? 이의 가장 큰 이유는 창조론은 세 분야에 걸쳐 있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마치 다리가 세 개 있는 책상이 어느 한 다리 없이 바로 세워질 수 없는 것처럼 세 분야에 걸쳐 있는 창조론 연구에서 어느 한 분야만 집중하고, 나머지 분야를 소홀히 하게 되면 올바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 절름발이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창조론 연구가 기독교 진영 내에서도 많은 갈등과 논쟁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창조론에 대한 다차원적인, 혹은 학제적인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성의 여지가 없는 무생물,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은 사람을 다루는 인문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에 비해 생각이 단순할 수밖에 없다. 다차원적 고찰이 필요한 연구를 단순 사고를 가진 과학자들, 공학자들이 앞장 서다보다 온갖 문제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한국창조과학회가 처음 창립될 때 정관에 정회원 자격으로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적어도 석사학위 이상 가진 자라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아직까지 그 조항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항이 초기에 창조과학자들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다이내믹하게 창조과학 운동을 펼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립준비위원으로, 그리고 창조과학회 창립멤버로 참여한 필자도 그렇게 회원들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창조 연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과학적 연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후에 미국 대학원에서 신학과 과학사를 공부하면서 필자가 너무 좁았음을 알게 되었다. 창조론 운동에서 과학적 측면은 한 부분에 불과하고 성경/신학적 연구와 역사적 연구가 균형을 이루어져야 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엔진 출력만 크다고 배가 잘 가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아무리 엔진이 힘이 좋아도 항해사가 시원찮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도 엔진 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원찮은 초보 항해사가 키를 잡았기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한국 교회나 사회에서의 창조론 운동을 회고할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운동, 어느 단체라도 문제가 없는 경우는 없지만 한국 교회에서의 창조론 운동의 문제는 그 도를 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창조론 운동으로 인해 일어난 내부적 갈등과 외부적 비난은 한국 기독 지성의 근간을 흔드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 원인을 추적해 보면 창조론 운동의 다면적 측면을 무시하고 어느 한쪽으로, 특히 과학적 측면으로 치우쳤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조과학 운동이 처음 시작된 미국, 그 중에서도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안식교(재림교)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안식교로부터 창조과학을 들여왔던 헨리 모리스 등 미국 남부의 근본주의자들도 그러했다. 그 중 안식교는 하나의 섹트로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자기들 전통과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과감하게 잘랐기 때문에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큰 파열음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개신교 진영에서는 창조과학으로 인해 미국 복음주의가 근본주의와 분열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그 창조론 운동으로 인해 생긴 문제의 핵심에는 미국에서조차 신학적, 성경적, 교회사적 함의가 큰 창조론 운동을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과학자, 공학자들의 손에 맡겨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창조론 연구가 삼차원적이어야 할까? 먼저 과학사적, 과학철학적 측면을 생각해 보자.

 

 

2. 과학사적, 과학철학적 측면

흔히 역사라고 하면 인류의 역사만을 생각하겠지만 사실 어떤 학문이든지 모든 학문에는 해당 학문의 역사가 중요한 분야로 연구되고 있다. 경제학에는 경제학사가, 정치학에는 정치사가, 음악에는 음악사가, 과학에는 과학사가 있다. 왜 그러면 모든 학문의 분야마다 해당 분야의 역사를 그렇게 귀중하게 생각하면서 연구하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기의 학문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자칫 학문이 엉뚱한 방향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지내온 학문의 자취를 살펴보면서 잘된 자취, 잘못된 자취를 더듬어 반성하면서 현재의 학문적 정체성을 살펴보아야 학문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사실 현재 창조론 논쟁과 관련해서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얻을 수 있는 지혜가 굉장히 많다. 초대교회 때부터 과학과 신앙, 좀 더 구체적으로 헬라문화의 자연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는 많은 상호작용을 했다. 중세에도 과학과 신학은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상호작용을 해 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갈릴레오 재판이나 진화론의 등장 등으로 과학과 기독교는 때로는 동지인 듯, 때로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듯, 때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이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과학과 기독교의 역사적 상호작용을 살펴보게 되면 오늘날 기독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창조론 논쟁, 특히 과학적 측면의 창조론 논쟁이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는 분명해 진다.

3. 성경적, 신학적 측면

다음에는 성경적, 신학적 측면의 연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말 할 필요도 없이 창조는 기독교 신학의 가장 기초를 이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교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성경신학(해석학)은 창조신앙의 기초를 이루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같은 성경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성경을 과학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문제는 순수하게 신학적인 논의의 영역이지만 창조론 연구의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교리를 다루는 조직신학은 어떤가? 성경은 창조에 대한 선언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모든 조직신학은 창조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되며, 사도신경도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신학은 성경신학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으면서 동시에 성경신학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창조는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경에 대한 복음주의적 시각과 이에 기초한 신학적 반성이 창조론 운동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창조론과 관련하여 생긴 많은 문제들은 신학적 반성이 부족한 사람들, 다시 말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과학자들에게 과도한 힘과 권위가 부여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4. 과학적 측면

마지막으로 말 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분야는 과학적 측면이다. 앞에서 창조 연구에서 과학적 측면을 중시할 때 닥치게 될 재앙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과학적 측면을 무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과학자들이 새로운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직자들의 가운보다 과학자들의 가운이 더 신뢰할만하고 권위 있게 보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은 성경 연구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잠정적이지만 과학은 태초의 지구 상태나 우주의 형성 과정, 오늘날 지구의 운행 등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은 앞에서 과학사적, 과학철학적 연구와 성경신학적, 조직신학적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 우리는 과학이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까지 넘보는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창조론 연구에서는 어디까지나 앞의 두 연구가 기초가 되어야 하고, 과학적 연구는 그것들의 성과 위에 조심스럽게 해석되어야 한다. 만일 과학적 연구가 두 연구의 기초 없이, 혹은 부실한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근래 우리가 창조론 운동에서 목도하는 바가 바로 그 문제이다.

 

 

5. 세 가지 계시의 통로

지금까지 얘기한 창조론 연구의 세 영역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통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 계시를 하나씩 생각해 보자.

첫째, 특별계시의 영역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연계시 혹은 일반계시에 비해 특별계시의 우월성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에서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자연신학 운동은 이 우선순위를 바꿀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또한 이를 체계화한 신학적 고찰은 창조론 연구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자연계시의 영역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통해, 우리의 이성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자연계시의 영역을 연구하는 것이 곧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계시는 특별계시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지 지배적이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가시적인 피조세계는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셋째, 역사계시의 영역이다. 기독교는 역사의 종교이고, 성경도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2000년의 교회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혹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바를 연구하는 것은 창조의 또 다른 차원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창조론 연구와 관련해서는 초대교회로부터 중세, 근세 교회를 거치면서 창조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창조론 연구의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말씀(신학)과 자연(과학)과 역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균형 있게 연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영역에 대한 연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세 분야를 모두 연구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창조론 오픈포럼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다. 창조론 오픈포럼은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한국에서의 창조과학 운동이 앞에서 말한 세 분야를 균형 있게 연구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긴 폐악들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창조과학 운동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바로 이 3차원적인 연구가 아닌, 과학자 중심의 연구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지위와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신학자가 과학이나 역사를 모르는 것보다 과학자가 역사와 신학을 모르는 것이 더 큰 화가 될 수 있음을 보았다.

이렇게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본서는 여전히 부족한 글들의 모음이다. 어디 완전한 책이 세상에 있을까마는 이 책은 우리들의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한 지성이 더욱 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신비를 연구하고 나아가 창조세계의 선한 청지기적 소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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